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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계와 뇌물 수사 방해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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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30분. 벨리알 성의 지하 3층 임시 감사실에는 여전히 엑셀 시트의 푸른 불빛이 차갑게 일렁이고 있었다.


방금 전 은하가 가동한 ‘복식부기 크로스 체크’ 마법의 여운으로, 공중에는 북부 영지의 숨겨진 마정석 광산 매출 누락 75%라는 붉은색 경고등이 요란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릴리스 재무팀장은 태블릿 화면에 기록된 교황청 비밀 송금 내역을 보며 붉은 안경을 치켜올렸다.


“실장님, 벨리알 공작의 목줄을 완벽하게 쥐었습니다. 이 이중 장부 데이터만 마왕성으로 전송하면, 저 간사한 뱀파이어는 반역죄로 즉시 참수형이에요.”


“그렇죠. 하지만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습니다.”


은하는 텀블러에 남은 미지근한 믹스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건조하게 대답했다.


“벨리알 공작은 자신이 100만 장의 양피지 디도스 공격으로 시간을 버는 사이, 우리가 장부를 다 털어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이제 슬슬 ‘비공식적인 해결책’을 들고 찾아올 타이밍이네요.”


은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임시 감사실의 굳게 닫힌 참나무 문 너머로 은밀하고 달콤한 향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장미 향과 최고급 혈액 포도주의 향이 뒤섞인, 지극히 유혹적이고 인위적인 향취였다.


스르륵.


문이 열리며 북부 영지의 관리인 흡혈귀 엘릭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 들어왔다. 그의 뒤편으로 가죽 갑옷을 입은 거구의 사병들이 붉은 벨벳으로 감싸인 거대한 보석 상자 세 개를 조심스럽게 밀고 들어왔다.


“크흐흐, 감사단 여러분. 밤새 양피지 먼지 구덩이에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엘릭이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손뼉을 짝 쳤다. 그러자 사병들이 보석 상자의 뚜껑을 일제히 열어젖혔다.


순간, 감사실 내부가 눈이 멀 것 같은 붉은빛으로 가득 찼다. 상자 안에는 마력 밀도를 극한으로 압축해 주조한 최고급 ‘적마정석 금괴’들이 정연하게 쌓여 있었다. 마계의 표준 화폐인 ‘규격 마정석 주화’로 환산하면 수십만 개에 달하는, 그야말로 영지 일 년 치 예산과 맞먹는 어마어마한 거금이었다. 그 옆에는 고대 영웅들이 쓰던 전설의 성검 파편과 온갖 희귀한 보석들이 번쩍이고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엘릭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상자 뒤편의 어둠 속에서 실크 한 장만 걸친 듯한 매혹적인 서큐버스 에스코트 요원 다섯 명이 나비처럼 날아올랐다. 그녀들은 보라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감사단의 긴장을 풀어주겠다는 듯 콧소리를 섞어 속삭였다.


“아우, 깐깐한 감사관님들…… 딱딱한 장부만 보시느라 어깨가 많이 뭉치셨죠? 저희가 시원하게 풀어드릴게요.”


서큐버스 한 명이 요염한 몸짓으로 데스나이트 카론 인사팀장에게 다가가 그의 차가운 검은 갑옷 위로 부드러운 손길을 뻗었다. 다른 서큐버스들은 릴리스와 리치 세무사의 곁을 맴돌며 유혹의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엘릭은 이 광경을 보며 은밀하게 미소 지었다.


‘아무리 대단한 감사단이라도 이 정도의 황금과 미인계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지. 대충 장부의 오차를 수포로 돌리고 서명만 해주면, 이 모든 것이 당신들 개인 금고로 들어갈 것이다.’


그것이 벨리알 공작이 준비한 필승의 뇌물 공작이었다.


하지만 영주의 심복은 한 가지 치명적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감사단의 핵심 간부들이 마계의 악마이기 전에, 지독한 원칙주의로 무장한 ‘현대식 직장인’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멈추십시오.”


