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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족 전사의 해방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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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부로 수인족 전사 바르그의 신변을 황국 임시 조약 대리인의 권한으로 합법적 압수 및 인도할 것을 선포하노라. 자네의 어둠의 돈줄은 여기서 끝이네.”


데미안의 가냘프지만 서릿발 같은 선포가 지하 투기장 ‘피의 피트’의 끈적한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장내는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침묵에 잠겼다. 횃불이 타오르는 소리와 우리에 갇힌 이종족 노예들의 거친 숨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비대한 체구의 노예상 자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그의 보석 박힌 손가락들이 채찍을 쥔 채 바르르 떨렸다.


“압수? 인도? 하! 폐물 황자 전하께서 유폐 생활을 오래 하시더니 완전히 미쳐버리셨군. 이 자크가 황국 사법부와 군부의 묵인 없이 이 거대한 투기장을 움직이고 있는 줄 아십니까?”


자크가 비열하게 웃으며 벨벳 모피 코트 안쪽에서 황금빛 봉인이 찍힌 또 다른 양피지 서류를 꺼내 들었다. 그 서류가 펼쳐지는 순간, 음산한 에테르 마력이 사방으로 일렁였다.


“보십시오! 이것은 황국 최고 사법원의 현직 수석 재판관, 피터 법관께서 직접 직인을 찍어 내리신 ‘임시 강제 환수 영장’입니다! 이 수인 놈은 황국의 합법적인 자산이며, 그 누구도 법적으로 이 소유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단 말입니다!”


자크가 내민 영장에는 피터 법관의 고유한 마법 인장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재상 바르톨로메오의 충직한 사냥개이자 사법부의 부패한 수장인 피터. 자크는 현직 대법관의 공식 영장을 방패 삼아 데미안의 압수 선언을 ‘초법적 불법 행위’로 몰아가려 하고 있었다.


수십 명의 사병들이 쥔 마도 창과 쇠뇌가 데미안의 심장을 향해 좁혀졌다.


가웨인 경이 검자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데미안의 휠체어 앞을 철벽처럼 가로막았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6성급 최정상 기사의 강철 투기가 대기를 진동시켰으나, 수적인 열세와 현직 대법관의 영장이라는 법적 명분은 분명한 압박이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오른쪽 흑안과 왼쪽 금안이 기이한 조화를 이루며 자크의 전신을 꿰뚫어 보았다.


정신 장벽(Mental Shield Class 2)이 작동하며 지하 투기장의 살기와 악취를 데미안의 의식에서 완벽히 격리했다. 그의 머릿속은 현대 로스쿨의 도서관처럼 차갑고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피터 법관의 임시 환수 영장이라…….”


데미안이 휠체어 팔걸이를 짚으며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가냘픈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품이 장내를 압도했다.


“자크. 자네는 황국의 법률이 이 세계의 절대적인 규칙이라 믿는 모양이군. 하지만 내 손에 들린 이 조약서가 무엇인지 잊었는가?”


데미안이 품 안에서 최초의 만국 평화 조약 원본 양피지를 천천히 펼쳤다.


스으으으――


양피지에서 흘러나온 눈부신 백색 신성 마력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자크의 영장에서 풍기던 음산한 에테르 파동을 단숨에 지워버렸다. 태고의 신들과 이종족 수장들이 피로 맺은 최초의 동맹서가 내뿜는 초국가적인 위엄이었다.


“이 시간부로, 나는 황국 임시 조약 대리인의 전권으로 이 ‘피의 피트’ 한가운데에 만국 평화 조약의 ‘임시 사법 재판정’을 선포하노라.”


“뭐, 뭐라고? 임시 재판정이라고?”


자크가 당황하여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사병들의 창끝 역시 미세하게 흔들렸다.


“만국 평화 조약 제14조 ‘만국 이종족 노예제 제한령’에 명시되기를, ‘합법적인 전쟁 선포 없이 국경 지대에서 무단으로 납치 및 거래된 이종족은 즉시 석방되어야 하며, 이를 묵인하거나 지원한 자는 종족을 불문하고 조약 위반자로 규정하여 사법 처단한다’고 되어 있네.”


데미안의 목소리에 사법적 발언권(Judicial Voice)의 마력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가 청중들과 사병들의 영혼에 직접 내리꽂히며 거역할 수 없는 중압감을 선사했다.


