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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에 갇힌 도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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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직, 하고 불꽃이 튀었다.


날쥐의 떨리는 손가락 끝에서 일어난 작은 불꽃이 검은 도화선 끝에 닿았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내 의식 속에서는 모든 시간이 극도로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붉게 타들어 가기 시작한 도화선은 마치 던전의 심장을 향해 기어가는 한 마리의 불타는 지네 같았다.


[경고: 다이너마이트의 화학적 연소가 시작되었습니다! 폭발까지 남은 시간은 30초입니다.]

[알림: 폭발 예상 지점은 ‘폭발하는 마력동굴’의 중심부입니다. 노출된 마석 광맥과의 연쇄 공명 폭발이 일어날 경우, 코어 룸을 포함한 던전 1층 전체의 지반이 붕괴합니다!]


가이아의 다급한 시스템 경고음이 귓가를 때렸다. 영혼 코어의 중심부가 터질 듯이 박동했다. 마력이 단 22%밖에 남지 않은 최악의 상황에서, 내 영혼의 소멸이 걸린 시한폭탄이 작동한 것이다.


‘안 돼, 어떻게든 막아야 해!’


나는 본능적으로 내 마력의 실가닥을 날쥐가 쥔 라이터를 향해 뻗었다. 놈의 손가락을 마비시키거나, 라이터의 가스 흐름을 비틀어 불꽃을 꺼뜨리려 했다.


“마력 차단 역류(Mana Block Backflow)!”


내 영혼의 진동을 담은 파동이 날쥐의 손끝을 강타했다. 하지만 허공을 가른 내 마력은 날쥐의 손에 닿기도 전에 픽 꺼져버렸다. 날쥐의 몸 주변에 흐르는 붉고 노란 살의의 오라는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경고: 시전 실패!]

[알림: 대상물이 사용하는 도구는 마력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 화학식 부싯돌 라이터입니다. 기계적, 화학적 작용으로 발생하는 불꽃에는 마법적인 ‘마력 차단 역류’가 물리적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아차……!”


생태학자로서의 차가운 이성이 뇌리를 스쳤다. 마석 에너지를 사용하는 마법 도구라면 내 권능으로 마력의 흐름을 왜곡해 무력화할 수 있었지만, 저 라이터는 지상에서 흔히 쓰이는 싸구려 일회용 가스라이터였다. 부싯돌을 긁어 불꽃을 일으키고 가스를 연소시키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기계 장치. 마력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순수한 화학적 도구였다.


“하하하! 소용없다! 이 던전의 괴물 놈아! 마태수 지부장님이 네놈들의 해괴한 마법을 대비해 특별히 준비해 준 지상제 라이터다! 어디 막아볼 테면 막아봐라!”


날쥐가 피를 토하듯 광기 어린 비명을 지르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얼굴은 공포와 광기로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은신이 풀려 온몸이 붉게 노출된 상태에서도, 그는 다이너마이트 뭉치를 마석 광맥의 틈새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 틈새는 불안정한 원시 마력이 붉은 불꽃으로 번쩍이며 흐르는, 던전의 가장 민감한 역린이었다.


치이이익—!


도화선이 타들어 가는 매캐한 화약 냄새가 좁은 동굴 안을 가득 메웠다. 남은 시간은 20초.


나는 다급하게 미풍의 부채를 가동했다. 바람을 불어 도화선의 불꽃을 날려버리려 한 것이다.


“바람아, 불어라!”


쉬이이익!


동굴 천장의 미세한 균열을 타고 내려온 차가운 기류가 날쥐와 다이너마이트를 향해 매섭게 몰아쳤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거센 바람이 도화선에 닿자, 불꽃이 꺼지기는커녕 오히려 신선한 산소를 공급받아 세 배는 더 맹렬하고 빠르게 타들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화르르륵! 치치치직!


[경고: 도화선의 연소 속도가 산소 유입으로 인해 300% 가속화되었습니다! 폭발까지 남은 시간 10초!]


“바보 같은 짓을 했군!”


지구의 고등학교 화학 시간이 내 머릿속을 때렸다. 연소의 3요소는 탈 물질, 산소, 그리고 발화점이다. 도화선 내부에 채워진 화약은 밀폐된 공간에서도 스스로 산소를 공급하며 타들어 가는 물질이다. 거기에 내가 인위적으로 강한 바람을 불어넣었으니, 불꽃에 산소 탱크를 들이민 꼴이나 다름없었다.


