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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천재, 도전장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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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의 의원들이여! 이에 본 의원은 건국 법령에 의거하여, 제3황자 데미안의 임시 조약 대리인 권한을 즉각 박탈하고, 그를 반역죄로 공식 기소할 것을 이 자리에서 엄숙히 발의하는 바이다!”


제4황자 레오폴드의 포효가 의사당의 높은 돔 천장을 가득 메웠다. 국수주의 의원 연합의 야유와 고함이 파도처럼 밀려와 휠체어에 앉은 데미안의 어깨를 짓눌렀다. 2층 귀빈석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는 실비아의 보랏빛 눈동자에는 승리를 확신하는 차가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오른쪽 흑안과 용인족의 마력이 깃들어 금빛으로 빛나는 왼쪽 눈, 즉 기이한 오드아이 눈동자가 레오폴드를 향해 느릿하게 움직였다.


“레오폴드 황자. 자네는 황국의 법률을 논하기 전에, 의회의 기본 규정집조차 읽지 않는 모양이군.”


데미안의 가냘픈 목소리가 의사당 중앙에 울려 퍼졌다. 사법적 발언권(Judicial Voice)의 미세한 파동이 은은하게 퍼져나가자, 터질 듯하던 장내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한풀 꺾였다.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거냐, 데미안! 영토를 넘겨준 매국노에게 더는 변론의 기회란 없다!”


“황국 의회 규정집 제9조.”


데미안은 품 안에서 최초의 만국 평화 조약 원본 양피지를 슬그머니 꺼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신들이 보증한 최초의 만국 평화 조약의 대리인은, 해당 조약의 이행 상태를 황제에게 공식 보고하기 전까지 그 어떠한 하위 사법 기관이나 의회에서도 체포하거나 권한을 박탈할 수 없다.’ 이것은 초대 황제 폐하께서 서명하신 초법적 면책 특권이네. 자네가 발의한 탄핵안은 이 조항에 의거하여, 내가 황제 폐하께 보고를 마치기 전까지 표결 자체를 진행할 수 없네. 즉, 절차적 원천 무효지.”


“이, 이익……!”


레오폴드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의장석의 법관들과 의원들이 서둘러 규정집을 뒤적이기 시작했고, 이내 당혹스러운 속삭임이 장내를 채웠. 데미안의 말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2층 귀빈석의 실비아가 부채를 꽉 쥐었다. 사법적 절차의 맹점을 찔러 기소 자체를 유예시키는 데미안의 치밀함에 그녀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군. 법의 테두리 안에서 면책권을 방패 삼아 버틴다면…….’


실비아의 보랏빛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방패 자체를 대중의 손으로 깨부수게 만들면 그만이다.’


그녀는 즉시 의사당을 빠져나가 황태자파의 다음 패를 움직였다. 데미안이 사법적 정당성을 내세운다면, 그 정당성의 근간인 ‘법리’ 자체를 대중 앞에서 사기극으로 규정하여 그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려야 했다. 그리고 그 도구로 쓰기에 가장 완벽한 인물이 황립 아카데미에 있었다.


***


하루 뒤, 은빛 제비궁의 집무실.


“전하! 큰일났습니다!”


서기 루카스가 숨을 헐떡이며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아카데미 광장에 붙어 있던 대자보의 사본이 들려 있었다.


“황립 아카데미의 수석 졸업생이자 전임 대법관 요한의 친손자인 크리스티안이 전하께 공개 법리 토론을 신청했습니다! 아카데미 중앙 광장에 전하의 레드클리프 조약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전하의 조약 해석을 ‘얄팍한 법률적 사기극’이라 규정했습니다!”


데미안은 루카스가 건넨 대자보 사본을 받아들었다.


[개발권 신탁이라는 궤변으로 황국의 영토 불가침권을 침해한 제3황자의 조약은 법리적 기만이다. 사법의 이름으로 위선을 행하는 자에게 아카데미의 이름으로 엄중한 학술적 도전을 신청하노라. - 크리스티안]


“크리스티안이라…….”


데미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의 스승인 요한 대법관의 친손자이자 제도권 법학의 최고 천재라 불리는 사내. 요한 대법관이 자신을 극찬하자, 그에 대한 질투와 오만함에 눈이 멀어 실비아의 정략적 지원을 받아 움직인 것이 분명했다.


“전하, 거절하셔야 합니다! 지금 사교계와 아카데미의 학도들은 실비아의 선동에 넘어가 전하를 매국노로 보고 있습니다. 그곳은 적들의 홈그라운드입니다. 게다가 전하의 옥체 상태가…….”


루카스의 걱정은 정당했다.


