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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 감사 통지서와 공작의 코방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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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빅. 삐빅. 삐빅.”


고요한 마왕성 경영기획실의 새벽을 깨운 것은 제레드가 개조해 준 마법 행정 태블릿의 날카로운 경고음이었다.


유은하는 책상 위에 놓인 종이컵을 들어 믹스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밤샘 작업으로 뻑뻑해진 눈을 깜빡이며 은테 안경을 치켜올리자, 태블릿 화면 중앙에서 붉은색 경고등이 사정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경고: 북부 영지 세수 데이터 불일치 감지]

[최근 10년간 누적 세금 허위 보고율: 75%]

[추정 누락 세액: 1,500,000 규격 마정석]

[영주: 벨리알 공작]


“최근 10년간 세금 누락률이 75%라…….”


은하의 입가에서 서늘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현대 한국의 악덕 중소기업에서 온갖 영수증 조작과 이중 장부를 잡아내던 5년 차 비서의 눈에, 이 정도 수준의 탈세는 조잡하기 짝이 없는 낙서 수준이었다.


“지사장이 본사 몰래 공금을 횡령해서 사설 경호업체를 키우고 있었던 꼴이네요. 벨리알 공작, 아주 전형적인 악덕 지사장 마인드예요.”


은하는 즉시 태블릿을 두드려 공식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양식은 깔끔한 한글 서식 12포인트, 장평 100%, 자간 0%. 마왕성의 공식 로고가 상단에 박힌 그 문서의 제목은 명확했다.


[북부 영지 분기별 불시 세무 감사(Audit) 통지 건]


은하는 지체 없이 하피 전령관을 호출해 문서를 북부 영지로 발송했다. 그리고 정확히 반나절 뒤, 북부 영지에서 보낸 회신이 기획실에 도착했다.


“실, 실장님! 북부에서 답신이 왔는데…… 그게…….”


인턴 고블린 똑똑이가 사시나무 떨듯 떨며 가죽 봉투를 내밀었다. 은하가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꺼내자, 기획실 내부의 온도가 순간적으로 뚝 떨어졌다.


그것은 서한이 아니었다. 피처럼 붉은 양피지가 갈갈이 찢겨 있었고, 그 파편 위에 거친 검은색 마력으로 쓰인 오만한 경고문이 적혀 있었다.


[건방진 인간 계집이 감히 내 영지에 손을 대려 하는가? 내 도끼가 네 목을 치기 전에 그 더러운 종이 쪼가리를 거두고 닥쳐라. 한 발짝이라도 북부 땅을 밟는다면 네놈의 가죽을 벗겨 성문에 걸어두겠다.]


양피지 조각에서는 상급 마족 벨리알 공작의 살벌한 마력이 흘러나와 주변 공기를 찌르고 있었다. 똑똑이는 이미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머리를 감싸 쥐고 울먹이고 있었다.


하지만 은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찢어진 양피지 조각들을 테이블 위에 퍼즐 맞추듯 차분히 늘어놓더니, 빨간색 마법 볼펜을 꺼내 들었다.


사각, 사각.


“글씨체 가독성 엉망, 문장 내 비속어 사용으로 인한 품위 유지 위반,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공식 직인 누락.”


은하는 양피지 조각 위에 거침없이 빨간색으로 수정 표시를 해나갔다.


“비즈니스 문서로서의 최소한의 격식도 갖추지 못했네요. 기안 양식 미비로 반려(REJECT)입니다.”


탁! 은하가 빨간 인크를 묻혀 기안서 반려 도장을 양피지 조각 위에 강하게 내리찍었다. 그 순간, 도장에 각인된 인과율 마법이 작동하며 붉은 양피지에 서려 있던 벨리알의 위압적인 살기 마력이 허무하게 연기처럼 스러졌다.


“실장님! 벨리알 공작은 마계에서도 손꼽히는 잔혹한 뱀파이어 영주입니다! 마왕성 군사부장조차 그 자의 사병 집단을 두려워하는데, 이렇게 정면으로 반려를 때리시면……!”


똑똑이가 책상 밑에서 기어 나와 울부짖었다.


그때, 경영기획실의 묵직한 참나무 문이 거칠게 열리며 거대한 그림자가 들이닥쳤다.


“은하야! 이게 무슨 짓이냐!”


거대한 뿔과 불타는 눈동자를 지닌 마왕 발락이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위압적인 검은 갑옷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기획실 내부에 울려 퍼졌다. 발락은 은하의 책상 위에 놓인 반려 도장을 보며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벨리알 공작이 방금 전령을 통해 내게 항의 서한을 보냈다! 당장 세무 감사를 철회하지 않으면 북부의 5만 사병을 이끌고 마왕성으로 진격하겠다고 협박하더란 말이다! 무장 반란이다! 전쟁이 일어날지도 몰라!”


발락의 기선 제압용 살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은하는 차분하게 믹스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실 뿐이었다. 그녀는 안경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치켜올리며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폐하, 진정하시고 이 화면을 좀 보시죠.”


은하가 태블릿 화면을 터치하자, 허공에 푸른색 디지털 격자로 구성된 3D 꺾은선그래프가 렌더링되었다. 그래프의 선은 우하향을 그리며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게…… 무엇이냐?”


발락이 멍하니 그래프를 바라보았다.


