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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화된 세계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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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었다.


그 사실을 자각한 순간,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지독한 감각의 왜곡이었다. 허파로 들이쉬던 서늘한 공기도, 심장을 타고 흐르던 뜨거운 혈류도 느껴지지 않았다. 육신이라는 껍데기가 통째로 증발해 버린 듯한 기묘한 해방감, 그리고 그 뒤를 엄습하는 지독한 고독.


‘여기는 어디지?’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눈을 뜨려 했다. 하지만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근육의 움직임조차 감지되지 않았다. 대신, 뇌리에 직접 박혀오는 이질적인 시야가 있었다. 그것은 빛과 어둠이 아닌, ‘마력의 파동’으로 그려지는 입체적인 공간의 지도였다.


지도의 중심에는 지름 30cm 남짓한 푸른빛의 결정체가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투명한 에메랄드빛 광채를 내뿜는 구체.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것이 바로 나다. 사방으로 뻗어 나간 미세한 마력의 실가닥들이 내 신경망을 대신하고 있었고, 그 실가닥들이 닿아 있는 반경 10m 안팎의 공간만이 내가 인지할 수 있는 세상의 전부였다.


[시스템 가동률 1.2%...]

[경고: 영혼의 코어와 던전 시스템의 융합이 불안정합니다. 마력 정체율 극대화.]

[현재 상태: F급 던전 코어 (자각 단계)]

[남은 코어 마력: 12%]


귓가에 울리는 듯한 무미건조한 여성의 기계음. 그것은 전생의 게임에서나 보던 상태창과 유사한 형태로 내 의식 표면에 둥둥 떠올랐다.


던전의 코어. 그리고 자각 단계.


현대 지구에서 평생을 대자연의 순환과 생태계를 연구해 온 생태학자, 박민우. 그것이 내 전생의 이름이었다.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며 생태계 복원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분석하던 중, 원인 모를 심장마비로 쓰러졌던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대신, 정체불명의 지하 동굴 한복판에 박힌 던전의 ‘의지’가 되어 있었다.


내가 안착한 이곳은 ‘빛나는 이끼 제단’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고대인들이 정성스럽게 다듬은 듯한 거친 석재 제단 주변에는 은은한 푸른빛의 야광 이끼들이 말라붙어 있었고, 제단 중심부에서 내 영혼의 구체가 미약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제단을 벗어난 공간의 상태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막화(Desertification)로군.’


내 마력 실가닥이 닿는 10m 반경의 대지를 훑어내리며, 나는 학자로서의 직관적인 진단을 내렸다. 흙은 수분을 완전히 잃어 푸석푸석한 모래 먼지로 변해 있었고, 천장에서 떨어져야 할 지하수맥은 끊긴 지 오래되어 바닥에 깊은 균열만 나 있었다. 고대 던전이라는 거대한 생태계의 심장부가 이토록 황폐해진 원인은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다.


바닥 여기저기에 굴러다니는 알루미늄 캔, 깨진 유리병, 그리고 던전의 생명력을 강제로 쥐어짜 내 만든 ‘마석’을 채굴하기 위해 인간들이 발파하고 버린 화학 화약의 잔해들.


인간 헌터들의 무분별한 남획과 파괴 행위.


그 탐욕이 던전이라는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를 붕괴 직전의 사막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학자로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자연을 그저 착취하고 버릴 도구로만 보는 인간들의 오만함. 그것은 이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 분노의 끝에, 문득 지구에 두고 온 어머니 한선자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


내가 실종된 이후, 지병이 완치되지 않은 채 병상에 누워 계실 어머니.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실 터였다. 외삼촌 한성필 형사가 내 실종 사건을 쫓고 있겠지만, 이 차원을 넘어선 던전 깊은 곳까지 내 흔적을 찾아낼 리 만무했다.


내가 인간으로서의 선을 넘지 않고, 이 괴물 같은 던전의 의지 속에서도 자아를 유지해야 하는 유일한 닻. 그것은 바로 지구에 두고 온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언젠가 돌아가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이 망해가는 던전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스스스스.


그때, 제단 구석의 썩어가는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 틈새에서 미세한 마력의 비명이 들려왔다.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오직 던전의 의지만이 감지할 수 있는 주파수의 울음소리.


나는 마력 실가닥을 그쪽으로 뻗어 시야를 집중했다.


그곳에는 지름 30cm 정도의 아주 작고 투명한 푸른빛 구체가 쓰레기 틈에 끼어 바르르 떨고 있었다. 아기 슬라임이었다. 온몸이 반투명해 안쪽의 핵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생명체. 하지만 그 맑아야 할 몸속에는 인간들이 버린 일회용 플라스틱 컵의 미세 가루와 중금속 폐기물이 가득 차 있었다.


[개체 식별: 아기 슬라임 (물이)]

[상태: 중증 중독 및 아사 위기]

[체내 마력 핵의 변형율: 84%]


녀석은 굶주림에 못 이겨 인간들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를 삼켰고, 그 안의 화학 독소와 마이크로 플라스틱이 체내 마력 핵을 뒤틀어놓아 서서히 숨이 끊어지고 있었다. 동그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녀석은 내 마력 파동을 느끼자 강아지처럼 온몸을 바르르 떨며 도움을 요청하듯 비벼왔다.


내 손으로 처음 탄생시킨 것은 아니지만, 내 영토 안에서 죽어가는 첫 번째 아이였다. 생태학자로서, 그리고 이 대지의 주인으로서 이 가련한 생명을 외면할 순 없었다.


