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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배출권 폭탄과 금융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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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00분.


경영기획실 북부 감사단이 임시 감사실로 사용하던 북부 성 지하 3층의 허공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황금빛 시계 바늘들이 마침내 힘을 잃고 스러졌다. 야근 안전 특별 일정의 종료를 알리는 아웃룩 스케줄 잠금(Schedule Lock) 결계가 해제된 것이다. 동시에 유은하 실장의 손에 들려 있던 마법 행정 태블릿의 화면이 껌벅이더니 배터리 잔량 0%를 기록하며 완전히 꺼졌다.


“푸하아…….”


서큐버스 재무부장 릴리스가 팅커벨처럼 날아다니던 날개를 축 늘어뜨리며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밤새 영하 30도의 살인적인 냉기를 버텨내느라 온몸의 마력을 쥐어짠 탓에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와 있었다. 리치 세무사 역시 굳어 있던 해골 관절을 삐걱거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직 데스나이트 카론 인사팀장만이 꼿꼿한 자세로 삼단봉을 쥔 채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철컥, 철커덕!


무겁게 닫혀 있던 강철 문 너머에서 고대 봉인 마법이 해제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뒤이어 육중한 빗장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잠근 자들이 안에서 얼어 죽은 감사단의 시체를 수습하러 온 것이 분명했다.


“키히히! 엘릭, 안쪽 조용하지? 아주 꽁꽁 얼어붙어서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고 있을 거다.”


“당연하옵니다, 공작 전하. 지하 3층의 메인 보일러 배관을 통째로 잠그고 영하 30도의 냉기를 불어넣었으니, 아무리 대단한 중앙의 행정관들이라 해도 지금쯤 훌륭한 냉동 삼겹살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비열한 웃음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렸다.


눈부신 담비 가죽 망토를 걸치고 손가락마다 보석 반지를 주렁주렁 낀 북부 영주 벨리알 공작이 거만한 걸음걸이로 감사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뒤에는 관리인 엘릭과 무장한 흡혈귀 사병들이 시체 자루를 들고 뒤따르고 있었다. 벨리알은 감사단의 처참한 죽음을 감상하며 이죽거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이 감사실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기묘한 이질감이 그들의 온몸을 감쌌다.


“……어?”


엘릭이 멍청한 소리를 내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기대했던 영하 30도의 살인적인 한파는 흔적도 없었다. 감사실 내부는 가고일 반장의 정밀 공구 세트로 리모델링된 아늑한 온돌 바닥 덕분에 쾌적하기 그지없는 섭씨 22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술 더 떠, 방 안 가득 고소하고 달콤한 K-믹스커피의 단내가 부드럽게 감돌고 있었다.


그 따뜻하고 평화로운 공간의 중심에서, 유은하 실장은 단정한 검은색 H라인 오피스 스커트 정장 핏을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유지한 채 메쉬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꺼진 태블릿을 가죽 가방에 넣고, 대신 가방 안에서 빳빳하게 인쇄된 A4 용지 서류 더미를 꺼내 정돈하고 있었다. 콧등에 걸친 블루라이트 차단 은테 안경이 탕비실 온수 김 서림을 받아 미세하게 반짝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벨리알 공작님. 마왕성 공식 출근 시간인 오전 9시까지는 아직 3시간이나 남았는데, 참 부지런하시네요.”


은하가 서류철을 탁탁 맞추며 차분하게 고개를 들어 벨리알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한파보다 더 시리고 건조했다.


“너, 너희가…… 어떻게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이냐?! 보일러가 끊겼을 텐데!”


벨리알 공작이 담비 가죽 망토를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그의 비열한 얼굴이 경악과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엘릭 역시 시체 자루를 떨어뜨린 채 헛바람을 들이켰다.


“보일러 배관 차단 공작 말씀이십니까? 전형적인 소규모 영세 업자의 소치이더군요.”


은하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피식 웃었다.