“또한, 조약법 제1조에 따라 만국 조약은 황국의 그 어떤 국내법이나 영장보다 우선하는 초법적 상위법이네. 피터 법관이 백 번을 서명한 영장이라 할지라도, 신들이 보증한 이 조약법의 권위 아래에서는 한낱 불태워질 종이조각에 불과하다는 뜻이지.”


“억지 쓰지 마십시오!”


자크가 채찍을 바닥에 내리치며 비명을 질렀다.


“그 수인 놈은 국경 지대에서 벌어진 합법적인 전투의 포로입니다! 변경 백작들과 군부의 서명이 담긴 포로 인도 계약서가 여기 버젓이 있단 말입니다! 기만적인 조약 조항 몇 줄로 황국의 합법적인 사유 재산을 강탈하려 들지 마십시오!”


자크는 자신이 쥔 가짜 포로 계약서를 흔들며 결백을 주장했다. 적들은 철저했다. 군사법의 테두리를 모방하여 불법 납치를 합법적인 포로 인도로 위장해 둔 상태였다.


하지만 데미안의 오드아이는 이미 그들의 기만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데미안이 인과율의 붉은 실 시야를 개안했다.


자크가 쥐고 있는 포로 계약서 위로, 거짓과 왜곡을 상징하는 검붉은 마력 실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 보였다. 특히 변경 백작의 서명과 군부의 직인이 찍힌 부분은 마력의 흐름이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었다. 그것은 전형적인 복제 및 위조 마법의 흔적이었다.


“포로 계약서라…….”


데미안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자크, 자네가 들고 있는 그 계약서에 서명한 변경 백작은 로만 백작이겠지? 하지만 황국 군사 기록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경 지대에서 수인족과의 공식적인 전투는 단 한 차례도 기록되어 있지 않네. 그렇다면 이 바르그라는 전사는 어느 전투에서 포획되었다는 말인가?”


“그, 그것은…… 군사 기밀이라 공식 기록에서 누락된……!”


“기밀이 아니라 위조겠지.”


데미안이 쐐기를 박았다.


“서명에 각인된 마력의 파형을 보게. 정식 정령석 인장이 아닌, 흑마법으로 급조된 모조 정령석의 흔적이 역력하군. 이 위조 계약서를 작성한 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이 불법 거래의 진짜 배후가 누구인지 내가 이 자리에서 밝혀내 주지.”


자크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데미안이 마력이 없는 병약한 황자라는 소문만 듣고 방심했으나, 그의 날카로운 법리적 추적과 인과의 시야 앞에서는 그 어떤 거짓도 통하지 않았다.


“경비병들! 무엇을 망설이느냐!”


자크가 마침내 이성을 잃고 비명을 질렀다.


“저 미친 황자 놈을 죽여라! 증거고 조약이고 전부 피로 씻어버리면 그만이다! 죽여라!”


자크의 폭력적인 명령과 함께 사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데미안을 향해 돌격했다. 마도 창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색 에테르 검기들이 데미안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가웨인 경, 방어하게.”


“명령 받들겠나이다!”


가웨인 경이 기사 서약 검을 뽑아 지면에 강력하게 꽂았다.


쿠구구궁――!


눈부신 강철 투기가 폭발하듯 전개되며, 데미안의 휠체어 사방을 감싸는 거대한 투기 장벽을 형성했다. 사병들의 창격이 가웨인의 장벽에 부딪히며 불꽃을 튀겼으나, 6성급 최정상 기사의 철벽 방어 앞에서는 단 한 치의 균열도 내지 못하고 무력화되었다.


그 혼란의 와중에도 데미안은 최초의 조약서 양피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기형적인 마력 회로가 조약서의 신성한 인과율과 공명하며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심장에 가해지는 묵직한 압박감과 함께 입안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올라왔지만, 데미안은 꺾이지 않았다.


“만국 평화 조약 제14조 위반자 자크. 그리고 위조된 서류로 사법 정의를 기만한 죄.”


데미안이 조약서의 특정 문구를 소리 높여 영창했다.


“인과율의 이름으로, 죄인에게 징벌을 선포하노라. 조약의 사슬이여, 현현하라!”


쿠르릉――!


