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신도의 무단 돌격과 스케줄 잠금
차원 경계 암시장에 차려진 K-푸드 포장마차의 천막이 세찬 밤바람에 요란하게 펄럭였다. 방금 전까지 눈물을 흘리며 제육볶음을 흡입하던 용사 김성민은 품에 마정석 주머니를 꼭 안은 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가 서명한 ‘마왕성 보안 자문 계약서’의 황금빛 인과율 파장이 허공에서 은은하게 빛나다 은하의 가죽 가방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 계약서 서명도 끝났고…… 용사님 신용등급 방어도 합법적으로 처리해 드렸으니, 이제 슬슬 본사로 퇴근을——”
은하가 가방 지퍼를 올리며 홀가분한 미소를 지으려던 찰나였다.
쿠르릉! 쾅!
국경 장벽 너머, 인간계 교황청 전선 방향에서 귀를 찢는 듯한 폭음과 함께 시뻘건 신성 화염의 아우라가 밤하늘을 무자비하게 찢어발겼다. 포장마차의 석쇠 위에 놓인 믹스커피 종이컵들이 진동으로 인해 잘게 흔들렸다. 한스는 재빠르게 철판을 방패 삼아 몸을 숨겼고, 배가 불러 흐뭇해하던 김성민은 본능적으로 아스칼론의 자루를 쥐려다 붉은색 ‘연체 락(Lock)’ 경고창이 다시 뜨자 쯧 하고 혀를 찼다.
“이, 이 지독한 마력 파장은…… 이단심문관 율리우스 님?!”
김성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천막을 헤치고 국경지대로 나선 은하의 눈앞에 믿기 힘든 풍경이 펼쳐졌다. 성기사단의 임시 막사 진영 한가운데에서, 하얀 가면에 불타는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예복을 입은 광신도 기사단이 횃불을 치켜들고 일제히 포효하고 있었다. 그 선두에 선 자는 한 손에 시뻘겋게 타오르는 화염 채찍을 쥔 사내, 이단심문관 율리우스였다.
“악마의 하수인들이 감히 신성한 교단의 성전을 가로막고 얄팍한 종이 쪼가리로 시간을 끌다니! 더는 참을 수 없다! 시그리드 기획관의 나약한 행정 절차 따위는 개나 주어라! 신의 뜻을 따르는 전쟁에는 법적 절차 따위는 필요 없다!”
“율리우스 심문관님! 멈추십시오! 마왕성의 국경 결계는 무단으로 타격하면 행정 소송과 함께 신용 벌점이——!”
발키리 시그리드가 허겁지겁 마차에서 내려 그의 로브 자락을 붙잡으려 했으나, 광기에 눈이 먼 율리우스는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닥쳐라, 시그리드! 저 사악한 악마 비서년의 머리를 화형대의 불꽃으로 정화하는 것만이 신의 뜻이다! 광신도 기사단이여, 돌격하라!”
“와아아아!”
수백 명의 광신도 기사들이 무기를 치켜들고 마왕성 국경 장벽을 향해 성난 파도처럼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뿜는 신성 마력의 기세는 대지를 통째로 녹여버릴 듯이 뜨거웠다.
유은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은테 안경 너머로 지독한 피로감과 짜증이 서려 있었다.
‘하아, 진짜 미치겠네. 지금 시간이 금요일 밤 10시 15분인데. 주말 출근도 모자라 퇴근 직전에 사전 예약도 안 한 광고성 불청객이 무단으로 기습을 때려? 전 회사 최사장이 일요일 밤 11시에 술 처먹고 전화해서 월요일 아침 기획서 대령하라고 개지랄 떨던 때보다 더 악질이잖아.’
K-직장인으로서 다져진 지독한 독기와 해탈함이 은하의 이마에 굵은 핏대를 세웠다. 은하는 차분하게 가죽 가방에서 ‘마법 행정 태블릿’을 꺼내 들었다. 화면을 터치하는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푸른색 디지털 격자가 날카롭게 깜빡였다.
“율리우스 심문관님.”
은하의 건조하고 서늘한 목소리가 마력 확성기를 타고 전장에 똑똑히 울려 퍼졌다.
“마왕성 국경 관리법 제15조를 위반한 무단 야간 침공입니다. 또한 저희 아웃룩 캘린더(Outlook Calendar)에 사전 등록되지 않은 비인가 군사 행동이므로, 이 공격은 ‘업무 외 시간의 예약 불가 오류’로 처리하겠습니다.”
“이단 마녀년이 헛소리를! 죽어라!”
율리우스가 포효하며 허공을 향해 불타는 신성 채찍을 내리쳤다. 거대한 화염 용의 형상을 한 채찍이 국경 장벽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달렸다. 닿는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버릴 듯한 압도적인 파괴력이었다.
