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토론, 천재를 굴복시키다
가웨인의 서슬 퍼런 외침과 함께, 두 기사의 검과 철퇴가 공중에서 팽팽하게 맞물리며 폭발적인 불꽃을 튀겼다. 일촉즉발의 무력적 대치가 아카데미 대강당의 문턱을 피비린내 나는 전장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크윽……!”
카를 경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5성급 중장기사의 투기는 대강당 입구의 대리석 바닥을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가웨인 경의 검신에 깃든 은빛 수호 투기는 단 한 치의 물러섬도 허용하지 않았다. 검과 철퇴가 부딪치는 궤적마다 대기가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데미안은 휠체어에 몸을 기댄 채, 목에 걸린 마력 억제 은빛 펜던트를 꽉 움켜쥐었다. 펜던트의 미세한 균열 사이로 흘러나오는 열기가 기형적인 마력 회로를 자극해 가슴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마력 회로 폐색율 85%. 숨을 쉴 때마다 검붉은 피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의 눈동자만큼은 얼음처럼 차갑게 빛났다.
“그만두게, 카를 중대장.”
데미안의 나직한 목소리가 투기의 폭풍을 뚫고 명징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품 안에서 붉은빛을 발하기 시작한 요한 대법관의 사법 인장을 천천히 꺼내 들었다. 사법 인장에 새겨진 고대 신성 문양이 공명하며 허공에 붉은색 황실 사법 광선을 투사했다. 그 광선이 카를 경의 이마를 정확히 가리키자, 그가 뿜어내던 포악한 투기가 순간적으로 봉쇄되듯 사그라들었다.
“이, 이건…… 요한 대법관의 사법 인장?”
카를 경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흔들렸다. 황실 친위대원이라 할지라도, 황국 사법부의 특별 조사권을 보증하는 이 인장의 권위 앞에서는 무력 행위를 즉시 정지해야만 했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공격을 강행한다면, 그 즉시 사법 방해죄 및 황명 위반죄로 기사 자격이 영구 박탈될 터였다.
“황국 사법 수칙 제14조에 의거, 대법관의 인장은 현직 친위대의 공무 집행을 일시 정지할 권한을 지닌다.”
데미안은 뺨에 남은 붉은 상처를 손끝으로 쓸어내리며 서늘하게 미소 지었다.
“자네가 제1황자의 밀명을 받았든, 황실의 군령을 따르든 상관없네. 이 인장이 빛나는 동안 나를 향한 그 어떤 무력적 위협도 합법적인 단죄의 대상이 될 뿐이지. 검을 거두게. 아니면 이 자리에서 자네의 기사 서약을 사법적으로 말소해 줄까?”
“크으윽…….”
카를 경은 이를 악물며 거대한 철퇴를 바닥으로 내리뗬다. 그의 전신을 감싸던 투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가웨인 경 역시 검을 거두며 데미안의 휠체어 옆으로 조용히 복귀했다. 가웨인의 검신에 새겨진 미세한 균열이 위태롭게 빛을 잃었다.
“가세, 루카스.”
데미안의 지시에 서기 루카스가 마른침을 삼키며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대강당의 거대한 아치형 문이 열리자, 장내를 가득 메우고 있던 수백 명의 아카데미 학도들과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데미안을 향해 쏟아졌다.
그들의 눈빛은 차갑다 못해 살기 서려 있었다. 실비아가 사교계에 퍼뜨린 ‘매국 황자’라는 프레임은 이미 이들의 머릿속에 지울 수 없는 낙인으로 박혀 있었다. 방청석의 가장 높은 곳에 앉은 실비아는 짙은 보라색 장포를 걸친 채, 자수정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냉소적인 눈빛으로 데미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단상 중앙, 화려한 아카데미 수석 졸업생 금장 코트를 입은 금발의 미청년이 서 있었다. 요한 대법관의 친손자이자 제도권 법학의 최고 천재, 크리스티안이었다. 그의 손에는 판례를 실시간으로 검색해 주는 ‘황금 법전 마도서’가 은은한 마력을 풍기며 들려 있었다.
“정말로 오셨군요, 데미안 전하.”
크리스티안이 오만한 콧대를 치켜세우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제도권 사법학의 정점에 선 자 특유의 자부심이 가득했다.
“할아버님께서 전하를 ‘황국의 사법적 구원자’라 극찬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전하가 국경에서 행한 짓은 평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얄팍한 법률적 궤변으로 황국의 주권을 팔아넘긴 사기극일 뿐이지요.”