“공작님이 보일러를 잠그고 한기를 불어넣으신 조치는 마왕성 안전보건 규정 제14조 위반이자, 엄연한 감사방해죄 및 살인미수 혐의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그 법적 처벌은 잠시 접어두죠. 지금 당장 공작님께 청구할 더 거대하고 합법적인 고지서가 있거든요.”


은하가 테이블 위에 빳빳한 A4 용지 한 장을 슬라이드하듯 벨리알의 코앞으로 밀어 보냈다. 고지서 맨 위에는 굵은 고딕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마왕성 대기 환경 보전 조례 위반에 따른 징벌적 벌금 부과 고지서]`


“이…… 이게 무슨 개소리냐?”


벨리알이 고지서를 받아들며 미간을 찌푸렸다.


“개소리가 아니라 환경 규제법입니다.”


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벨리알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비록 무력은 0에 수렴하는 나약한 인간이었지만, 밤샘 야근으로 단련된 독기와 깡다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상급 마족인 벨리알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저희 마왕성 기술고문 제레드 교수님이 밤새 공작님의 성 보일러 제어 장치를 원격 해킹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주 흥미로운 데이터가 백업되었더군요. 공작님이 소유하신 북부의 불법 ‘영혼 결정 광산’과 성의 메인 보일러가 연결된 ‘지옥 불 가마터’의 정밀 가동 기록입니다.”


은하가 손가락으로 고지서의 수치들을 가리켰다.


“노움 장로님이 제공해 주신 북부 지질 정밀 보고서와 제레드 교수님의 해킹 데이터를 크로스 체크한 결과, 공작님의 비밀 광산과 가마터에서 배출하는 독기 마력의 누적량이 마왕성 환경 보전 조례 기준치를 무려 500% 초과했음이 입증되었습니다. 마계 탄소배출권 미준수 및 무단 오염 물질 배출 행위입니다.”


“탄소…… 배출권? 독기 배출? 이 미친 인간 계집이 지금 내 영지에서 내 마음대로 가마터를 돌린 것을 두고 시비를 거는 것이냐! 마계의 규칙은 오직 강함뿐이거늘, 이딴 종이 조각이 내게 무슨 통제력을 가진단 말이냐!”


벨리알 공작이 고지서를 꽉 쥐며 살기를 뿜어냈다. 그의 뱀파이어 송곳니가 붉은 입술 사이로 날카롭게 드러났다. 당장이라도 은하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강함이 규칙인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행정’과 ‘자본’이 규칙입니다.”


은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공작님이 마왕성 대기 환경 보전 조례를 위반하고 무단으로 독기를 배출해 마왕성 전체의 대기 질을 오염시킨 대가는 상당합니다. 미준수 탄소배출권 소급 적용 및 징벌적 과세율 500%를 적용하여, 공작님께 부과된 최종 벌금은 총 50만 마정석입니다.”


“오, 50만 마정석……?!”


옆에 서 있던 엘릭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50만 마정석은 북부 영지의 연간 예산을 통째로 초과하는, 그야말로 영지 전체를 파산시키고도 남을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미친년이 확실하구나! 내 영지에서 내 사병들을 거느리고 있는 나를 상대로 감히 파산을 논해? 내 당장 네년들의 목을 베어 지하 광산의 거름으로 써주마!”


벨리알 공작이 광포하게 울부짖으며 허리춤의 명검 ‘크림슨 팽’을 뽑아 들었다. 붉은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흡혈 마력이 감사실 내부를 붉게 물들였다.


“카론 부장님, 릴리스 팀장님. 집행하세요.”


은하가 건조하게 지시했다.


그 순간, 릴리스 재무부장이 품속에서 붉은 가죽 결재판을 펼쳤다. 그것은 마왕 발락의 ‘심연의 결재 인장’이 날인된 초법적 강제 압류 집행장이었다.