데미안은 가슴을 웅켜쥐며 나직한 기침을 뱉어냈다. 하얀 손수건 위로 검붉은 선혈이 번졌다. 체내에서 친모 아리아 황녀의 성국 혈통 마력이 정화 가루의 잔여 기운과 반응하여 기형적인 마력 회로에 미세하고도 예리한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력 회로 폐색율 85%의 한계 상태.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 안쪽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데미안은 목에 걸린 마력 억제 은빛 펜던트를 꽉 움켜쥐었다. 대장장이 휴고가 제작해 준 펜던트가 희미한 은빛을 발하며 체내의 마력 충격을 흡수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누적된 피로와 마나 역류를 완전히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 육체는 이미 한계에 달해 있다. 하지만…….’


데미안은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서늘하게 미소 지었다.


‘크리스티안, 자네는 요한 스승님의 손자이면서도 법률의 자의적 해석에 눈이 멀었군. 개발권 신탁과 영유권의 본질적 분리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융통성 없는 명분주의자. 자네 같은 천재는 도망칠 길을 열어주면 안 되지.’


“도전을 수락한다, 루카스.”


“전하!”


“아카데미는 황국 내에서 가장 중립적이고도 학문적인 권위가 인정되는 곳이다. 그곳에서 크리스티안의 논리적 오만을 완벽히 꺾어놓는다면, 실비아가 사교계에 퍼뜨린 매국노 프레임은 단숨에 무력화된다. 적들이 준비한 전장을 우리의 승전 무대로 삼는다.”


데미안의 단호한 선포에 루카스는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론 당일 오전, 아카데미 대강당으로 향하는 외교 마차 안.


데미안은 휠체어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정신 장벽을 가동해 통증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수호 기사 가웨인 경이 묵묵히 서 있었다. 가웨인의 허리춤에 채워진 기사 서약 검의 검신에는 미세한 균열이 가 있어,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위태로운 금속음을 내고 있었다.


“검의 균열이 마음에 걸리는군, 가웨인 경.”


데미안의 말에 가웨인이 검자루를 매만지며 고개를 숙였다.


“전하를 수호하는 데는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제 검이 부러지기 전에 적들의 목을 먼저 벨 것입니다.”


“수리가 시급하네. 이번 토론을 마치면 엘프 성지의 대장기술을 알아봐야겠어.”


마차가 황립 아카데미의 웅장한 정문을 지나 대강당 입구에 멈춰 섰다. 아카데미를 가득 메운 수백 명의 학도들이 휠체어에서 내리는 데미안을 향해 싸늘하고도 적대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매국 황자가 정말로 왔군.”


“크리스티안 선배가 저 얄팍한 사기꾼을 법적으로 완전히 매장해 줄 것이다.”


루카스가 휠체어를 밀며 대강당 정문으로 향하는 순간, 붉은 깃털이 달린 화려한 친위대 투구를 쓴 거구의 기사가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제1황자 에드워드의 사냥개이자 친위대 중대장인 카를 경이었다.


쿵!


카를 경이 거대한 철퇴를 지면에 내리찍으며 위압적인 투기(오라)를 뿜어냈다. 5성급 중장기사의 압도적인 마력 압박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가녀린 데미안의 숨통을 조여왔다. 휠체어 바퀴가 뒤로 밀려나려 하자, 루카스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곳은 황립 아카데미의 학술 성역이다. 마력이 없는 무능한 폐물 황자가 들어갈 자리가 아니지.”


카를 경이 거친 수염 사이로 이빨을 드러내며 비열하게 웃었다.


“당장 휠체어를 돌려 제비궁 구석으로 꺼지거라, 데미안. 그렇지 않으면 이 철퇴가 네 나약한 뼈마디를 전부 으깨놓을 테니까.”


명백한 신체적 위협이자 무력적 공포의 전개였다. 카를 경의 투기 압박에 데미안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고, 체내 회로가 자극받아 기침이 터져 나오려 했다. 은빛 펜던트가 붉게 달아오르며 경고를 보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데미안의 등 뒤에서 묵직한 강철의 기운이 솟구쳤다.


서걱――!


가웨인 경이 기사 서약 검을 전격적으로 뽑아 들었다. 비록 검신에 미세한 균열이 가 있었으나, 6성급 최정상 검사의 은빛 수호 투기가 허공을 가르며 카를 경이 뿜어내던 붉은 살기를 단숨에 두 조각으로 베어내 버렸다.


“황국의 친위대원이 감히 황제 폐하가 공인하신 임시 조약 대리인의 길을 무력으로 가로막는가!”


가웨인의 서슬 퍼런 외침과 함께, 두 기사의 검과 철퇴가 공중에서 팽팽하게 맞물리며 폭발적인 불꽃을 튀겼다. 일촉즉발의 무력적 대치가 아카데미 대강당의 문턱을 피비린내 나는 전장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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