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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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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전당 무거운 철문이 열리는 순간, 귀를 찢을 듯한 함성이 데미안의 고막을 때렸다.


대리석 계단 아래로 펼쳐진 황성 중앙 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족히 수천 명은 되어 보이는 수도의 백성들이 광장을 가득 메운 채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다. 썩은 토마토와 오물이 허공을 갈랐고, 그들이 치켜든 횃불의 그을음이 한낮의 하늘을 뿌옇게 오염시키고 있었다.


“매국 황자를 처단하라!”

“용인족의 끄나풀, 데미안은 물러가라!”

“제국의 영토를 야만인들에게 팔아넘긴 배신자다!”


광장 중앙에 설치된 임시 연단 위에는 황국 국수주의 의원 연합의 수장인 하인리히 남작이 서 있었다. 그는 재상 바르톨로메오가 하사한 마법적 증폭기인 ‘선동의 마법 메가폰’을 쥔 채,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었다.


“백성들이여! 보십시오! 저기 휠체어에 의지한 채 나오는 나약한 황자를! 저 자가 바로 우리의 신성한 국경이자 에테르의 젖줄인 레드클리프 광산을 더러운 용인족 놈들에게 통째로 넘겨주려 한 장본인입니다! 제국의 군대가 피를 흘려 지켜온 땅을, 저 병약한 쓰레기가 말 한마디로 팔아치웠습니다!”


하인리히의 선동에 군중의 분노는 극치에 달했다. 휠체어를 밀고 있던 서기 루카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호위 기사 가웨인 경은 대검의 손잡이를 움켜쥐며 투기를 끌어올렸다. 해방된 수인족 전사 바르그 역시 야수 같은 이빨을 드러내며 데미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전하, 상황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재상 파벌이 재판정 내부의 패배를 덮기 위해 광장에 가짜 정보를 퍼뜨려 폭동을 유도한 것이 분명합니다.”


루카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데미안은 침착하게 하얀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훔쳤다. 체내 마력 회로 폐색율은 이미 85%에 달해 있었고, 심장은 비명을 지르듯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결투의 여파로 왼쪽 눈동자는 여전히 금빛으로 빛나는 기이한 오드아이 상태였다.


튁!


그때, 군중 속에서 날아온 날카로운 돌멩이 하나가 데미안의 호위를 뚫고 그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하얀 피부 위로 붉은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전하!”


가웨인이 검을 뽑으려 하자, 데미안이 마른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가만히 있게, 가웨인 경. 이 상처는…… 오늘 이 광장에서 가장 훌륭한 법정의 증거물이 될 테니까.”


데미안은 뺨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지 않은 채, 루카스에게 휠체어를 앞으로 밀라고 지시했다. 그가 광장의 연단 가장자리, 백성들의 분노가 가장 날카롭게 내리꽂히는 곳으로 나아갔다.


하인리히 남작은 데미안의 등장을 비웃으며 메가폰을 더욱 크게 울렸다.


“보십시오! 저 오만한 태도를! 뺨에 피를 흘리면서도 반성의 기미조차 없습니다! 저 자는 인간의 피를 이어받았으면서도 용인족의 마력을 몸에 받아들인 괴물입니다! 저런 자에게 황국의 외교를 맡길 수 있습니까?”


“하인리히 남작.”


데미안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나약하고 가냘팠지만, 이내 그의 성대에서 기하학적인 백색 파동이 잔잔하게 퍼져나갔.


‘사법적 발언권(Judicial Voice)’의 권능이었다.


웅――!


맑고 투명한 마력 파동이 순식간에 광장 전체를 휩쓸었다. 하인리히가 쥐고 있던 선동의 마법 메가폰에서 흘러나오던 거친 증폭음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마법적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데미안의 명징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백성들의 영혼에 직접 내리꽂혔다.


“황국의 백성들이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광장이 일시적인 침묵에 잠겼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뚫고 들어온 기이한 목소리의 격에 압도당해 횃불을 든 채 멍하니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하인리히 남작은 당황하여 메가폰을 두드렸으나, 이미 마법 장치의 흐름은 완벽히 차단되어 있었다.


그 틈을 타 하인리히가 생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감히 매국노가 어디서 궤변을 늘어놓으려 하는가! 우리는 제국의 영웅들이 흘린 피의 대가를 요구한다! 야만인들과의 타협은 굴욕일 뿐이다!”


“영웅들의 피는 숭고하다.”


데미안이 뺨의 피를 굳이 닦지 않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하인리히를 응시했다.


