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핵, 폭발하는 대지
태오를 품에 안은 실비아의 은빛 발가락이, 무너진 지붕 사이로 쏟아지는 폭우를 딛고 안개의 핵을 향해 번개같이 도약했다.
“추격해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
반파된 오두막 너머로 바르토 기사단장의 포효가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제국 기사들의 붉은 철갑이 일제히 움직이며 지면을 흔들었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치켜든 지팡이 끝에서 붉은색 화공 마법 스크롤이 전개되더니, 폭풍우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마법 불꽃들이 오두막 잔해 위로 빗물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아아앙! 화르르륵!
순식간에 태오의 보금자리였던 오두막이 거대한 불길에 휩싸였다. 매캐한 연기와 마력 타는 냄새가 사방으로 진동했다. 실비아는 무너져 내리는 불타는 대들보를 날렵하게 피하며 숲의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녀의 품에 안긴 태오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신음을 삼켰.
“윽……!”
실비아의 격렬한 도약 기동으로 인해, 왼쪽 어깨와 쇄골에 박혀 있던 마르쿠스의 은침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응급 지혈 침술로 겨우 막아두었던 혈맥이 뒤틀리며 셔츠 깃 너머로 뜨거운 선혈이 다시 울컥 울컥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오른손바닥에 새겨진 세 줄기 자상에서도 빗물과 뒤섞인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과다 출혈로 인해 시야가 흐려지고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지만, 태오는 실비아의 하얀 목덜미를 꼭 쥔 채 정신을 놓지 않으려 애썼.
“한스는…… 안전한 곳에 숨겼어?”
태오가 갈라진 목소리로 묻자, 실비아는 달리기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은빛 늑대 귀가 빗물에 젖어 가죽 코트 깃 위로 바짝 누워 있었다.
“응, 네 말대로 오두막 뒤편의 가장 단단한 고목 둥치 속 비밀 틈새에 한스를 밀어 넣었어. 정령들의 위장 결계도 쳐두었으니, 기사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린 한 한스는 안전할 거야. 하지만 태오…… 네 상처가 너무 깊어. 피가 멈추지 않아!”
실비아의 목소리는 절박함과 두려움으로 젖어 있었다. 자신을 지키려다 인간의 단검에 찔린 반려. 그가 흘리는 피의 냄새가 그녀의 야성적인 방어 본능과 소유욕을 미친 듯이 자극하고 있었다.
뒤편에서 황금빛 오라를 뿜어내며 나무들을 단숨에 베어 넘기는 바르토 기사단의 추격 기류가 사방을 압박해 왔다.
“거기 멈춰라, 반역자 약사 놈! 신수를 버리고 투항한다면 사지를 보존해 주겠다!”
바르토가 날린 오라 참격이 실비아의 발뒤꿈치 바로 옆 대지를 찢어발겼다. 폭발한 흙더미와 바편이 실비아의 가죽 코트를 때렸다. 마력 폭주로 단추들이 날아가 펄럭이는 가죽 코트 틈새로 그녀의 고결한 은빛 신성 마력이 새어 나가고 있었다.
“실비아, 지그재그로 뛰어! 적들의 조준을 흔들어야 해!”
태오는 신수 감정안을 억지로 기동했다. 시야 우측 상단에 붉은색 위험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고 있었다. 적들의 살기 수치는 이미 98%에 달해 있었다. 정면 대결은 자멸이었다.
“야수 수호의 방패를 전개할게!”
실비아가 가슴의 푸른 목걸이를 공명시키며 자신의 코어를 강제로 연소시키려 하자, 태오가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
“안 돼! 지금 코어를 더 무리하게 쓰면 네 마력 회로가 영구히 붕괴해! 방패는 내가 지시할 때까지 아껴둬!”
그들이 달리는 방향의 끝, 안개의 숲 정중앙 지하로 이어지는 거대한 동굴 입구가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숲의 심장이자 안개의 원천인 [안개의 핵]이 위치한 성소였다.
동굴 내부로 미끄러지듯 진입하자, 폭풍우의 소음이 차단되고 음산한 푸른빛이 사방을 감쌌다. 동굴 한가운데에는 집채만 한 크기의 푸른 보석 형태의 마력 샘이 영롱한 파동을 내뿜고 있었다. 안개의 숲 전체의 결계를 유지하는 대지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그 성스러운 보석 주변마저 외부에서 번진 마법 불꽃의 열기로 인해 미세한 균열이 생기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대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누구냐…… 사악한 인간들의 불꽃을 몰고 온 자가……”
동굴 천장의 안개 덩어리들이 뭉치며 푸른 안광을 뿜어내는 거대한 안개 거인의 형상, 안개의 정령왕 [네블라]가 분노 어린 목소리로 포효했다. 인간의 탐욕스러운 방화에 결계가 찢겨 나가며 정령왕 역시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정령왕 네블라여! 제국의 사냥개들이 숲을 완전히 태워버리려 합니다!”