‘냉정해져라, 박민우. 넌 생태학자다. 화학과 물리 법칙을 잊지 마!’


나는 내 요동치는 정신을 억누르며 필사적으로 연산했다. 바람을 부는 것은 안 된다. 물을 뿌리는 것도 이 마석 광맥의 불안정한 불꽃과 반응해 연쇄 마력 폭발을 일으킬 수 있었다. 화약을 완전히 질식시켜 산소를 원천 차단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동시에, 이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고 도망치려는 저 쥐새끼의 발목을 묶어야 했다. 놈을 살려 보내면 코어 룸의 위치가 블랙스톤 길드에 고스란히 넘어간다.


남은 시간 8초.


“가이아! 내 남은 마력을 전부 대지에 동기화해라! 지반 유동화(Terrain Liquefaction), 시전!”


쿠구구구구—!


내 영혼 코어에서 맑은 푸른빛의 마력 파동이 대지 속으로 폭발적으로 스며들었다. 날쥐가 도망치기 위해 디뎠던 단단한 화강암 바닥의 분자 결속이 순식간에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단단했던 바위 바닥이 마치 물을 머금은 진흙처럼, 혹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뜨거운 모래 수렁처럼 흐물거리며 날쥐의 발목을 집어삼켰다.


“으, 으악?! 이게 뭐야! 내 발이…… 땅이 녹아내리고 있어!”


날쥐가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거렸다. 그의 무거운 가죽 부츠와 장비의 무게가 대지의 인력과 작용하여, 그를 수렁 속으로 더 빠르게 끌어당겼다. 밟으면 밟을수록 더 깊이 가라앉는 유동화된 모래늪. 날쥐의 다리는 순식간에 무릎까지 진흙 속에 파묻혀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다이너마이트의 도화선은 여전히 타들어 가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단 5초.


도화선의 불꽃이 다이너마이트 본체와 연결된 뇌관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이대로 터지면 설령 날쥐를 잡는다 해도 던전 전체가 매몰된다.


나는 마력의 실가닥을 동굴 천장과 벽면에 박힌 단단한 암맥 깊은 곳으로 뻗었다. 그곳에는 이 던전의 지반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수호자들, 바위 정령들이 잠들어 있었다.


‘바위야! 1층의 바위 정령들이여, 대지의 위기다! 깨어나라!’


내 간절한 영혼의 외침이 지맥을 타고 흘러들자, 동굴 벽면의 화강암반이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주먹만 한 크기의 단단한 돌정령들이 벽면에서 솟아나며, 그들의 우두머리인 ‘바위’의 형상이 내 의식 속에 굳건하게 떠올랐.


쿠웅!


바위 정령들이 다이너마이트가 박힌 암벽 틈새를 향해 일제히 몸을 던졌다.


“암반 경화! 이 구역의 지반을 강철보다 단단하게 응축해라!”


내 명령과 동시에, 바위 정령들이 암벽의 균열 속으로 녹아들듯 스며들었다. 다이너마이트를 감싸고 있던 화강암의 밀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압축되며 강철보다 단단한 흑색 화강암으로 변모했다. 폭발이 일어나더라도 그 충격 파동이 주변 마석 광맥으로 번지지 않도록, 물리적인 압력을 완벽히 밀폐하는 천연 방어막을 형성한 것이다.


남은 시간 2초. 이제 마지막 단계였다.


“물이! 그리고 늪지 슬라임들이여! 진흙 점착 분사(Mud Sticky Spray)!”


동굴 구석의 웅덩이와 바위 틈새에 숨어 있던 보라색의 끈적끈적한 늪지 슬라임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다. 녀석들은 내 마력 파동에 반응하여 체내의 천연 고무 성분이 섞인 점성 진액을 한데 모아 대량으로 끌어올렸다.


퓌익! 퓌이이익—!


고압으로 분사된 보라색 점착 진액이 공중을 가르며 타들어 가던 도화선 머리를 정확히 저격했다.


철퍽! 철퍼덕!


점성이 극대화된 진액이 도화선의 불꽃과 다이너마이트 본체를 빈틈없이 뒤덮었다. 공기 중의 산소와 화약의 접촉면을 분자 단위로 차단하는 완벽한 질식 소화 전술이었다.


지익, 치직…….