차가운 쇳소리가 감사실 내부의 끈적한 공기를 단칼에 베어냈다.


카론 인사팀장이었다. 그의 검은 갑옷 틈새로 푸른색 안광이 무시무시하게 번뜩였다. 카론은 자신에게 다가오던 서큐버스의 손목을 강철 같은 악력으로 낚아채더니, 그대로 뒤로 휙 밀쳐냈다.


“꺄악!”


서큐버스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나뒹굴자, 엘릭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가셨다.


“카, 카론 부장님? 이게 무슨…….”


“사내 청렴유지 규정 및 공직자 청탁금지법 제8조 위반.”


카론이 허리춤에서 두꺼운 바인더 북을 꺼내 탁 소리 나게 펼쳤다. 가슴에 달린 ‘인사팀장 카론’이라는 아크릴 명찰이 그의 살벌한 기운을 받아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마왕성 임직원은 직무 수행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어떠한 금품, 향응, 접대도 수수할 수 없습니다. 또한, 감사 대상자로부터 사적인 편의를 제공받는 행위는 즉시 형사 기소 및 파면 사유에 해당합니다. 지금 저에게 건네려 한 이 전설의 검과 보석 상자는 명백한 ‘뇌물’로 규정합니다.”


카론의 등 뒤로 지옥의 서리가 피어오르며 감사실 온도가 급격히 하강했다. 과거 제국 행정관 시절 과로사했던 그의 영혼은, 이러한 불법 청탁과 부조리가 조직을 좀먹고 결국 ‘불필요한 야근’을 양산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야근을 유발하는 모든 불법 행위는 그의 주적이었다.


엘릭이 식은땀을 흘리며 황급히 릴리스를 바라보았다. 서큐버스 출신의 재무팀장이라면 동족의 매혹과 황금의 가치를 알아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릴리스 역시 붉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서큐버스 에스코트 요원들을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탁탁 쳤다.


“엘릭 씨, 지금 제 부하 직원들 앞에서 무슨 무모한 짓을 하시는 건가요?”


릴리스가 품속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및 ‘성희롱 예방 지침’ 문서를 꺼내 들었다.


“근무 시간 중에 감사실이라는 엄숙한 업무 공간에 승인되지 않은 유흥 인력을 난입시키고, 신체적 접촉을 시도하게 만들다니요. 이것은 명백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규정 위반’이자, 감사단에 대한 심각한 업무 방해 및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합니다. 당장 이 음란한 마력 방출을 중단하지 않으면, 북부 영지 전체에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추가로 걸겠어요.”


“아, 아니…….”


엘릭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황금과 미녀를 보냈는데 돌아온 것은 ‘청탁금지법’과 ‘성희롱 예방 지침’이라는 해괴망측한 법률 조항들이었다.


그때, 감사실 구석에서 묵묵히 태블릿을 두드리던 유은하 실장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단정한 검은색 H라인 스커트 정장 핏을 매끄럽게 정리하며, 한 손에 붉은 인크가 묻은 거대한 ‘수석 비서의 반려 도장’을 쥐고 있었다.


은하는 엘릭을 지나쳐 적마정석 금괴가 가득 담긴 보석 상자 앞으로 걸어갔다.


“실장님! 저 계집의 목을……!”


사병들이 움찔하며 무기를 잡으려 하자, 카론이 삼단봉을 가볍게 흔들며 무시무시한 데스나이트의 살기를 뿜어냈다. 사병들은 그대로 제자리에서 돌처럼 굳어버렸다.


은하는 상자 안의 적마정석 금괴를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뇌물이라니. 전 회사 최사장이 명절에 스팸 세트 하나 던져주면서 연휴 내내 당직 서라고 가스라이팅하던 짓거리보다 훨씬 질이 나쁘다. 하지만…… 이 엄청난 밀도의 적마정석 금괴라면 얘기가 다르지.’


은하의 머릿속에서 적자 계산기가 광속으로 돌아갔다.


