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철갑의 진격, 포위되는 안식처
콰르릉! 쾅!
하늘을 찢어발기는 뇌성이 숲의 침묵을 산산조각 냈다. 오두막 유리창이 폭풍우에 덜컹거리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태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하실 계단을 기어올라 오두막 1층으로 복귀했다. 그의 손에는 방금 전 봉인을 해제한 마르쿠스의 비밀 일지가 꽉 쥐어져 있었다. 책의 정령 아라는 푸른 나비 날개를 파닥거리며 그의 어깨 위를 불안하게 부유했다.
“하아, 하아…….”
왼쪽 어깨의 상처에서 지혈제 가루를 뚫고 붉은 피가 다시 배어 나왔다. 사슬의 반발력으로 타버린 오른손바닥은 마치 뜨거운 인장을 찍은 듯 욱신거렸다. 하지만 태오는 자신의 통증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침대로 달려간 그의 눈에, 붉은 열병에 신음하는 실비아의 모습이 들어왔다.
인간의 형태로 변한 실비아의 이마는 불덩이 같았다. 은빛 귀는 힘없이 뒤로 누워 있었고, 하얀 꼬리는 고통을 참으려는 듯 침대 시트를 꽉 쥐고 있었다. 그녀의 호흡이 닿는 공기마다 뜨거운 열기가 훅훅 끼쳤다. 심장 부근에서 느껴지는 신성 코어의 진동은 마치 터지기 직전의 마력 가마솥처럼 위태로웠다.
“시간이 없어…… 24시간 안에 월광초를 구하지 못하면 저 아이의 심장이 터진다.”
“이봐, 약사 청년! 내 말 안 들려?”
아라가 그의 뺨을 콕콕 찌르며 까칠하게 쏘아붙였다.
“지금 밖을 보라고! 폭풍우가 문제가 아니야. 저 멀리서 밀려오는 이 불길하고 무식한 마력 파동은 대체 뭐란 말이야? 내 지식 창고가 경고하고 있어. 아주 사납고 잔인한 인간들이 숲 경계선을 짓밟고 들어오고 있다고!”
태오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역시 느끼고 있었다. 대지를 흔드는 무거운 말발굽 소리, 그리고 숲의 자연스러운 안개를 강제로 밀어내는 거칠고 인위적인 마력의 흐름.
제국 남부 수색기사단장, 바르토였다.
스사삭.
그때, 굳게 닫혀 있던 오두막 창문이 소리 없이 열리며 젖은 그림자 하나가 안으로 들이닥쳤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사냥개 귀를 지닌 청년, 가르크였다. 전신이 빗물과 진흙으로 젖은 그가 무릎을 꿇으며 급박하게 보고했다.
“태오 나으리, 큰일났습니다. 붉은 철갑을 두른 제국 기사들이 숲의 남쪽 경계선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그 수가 수십에 달합니다.”
“바르토 기사단장이 직접 움직인 건가?”
“예. 공적에 눈이 먼 그 늙은 사냥개 놈이 정예 기사들을 이끌고 숲의 초입을 짓밟고 있습니다. 기사들의 물리적 오라가 대지를 짓눌러 안개를 강제로 걷어내고 있으며, 마탑의 사냥개 놈들이 부리는 탐지 하운드까지 풀어놓았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오두막이 발견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가르크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수인들을 짐승 이하로 취급하는 제국 기사단의 무자비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르토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였다. 필요하다면 안개의 숲 전체를 불태워서라도 은빛 신수를 찾아내라는 명을 내릴 위인이었다.
태오는 침대에 누운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의식을 잃은 와중에도 태오의 옷자락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오두막이 들통난다면, 저 아이는 물론이고 가르크와 어린 수인들 모두 제국의 실험실로 끌려가 죽게 된다. 하지만 내가 가지 않으면 실비아를 살릴 비약을 조제할 수 없어.’
진퇴양난이었다. 외부의 추적망은 좁혀오고 있었고, 내부의 타임 리미트는 시시각각 태오의 목을 죄어왔다.
태오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혔다. 약사로서, 그리고 이들의 유일한 보호자로서 내릴 수 있는 가장 냉철한 판단을 내려야 했다.
“가르크, 내 지시를 똑똑히 들어라.”
“말씀하십시오, 나으리. 목숨을 바쳐 따르겠습니다.”
“절대 정면으로 싸워선 안 된다. 제국 기사단의 무전 신호망은 촘촘하다. 기사 한 명이라도 이곳에서 실종된다면 바르토는 이 좌표를 군대로 포위할 거다. 우리의 목표는 살상이 아니라 ‘기만’이다.”
태오는 가방에서 마르쿠스가 남긴 ‘마력 교란 향로’를 꺼냈다. 청동 표면에 기괴한 왜곡 룬이 새겨진 향로였다. 그는 향로 안에 숲에서 채집해 둔 교란 약초를 넣고 불을 붙였다. 이윽고 매캐하면서도 달콤한 연기가 오두막 내부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 연기는 실비아의 순수한 신성 코어 기운을 썩은 야생 마정석의 불순한 파동으로 위장해 줄 터였다.
“이 향로를 실비아의 침대 밑에 두어라. 그리고 나는 오두막 사방에 박힌 결계 말뚝으로 가서 ‘안개 위장막 형성’을 극대화하겠다.”
