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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기획관의 이의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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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성하의 직인이 날인된 ‘성전 예외 조약서’입니다. 이 조약에 의거하여, 마왕성 국경의 모든 임시 결계 및 비인가 차단 장벽의 즉각적인 해제를 공식 요구하는 바입니다.”


발키리 시그리드의 목소리는 마치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듯 고결하고 맑았다. 순백의 갑옷 위로 흘러내리는 금발 머리와 등 뒤에서 미세하게 파닥이는 반투명한 깃털 날개는 그녀가 교황청 소속의 엘리트 기획관임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녀가 치켜든 ‘성전 예외 조약서’에서는 눈이 시릴 정도의 황금빛 신성 마력이 뿜어져 나와 국경의 삭막한 황무지를 비추었다.


그 순간, 시그리드의 오른손에 쥐여 있던 교황청의 보물, ‘신성한 판결의 깃털 펜’이 기이한 공명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웅장한 신성력이 깃털 펜의 끝에서 뿜어져 나와 허공을 가르더니, 마왕성 경영기획실 본부에 놓여 있을 유은하의 ‘반려 도장’이 지닌 붉은색 인과율 마력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파지직! 파직!


허공에서 푸른색과 황금색, 그리고 붉은색의 마법적 불꽃이 튀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검기가 아닌, 행정적 권위와 결재 권능이 부딪치는 무형의 전투였다.


국경 키오스크의 홀로그램 화면 너머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은하는 조용히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믹스커피의 달콤한 향이 가시기도 전에 찾아온 새로운 귀찮음. 은하는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아, 또 엘리트 꼰대 신입 같은 게 기어 나왔네. 기획서 양식도 안 맞춰오는 주제에 조약서 한 장 들고 와서 프리패스 해달라고 우기는 꼴이라니. 전 회사에서 지연 학연 믿고 기획안 패스해 달라던 사장 조카 놈이 생각나는군.’


은하는 차분하게 콧등 위로 흘러내린 ‘블루라이트 차단 은테 안경’을 손가락 끝으로 밀어 올렸다. 안경알이 태블릿의 푸른 광선을 받아 서늘하게 반짝이는 순간, 은하의 눈앞에 흐르던 무질서한 마력의 파장들이 정연한 수치와 텍스트 데이터로 정렬되기 시작했다.


“시그리드 기획관님.”


은하의 목소리는 칼바람보다 더 건조하고 싸늘했다.


“교황청 법률 부서의 검수를 거쳤다는 그 대단한 조약서, 국경 키오스크 스캐너에 밀착시켜 주시겠어요? 저희 기획실의 정식 문서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종이 쪼가리는 마왕성 국경법상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종이 쪼가리라니요! 이것은 대륙의 평화를 수호하는 교황 성하의 신성한 인장이 찍힌 공식 외교 문서입니다!”


시그리드의 아름다운 미간이 찌푸려졌다.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 원칙주의자 천재 행정관은 은하의 무례한 태도에 깊은 모욕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오만하게 미소 지었다.


“좋습니다. 원하는 대로 스캔해 드리지요. 신성한 법률과 완벽한 행정 절차를 거친 이 문서에 단 하나의 하자라도 찾아낼 수 있다면 찾아보십시오.”


시그리드가 조약서를 키오스크의 마법 스캔 유리판 위에 탁 소리가 나게 밀착시켰다.


위이이이잉—.


푸른색 레이저 광선이 조약서 표면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은하의 마법 행정 태블릿 화면 위로 조약서의 세부 문구와 마법적 인장이 입체 홀로그램으로 투영되었다.


은하는 블루라이트 안경의 정밀 투시 기능을 가동하여 문서의 여백, 자간, 서식 폰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중앙의 ‘교황 인장(Papal Seal)’의 마력 파장을 0.1밀리미터 단위로 쪼개어 분석하기 시작했다.


침묵이 흘렀다. 용사 김성민과 성기사단원들은 숨을 죽인 채 키오스크 화면 속 은하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시그리드는 팔짱을 낀 채 승리를 확신하는 고결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은하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는 순간, 시그리드의 심장이 불길하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시그리드 기획관님.”


은하가 안경을 톡톡 치며 나직하게 말했다.


“교황청 기획관이라는 직함이 아깝군요. 이 문서, 반려(REJECT)입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서식 불일치로 말이죠.”


“뭐, 뭐라고요?! 반려라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문장 하나, 자구 하나까지 교황청 재정 규정과 외교 관례를 완벽히 준수하여 작성된 조약서입니다!”