‘북부 영지는 도로가 엉망진창이라 물류 수송비가 과다하게 청구되고 있어. 이 금괴들을 정제해서 도로 정비 사업의 자재 조달 예산으로 전환하면, 물류비를 70%는 절감할 수 있겠네. 공짜로 굴러들어온 인프라 예산이잖아?’


은하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주저 없이 오른손에 쥔 반려 도장을 보석 상자 중앙의 황금 빗장에 강하게 내리찍었다.


쿵!


“세무 감사 규정 제12조 및 마왕성 예산 집행 세칙에 의거, 벨리알 공작 측이 감사단에 무단으로 제공하려 한 이 모든 뇌물 자산은 ‘출처 불분명 불법 비자금’으로 규정합니다.”


도장이 찍힌 순간, 붉은색 마력 낙인이 금괴 상자 전체를 꽁꽁 묶어버렸다. 은하가 지닌 반려 도장의 인과율 마법이 발동하여, 금괴에 걸려 있던 벨리알의 개인 소유권 결계가 통째로 소멸했다.


은하는 마법 행정 태블릿을 켜고 터치스크린을 광속으로 쓸어내렸다.


[적마정석 금괴 3상자 및 전설의 성검 파편: ‘미신고 세수 압류 자산’으로 국고 귀속 등록 완료.]

[임시 채권 발행 번호: NT-BRIB-0014]


“자, 등록 끝났습니다.”


은하가 태블릿 화면을 엘릭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방금 압류된 금괴들이 마왕성 공식 국고 환수 예정 자산 목록에 실시간으로 등재되어, ‘규격 마정석 주화’ 가치로 환산되어 기록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표기되어 있었다.


“엘릭 씨, 벨리알 공작님께 전하세요. 자진해서 이렇게 막대한 ‘미신고 세수’를 감사실로 직접 배달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고요. 이 자산들은 향후 북부 영지의 도로 정비 및 물류 인프라 구축 예산으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겠습니다.”


“이, 이럴 수가…… 내 황금이…… 공작 전하의 비자금이 이렇게 허무하게 빼앗기다니!”


엘릭은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쳤다. 뇌물로 감사단을 매수하려다가, 오히려 뇌물을 통째로 ‘합법적 압류 자산’으로 빼앗기고 국가 채권으로 귀속당해 버린 것이다. 이대로 돌아가면 벨리알 공작에게 목이 달아날 것이 뻔했다.


“그리고 엘릭 씨.”


은하가 가죽 가방에서 ‘시말서 전용 붉은 양피지’ 한 장을 꺼내 엘릭의 품속에 툭 던져 넣었다.


“공식 감사 기간 중 감사관에게 부적절한 로비를 시도해 사내 질서를 문란하게 한 죄를 물어, 경고 조치 및 시말서 작성을 명령합니다. 내일 아침 9시까지 기획실 양식에 맞춰 작성해 제출하세요. 거짓을 적거나 변명을 늘어놓으면 양피지가 불타오르며 벌점 5점이 추가될 겁니다.”


“히, 익……!”


엘릭은 붉은 양피지를 쥔 채, 마치 괴물을 본 듯한 표정으로 사병들과 서큐버스들을 이끌고 감사실 밖으로 허겁지겁 도망쳐 나갔다.


쿵! 문이 닫히고 감사실 내부에는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릴리스는 압류된 금괴 상자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어머, 실장님. 덕분에 공짜 예산이 두둑하게 생겼네요. 역시 탈세범들을 털어먹는 게 가장 짜릿해요.”


“그러게요. 북부 도로 공사 자재비 걱정은 이걸로 덜었습니다.”


은하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다시 의자에 깊숙이 앉았다.


하지만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 밤 11시 30분.


야근을 하며 태블릿의 세무 보고서를 정리하던 은하의 손가락 끝이 멈췄다. 감사실 내부의 마력 조명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방 안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급격하게 하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입김이 하얗게 서려 나오고, 구석에 있던 리치 세무사의 뼈마디가 추위에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벨리알 공작이 뇌물 공작마저 실패하자, 마침내 이판사판의 극단적인 물리적 수단을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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