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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계약, 위조된 기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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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지하의 가장 깊고 음습한 구역, 빛조차 들지 않는 지하 방 한구석에서 깃펜이 양피지를 긁는 소리가 기괴하게 울려 퍼졌다.


사각, 사사각.


공기 중에 떠도는 눅눅한 먼지 사이로 보랏빛과 검은색이 뒤섞인 불길한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내, 불법 계약서 제작자이자 어둠의 흑마법사인 이반이 자신의 보물인 ‘그림자 잉크 펜’을 쥔 채 마법식을 정교하게 그려 나가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은발을 단정하게 올린 보랏빛 눈동자의 여성, 실비아가 팔짱을 낀 채 그 광경을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귀밑에 매달린 자수정 귀걸이가 달빛을 받아 음산하게 반짝였다. 그 옆에서는 금테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고 있는 청년, 제4황자 레오폴드가 서 있었다.


“이반. 정말로 완벽한가? 마력 흔적까지 모사하지 못한다면 의회 법정에서 그 영악한 데미안의 맹점을 찌를 수 없다.”


레오폴드가 차갑게 읊조렸다. 그의 손에는 두꺼운 황국 법전이 들려 있었으나, 지금 그의 안광에는 학자로서의 품위 대신 패배감에서 비롯된 독기와 조급함만이 가득했다. 아카데미 대강당에서 데미안에게 당한 학술적 완패는 그의 오만한 자존심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반이 비열한 웃음소리를 내며 깃펜을 멈추었다.


“킥킥, 레오폴드 전하. 저를 누구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수도 지하 암시장에서 제 계약서를 거친 자들 중 단 한 명도 위조 여부를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제3황자 데미안이 아카데미 토론회와 국경에서 전개했던 백색 마력의 주파수…… 그 미세한 파동의 잔해를 이미 실비아 영애가 완벽하게 수집해 오지 않았습니까?”


이반이 양피지를 허공에 들어 올렸다. 검은 잉크로 쓰인 정교한 서체 위로, 데미안 고유의 백색 에테르 파동이 기묘하게 덧씌워지며 빛나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기에는, 아니 마법 감정기로 들여다보아도 그것은 데미안 황자가 직접 자신의 영혼 마력을 각인해 서명한 진짜 계약서와 다름없었다.


문서의 제목은 ‘위조된 국경 영토 할양 조약서’.


내용은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제3황자 데미안이 용인족과의 국경 공동 개발을 빌미로, 황국의 핵심 기밀인 ‘에테르 방어선 배치도’를 용인족 사신단에게 무상으로 제공했다는 매국적 합의서였다. 실비아가 준비한 이 사법 외적인 불법 덫은 데미안을 사법적으로 완전히 매장하기에 가장 완벽한 살상 무기였다.


“훌륭하군.”


실비아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부채를 펼쳤.


“데미안이 아무리 법리적 방패를 들이민다 한들, 이 마력 각인이 새겨진 위조 조약서가 제시되는 순간 그는 황국의 주권을 팔아넘긴 국가 반역죄인이 될 거예요. 백성들의 애국심은 이 자극적인 물증 앞에서 광기로 변할 테고, 황제 폐하 역시 그를 단두대로 보낼 영장에 서명할 수밖에 없겠죠.”


“의회 본회의장에 이 문서가 제출되는 순간이 데미안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레오폴드가 금테 안경을 치켜세우며 잔인하게 웃었다.


***


같은 시각, 실비아의 사설 사교계 살롱 뒤편의 어두운 복도.


하녀복을 입은 소녀 미나가 벽면에 바짝 밀착한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긴장으로 인해 가늘게 떨렸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황비 세실리아의 첩자였으나 데미안의 지혜와 따뜻한 대우에 감복해 이중간첩이 된 그녀는, 오늘 실비아의 시녀를 매수하여 이 은밀한 회동의 정보를 입수했다. 복도 너머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레오폴드 황자와 실비아의 대화는 미나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위조 조약서…… 전하의 마력을 위조해 매국노로 몰아 처형하려 하고 있어!’


미나가 다급히 몸을 돌려 빠져나가려던 찰나였다.


사박.


아주 미세한 발소리였으나, 복도 끝을 지키고 있던 실비아의 사설 호위 기사의 예리한 감각을 피할 수는 없었다.


“거기 누구냐?”


차가운 쇳소리와 함께 기사의 시선이 미나가 서 있는 어둠을 향해 꽂혔다. 미나는 심장이 멎을 듯한 공포 속에서도 본능적으로 품 안의 먼지떨이를 꺼내 들며 주근깨 있는 얼굴에 소심한 미소를 지었다.


“아, 아앗! 죄송합니다, 기사님. 실비아 영애님의 방에 촛대를 정리하러 가던 길이었는데……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기사는 매서운 눈빛으로 미나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비록 직접적인 물증은 잡지 못했으나, 그의 눈빛에는 짙은 의심이 서려 있었다.


“이곳은 일반 하녀가 함부로 다닐 수 있는 구역이 아니다. 당장 네 처소로 돌아가라. 한 번만 더 이 근처에서 얼씬거리면 목숨을 보장하지 못한다.”