데미안은 휠체어 테이블 위에 두 손을 단정히 얹은 채, 크리스티안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의 오른쪽 흑안과 용인족의 마력이 각인된 왼쪽 금안이 묘한 대비를 이루며 빛났다.
“사기극이라. 자네의 그 단정이 어떤 법리적 근거에서 나왔는지 궁금하군, 크리스티안.”
“어려울 것 없습니다.”
크리스티안이 황금 법전 마도서를 펼치자, 허공에 황국의 건국 헌법 조항들이 금빛 글씨로 떠올랐.
“황국 헌법 제1조. ‘제국의 영토는 불가침하며, 황실의 동의 없이 그 어떠한 이종족에게도 영토의 소유권을 양도할 수 없다.’ 전하께서는 용인족과의 조약에서 레드클리프 마력 광산의 개발권을 그들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이는 헌법 제1조를 정면으로 위반한 위헌적 조약이며, 황국의 주권을 침해한 매국 행위입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학도들의 동조하는 함성이 대강당을 뒤흔들었다.
“매국노는 물러가라!”
“헌법을 위반한 조약은 무효다!”
루카스는 주변의 험악한 기류에 어깨를 움츠렸으나, 데미안은 오히려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머릿속, 정신 장벽(Mental Shield Class 2)이 작동하며 주변의 모든 감정적 소음을 완벽히 차단했다. 오직 명징한 이성만이 그의 사고 회로를 지배했다.
“자가당착이군, 크리스티안.”
데미안의 나직한 반박에 크리스티안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자가당착이라니요? 제 논리에 어떤 모순이 있다는 말입니까?”
“자네는 헌법의 문구에만 집착한 나머지, 법의 본질적인 개념을 망각했네. 자네의 할아버님이신 요한 대법관께서 평생을 바쳐 작성하신 판례집 ‘법치의 초석’ 제47페이지를 펼쳐 보게.”
크리스티안이 당황하여 마도서를 조작하자, 해당 페이지의 판례가 허공에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거기 뭐라고 적혀 있는가? ‘영토의 주권(소유권)과 그 영토 내부 자원에 대한 개발 신탁권(Exploitation Trust)은 법률적으로 완벽히 분리될 수 있다.’ 황국은 레드클리프 광산의 영유권을 용인족에게 단 한 평도 양도하지 않았네. 영토의 소유권은 여전히 황국에 있지. 단지 광산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개발권을 ‘신탁’하고 그 세수를 분할하기로 합의했을 뿐이네. 자네의 논리대로라면, 제국 전역의 광산 개발권을 민간 상단에 임대해 준 변경 영주들 역시 모두 영토를 양도한 반역자란 말인가?”
“그, 그것은……!”
크리스티안의 말문이 막혔다. 개발권 신탁과 소유권의 법적 분리. 현대 법학의 가장 기초적인 신탁 개념을 이세계의 고루한 영토 지상주의 법론에 대입한 데미안의 일격이었다. 크리스티안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남긴 위대한 판례가 데미안의 손에서 자신을 타격하는 무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 방청석 높은 곳에서 실비아의 차가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궤변이군요, 데미안 전하.”
실비아가 부채를 접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자수정 귀걸이가 달빛을 받아 보랏빛으로 번뜩였다.
“소유권을 유지했다 한들, 개발권을 용인족과 공동으로 분할함으로써 황국이 매년 얻을 수 있었던 에테르 세수가 대폭 감소했습니다. 이는 제국의 경제적 이익을 이종족에게 헌납한 명백한 배임이자 재정적 손실입니다. 아카데미의 학도들이 분노하는 것은 바로 그 실질적인 세수 손실 때문입니다.”
실비아의 정교한 지원 사격에 크리스티안이 다시 기세를 회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도들의 야유가 다시금 커졌다.
데미안은 실비아를 올려다보며, 루카스에게 미리 준비해 둔 양피지 서류를 단상 위에 띄우게 했다.
“세수 손실이라니, 실비아 영애. 오히려 그 반대네. 루카스, 시뮬레이션을 전개하게.”
루카스가 잉크 묻은 손가락으로 마법 양피지를 활성화하자, 대강당 허공에 금빛 천칭의 홀로그램과 함께 복잡한 숫자와 수식들이 나열되었다. 그것은 현대 통상법의 관세 면제 효과와 군사 보급비 절감액을 계산한 정밀한 경제 시뮬레이션이었다.