“마왕성 중앙 은행 연동 북부 영지 자산 및 계좌 전면 압류 동결을 집행합니다.”


릴리스가 집행장을 허공에 던지자, 집행장이 붉은 마법 입자로 분해되며 북부 성 전체의 마법 금융망으로 흘러 들어갔다.


위이이이이잉—!


그 순간, 벨리알 공작의 검에 서려 있던 강력한 흡혈 마력이 거짓말처럼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붉게 타오르던 명검의 광채가 탁한 회색으로 변하며, 공작의 몸을 감싸고 있던 상급 마족 특유의 위압적인 아우라가 순식간에 50% 이하로 격감했다.


“끄, 끄악?! 내, 내 마력이…… 왜 이리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이냐?!”


벨리알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얼굴이 핏기를 잃고 하얗게 질려갔다.


“마계 영주들의 마력 인과율은 영지의 대지와 자산, 그리고 마왕성 중앙 금고의 신용에 귀속되어 있죠.”


은하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릴리스 팀장이 영지 계좌와 비밀 광산의 자산을 합법적으로 압류 동결하는 순간, 공작님이 대지로부터 공급받던 마력의 인과율적 연결 고리가 차단된 겁니다. 한마디로 자산 가치 하락에 따른 ‘마력 디플레이션’이죠. 무력으로 감사단을 죽이려 하셨습니까? 자금줄이 묶인 영주는 더 이상 상급 마족이 아니라, 그저 빚더미에 앉은 나약한 흡혈귀 영감탱이일 뿐입니다.”


“커헉……! 끄으으윽!”


벨리알 공작은 난데없는 세금 및 벌금 폭탄, 그리고 실시간으로 진행된 금융 압류의 타격에 가슴을 부여잡으며 피를 토하듯 신음을 내뱉었다. 칼 한 자루 섞지 않고 오직 서류와 조례 조항 몇 개로 자신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킨 인간 비서의 행정력 앞에, 영주는 평생 느껴보지 못한 지독한 ‘금융 치료’의 공포를 맛보고 있었다.


그러나 파산 위기에 직면한 영주의 눈동자에 이내 광기 어린 독기가 서렸다.


“이…… 이 사악한 중앙의 쥐새끼들이 내 돈을…… 내 영지를 감히 빼앗으려 들어?! 이판사판이다! 내 재산이 묶였다면, 무력으로 마왕성을 뒤엎으면 그만이다!”


벨리알이 이성을 잃고 감사실 밖 복도를 향해 피를 토하듯 고함을 질렀다.


“사병들아! 북부의 용사들아! 당장 쳐들어와 이 기획실 년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찢어 죽여라! 마왕의 집행장이고 뭐고, 목격자가 없으면 그만이다!”


쿵! 쿵! 쿵! 쿵!


공작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감사실 밖 복도 너머에서 수천 명의 무장 사병들이 갑옷을 부딪치며 달려오는 위압적인 발소리가 지하 사방을 울리기 시작했다. 벨리알 공작이 숨겨둔 3만 사병 군단 중 정예 병력들이 칼을 뽑아 든 채 감사실 문 앞 복도를 가득 메우며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실장님, 사병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제 삼단봉으로도 이 인원을 물리적으로 전부 통제하기는 무리입니다.”


카론 인사팀장이 삼단봉을 고쳐 쥐며 은하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촉즉발의 몰살 위기.


그러나 유은하 실장은 밀려드는 군대를 바라보며 비명을 지르기는커녕, 입가에 서늘하고 영악한 미소를 흘렸다. 그녀는 가죽 가방 깊숙한 곳에서 또 다른 빳빳한 기획서 뭉치를 꺼내 들었다.


“걱정 마세요, 카론 부장님. 저 사병들도 결국 월급 받고 일하는 피고용인들일 뿐이니까요.”


은하의 손가락 끝에서, 벨리알 공작의 파멸을 불러올 비장의 카드가 정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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