“하지만 하인리히 남작, 그리고 여기 모인 백성들이여. 당신들이 외치는 그 ‘피의 대가’를 진짜로 치르는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전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사지로 끌려가 피를 흘리는 것은 연단 위의 귀족들이 아니다. 바로 당신들의 아들이요, 형제들이다.”


데미안은 루카스에게 신호를 보냈다. 루카스가 가방에서 묵직한 서류 뭉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정의의 전당 재판에서 확보한 황실 세무 장부와 재상의 전쟁 예산 기획서 사본이었다.


“이것은 재상 바르톨로메오와 제1황자 에드워드가 공모해 작성한 비공개 전쟁 예산안이다. 백성들이여, 잘 들으라. 전쟁이 발발하는 즉시, 황국 의회는 군수물자 조달을 명목으로 모든 평민의 세금을 ‘3배’ 인상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뭐라고?”

“세금이 3배?”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군중 사이로 퍼져나갔다. 백성들의 얼굴에 서려 있던 맹목적인 분노 위로, 지극히 현실적이고 원초적인 공포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데미안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배심원 심리 동기화 및 여론 선동’ 기술을 극대화했다. 그의 은빛 마력 실들이 광장의 공기와 공명하며 백성들의 잠재적 불안감을 자극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쟁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에테르 코인을 무분별하게 발행할 예정이지. 그렇게 되면 당신들이 시장에서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지금의 다섯 배가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평생을 바쳐 모은 저축은 하루아침에 낙엽보다 못한 휴지 조각이 될 터다. 귀족들은 전쟁 특수로 군수물자를 팔아 금고를 채우겠지만, 당신들의 식탁에는 오직 가혹한 세금 고지서와 전사 통지서만 남게 될 것이다.”


하인리히 남작은 식은땀을 흘리며 소리쳤다.


“거짓말이다! 제국이 승리하면 레드클리프 광산에서 나오는 막대한 마력 결정의 이익이 백성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애국심도 없는 매국 황자의 기만에 속지 마라!”


그때, 광장 곳곳에 숨어 있던 하층민 정보 길드 ‘쥐굴’의 고아들이 데미안의 설계대로 바람잡이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로이가 이끄는 아이들이 군중 속에서 목청을 높여 외쳤.


“광산의 이익이 우리한테 온다고? 지금까지 온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어?”

“맞아! 레드클리프 광산은 원래 재상의 사설 상회가 불법으로 독점 채굴하고 있었잖아! 재판에서 다 밝혀졌다고!”

“우리 자식들을 사지로 밀어 넣고 귀족들만 배를 불리겠다는 거냐!”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한 명의 의문이 수천 명의 확신으로 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백성들의 눈빛이 맹목적인 애국 광기에서 차가운 생존의 계산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고 목숨을 빼앗아가려는 진짜 적이 누구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하인리히 남작.”


데미안이 휠체어에서 상체를 꼿꼿이 세우며 선언했다.


“당신이 외치는 애국심의 천칭 위에 백성들의 목숨과 전 재산을 올려놓지 마라. 그 천칭은 이미 부패한 귀족들의 탐욕으로 기울어져 있다. 나는 만국 평화 조약을 통해 전쟁을 막았고, 당신들의 지갑과 가정을 지켰다. 이것이 내가 행한 ‘매국’의 실체다.”


광장에는 더 이상 돌멩이가 날아다니지 않았다. 백성들은 횃불을 내려놓은 채 고개를 숙였다. 자식의 군역을 걱정하던 늙은 어머니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청년들은 자신들이 들고 있던 오물을 바닥에 버렸다.


“전쟁 반대……!”

“재상의 비리를 밝혀라! 평화를 지켜라!”


여론의 천칭이 완벽하게 데미안의 위대한 사법적 방패로 돌아선 순간이었다. 하인리히 남작은 공포에 질린 채 연단 뒤로 도망쳤다.


승리의 희열이 광장을 감싸려던 바로 그 찰나.


데미안의 왼쪽 금안(金眼), ‘인과율의 시야’가 기이하게 떨렸다. 그의 눈앞에 광장 주변의 높고 어두운 석조 건물 지붕 위로 뻗어 나가는 수십 개의 붉은 인과의 실들이 포착되었다.


그 실들의 끝에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자객들이 서 있었다. 그들이 쥔 쇠뇌의 끝이 일제히 연단 중앙의 데미안의 심장을 조준하고 있었다.


차가운 쇠촉이 달빛을 받아 살기 어린 빛을 발했다. 재상 바르톨로메오가 보낸 비밀 암살단의 최후의 기습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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