지하 투기장의 견고한 대리석 바닥이 갈라지며, 눈부신 백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인과율의 사슬들이 솟구쳐 올랐.


조약의 사슬 강제 현현 권능이었다.


백색의 사슬들은 살아 있는 뱀처럼 허공을 가르며 자크를 향해 날아갔다. 자크는 겁에 질려 붉은 채찍을 휘두르며 저항하려 했으나, 사슬은 그의 채찍을 단숨에 휘감아 박살 내고 그의 비대한 몸뚱이를 옭아맸다.


“아아악! 이, 이 사슬이 내 마력을……!”


자크가 비명을 질렀다. 백색 사슬이 전신을 조여들자, 그의 체내를 흐르던 암흑 마력과 에테르가 완벽하게 폐색되며 무력화되었다. 자크는 힘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자크가 쥐고 있던 위조된 포로 계약서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백색의 조약 사슬이 계약서를 휘감는 순간, 위조된 종이는 신성한 백색 불꽃에 휩싸여 단 한 줌의 재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타들어 가 소멸했다.


“포로 계약서의 소멸을 통해, 수인족 전사 바르그의 불법 노예 신분은 원천 무효임을 선포하노라.”


데미안이 차갑게 선언했다.


사슬을 강제로 현현시킨 대가로 데미안의 심장에 치명적인 반동 충격이 가해졌다.


“윽……!”


데미안은 가슴을 움켜쥐며 가볍게 각혈했다. 하얀 실크 손수건이 붉은 피로 물들었으나, 그의 오드아이 눈빛만큼은 사그라지지 않는 위엄으로 번뜩였다.


사병들은 자신들의 수장이 단 한 번의 마법적 사슬에 묶여 무력화되고, 대법관의 영장이 한낱 재가 되어 사라지는 초자연적인 광경에 완전히 압도당해 무기를 떨어뜨린 채 주저앉았다.


데미안은 휠체어 바퀴를 굴려 쇠창살 안쪽에 갇힌 바르그에게 다가갔다.


바르그는 쇠창살 틈새로 이 모든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는 인간을 향한 깊은 증오 대신,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법리적 싸움을 벌인 병약한 황자를 향한 기묘한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데미안은 사슬에 묶인 채 신음하는 자크의 코트 주머니에서 묵직한 마법 열쇠를 압수했다. 그것은 바르그의 목덜미와 사지에 채워진 마력 억제 족쇄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다.


달칵.


데미안이 쇠창살 문을 열고 들어가, 바르그의 목덜미에 채워진 검은 구속구에 열쇠를 꽂고 돌렸다.


철컥―― 콰아앙!


바르그의 몸을 억누르고 있던 마력 억제 족쇄가 풀려 바닥으로 무겁게 떨어졌다.


그 순간, 억압되어 있던 6성급 최정상 수인족 전사의 강력한 야수 마력이 실버빛 오라가 되어 투기장 전체를 휘감으며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 은빛 털이 달빛을 받은 듯 눈부시게 빛났고, 바르그의 전신 근육이 야성적인 힘으로 팽창했다.


바르그는 마침내 자유를 되찾았다.


그는 거대한 체구를 일으켜 세워 데미안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날카로운 송곳니와 은빛 발톱은 언제든 인간의 목을 찢어발길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였다. 사병들은 수인의 폭주를 두려워하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바르그는 공격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짐승이나 도구가 아닌, 한 명의 주권자로 인정하고 구해준 백발의 병약한 황자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각혈을 하며 숨을 몰아쉬면서도 자신을 향해 따뜻한 신뢰의 눈빛을 보내는 데미안.


바르그는 천천히, 그리고 정중하게 데미안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쿵.


거구의 수인족 전사가 지면을 울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은빛 머리칼이 데미안의 발끝에 닿았다.


“나를 짐승이 아닌 전사로 대해준 유일한 인간이여.”


바르그의 묵직한 목소리가 투기장 바닥을 울렸다.


“이 시간부로 내 은빛 발톱과 이 목숨은 온전히 전하의 것입니다. 전하를 위협하는 어둠 속의 모든 자객들을 내 이빨로 찢어발길 것을 맹세하나이다. 나를 전하의 그림자 호위로 받아주소서.”


바르그의 숭고한 충성 서약이 지하 투기장의 핏빛 모래 위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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