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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서막, 매국의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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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에서의 승리는 황성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서서히 빛을 바랬다.


덜컹거리는 외교 마차가 제국의 수도 룬가르드의 육중한 철문을 통과할 때, 데미안을 맞이한 것은 승전의 환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벼려진 칼날처럼 서늘하고 무거운 침묵이었다.


“저 자다. 저 자가 바로 용인족에게 레드클리프를 바친 매국 황자다.”


“황국의 영토를 괴물들에게 넘겨주고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다니. 초대 황제 폐하께서 통곡하실 일이야.”


길가에 늘어선 백성들의 눈빛에는 깊은 불신과 증오가 서려 있었다. 마차의 작은 창 너머로 보이는 룬가르드의 거리는 온통 국수주의 파벌이 붙여놓은 대자보로 도배되어 있었다. [제3황자 데미안, 국경 영토 할양 조약 체결. 황국의 존엄을 짓밟다.] 자극적인 문구들이 데미안의 오른쪽 흑안과 왼쪽 금안—기이한 오드아이 눈동자에 차갑게 비쳤다.


데미안은 뺨에 남은 돌멩이 상처의 붉은 딱지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세계수의 오염된 씨앗 폭탄이 남긴 독소와 친모 아리아 황녀의 성국 혈통 마력이 뒤엉키며 기형적인 마력 회로를 자극했다. 폐색율 85%의 한계 상태가 주는 둔탁한 통증이 심장을 조여왔지만, 그의 이성은 차가운 유리 장벽처럼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신 장벽(Mental Shield Class 2)이 작동하는 한, 이성적인 계산은 흐려지지 않는다.


“전하, 장내의 여론이 생각보다 훨씬 험악합니다.”


휠체어를 밀던 루카스가 잉크가 번진 손가락으로 양피지 신문들을 정리하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불안으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차의 호위를 맡은 가웨인 경 역시 말없이 칼집을 움켜쥐었다. 가웨인의 손끝이 닿은 기사 서약 검의 검신에는 지난 비명의 계곡 전투에서 바르칸의 용혈 마력을 견뎌내느라 생긴 미세한 균열이 위태롭게 남아 있었다. 수리가 시급한 상태였으나, 황성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그들에겐 단 한 순간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다.


은빛 제비궁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밤, 사교계의 정보 여왕이자 바르도 가문의 영애인 아멜리아가 비밀 통로를 통해 데미안의 처소로 침투했다.


“환영 인사가 아주 가혹하더군, 아멜리아 영애.”


데미안이 약선탕을 한 모금 들이키며 덤덤하게 말했다. 분홍빛 실크 드레스를 걸친 아멜리아는 화려한 깃털 부채로 입가를 가린 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의 오드아이를 응시했다.


“농담할 때가 아니에요, 데미안 전하. 지금 사교계 살롱들은 온통 전하를 규탄하는 목소리로 가득 차 있어요. 배후에서 여론을 조종하는 자가 누구인지 아세요?”


“제1황자 에드워드의 법률 고문, 실비아겠지.”


“역시 눈치가 빠르시군요.”


아멜리아가 부채를 접으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실비아가 자신의 사교계 인맥과 자수정 귀걸이의 최면적 설득력을 총동원해 소문을 퍼뜨리고 있어요. 전하가 맺은 레드클리프 공동 개발 조약이 황국의 영토 주권을 침해한 명백한 ‘매국 행위’이며, 제국의 재정을 이종족에게 종속시키는 굴욕적인surrender라고 말이 흘러나오고 있죠. 국수주의 의원 연합의 하인리히 남작 세력도 가세해 의회에서 전하를 탄핵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어요.”


실비아. 은발에 보랏빛 눈동자를 지닌 제1황자 진영의 수석 책사. 그녀는 사법적 논리가 아닌, 사교계의 ‘감정적 선동’을 통해 데미안의 외교적 성과를 완벽히 왜곡하고 있었다. 명분과 자존심에 죽고 사는 황국 백성들에게 ‘영토 양도’라는 프레임은 가장 치명적인 독약이었다.


“게다가 제4황자 레오폴드가 실비아와 합작하여 전하를 반역죄로 엮으려 하고 있어요. 그들은 전하가 국경에서 임시 대리인 권한을 남용해 사적인 이익을 취했다고 주장할 셈이에요.”