‘내가 구해줄게. 조금만 버텨라.’


나는 우선 내 영혼 코어의 붕괴 속도와 남은 에너지를 이성적으로 계산했다. 남은 마력은 단 12%. 여기서 무모한 낭비는 곧 나의 소멸을 의미했다.


나는 먼저 물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시도했다. 푸른 마력 실가닥들을 촘촘하게 엮어 채찍처럼 만든 뒤, 물이의 몸을 누르고 있는 썩은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를 밀어내려 했다.


파스스스!


하지만 마력 실가닥이 쓰레기에 닿는 순간, 거친 반동과 함께 불꽃이 튀며 내 영혼에 찌르는 듯한 극통이 찾아왔다. F급 던전 코어의 제어 한계선은 너무나 미약했다. 물리적인 힘으로 무언가를 조종하려 하자 가해지는 과부하 충격에 마력만 낭비되고 쓰레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경고: 무리한 제어로 인해 코어 마력 2% 급감!]

[남은 코어 마력: 10%]


‘제길, 물리적인 힘으로 치우는 건 비효율적이야. 내 등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영혼이 찢어지는 듯한 탈진감 속에서 나는 급히 마력 가닥을 거두어들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나는 힘을 가진 전사가 아니라 생태학자다. 생물학적 메커니즘과 화학적 상성을 이용해야 했다.


나는 물이의 몸속을 ‘청동 현미경’으로 보듯 정밀하게 관찰했다. 슬라임은 본래 유기물을 흡수해 산성 소화액으로 분해하는 생물이다. 하지만 인공 화학 합성물인 플라스틱은 녀석의 약한 산성 핵으로는 분해할 수 없어 내장 기관을 막고 산도를 극단적으로 높여 핵을 파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하나였다. 체내 산성도를 중화하고, 플라스틱 고분자 구조의 결합을 이완시켜 스스로 배출하게 만드는 것.


나는 제단 주변의 마른 흙을 감지했다. 비록 사막화되었지만, 고대 대지의 영양분이 미세하게 남아 있는 황토 성분이 보였다. 황토의 미네랄과 말라붙은 야광 이끼의 미세한 알칼리성 포자 성분.


나는 마력 실가닥을 아주 얇고 정밀하게 쪼개어, 제단 틈새에 숨겨진 미세한 이끼 포자가루와 황토의 칼슘 성분을 한 톨 한 톨 끌어모았다. 거친 바람이 아닌, 미세한 정전기적 인력으로 성분을 유도하는 전술이었다.


스으으으.


내 영혼에서 뻗어 나온 은은한 초록빛 실선들이 미세한 알칼리성 가루를 머금고 물이의 투명한 표피 속으로 부드럽게 침투했다. 물리적 자극을 최소화한 정밀한 화학적 우회 정화 전술.


물이의 몸속에 알칼리성 성분이 유입되자, 굳어 있던 소화 핵의 산도가 중화되며 부드럽게 풀리기 시작했다. 뒤틀려 있던 마력 회로가 제자리를 찾아가며 녀석의 표피가 미세하게 들썩였다.


‘지금이다.’


나는 마지막 남은 마력 중 아주 정밀하게 정제된 푸른빛의 정화 마력 한 가닥을 물이의 소화 핵 중심부에 직접 주입했다. 녀석의 세포가 정화 마력과 공명하여 마이크로 플라스틱 분자들을 부드럽게 밀어내도록 세포막을 자극하는 방식이었다.


꿀렁, 꿀렁.


물이의 몸이 크게 몇 번 진동하더니, 녀석의 꼬리 부분에서 시커멓게 뭉쳐 있던 플라스틱 미세 가루와 화학 찌꺼기들이 바닥으로 투두둑 배출되었다. 오염 물질이 빠져나간 녀석의 몸은 언제 아팠냐는 듯 맑고 투명한 하늘빛으로 되돌아왔다.


[정화 성공! 아기 슬라임 (물이)의 체내 독소 100% 제거.]

[물이의 마력 핵이 활성화되며 던전 시스템과의 링크가 복구됩니다.]


“뀨우...?”


물이의 몸 중심부에서 보석처럼 맑은 푸른빛 마력 핵이 찬란하게 빛났다. 녀석은 가볍게 몸을 흔들더니, 내 영혼 코어의 푸른 불꽃을 향해 강아지처럼 온몸을 비벼대며 무한한 신뢰와 애교를 표현해 왔다. 녀석이 느끼는 따뜻하고 맑은 감각이 영혼 링크를 타고 내 의식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차가운 지하의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생명의 온기였다.


하지만 감동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쿠구구구...!


내 영혼의 중심부에서 지독한 한기가 몰아치며 시야가 급격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무리하게 마력을 짜내어 정화 공식을 가동한 대가였다.


[위험: 코어 잔여 마력이 한 자릿수로 하락했습니다!]

[남은 코어 마력: 3%]

[경고: 마력 충전 수단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30분 이내에 던전 시스템이 영구 동결되며 의지체의 영혼이 소멸합니다.]


물이의 목숨은 구하고 첫 번째 소중한 가족이자 부하를 얻었지만, 내 에너지는 완전히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당장 에너지를 충전할 자원도, 수단도 없는 황폐한 사막화된 제단 위.


이대로 첫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영원히 사라질 것인가.


어둠 속에서 내 영혼의 푸른 불꽃이 위태롭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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