태오는 실비아의 품에서 내려와 비틀거리며 안개의 핵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왼쪽 쇄골과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가 차가운 석조 바닥을 적셨다. 태오는 자신의 상처 부위에 손을 얹어 피를 듬뿍 적신 뒤, 품 안에서 꺼낸 [안개 정령의 눈물 방울] 구슬 위에 피 묻은 손을 얹었다.
“내 몸에 흐르는 정화의 피를 바치겠소. 그러니 일시적으로 안개의 핵을 통제할 권능을 내게 빌려주시오!”
태오의 맑고 무해한 정화의 피가 눈물 방울 구슬에 닿는 순간, 눈부신 은빛 광휘가 동굴 전체를 가득 채웠다. 네블라의 푸른 안광이 태오의 피를 바라보며 경악으로 크게 흔들렸다.
“이 피의 향기는…… 설마, 고대의 수호자 가문인가? 위대한 정화의 의지가 마침내 돌아왔구나!”
네블라는 주저 없이 자신의 안개 마력을 태오의 영혼과 동조시켰다. 안개의 핵이 태오의 정화 마력 파동에 반응하여 푸른빛에서 찬란한 백색 광휘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찰나, 동굴 입구를 부수며 바르토 기사단장과 마법사들이 들이닥쳤다.
“찾았다! 쥐새끼처럼 구멍 속에 숨어 있었군! 마법사들이여, 즉시 신수 구속용 마법 사슬을 장전하라!”
바르토가 황금빛 오라를 검에 두르며 소리쳤다. 마법사들이 붉은 사슬을 허공에 띄우며 실비아를 향해 조준하는 순간이었다.
“실비아, 지금이야! 야수 수호의 방패!”
태오의 단호한 외침과 동시에, 실비아의 등 뒤에서 거대한 백은색 늑대의 환영이 솟구쳐 오르며 태오와 그녀를 완벽히 감싸 안았다.
그와 동시에 태오는 자신의 피 묻은 손을 안개의 핵 정중앙에 직격으로 때려 박았다. [숲의 심장 폭주 유도]의 기동이었다.
“폭발해라, 안개여!”
쿠구구구구궁! 콰아아아앙!
안개의 핵이 태오의 정화의 피를 빨아들이며 폭발적인 마력 대폭주를 일으켰다. 동굴 내부뿐만 아니라 안개의 숲 전체를 뒤덮고 있던 안개들이 수백 배로 팽창하며 광포한 폭풍이 되어 몰아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은백색의 환각 안개 장막이 제국군 전체를 집어삼켰다.
“으악! 내 눈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적의 기습이다! 사방을 공격하라!”
환각 성분이 깃든 짙은 안개 속에서 제국 기사들은 서로를 적으로 오인해 칼부림을 시작했고, 바르토의 황금빛 지휘 계통은 순식간에 완전히 와해되었다. 동굴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혼란 속에서, 실비아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태오를 번쩍 업어 안았다.
“태오! 정신 차려! 눈을 떠봐!”
실비아는 울부짖으며, 동굴 뒤편에 숨겨진 유일한 퇴로인 [얼어붙은 백은벽 폭포]를 향해 은빛 바람처럼 질주했다.
차가운 냉기를 뿜어내며 얼어붙어 있는 거대한 폭포벽 뒤의 좁은 틈새. 실비아는 태오를 안은 채 폭포의 극한 냉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얼음벽 뒤의 비밀 미로 통로로 미끄러지듯 진입했다. 그들의 등 뒤로 무너져 내리는 돌더미들이 동굴 입구를 완전히 가로막으며 제국군의 추격을 원천 차단했다.
어둡고 고요한 비밀 통로를 한참을 달린 끝에, 실비아는 웅장한 석조 건축물들이 늘어선 지하 유적, [고대 신수의 무덤] 내부 석조실에 도달했다.
“하아…… 하아…… 안전해. 이제 괜찮아, 태오.”
실비아는 조심스럽게 태오를 깨끗한 석조 제단 위에 눕혔다. 태오의 얼굴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하얗게 질려 있었고, 숨결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가늘었다. 실비아는 허둥지둥 태오의 가방을 뒤져 은침을 단단히 고정하고, 상처 부위를 옷가지를 찢어 지혈했다.
가까스로 태오의 거친 호흡이 안정을 찾으며 지혈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뚝. 뚝.
태오의 부상당한 어깨에서 흘러나온 정화의 피 몇 방울이 제단 바닥의 오래된 룬 문자 홈을 타고 흘러내렸다.
웅우우웅.
그 순간, 무덤 입구를 굳게 닫고 있던 거대한 고대의 석문이 태오의 피에 반응하여 푸른빛을 지워내고, 기괴하면서도 성스러운 황금빛 오라를 내뿜으며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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