아멜리아의 경고는 치밀했다. 적들은 데미안이 가져온 금융 장부와 카일라의 증언이 사법적으로 공인되기 전에, 그의 ‘입’을 막고 대리인 자격 자체를 박탈하려 움직이고 있었다.


아멜리아가 떠난 후, 제비궁의 집무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전하, 제가 의회 사무처에 국경 조약의 실리성과 배후 음모가 담긴 해명서를 직접 제출하려 했습니다만…….”


루카스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숙였다.


“사무처 서기들이 접수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레오폴드 황자 측의 압박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행정적 경로가 완전히 차단되었습니다.”


“예상했던 일이다, 루카스.”


데미안은 서늘하게 미소 지었다. 휠체어 바퀴를 굴려 창가로 다가간 그는 어둠 속에 잠긴 황성 외곽을 바라보았다. 제비궁 주변에는 낮부터 황실 기사단의 감시 인력들이 다시 배치되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지지 의사를 비추던 온건파 관료들마저 탄핵 여론에 겁을 먹고 연락을 끊은 상태였다.


“그들은 나를 광장에 세우고 공개적으로 처형하려 하는군. 논리적인 해명서 따위로 해결될 단계는 지났다. 그렇다면…… 우리도 적들이 쳐놓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인다.”


“어떤 방책이 있으십니까?”


“의회 규정집 제9조를 펼쳐보아라, 루카스.”


데미안의 지시에 루카스가 급히 두꺼운 법률 서적을 뒤적였다.


“제9조…… ‘조약 대리인의 임시 면책 및 기소 유예’ 조항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신들이 보증한 최초의 만국 평화 조약의 대리인은, 해당 조약의 이행 상태를 황제에게 공식 보고하기 전까지 그 어떠한 하위 사법 기관이나 의회에서도 체포하거나 권한을 박탈할 수 없다. 헌법적 면책권이지. 실비아와 레오폴드가 아무리 날뛰어도, 이 조항이 살아 있는 한 내 권한을 강제로 빼앗을 수는 없다.”


“하지만 탄핵안이 발의되어 의결을 거치면 그 면책권마저 무력화될 수 있습니다!”


“그 의결이 시작되기 전에, 판을 뒤흔들 질문을 던지면 그만이다.”


데미안의 오드아이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차갑게 번뜩였다. 그는 이번 대치가 단순한 말싸움이 아닌, 상대방의 기선 제압과 절차적 허점을 찌르는 고도의 타이밍 싸움임을 잘 알고 있었다.


다음 날 오전, 웅장한 대리석 기둥들이 늘어선 황국 의사당.


의사당 내부는 국수주의 의원 연합의 고함과 야유로 터질 듯 끓어오르고 있었다. 방청석을 가득 메운 귀족들은 휠체어를 타고 입장하는 데미안을 향해 침을 뱉거나 매국노라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2층 귀빈석 단상에는 은발을 단정하게 올린 실비아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자수정 귀걸이를 매만지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승리를 확신한 포식자의 그것이었다.


단상 중앙에 선 제4황자 레오폴드가 금테 안경을 고쳐 쓰며 두꺼운 탄핵 소추서를 의장대 위에 거칠게 내던졌다.


“황국의 의원들이여! 제3황자 데미안은 임시 조약 대리인의 전권을 남용하여 용인족 괴물들에게 우리의 신성한 국경 광산을 영구 할양하는 매국적 조약을 체결했다! 이는 황국의 주권을 심각하게 훼손한 반역 행위이다!”


레오폴드가 데미안을 손가락질하며 목청을 높였다.


“이에 본 의원은 건국 법령에 의거하여, 제3황자 데미안의 임시 조약 대리인 권한을 즉각 박탈하고, 그를 반역죄로 공식 기소할 것을 이 자리에서 엄숙히 발의하는 바이다!”


의사당 전체가 가결을 외치는 국수주의 의원들의 함성으로 거세게 진동했다. 거대한 정치적 압박이 데미안의 가녀린 어깨 위로 쏟아졌다.


그 광풍과도 같은 적대감의 한가운데서, 휠체어에 앉은 데미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레오폴드와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서늘하고 우아한 미소가 걸렸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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