“보게. 황국이 레드클리프 광산을 독점하기 위해 국경에 배치했던 철혈 친위기사단의 연간 유지비와 군수 보급비는 매년 5천만 에테르 코인에 달했네. 게다가 용인족과의 잦은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광산 파손 복구비만 연간 1천만 코인이었지. 즉, 황국은 광산을 독점하기 위해 매년 6천만 코인의 재정적 적자를 감수하고 있었네.”
데미안의 손가락이 허공의 수식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번 공동 개발 조약에 포함된 ‘호혜적 에테르 관세 면제 조항’을 적용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네. 용인족과의 무역 관세가 상호 면제됨에 따라, 국경 지대의 물동량은 기존 대비 4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네. 또한, 평화 조약 체결로 인해 국경 수비대의 규모를 10분의 1로 축적할 수 있지. 군사 유지비의 소멸과 관세 면제로 인한 상업적 활성화로 황국이 얻을 실질적 재정 이익은 연간 8천만 코인에 달하네. 자네들이 주장하는 맹목적인 영토 독점론이야말로, 제국 경제를 파산으로 이끌던 진짜 배임 행위가 아닌가?”
숫자와 통계라는 완벽한 물리적 증거 앞에 대강당은 물을 끼얹은 듯 침묵에 잠겼다.
백성들과 귀족들이 그토록 맹신하던 ‘전쟁을 통한 영토 독점’이 실상은 제국의 고혈을 짜내는 거대한 재정적 적자 덩어리였다는 진실이, 데미안의 날카로운 현대 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낱낱이 파헤쳐진 것이다.
크리스티안은 황금 법전 마도서를 쥔 손을 바르르 떨었다. 그는 어떻게든 데미안의 논리를 반박하려 페이지를 넘겼으나, 데미안이 설계한 자가당착의 덫은 이미 그의 목줄기를 조이고 있었다.
“크리스티안. 만약 자네가 이 호혜적 관세 면제 조항과 공동 개발의 경제적 이익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황국 상법 제12조 ‘상호 호혜적 거래의 원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네. 그 상법 역시 자네의 할아버님이신 요한 대법관께서 제정하신 사법의 기둥이지. 자네는 할아버님의 법리를 수호하겠다고 이 자리에 서서, 오히려 할아버님이 세우신 사법과 상법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할 셈인가?”
“아, 아냐…… 그럴 리가…….”
크리스티안의 눈동자가 극도로 혼란스럽게 흔들렸다. 데미안이 던진 질문은 외통수였다. 데미안의 조약을 부정하면 할아버지의 위대한 업적을 부정하는 패륜아가 되고, 조약을 인정하면 자신의 학문적 패배를 시인해야 했다.
“할아버님의 법리가…… 틀렸을 리 없어. 하지만 내 논리가…… 왜 이렇게 무너지는 거지?”
크리스티안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자가당착(Self-Contradiction) 유도 함정에 빠진 천재의 정신은 사법적 텍스트들의 충돌 속에서 급격히 붕괴하고 있었다. 그의 황금 법전 마도서에서 뿜어져 나오던 금빛 마력이 갈 곳을 잃고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데미안은 그 모습을 보며 참았던 기침을 내뱉었다.
“콜록! 쿨럭……!”
하얀 손수건이 다시 한번 붉은 피로 물들었다. 머릿속이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체내 마력 회로가 거세게 요동쳤다. 하지만 그는 휠체어 등받이에 몸을 꼿꼿이 세운 채, 크리스티안을 내려다보는 서늘한 위엄을 잃지 않았다.
“배움을 청하러 온 학도여. 자네의 이성은 훌륭했으나, 법률을 권력의 도구로 삼으려던 자들의 선동에 눈이 멀었었네. 이제 진실을 보았는가?”
쿵.
크리스티안의 무릎이 힘없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혔다. 그의 오만한 자존심과 제도권 사법학의 완벽함이, 데미안의 현대적이고 명징한 실리 법론 앞에 완벽히 무릎을 꿇은 것이다.
“내가…… 패배했습니다.”
크리스티안이 고개를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패배를 인정하는 순간, 대강당의 학도들은 경악에 찬 침묵 속에서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방청석 높은 곳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실비아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더 이상 사법적인 논리로는 데미안을 꺾을 수 없음을 깨달은 그녀는 굳게 닫힌 부채로 손바닥을 탁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비아는 싸늘한 눈빛으로 데미안을 노려보며 대강당 출구를 향해 빠르게 걸어 나갔다. 문을 나서기 직전, 그녀는 어둠 속에 숨어 대기하고 있던 불법 계약서 제작자이자 흑마법사인 이반을 향해 은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사법의 영역을 넘어선, 음험한 불법 위조 음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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