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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광산의 임프들과 최저임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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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가 끌려간 지 사흘째 되던 날, 마왕성 경영기획실의 공기는 여전히 믹스커피 향과 서류 뭉치에서 풍기는 퀴퀴한 먼지 냄새로 가득했다.


유은하는 인체공학적 메쉬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앉아 블루라이트 차단 은테 안경을 밀어 올렸다. 그녀의 손가락 끝은 마법 행정 태블릿 위를 기계적으로 튕겨 다니고 있었다.


"똑똑이 대리."


"예, 실장님! 부르셨습니까!"


이제는 제법 직장인 티가 나는 고블린 똑똑이가 앙증맞은 맞춤형 정장 깃을 매만지며 쏜살같이 달려왔다.


"마왕성 중앙 발전기 마력 소모량 대비 영혼 결정 입고량 보고서가 왜 이 모양이죠? 매달 입고량이 들쑥날쑥한데다, 이번 분기에는 아예 생산량이 반토막이 났네요. 지옥견 사료비를 아끼면 뭐 해요? 정작 성을 굴릴 기본 연료가 부족한데."


똑똑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귀를 쫑긋거렸다.


"그, 그것이…… 영혼 결정 광산의 주 노동력인 하급 임프들의 이탈률이 최근 80%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광산 내부 환경이 워낙 척박한 데다, 광산을 위탁 관리하는 원로 리치 장로회에서 임프들을 거의 노예처럼 무임금으로 부려먹고 있거든요."


은하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무임금? 마왕성 직할 광산인데 왜 무임금이죠? 우리 예산안에는 분명 임프 사역비 명목으로 매달 수천 마정석이 책정되어 있을 텐데요."


"그 돈은 전부 원로 리치 장로회장인 '리치 장로회장'의 개인 주머니로 들어갑니다. 그 뼈다귀 영감탱이는 '죽은 언데드나 하급 마수에게 무슨 급여가 필요하냐'면서, 임프들에게는 썩은 고기 찌꺼기만 던져주고 하루 20시간씩 채굴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견디다 못한 임프들이 광산 깊은 곳으로 도망치거나 아예 소멸해 버리는 바람에 생산성이 바닥을 치는 겁니다."


은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 회사 악덕 사장 최사장의 얼굴이 리치 장로회장의 해골 얼굴과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또 꼰대 자본주의인가."


은하는 태블릿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렸다.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고 채찍질만 하면 생산성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상식인데, 이 마계 뼈다귀들은 경제학의 기초도 모르는군요. 똑똑이 대리, 당장 노움 장로님을 모셔오세요. 광산의 실제 매장량과 지반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


잠시 후, 기획실을 방문한 대지의 정령 '노움 장로'는 돋보기를 쓴 채 지하 광산의 정밀 지질 지도를 펼쳐 보였다.


"실장님, 영혼 결정 광산의 매장량 자체는 아주 풍부합니다. 문제는 채굴 방식입니다. 리치 장로회는 임프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무작정 파내기만 하니 지반이 약해져 매일같이 붕괴 사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임프들이 죽어나가는 건 물론이고, 광맥 자체가 무너져 내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지요."


노움 장로의 데이터는 확실했다. 은하는 즉시 펜을 들고 계산기를 두드렸다.


임프들의 사망률, 그로 인한 신규 인력 소모 비용, 지반 붕괴로 인한 광산 복구 예산, 그리고 생산성 저하로 인한 마왕성 전체의 에너지 손실액. 이 모든 것을 합산하자 리치 장로회장이 저지르고 있는 ‘무임금 노동 착취’가 실제로는 마왕성 재정에 매달 수만 골드의 적자를 안겨주고 있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단기적인 무임금 착취가 장기적인 재정 파탄을 불러오는 전형적인 경영 실패 사례로군요.”


은하는 즉시 기안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법률 명칭은 ‘마계 최저임금법 및 노동법’.


[제1조: 마왕성 소속 모든 근로자(하급 임프 및 고블린 포함)에게는 시간당 최소 1.5 규격 마정석 주화의 최저임금을 지급한다.]

[제2조: 하루 근로 시간은 8시간을 원칙으로 하며, 이를 초과할 시 야근 수당을 지급한다.]

[제3조: 모든 광산 노동자에게는 헬멧과 가죽 장갑 등 안전 장구를 무상 지급하며, 주 1회의 유급 휴일을 보장한다.]


은하는 기안서에 마왕 발락의 최종 결재 도장을 받아낸 후, 손수 작성한 ‘근로기준법 가이드북’ 수백 권을 들고 영혼 결정 광산으로 향했다.


***


어둡고 축축한 광산 입구. 석탄가루와 마력 분진으로 새까맣게 그을린 하급 임프들이 뼈만 앙상한 몸으로 무거운 곡괭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들의 뒤에서는 리치 장로회장이 보라색 로브를 휘날리며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짚고 서서 차가운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더 빨리 움직여라, 이 게으른 것들아! 마왕성 중앙 발전기에 바칠 영혼 결정이 부족하다! 쉬는 놈은 당장 영혼 불꽃을 뽑아 제단에 바치겠다!"


임프들은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며 곡괭이질을 해댔다. 그때, 단정한 검은색 H라인 스커트 수트 차림의 유은하가 똑똑이 대리와 함께 광산 내부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구두 굽 소리가 어두운 광산 동굴에 또렷하게 울렸다.


