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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고자의 눈동자, 시장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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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대피소의 묵직한 돌문 너머로 실비아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비약을 복용하고 마침내 마력 역류의 고열에서 벗어난 은발의 신수 여왕. 코어가 절반 이상 수복되며 고결한 미소녀의 모습으로 인간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오두막을 나설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아직 그녀에게는 몸을 가릴 제대로 된 의복조차 없었고, 무엇보다 머리 위로 쫑긋 솟은 백은색 늑대 귀와 엉덩이 뒤로 살랑이는 풍성한 꼬리를 숨길 방도가 없었다.


제국 수색대의 탐지망을 피하려면 가죽 장인 마가렛이 만든다는, 마력을 차단하는 특제 가죽 코트가 시급했다.


“하아…….”


태오는 붕대로 단단히 동여맨 왼쪽 어깨를 매만지며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실비아의 날카로운 발톱에 찢겼던 상처가 움직일 때마다 욱신거렸고, 절벽에서 추락하며 얻은 전신 타박상으로 갈비뼈 부근이 비명을 질렀다. 게다가 비약을 조제하느라 자신의 정화의 피를 과도하게 짜내어 머리가 깨질 듯이 어지러웠다.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은 종이장처럼 창백했다.


하지만 쉴 틈이 없었다. 실비아의 마력 회복 파동이 안개의 숲을 뒤흔들었으니, 수색대장 바르토 기사단이 오두막의 정확한 좌표를 특정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태오는 낡은 린넨 약사복을 껴입고, 허리춤에 영주 대리인 바론이 발급해 준 공식 약사 통행증을 챙겼다. 그리고 가르크를 불러 은밀히 지시를 내렸다.


“가르크, 내가 없는 동안 실비아를 부탁한다. 만약 결계 경계선에 이상 기척이 느껴지면 망설이지 말고 실비아를 데리고 지하 연구실 깊은 곳으로 숨어라.”


“나으리, 부상도 완치되지 않으셨는데 홀로 마을로 가시려는 겁니까? 위험합니다. 제국의 사냥개 놈들이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가르크의 사냥개 귀가 걱정스럽게 뒤로 처졌다. 태오는 창백한 얼굴로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신분은 영주님이 보증하는 합법 약사다. 기사들도 명분 없이 나를 건드리진 못해. 하지만 실비아의 기척을 숨길 가죽 코트가 없으면 우린 이 안개의 숲에서 영원히 고립되어 고사할 거다. 로건과 마가렛을 만나고 올 테니, 숲의 경계를 철저히 감시해 다오.”


“……알겠습니다. 목숨을 바쳐 오두막을 수호하겠습니다.”


가르크의 듬직한 대답을 뒤로한 채, 태오는 약초 바구니를 메고 오두막을 나섰다. 숲을 가득 채운 안개는 여전히 짙었지만, 제국 기사들의 강렬한 오라 기류가 안개 장막을 미세하게 흔드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추적의 그물이 좁혀오고 있었다.


***


안개의 숲 외곽, 제국의 남부 국경을 통제하는 ‘안개 숲 입구 초소’.


붉은 칠갑을 한 수색대 병사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는 관문 앞으로 태오가 걸어갔다. 문득 가슴팍에 걸린 실비아의 푸른 목걸이가 미세하게 떨리며 그의 심장박동을 자극했다. 태오는 호흡을 가다듬고 평범한 약초꾼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초소로 향했다.


“멈춰라!”


붉은 코에 불룩 튀어나온 배를 가진 하급 경비병, 홉스가 쇠창을 가로막으며 앞을 막아섰. 그의 몸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시큼한 술 냄새가 풍겼다.


“어라, 오두막의 젊은 약사 녀석이군. 요즘 숲속 분위기가 흉흉한데 어딜 기어 나가는 거지?”


홉스의 뱀 같은 눈빛이 태오의 가벼운 약초 바구니를 집요하게 훑었다. 최근 실비아의 마력 파동으로 인해 수색대의 검문 강도가 대폭 강화된 상태였다. 공적에 굶주린 기사단장 바르토의 압박 때문인지, 평소 나태하던 홉스조차 잔뜩 날이 서 있었다.


“안개골 마을의 노의원 서혜자 어르신께 약재를 납품하러 가는 길입니다. 여기 영주 대리인 바론 님께서 발급해 주신 공식 통행증입니다.”


태오는 차분하게 허리춤에서 은빛 인장이 찍힌 영주 대리인의 통행증을 꺼내 보였다. 홉스는 장갑 낀 손으로 통행증을 낚아채듯 가져가 꼼꼼히 살폈다.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행정 문서였지만, 홉스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딴죽을 걸었다.