그 순간, 은하가 태블릿 화면의 아웃룩 캘린더 앱에서 현재 시간대를 터치하고, ‘스케줄 잠금(Schedule Lock)’ 버튼을 가볍게 눌렀다.
[알림: 업무 외 시간 (22:00 ~ 08:00) 방어 모드가 활성화되었습니다. 비인가 일정 등록 시도가 차단됩니다.]
웅—!
국경 장벽 전면에 거대한 황금빛 시계 바늘 문양이 새겨진 반투명한 사각형 격자 결계막이 홀로그램처럼 허공에 솟아올랐다. 격자 칸칸마다 ‘예약 불가 (NOT RESERVED)’, ‘퇴근 이후 시간대 (OUT OF OFFICE)’라는 붉은색 시스템 경고 문구가 명멸했다.
쾅! 콰아아앙!
율리우스의 신성 화염 채찍이 결계막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붉은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으나, 황금빛 격자 결계막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결계막에 새겨진 시계 바늘이 시계 방향으로 빠르게 회전하며, 율리우스가 내뿜은 신성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알림: 외부 유입 마력의 전산 변환이 완료되었습니다. 마법 행정 태블릿 배터리가 충전됩니다. (현재 배터리: 100%)]
태블릿 화면 구석의 배터리 잔량이 순식간에 가득 차오르자, 은하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피식 웃었다.
“감사합니다, 심문관님. 마침 충전기가 없어서 배터리가 아슬아슬했는데, 아주 든든한 친환경 마력 충전기를 보내주셨네요.”
“이, 이럴 수가……! 내 신성한 정화의 불꽃이 흡수당하다니! 말도 안 된다!”
율리우스가 당황해 가면 너머로 침을 흘리며 다시 한번 마법을 난사하려 했다. 하지만 결계막의 인과율 왜곡 파장이 그의 마력 회로를 강제로 역류시켰다.
“커헉……!”
결계의 ‘비인가 프로그램 차단 방화벽’이 가동되며 반사된 마력 충격이 율리우스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율리우스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고, 그의 입에서 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광신도 기사단의 돌격 대열이 순식간에 멈추어 서며 혼란에 빠졌다.
그때였다.
포장마차 뒤편의 짙은 어둠 속에서, 서늘하고 묵직한 저승의 서리가 대지를 타고 흘러나왔다.
스윽.
번쩍이는 검은 갑옷을 입고 가슴에 ‘인사팀장 카론’이라는 아크릴 명찰을 단 거구의 데스나이트가 어둠을 찢고 걸어 나왔다. 그의 뒤로 검은 제복을 입은 인사부 소속 데스나이트 순찰대원들이 불타는 마법 삼단봉을 짤랑거리며 대열을 맞추어 등장했다.
“과로사는…… 한 번으로 족합니다.”
카론의 안광이 퍼렇게 번뜩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야근과 근무 시간 외 업무 지시에 대한 지독한 혐오감이 서려 있었다.
“오후 10시 이후, 사전 승인 없이 마왕성 국경 영토에서 무단으로 노동(침공)을 감행하고, 사내 안전보건 규정을 위반하여 기획실의 자산을 위협한 자들이 감지되었다. 이것은 명백한 직장 내 불법 침입 및 근무 시간 위반 행위다.”
카론이 불타는 삼단봉을 치켜들자, 인사부 순찰대원들이 일제히 광신도 기사단을 포위했다. 데스나이트들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저승의 살기 앞에, 율리우스의 사병들은 기가 죽어 무기를 슬그머니 내려놓기 시작했다.
“율리우스 심문관.”
카론이 쓰러진 율리우스의 덜미를 거대한 강철 손아귀로 움켜쥐며 선언했다.
“귀하를 근무 시간 외 무단 야간 침공 및 사내 안전 위협 죄로 현행범 체포합니다. 징계 절차에 따라 마왕성 지하 감옥으로 연행하여, 엑셀 기초 함수 및 보고서 서식 깜지 작성 교육 168시간을 집행하겠습니다.”
“이, 이 악마 놈들…… 놓아라! 신성한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율리우스가 쇠사슬에 묶인 채 비명을 질렀으나, 카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질질 끌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시그리드는 그 비참한 퇴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손에 쥔 깃털 펜을 떨어뜨렸고, 은하는 마침내 태블릿을 끄고 가방을 챙겼다.
“자, 무단 야근 단속도 끝났으니 진짜 퇴근합니다. 월요일 아침 회의 때 뵙죠, 용사님.”
은하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차를 향해 걸어가자, 국경 전선에는 지독한 정적과 함께 새로운 행정적 공포의 서막이 내리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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