도화선 끝자락에서 마지막으로 발악하듯 튀던 불꽃이 보라색 진액 속에서 산소를 잃고 힘없이 꺼져갔다. 검은 연기가 진액 속에서 방울 모양으로 갇히며 푸스스 소멸했다.


남은 시간 0.5초.


정적이 동굴 안을 가득 메웠다.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아…… 하아……”


진흙 속에 상반신만 남긴 채 갇힌 날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꺼진 도화선을 바라보았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진흙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는 자신이 방금 전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시한폭탄의 끝자락에서 살아남았음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


[알림: 시한폭탄 해제 성공!]

[업적 달성: ‘코어 룸 폭사 위기 극복’!]

[생태 복원율과 던전 정화 수치가 임계점을 돌파합니다. 대지의 에너지가 코어로 급속 유입됩니다!]


웅웅웅웅—!


동굴 벽면에 박혀 있던 마석 광맥들이 일제히 영롱한 에메랄드빛으로 공명하기 시작했다. 불안정하게 번쩍이던 붉은 불꽃들이 맑은 청색의 대지 마력으로 순화되며 내 영혼 코어로 빨려 들어왔다. 극심했던 코어의 열화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내 영혼의 감각이 10m를 넘어 50m, 100m, 마침내 반경 200m 전역으로 폭발하듯 확장되는 전율이 전신을 휩쓸었다.


[축하합니다! 던전 의지 등급이 ‘E급 던전 코어 (영역 구축)’로 상승하였습니다!]

[해금 권능: 제어 반경이 200m로 확장됩니다. 지반 유동화 스킬의 정밀 제어가 상시 가능해집니다.]

[알림: 텔레파시의 도달 범위가 넓어져 아종족들과의 정밀 의사소통이 가능해집니다.]


내 불꽃이 제단 중앙에서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고 거대하게 타올랐다. 영혼의 해방감과 함께 대지를 완벽히 손아귀에 쥔 듯한 든든한 힘이 느껴졌다.


나는 진흙 속에 갇혀 사시나무 떨듯 떠는 날쥐를 내려다보았다. 놈은 이제 내 완벽한 영역 안에 갇힌 생태계의 포로였다.


“강철발, 순찰대원들을 불러라. 이 쥐새끼를 생포해 자치회 감옥에 가두어라. 블랙스톤의 배후 정보를 모두 캐내야겠다.”


내 텔레파시 명령이 200m 밖의 강철발에게 다이렉트로 꽂혔다. 저 멀리서 고블린 전사들이 몽둥이와 가시나무 방벽 씨앗을 들고 늠름하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대지의 진동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모든 위기를 넘기고 완벽한 승리를 거둔 듯한 안도감이 찾아온 순간.


틱, 하고 날쥐가 떨어뜨린 배낭 속에서 기묘한 기계음이 울렸다. 그것은 지상과의 장거리 교신이 가능한 특수 마력 무전기였다. 무전기의 붉은 표시등이 깜빡이더니, 이내 동굴 안을 찢어발길 듯한 사납고 무자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


- 날쥐! 보고해라! 코어 룸의 지도는 확보했나? 왜 폭발음이 들리지 않는 거지?!


블랙스톤 길드의 서울지부장, 마태수의 목소리였다. 날쥐는 공포에 질려 무전기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전기 너머의 목소리는 대답이 없자 이내 상황을 눈치챈 듯 지독한 살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 ……실패했군, 쥐새끼 놈. 감히 내 자금을 먹고 던전 몬스터 따위에게 당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마태수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고 잔인하게 내려앉았다.


- 좋다. 정공법으로 가겠다. 즉시 사설 용병단 ‘블러드 바론’을 고용해라. 헌터 협회의 단속반이 움직이기 전에, 길드의 전 전력을 동원해 저 빌어먹을 그린 옴팔로스 던전 1층을 완전히 밀어버리겠다. 몬스터 놈들이든 배신자 년이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의 목을 쳐라!


뚝, 하고 교신이 끊겼다.


동굴 안에 차가운 침묵이 감돌았다.


날쥐의 자폭 위기는 넘겼으나, 그것은 더 거대하고 파괴적인 전면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꼴이었다. 대형 사설 용병단 블러드 바론과 블랙스톤의 전면 침공.


던전 1층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진짜 전쟁이, 마침내 폭풍전야의 서막을 올리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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