"리치 장로회장님, 하던 일을 멈추고 제 말을 들어주시죠."


장로회장이 해골 얼굴을 홱 돌리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음? 기획실의 건방진 인간 비서로군. 여기가 어디라고 발을 들이느냐? 이 천한 임프 놈들을 감시하느라 바쁘니 썩 물러가라!"


"오늘부로 마왕성 직할 광산에 '마계 최저임금법 및 노동법'이 선포되었습니다. 여기 법률 가이드북과 최저임금 고지서입니다."


은하가 붉은색 고지서를 장로회장의 코앞에 내밀었다. 장로회장은 고지서에 적힌 '시간당 1.5 마정석 지급'이라는 문구를 보고 턱관절을 딱딱거리며 격분했다.


"급여라니! 이 하찮은 임프 놈들에게 돈을 주라고? 미쳤구나, 인간 계집이! 죽은 자와 마물에게 무슨 휴일과 복지가 필요하단 말이냐! 이놈들은 태어날 때부터 부려먹기 위해 존재하는 노예들이다!"


"노예 제도는 현대 경영학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노동 형태 중 하나로 증명되었습니다, 장로회장님. 정당한 대가와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니 이탈률이 치솟고 지반이 붕괴하는 겁니다. 이 법률은 마왕님의 공식 결재를 받은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그때, 광산 노동자들의 대표인 '임프 대장'이 은하의 등 뒤에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이마에 '단결 투쟁'이 적힌 붉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임프 대장은 은하가 건네준 '근로기준법 가이드북'을 품에 안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평생 채찍질만 받던 자신들에게 '정당한 권리'와 '휴일'을 보장해 준다는 은하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여신의 복음과도 같았다.


"실장님…… 정말 저희에게 돈을 주고, 쉬게 해 주시는 겁니까?"


임프 대장이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


"네, 임프 대장님. 여러분은 정당한 계약직 광산 임프이자 마왕성의 소중한 인적 자원입니다. 앞으로 법을 위반하는 부당한 노동 지시는 거부하셔도 좋습니다."


이 말을 들은 리치 장로회장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그가 보석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며 차가운 어둠의 마력을 뿜어냈다.


"건방진 것들! 내 허락 없이는 단 한 놈도 살아서 나가지 못한다! 오늘 밤 야간 무료 특근을 선포하노라! 채굴을 거부하는 자는 즉시 이 마력 채찍으로 영혼을 찢어버리겠다!"


장로회장의 지팡이 끝에서 시커먼 어둠의 채찍들이 뿜어져 나와 임프들을 향해 내리치려 했다.


그 순간, 임프 대장이 붉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며 소리쳤다.


"동지들이여! 더 이상 부당한 무임금 야근과 폭력에 굴복하지 말자! 유은하 실장님이 주신 노동법을 수호하라! 전원, 곡괭이를 내려놓아라!"


"와아아아!"


수백 명의 임프들이 일제히 곡괭이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 쇳소리가 광산 전체를 웅장하게 울렸다. 임프 노조원들은 일사불란하게 광산 입구로 달려가 채굴용 수레와 바위 더미를 쌓아 거대한 바리케이드를 봉쇄하기 시작했다.


사상 최초의 '지하 임프 광산 연쇄 파업 위기'가 발발한 순간이었다.


"이, 이놈들이 반란을 일으키는구나! 당장 언데드 광부들을 투입해 대체 근로를 시도하겠다!"


장로회장이 소리치며 하급 좀비와 해골들을 광산에 밀어 넣으려 했다. 하지만 은하가 팔짱을 낀 채 차갑게 비웃었다.


"해 보세요, 장로회장님. 저 좀비들이 제레드 님이 구축한 최신식 채굴 마법 장비의 엑셀 제어판을 다룰 줄 안답니까? 데이터 입력도 못 하는 시체들을 밀어 넣어봤자 장비만 고장 나고 손실만 늘어날 뿐입니다."


실제로 투입된 좀비들은 제어판 앞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엉뚱한 버튼을 눌러 채굴 장비를 먹통으로 만들어 버렸다. 광산의 모든 작업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그리고 그 마비의 여파는 즉각 마왕성 전체로 퍼져나갔.


광산에서 공급되던 영혼 결정이 끊기자, 마왕성 신관의 마법 전등들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복도의 온수 정수기가 꺼지고, 알현실의 화려한 용암 결계의 화력이 급격히 약해지며 온도가 내려갔다. 성 전체가 차가운 어둠과 정적에 휩싸이기 시작한 것이다.


기획실 내부의 마법 조명마저 희미하게 흔들리던 그때, 복도 저편에서 대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엄청난 살기가 몰려왔다.


"유은하—! 기획실장 네 이놈!"


쿠우웅!


기획실의 튼튼한 참나무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검은 갑옷을 입은 마왕 발락이 노발대발하며 알현실에서 기획실로 난입했다. 그의 눈동자는 불타는 연료 부족으로 인해 붉은 불꽃을 거칠게 뿜어내고 있었다.


"당장 성의 마력이 끊겨 내 왕좌의 온돌이 식어가고 있다! 광산이 멈췄다는데,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이냐!"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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