“하지만 나으리, 위장막을 무리하게 기동하면 결계 말뚝의 마력이 급격히 소모됩니다. 장기적으로 버틸 방어선이 약화될 텐데요.”
“지금 당장 오두막이 짓밟히는 것보다 낫다. 내가 월광초를 꺾어 돌아올 때까지 기사단의 눈을 돌려야 해.”
태오는 부러진 갈비뼈의 통증과 어깨의 자상을 억누르며 오두막 문을 열어젖혔다. 차가운 폭우와 광풍이 그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그는 오두막 사방의 나무 그늘 속에 숨겨진 네 개의 결계 초소로 달렸다. 빗물에 젖어 미끄러운 진흙탕을 구르며, 태오는 첫 번째 결계 말뚝에 다다랐다. 그의 오른손바닥 화상 흉터가 빗물에 닿아 아려왔지만, 그는 왼손가락 사이에 은침을 쥐고 말뚝의 마력 결절점을 정교하게 찔렀.
“안개여, 대지의 눈을 가려라.”
태오의 정화 마력이 말뚝을 통해 숲의 지맥으로 흘러 들어갔다. 지이이잉! 오두막 주변의 공간이 미세하게 물결치며, 외부에서 바라볼 때 평범한 울창한 가시덤불과 절벽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위장 장벽이 세워졌다. 그러나 아라의 경고대로, 결계 말뚝의 마력 수치가 30% 급감하며 붉은 경고등이 그의 머릿속 상태창에 점멸했다. 장기 유지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그 순간, 가르크가 나무 위에서 소리 없이 내려와 태오의 어깨를 잡았다.
“나으리, 적의 척후병입니다! 잭(잭)이라는 자가 사냥개의 코를 앞세워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오두막에서 겨우 500미터 거리입니다!”
태오는 안개 너머를 응시했다.
매부리코에 뱀 같은 눈빛을 지닌 가죽 옷의 사내, 잭이 섀도우 하운드의 목줄을 쥔 채 덤불을 헤치고 있었다. 잭의 손에는 마력의 흔적을 붉은빛으로 보여주는 제국제 마법 돋보기가 들려 있었다. 하운드가 코를 킁킁거리며 실비아가 탈출할 때 흘렸던 미세한 피 냄새를 쫓아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다.
“나으리, 제가 저 자의 목을 베어 늪에 묻겠습니다.”
가르크가 숫돌에 간 쌍단검을 쥐며 살기를 뿜어냈다.
“기다려, 가르크. 잭이 들고 있는 무전 장치를 봐라. 그가 비명을 지르거나 심장박동이 멈추는 즉시 바르토의 본대에 신호가 간다. 정면 기습은 자멸이다.”
태오는 뇌리를 거칠게 회전시켰다. 잭의 탐지 경로를 우회시켜야 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은빛 안개 버섯 가루를 꺼내 가르크에게 건넸다.
“가르크, 잭의 하운드가 냄새를 맡는 바람길 상류로 가서 이 가루를 뿌려라. 그리고 나는 안개 위장막을 한 번 더 굴절시켜 잭의 마법 돋보기에 허상의 경로를 보여주겠다.”
“알겠습니다!”
가르크가 바람처럼 나무 위로 솟구쳐 사라졌다.
태오는 결계 열쇠를 지면에 깊숙이 꽂아 넣었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치며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맴돌았다. 마력을 무리하게 쥐어짜자 심장 경맥의 균열이 벌어지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위장막의 공간 굴절을 유도했다.
스우우우.
잭의 마법 돋보기 화면에 비친 푸른 마력의 흐름이 미세하게 뒤틀렸다. 오두막이 있는 북쪽이 아닌, 험준한 절벽이 가로막힌 동쪽 계곡 방향으로 붉은 마력 반응이 굴절되어 나타난 것이다.
동시에 바람을 타고 흐른 은빛 안개 버섯 가루가 하운드의 코끝에 닿았다. 사냥개들이 재채기를 해대며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엉뚱한 곳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음? 이쪽이 아닌가?”
잭이 가던 길을 멈추고 돋보기와 사냥개를 번갈아 보았다.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태오의 정교한 기만술 덕분에, 잭은 발걸음을 돌려 오두막이 아닌 동쪽 절벽 방위로 향하기 시작했다.
태오는 흙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겨우 일차적인 위기를 넘겼지만, 결계의 에너지는 한계에 달해 있었다.
‘이제 내가 월광초 절벽으로 떠나야 할 차례다.’
태오는 서둘러 약초 가방을 메고 낡은 로프를 점검했다. 하지만 그가 오두막을 나서려는 찰나, 저 멀리 덤불 속에서 발걸음을 옮기던 잭이 돌연 우뚝 멈춰 서는 모습이 보였다.
노련한 척후병의 본능이 무언가 이질감을 감지한 것이다. 잭은 고개를 돌려 오두막 결계 초소의 말뚝이 박힌 구역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곳은 안개의 흐름이 부자연스럽게 왜곡되어 소용돌이치고 있는 지점이었다.
잭의 손이 허리춤에 찬 제국군 공식 작전 신호용 호각으로 서서히 향했다.
피이이익—!
그가 호각을 입에 물고 숨을 들이쉬는 순간, 태오의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정적이 안개의 숲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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