시그리드가 날개를 파르르 떨며 소리쳤다. 그녀의 완벽주의적 자존심에 금이 가는 소리가 황무지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서식이 완벽하다고요?”


은하가 태블릿 화면을 슥 돌려 시그리드의 코앞에 홀로그램으로 확대된 교황의 인장 파장을 띄웠다. 붉은색 에러 메시지가 인장 주변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조약서 중앙에 날인된 교황 성하의 인장(Papal Seal) 마력 코드 등록 유효기간을 확인해 보세요. 이번 회계 연도가 아닌, 지난 분기인 3월 31일 자로 만료된 구형 인장입니다. 현재 날짜는 4월 2일. 즉, 당신들이 들고 온 문서는 법적으로 효력이 만료된 구형 법인 인감을 날인한 무효 문서입니다.”


“아, 인장 만료……?!”


시그리드의 푸른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교황청 재정 규정 제12조 제4항에 따르면, 대외 예외 조약서의 본문 자간은 160%로 통일해야 하며 폰트는 공식 ‘교황청 고딕체’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문서의 본문 자간은 150%로 세팅되어 있고, 일부 주석 문구에는 기본 폰트인 ‘굴림체’ 계열의 마력 파장이 섞여 있군요. 공문서 서식 가이드라인을 이렇게 엉망으로 작성해 오다니, 결재 올린 기획관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럽네요.”


은하의 송곳 같은 지적은 시그리드의 뇌리를 정확하게 관통했다.


“그, 그건…… 교황 성하께서 최근 면죄부 발행과 신년 예산안 심의로 바쁘셔서 인장 갱신 마법을 깜빡 잊으신 것이……! 자간과 폰트는 단순한 전산 오타일 뿐입니다!”


“경영진의 과실이나 실무자의 단순 오타는 행정 반려의 합법적인 면책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은하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서식 불일치 및 만료 인장 사용. 기안서의 신뢰도가 제로에 수렴하므로, 본 조약서는 즉시 무효 처리됩니다.”


당황한 시그리드는 황급히 ‘신성한 판결의 깃털 펜’을 들어 조약서 위의 인장 마법진을 원격으로 수정하려 했다. 펜 끝에서 황금빛 신성력이 뿜어져 나와 만료된 인장의 연도 수치를 강제로 바꾸려던 바로 그 순간, 은하의 서늘한 경고가 날아들었다.


“멈추세요. 결재권자의 공식 승인 없이 공문서의 세부 수치를 사후에 무단 변조하는 행위는 마왕성 법률 및 국제 행정법상 ‘1급 공문서 변조죄’에 해당합니다. 당장 그 펜을 거두지 않으시면, 기획관님뿐만 아니라 교황청 성기사단 전체를 공문서 위조 및 사기 혐의로 즉시 사내 징계 위원회와 인간계 법원에 정식 기소하겠습니다. 합의금으로 성기사단 연간 예산 전체를 압류당하고 싶으신가요?”


“으, 윽……!”


시그리드의 손끝이 멈췄다. 깃털 펜의 황금빛 불꽃이 허무하게 꺼지며 그녀의 얼굴이 수치심과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 평생 단 한 번도 행정적 결함을 지적받은 적 없던 교황청 최고의 엘리트가, 마왕성의 인간 비서 앞에서 완벽하게 무릎을 꿇은 순간이었다.


“자, 서식 보완 서류를 지참하여 정식으로 다시 재기안을 올리세요.”


은하가 차갑게 미소 지으며 태블릿의 ‘행정 소송 지연 전술(Delay Action)’ 아이콘을 가볍게 터치했다.


[띵동. 외교 문서 반려에 따른 이의제기 접수 완료. 법적 검토 및 재심사 대기 기간: 영업일 기준 30일 소요 예정.]


“30일?! 침공을 한 달이나 미루라는 말입니까! 당장 국경에 집결한 우리 기사단의 한 달 치 식량과 군비 소모는 어쩌란 말입니까!”


시그리드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러나 은하는 이미 종이컵의 마지막 커피를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건 교황청 재정부에서 예산 편성할 때 감당하셔야 할 리스크죠. 저희 경영기획실의 알 바가 아닙니다. 그럼 30일 뒤에 보완된 서류를 들고 다시 예약해 주세요. 퇴근 시간이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화면이 뚝 끊기며 키오스크가 대기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국경 전선에는 굶주림과 군비 부족, 그리고 한 달간의 노숙이라는 지독한 현실적 파산 위기에 직면한 성기사단의 침묵만이 가득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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