“네, 네! 죄송합니다!”


미나는 허리를 굽신거리며 서둘러 복도를 빠져나갔다. 등 뒤로 느껴지는 기사의 살벌한 시선에 소름이 돋았다. 이번 espionage 활동으로 인해 그녀의 황성 내 움직임은 극도로 제약받게 되었으나, 지금 그런 개인의 안전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미나는 은밀한 하수구 통로 근처로 달려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제비궁의 비밀 연락책인 꼬마 하녀 릴리를 만났다.


“릴리, 이걸 은빛 제비궁의 클로에 언니에게 목숨을 걸고 전해야 해. 시간이 없어. 당장 가!”


미나가 건넨 다급한 친필 밀서를 품에 안은 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두운 하수도 틈새로 날렵하게 사라졌다.


***


은빛 제비궁의 깊은 밤.


휠체어에 앉은 데미안은 책상 위의 촛불 아래에서 고대 법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흑안과 용인족의 마력이 각인된 왼쪽 금안이 묘한 대비를 이루며 차갑게 번뜩였다.


체내 마력 회로 괴사율은 여전히 85% 한계 상태를 가리키며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고, 목에 걸린 마력 억제 은빛 펜던트의 미세한 균열을 통해 흘러나오는 열기가 심박수를 불규칙하게 흔들고 있었다.


툭, 투둑.


데미안의 체내에서 친모 아리아 황녀의 성국 혈통 마력이 정화 가루의 잔여 기운과 미세하게 반응하며, 뒤틀린 기형 회로를 따라 미세한 진동을 일으켰다. 데미안은 뺨에 남은 돌멩이 상처를 쓸어내리며 각혈을 참아냈다.


그의 옆에는 수호 기사 가웨인 경이 낡았으나 기품 있는 푸른 망토를 걸친 채 묵묵히 서 있었다. 가웨인의 허리에 찬 기사 서약 검의 검신에는 여전히 미세한 균열이 가 있어 위태로운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때, 집무실의 비밀 장식장 문이 열리며 숨을 헐떡이는 꼬마 하녀 릴리와 약제사 클로에가 급히 들어왔다.


“전하! 미나가 보낸 긴급 밀서입니다!”


클로에가 떨리는 손으로 밀서를 데미안에게 건넸다. 데미안은 밀서를 받아 펼쳐 들었다. 밀서에 적힌 조잡하지만 절박한 글씨들을 읽어 내려가는 데미안의 눈매가 서서히 매섭게 가라앉았다.


“위조 계약서라…… 실비아와 레오폴드가 결국 사법 외적인 불법 음모를 기획했군.”


데미안의 나직한 혼잣말에, 테이블 맞은편에서 양피지를 정리하던 서기 루카스가 깜짝 놀라 안경을 고쳐 썼다.


“위조 계약서 말씀이십니까? 전하의 필체와 마력을 완벽히 모사했다니요…… 마력이 없는 전하의 주파수를 어떻게 위조했다는 말입니까?”


“흑마법사 이반의 ‘그림자 잉크 펜’이라면 가능하네.”


데미안이 차갑게 읊조렸다.


“그들은 내가 이전 재판과 토론회에서 전개했던 백색 마력의 주파수 잔해를 수집하여, 흑마법의 인과 우회 기술로 내 마력 서명을 조작했을 것이네. 루카스, 이반이 주로 사용하는 흑마법 잉크의 성질을 분석해 보게. 법률적으로 위조를 입증할 맹점이 분명히 존재할 걸세.”


루카스는 다급히 고서적들을 뒤적이며 흑마법 계약의 맹점을 연산하기 시작했다.


“찾았습니다, 전하! 이반의 그림자 잉크는 타깃의 마력 주파수를 완벽히 모사하지만, 잉크 자체의 근원이 어둠 마력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미세한 ‘그림자 마나’의 잔류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만약 최초의 만국 평화 조약 원본 양피지와 공명시킨다면, 그 위조된 마력 각인 뒤에 숨겨진 흑마법의 검은 실들이 시각적으로 강제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훌륭하군, 루카스. 적들이 자신들의 위조 문서가 완벽하다고 믿고 방심하는 순간이, 그들을 국가 반역죄로 단숨에 매장할 최고의 법정 전장이 될 것이네.”


데미안이 휠체어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서늘하게 미소 지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쿵――! 쿵――!


은빛 제비궁의 웅장한 정문이 거칠게 흔들리며 쇠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들려오는 기계적이고 차가운 군화 소리가 제비궁의 정원을 가득 메웠다.


“황실 친위대다! 반역 혐의자 제3황자 데미안은 당장 정문을 열고 체포에 응하라!”


황실 근위대장 루돌프 경의 살기 어린 사자후가 제비궁의 유리창을 뒤흔들었다.


루카스가 미나가 전달한 첩보를 토대로 위조 계약서의 존재를 확증하는 순간, 제비궁의 정문이 거칠게 열리며 황실 친위대장 루돌프 경의 군사들이 들이닥친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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