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눈빛, 오두막의 이방인
사방을 가득 메운 짙은 청색의 안개를 뚫고, 태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두막의 문을 밀어 열었다. 낡은 목조 문이 삐걱거리는 비명을 지르며 열리자, 오두막 내부에 가득 차 있던 알싸한 월광초 향기와 쌉싸름한 약초 건조 향이 마중하듯 흘러나왔.
“하아…… 하아…….”
태오는 전신을 짓누르는 피로감에 무릎이 꺾일 뻔한 것을 간신히 버텨냈다. 그의 품에는 은빛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채 의식을 잃은 소녀가 안겨 있었다. 제국의 가혹한 사슬에서 풀어낸 늑대 신수 여왕, 실비아였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그녀는 가냘픈 체구에 머리 위로 하얀 늑대 귀를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었고, 허리 뒤편의 복슬복슬한 은빛 꼬리는 잔뜩 수축해 있었다.
태오는 그녀를 자신의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거친 모포 위에 닿는 그녀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목덜미에는 붉은 마법 사슬이 감겨 있던 자리가 끔찍한 화상 자국으로 남아 진물을 흘리고 있었고, 옆구리의 깊은 창상에서는 여전히 미세한 푸른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일단 내 상처부터…….”
태오는 신음하며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마법 사슬의 반발력으로 인해 오른손바닥 전체가 숯등걸처럼 검붉게 타들어가 있었다. 손가락을 구부리려 할 때마다 찢어지는 듯한 고열이 신경을 타고 척추를 찔렀다. 심장 경맥 역시 미세하게 균열이 가 있어,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 깊은 곳에서 비린 피맛이 울컥 치밀었다.
하지만 태오는 쉴 틈이 없었다. 그는 왼손만으로 정교하게 움직이며 가방에서 마르쿠스의 은침 몇 개를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 주변 요혈인 ‘전중혈’과 ‘신문혈’에 은침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자침과 동시에 심장을 옥죄던 과부하 마력이 미세하게 대지로 방전되며 숨통이 트였다. 오른손바닥의 화상 부위에는 급히 조제해 두었던 냉각 유황 연고를 바르고 천으로 감쌌다.
“이제…… 저 아이를 치료해야 해.”
태오는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약사로서의 본능이 속삭이고 있었다. 실비아의 체내에 흐르는 신성 코어는 제국의 억압으로 인해 90% 이상 고갈된 상태였고, 상처 부위에는 마탑의 냉독이 침투해 회복을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었다. 치료를 시작하기 위해 그녀의 옷자락을 살짝 걷어내려던 순간이었다.
파르르.
실비아의 하얀 늑대 귀가 미세하게 떨렸다.
태오가 멈칫하며 뒤로 물러서기도 전에, 감겨 있던 그녀의 눈꺼풀이 번개처럼 치켜 올라갔다. 찬란하면서도 극도의 살기를 머금은 황금빛 눈동자가 어두운 오두막의 천장을 뚫을 듯이 번뜩였다.
“크으으으……!”
그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상처 입은 맹수가 죽음의 문턱에서 내지르는 처절하고 사나운 하울링의 전조였다. 실비아는 이성이 거세된 짐승의 눈빛으로 눈앞의 태오를 응시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자신을 짓밟고, 쇠사슬로 묶어 지하 감옥에 가두었던 제국 마법사들의 잔혹한 웃음소리가 이명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갈색 머리의 인간 청년 역시 자신을 사냥하러 온 추악한 인간 중 하나일 뿐이었다.
콰아아앙!
실비아가 침대를 박차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마력이 완전히 고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수 여왕으로서의 타고난 피지컬은 평범한 인간인 태오가 반응할 수 있는 영역을 초월해 있었다.
“윽!”
태오는 피할 틈도 없이 바닥으로 거칠게 처박혔다. 짓눌린 등 뒤로 낡은 바닥나무가 비명을 지르며 쩍 갈라졌다. 실비아는 태오의 가슴팍 위에 올라타 그의 목덜미를 조여왔다. 그녀의 양손 끝에서 날카로운 은빛 발톱이 돋아나 태오의 왼쪽 어깨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서걱! 콰드득!
“아아악!”
태오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깨 가죽이 찢어지고 붉은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실비아는 그 피를 보고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피비린내가 그녀의 야성을 더욱 자극했는지, 황금빛 눈동자가 핏빛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상처의 고통과 인간에 대한 증오가 결합되어 이성을 잃고 눈앞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실비아의 Feral(야성) 폭주’ 상태였다.
“크르르르…… 인간…… 죽여버리겠다……!”
그녀의 목구멍에서 쇠가 긁히는 듯한 거친 언어가 흘러나왔다. 실비아의 몸 주변으로 폭주하는 은빛 마력 파동이 칼날처럼 소용돌이치며 오두막 내부의 가구들을 산산조각 내기 시작했다. 벽에 걸려 있던 약초 다발들이 찢겨 날렸고, 조제용 초자 기구들이 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이대로 두면 오두막 전체가 그녀의 마력 파동에 휘말려 붕괴할 것이 분명했다.
태오의 목숨 역시 경각에 달해 있었다. 실비아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그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숨결에서 지독한 열기와 피비린내가 풍겼다.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건 불가능해. 내 무력으론 이 아이의 손가락 하나 부러뜨리지 못해. 그리고…… 힘으로 억누르려 하면 저 아이의 신성 코어는 완전히 깨져버릴 거다.’
태오는 오른쪽 손바닥의 화상 통증과 왼쪽 어깨의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왼손을 간신히 들어 올려, 실비아의 이마를 향해 뻗었다. 손가락 끝에 미세하게 남아 있는 정화 마력을 모았다.
‘부디…… 통해야 해.’