“통행증은 진짜군. 하지만 요즘 숲속에서 은빛 괴수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어서 말이야. 네 바구니를 전부 쏟아봐야겠다. 혹시 괴수의 피나 털이라도 숨겨 가는지 어떻게 알겠어?”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홉스의 진짜 목적은 뻔했다. 수색의 번거로움을 핑계로 통행세를 뜯어내려는 탐욕스러운 수작이었다. 태오는 골절된 갈비뼈의 통증을 꾹 참으며, 바구니 안쪽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작은 유리병 두 개를 은밀히 꺼냈다.


“경비병님, 매일 밤낮으로 수색 임무를 수행하시느라 노고가 많으십니다. 이건 제가 안개의 숲 깊은 곳에서만 자라는 희귀 허브를 정제해 만든 특제 피로회복 약술입니다. 마시는 즉시 기혈이 맑아지고 만성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지는 명약이지요.”


태오가 건넨 약술 병을 본 홉스의 눈이 번쩍였다.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하급 경비병들에게 약사의 고품질 조제약은 시장에서 은화 수십 닢에 거래되는 귀한 사치품이었다. 홉스는 잽싸게 약술 병을 가죽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헛기침을 했다.


“흠, 흠! 역시 안개 숲의 약사 녀석은 눈치가 빠르단 말이야. 좋아, 영주님의 정식 서류도 있고 하니 이번만 특별히 통과시켜 주지. 하지만 조심해라. 요즘 기사단장님이 아주 예민하시니까.”


“감사합니다. 경비병님.”


태오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초소의 목책 문을 통과했다. 첫 번째 관문은 지략과 뇌물로 무사히 넘어갔지만, 빈혈로 인해 시야가 일시적으로 흐려졌다. 태오는 비틀거리는 몸을 추스르며 안개골 마을의 골목길로 들어섰다.


***


안개골 마을은 제국의 가혹한 세금 수탈과 광산 벌목업으로 연명하는 척박하고 가난한 정착지였다. 잿빛 돌벽과 낡은 목조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리는 제국 기사들의 군마 소리와 차가운 철갑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태오는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마을 변두리에 위치한 로건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깡! 깡! 깡!


화덕의 붉은 열기와 함께 묵직한 망치 소리가 골목을 울리고 있었다. 땀에 젖은 가죽 앞치마를 두른 거구의 사내, 로건이 붉게 달아오른 철괴를 모루 위에 올려놓고 힘차게 메질을 하고 있었다.


“로건.”


태오의 목소리에 로건이 망치를 멈추고 굵은 팔뚝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그의 호탕한 얼굴에 반가움과 걱정이 동시에 스쳐 지나갔.


“오, 태오! 살아 있었군! 요즘 안개의 숲에 기사 놈들이 때거지로 몰려 들어가서 네 녀석이 잘못되기라도 했을까 봐 밤잠을 설치던 참이었다.”


로건은 무거운 망치를 내려놓고 태오의 어깨를 툭 쳤다. 상처 입은 왼쪽 어깨에 가해진 충격으로 태오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윽…….”


“어이, 몸 상태가 왜 이 모양이냐? 얼굴은 왜 그렇게 창백해?”


로건이 깜짝 놀라 태오를 대장간 안쪽의 낡은 나무 의자에 앉혔다. 태오는 숨을 고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가벼운 사고가 좀 있었어. 로건, 급히 부탁할 게 있네.”


“말만 해라. 우리 사이에 못 들어줄 게 뭐가 있겠냐.”


태오는 바구니에서 마르쿠스의 일지를 토대로 적어둔 정밀 약제 도구와 오두막 주변에 매설할 방어용 철제 덫의 설계 장도를 꺼내놓았다.


“이 도구들을 최대한 빨리 제작해 줄 수 있겠나? 그리고…… 혹시 가죽 장인 마가렛 할머니의 작업실 상황은 어떤지 알고 싶네.”


로건은 설계도를 유심히 살피더니 굵은 손가락으로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이 정밀 침통이랑 분쇄기는 이틀이면 완벽하게 벼려줄 수 있어. 덫도 내 전공이니 걱정 말라고. 하지만 마가렛 할머니라면…… 최근 기사단이 수인들의 흔적을 쫓는다며 가죽 작업실의 물자 유통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어. 특수 가죽을 구하려면 눈치가 좀 보일 거다.”


“그렇군…….”


실비아의 마력 차단 코트를 제작하기 위한 행보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로건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도구 제작비는 다음 납품 때 희귀 광물과 약재로 넉넉히 쳐주겠네. 부탁하네, 친구.”


“돈 걱정은 마라, 녀석아. 네가 마을 사람들 무상으로 치료해 준 은혜가 있는데 이 정도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지. 몸이나 잘 추스르고 있어라.”