태오는 마음속으로 고대의 의학 비법을 기동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야수 상태의 신수와 영혼의 주파수를 일치시켜 그 감정과 기억을 소통하는 극의, ‘신수 교감 독심술’이었다.
태오의 손가락 끝이 실비아의 이마 중앙에 닿는 순간.
지이이이잉!
두 사람의 가슴 부위에서 따뜻한 분홍빛 마력 실이 피어오르더니, 서로의 영혼을 단단히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태오의 뇌리 속으로 해일 같은 정보와 감정의 파도가 무자비하게 휘몰아쳐 들어왔.
“아아아아윽!”
태오는 정신이 쪼개지는 듯한 극심한 두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과 코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실비아의 영혼 속에 각인되어 있던 참혹한 기억들이 그의 정신을 사정없이 유린한 탓이었다.
어두운 철제 우리 속, 차가운 쇠사슬에 묶인 채 채찍질을 당하는 은빛 늑대.
‘이 더러운 짐승 년이, 감히 누구 앞이라고 이빨을 드러내?’
제국 마법사들의 조롱 섞인 웃음소리. 그녀의 심장 코어에 강제로 주사기를 찔러 넣어 신성 마력을 추출하던 기괴한 메스의 감각.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울부짖으며 죽어가던 부족민들의 비명.
‘인간은 믿지 마라, 실비아. 그들은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는 기생충들이다…….’
마지막 부족 장로의 유언이 그녀의 영혼 깊은 곳에 시퍼런 멍처럼 박혀 있었다.
태오는 독심술을 통해 그녀가 느꼈던 극도의 공포, 뼈를 깎는 슬픔, 그리고 세상 모든 인간을 향한 처절한 불신을 고스란히 자신의 영혼으로 대리 체험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눈앞에서 자신을 죽이려 드는 이 사나운 늑대 소녀는, 괴물이 아니었다. 그저 세상 모두에게 버림받고 상처 입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빨을 드러낸 가련하고 여린 아이일 뿐이었다.
실비아의 송곳니가 태오의 목덜미 가죽을 찌르며 붉은 피 한 방울이 흘러내린 순간.
태오는 반격하는 대신, 힘이 들어가지 않는 두 팔을 넓게 벌렸다. 그리고 광폭화되어 날뛰는 실비아의 작은 몸을 따뜻하게 끌어안았다.
스윽.
“……미안해.”
태오의 입술에서 피 섞인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많이 아팠지. 무서웠지…… 이제 괜찮아. 여긴 아무도 널 해치지 않아.”
실비아의 몸이 순간적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인간에게 이런 온기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들이 내미는 손길은 언제나 날카로운 칼날이나 뜨거운 인장, 혹은 구속의 사슬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안아주고 있는 이 인간 청년의 품은 기이할 정도로 따뜻했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쌉싸름한 약초 향기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맑고 무해한 ‘정화의 피’ 냄새가 그녀의 야수적 본능을 깊숙이 자극하며 안도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으, 으으…… 크르르…….”
실비아는 여전히 으르렁거렸지만, 태오의 목덜미를 겨누던 송곳니의 힘은 서서히 빠져나갔다. 태오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등 뒤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의 손바닥에 새겨진 깊은 화상 흉터가 실비아의 은빛 가죽에 닿아 따뜻한 체온을 전했다.
“내가 널 지킬게.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사냥꾼들의 우리로 돌아가게 하지 않을 거야. 약속해.”
태오의 진심 어린 영혼의 울림이 독심술의 경로를 타고 실비아의 깨진 코어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뚝. 뚝.
실비아의 황금빛 눈동자에서 붉은 광기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투명한 눈물방울이 맺혀 태오의 뺨 위로 떨어져 내렸다. 평생 인간을 증오하며 울부짖던 신수 여왕이, 난생처음으로 인간의 품 안에서 눈물을 흘린 순간이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돋아나 있던 날카로운 은빛 발톱이 스르륵 사라졌다. 태오의 왼쪽 어깨를 짓누르던 무지막지한 완력도 거짓말처럼 풀렸다. 실비아는 힘이 빠진 듯 태오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댄 채, 떨리는 숨을 몰아쉬며 야성을 가라앉혔다. 폭주하던 은빛 마력 파동이 연기처럼 사라지며 오두막에는 다시 고요한 침묵이 찾아왔다.
“하아…….”
태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러내렸다.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은빛 머리칼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마침내 그녀의 야성 폭주를 상처 없이 진정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러나 평화는 찰나에 불과했다.
화아아아악!
갑자기 태오의 품에 안겨 있던 실비아의 몸이 터무니없는 고열을 내뿜기 시작했다. 마치 활활 타오르는 화로를 껴안은 것처럼, 그녀의 피부가 순식간에 붉게 상기되며 뜨거운 열기가 오두막의 공기를 채웠다.
“앗, 뜨거……!”
태오는 급히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온도는 정상적인 생명체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실비아의 숨결이 다시 거칠어지며 뜨거운 입김이 그의 목덜미를 적셨고, 은빛 귀와 꼬리가 비정상적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이건…… 마력 역류 전조야!’
태오의 약사로서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사슬이 풀리며 일시적으로 해방된 체내의 미세한 마력들이, 정화되지 못한 타락 독소와 부딪쳐 급격한 과열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었다. 이대로 방치하면 그녀의 깨진 코어가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녹아내려 폭사할 터였다. 게다가 이 열기는 신수 특유의 치명적인 발정기 전조 증상과 겹쳐 한층 더 위험한 방향으로 폭주하려 하고 있었다.
실비아는 고열에 신음하며 태오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황금빛 눈동자가 초점을 잃은 채 기묘한 열망을 품고 태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뜨거워…… 살려줘…… 인간…….”
오두막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가운데, 태오는 이 새로운 의학적 대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다급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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