로건과의 접선을 마친 태오는 대장간을 나와 마을 중심가에 위치한 ‘달빛 아래 주막’으로 향했다. 정보 수집의 중심지인 그곳에서 기사단의 구체적인 수색 경로를 파악해야 오두막의 결계 방어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주막 내부로 들어서자 짙은 술 냄새와 땀 냄새가 훅 끼쳐왔다. 구석진 자리에 앉은 태오는 차분하게 약초 차를 주문하고 귀를 기울였다. 주막 주모 손지혜가 바쁘게 움직이며 수색대 병사들의 술잔을 채워주고 있었다. 병사들은 취기가 오르자 극비 작전 정보를 흘리기 시작했다.


“단장님이 아주 미쳐 날뛰고 계셔. 그 은빛 괴수를 잡기만 하면 황실 연구소에서 엄청난 포상금을 내린다더군.”


“탐지 하운드들이 안개의 숲 남쪽 계곡에서 자꾸 맴돈다는데, 결계라도 쳐져 있는 게 분명해.”


태오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차 잔을 쥐었다. 그들의 추적망이 오두막의 결계 근처까지 근접해 있었다.


그때였다.


태오의 정수리를 찌르는 듯한 끈적하고 불쾌한 시선이 느껴졌다.


태오는 눈동자를 미세하게 굴려 주막 입구 쪽을 살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낡은 가죽 주머니를 허리에 찬 칠성이 앉아 있었다. 태오와 마찬가지로 안개의 숲에서 약초를 캐는 경쟁 약초꾼이자, 태오의 뛰어난 조제 실력에 깊은 열등감을 품고 있던 소인배였다.


칠성의 찢어진 눈동자에는 탐욕과 시기심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태오가 항상 비싸고 희귀한 약초를 캐오는 비결을 캐내기 위해 집요하게 기회를 노리던 자였다. 태오는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끼며 신수 감정안을 가동했다.


스윽.


태오의 갈색 눈동자 속에서 희미한 녹색 빛무리가 회전하며, 칠성의 머리 위에 반투명한 상태창이 떠올랐.


[이름: 칠성]

[신분: 안개골 마을 약초꾼]

[호감도: -85 (극도의 시기, 질투, 탐욕)]

[상태: 의심 및 미행 기류 발생 중]


‘저 자식…… 내 뒤를 밟으려는 건가.’


태오는 침착하게 약초 차를 단숨에 들이켜고 주막을 나섰다. 칠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술잔을 내려놓고 소리 없이 태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골목길로 접어들자 사방이 어두워졌다. 태오는 어깨의 부상 통증으로 인해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지만, 이를 악물고 로건의 대장간 주변의 복잡한 골목 지형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버려진 벌목재들이 쌓여 있는 좁은 모퉁이를 돌며, 태오는 은밀한 약초 채집술의 보법을 기동했다. 발바닥 전체에 정화 마력을 얇게 깔아 흙먼지 소리와 흔적을 완벽히 지웠다.


사락.


태오가 붉은 벽돌벽 뒤편의 좁은 틈새로 몸을 숨기자마자, 칠성이 급한 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아 나왔다.


“어? 이 자식이 어디로 간 거야?”


칠성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텅 빈 골목길을 향해 침을 뱉었다. 태오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의 얼굴에 깊은 의혹과 짜증이 묻어났다.


“분명 이쪽으로 왔는데…… 젠장, 몸도 성치 않아 보이는 놈이 쥐새끼처럼 빠르군. 하지만 분명 숨기는 게 있어. 그 창백한 얼굴과 어깨의 핏자국…… 수색대가 찾는 은빛 신수와 연관이 있는 게 분명해.”


칠성은 주먹을 불끈 쥐며 어두운 골목 아래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벽 틈새에 숨어 숨을 죽이고 있던 태오는 칠성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차적으로 미행을 따돌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칠성의 의심이 극에 달해 있어 오두막의 위치가 노출될 리스크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었다.


태오는 서둘러 오두막으로 복귀하기 위해 골목을 빠져나가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칠성이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주막 골목 끝자락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 두 개의 실루엣이 교차하는 모습이 태오의 눈에 들어왔.


은빛 전신 판금 갑옷을 입은 제국 수색대의 부단장, 케인이 차가운 검자루를 쥔 채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방금 태오를 놓치고 분노에 가득 차 있던 칠성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기사님, 아주 흥미로운 정보가 있습니다.”


칠성의 비열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태오의 귀에 똑똑히 박혔다. 칠성은 품에서 번쩍이는 금화 주머니를 흔들어 보이는 케인을 향해 탐욕스러운 눈빛을 빛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안개 숲의 약사 녀석…… 그놈 오두막의 대략적인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그놈이 최근 캐오는 약초와 상처 흔적이 심상치 않습니다. 은빛 괴수를 숨겨주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케인의 차가운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그는 금화 주머니를 칠성의 발밑에 툭 던져주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좋다. 그 약사의 목을 베고 괴수를 생포한다면, 이 금화의 열 배를 더 주지. 당장 길을 안내해라.”


어두운 골목 끝, 배신의 음모가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태오의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긴장감이 안개골 마을의 어둠을 가득 채웠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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