“마왕성의 가용 현금 흐름 추이입니다. 보시다시피 적자가 임계점을 넘어섰습니다. 지난달 임프 노조와의 임금 협상 타결로 지출은 늘었는데, 북부 영지에서 들어와야 할 마정석 세금의 75%가 누락되었습니다. 액수로 환산하면 무려 150만 마정석입니다.”


은하의 목소리는 지독하리만치 건조하고 이성적이었다.


“만약 이번 분기에 이 누락된 세금을 환수하지 못하면, 다음 달부터 마왕성 전 직원의 사내 급식에서 제육볶음은 단종됩니다. 탕비실의 K-믹스커피 역시 최저가 저질 원두로 대체될 예정이고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은하가 발락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겨울철 폐하의 집무실과 왕좌 온돌 마력 보일러를 가동할 예산이 전액 삭감됩니다. 뱀파이어 공작 눈치 보다가 한겨울에 얼어 죽으실 셈입니까?”


“내…… 내 온돌이 식는다고?! 제육볶음과 황금 비율 믹스커피가 사라진단 말이냐?!”


발락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은하가 주입한 ‘적자 공포증’과 ‘파산 트라우마’가 그의 뇌리를 강타했다. 한겨울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덜덜 떨며 맛없는 흙탕물 같은 커피를 마셔야 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마왕은 공포에 질려 침을 꿀꺽 삼켰다.


“그, 그렇다고 군대를 보내기엔 군사비 지출이 너무 크지 않으냐? 벨리알과 전쟁을 치르면 예산이 더 깨질 텐데…….”


발락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하자, 은하는 콧방귀를 뀌었다.


“폐하, 제가 언제 군대를 보낸다고 했습니까? 전쟁은 가장 비효율적인 예산 낭비 사업입니다. 군사비 추가 지출안은 기획실 선에서 원천 차단입니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냐?”


“합법적인 절차에 따른 현장 세무 감사(Audit)를 단행하겠습니다.”


은하가 책상 서랍에서 미리 작성해 둔 [강제 세무 감사 집행 계획서]를 꺼내 테이블 위에 탁 내려놓았다.


“그 자가 사병을 키우는 돈은 결국 마왕성의 세금을 횡령한 장물입니다. 우리가 법과 절차에 따라 그의 금융 계좌와 장부를 동결하면, 사병들의 월급 줄이 막힙니다. 돈을 받지 못하는 사병들이 과연 공작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까요? 무력 충돌 없이 그를 파산시키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여기에 도장만 찍으시면 됩니다.”


은하가 들이민 결재판을 본 발락은 침을 삼켰다. 그녀의 눈빛은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그 어떤 마신보다도 차갑고 잔혹한 ‘세무 공무원’의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조, 좋다! 내 온돌과 제육볶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벨리알 그놈의 뼈마디까지 털어주마!”


발락은 허리춤에서 마왕의 최고 권위를 상징하는 ‘심연의 결재 인장’을 꺼내 기획서에 쾅 찍었다. 도장이 찍히는 순간, 양피지에서 붉은 마력이 번쩍이며 마왕성 법률로서의 초법적 강제력이 부여되었다.


“결재 감사합니다, 회장님.”


은하가 서류를 회수하며 단정하게 미소 지었다.


이제 감사단을 꾸릴 차례였다. 은하는 즉시 기획실 내부 연락망을 가동했다.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서큐버스 재무팀장 릴리스였다. 가죽 오피스 스커트를 입고 붉은 안경을 치켜올린 그녀의 눈빛은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숫자가 자동으로 정렬되는 마법 주판과 비자금 추적 매크로 장비가 들려 있었다.


“북부 영주의 비밀 금고를 털 기회라니, 가슴이 떨리네요 실장님. 복식부기로 그 자의 숨은 재산을 영혼까지 탈탈 털어드리겠어요.”


이어 육중한 검은 갑옷을 입은 데스나이트 인사팀장 카론이 들어왔다. 그의 가슴에는 ‘인사팀장’ 명찰이 번쩍이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근태 불량자들을 강제 퇴근시킬 때 쓰던 불타는 삼단봉과 지옥의 근태 관리기가 단단히 무장되어 있었다.


“북부 영지의 군인들이 주 52시간 근무제를 준수하고 있는지, 무단 야간 훈련으로 예산을 낭비하지 않는지 철저히 감독하겠습니다. 규정 위반자들에게는 자비 없는 시말서 폭탄을 내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구식 돋보기안경을 겹쳐 쓴 해골 리치 세무사가 낡은 세무 장부를 품에 안고 삐걱거리며 합류했다. 마왕성 최고의 엘리트들로 구성된 ‘마왕성 정예 세무 감사단’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출발하죠.”


은하가 단정한 검은색 가죽 서류 가방을 챙겨 들었다.


마왕성 정문 앞에는 켄타우로스 드라이버가 고용한 흔들림 방지 마법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북부 영지를 향해 마차가 움직이려던 바로 그 순간.


파다닥! 파다닥!


하늘에서 푸른 깃털을 가 가진 하피 전령관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마차 앞바닥에 추락하듯 내려앉았다. 전령관의 얼굴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실, 실장님! 큰일입니다! 북부 영주 벨리알 공작이 감사 통지서를 받고 격분하여, 영지 국경 지대에 3만의 정예 사병과 마수 군단을 배치했습니다! 국경을 넘는 즉시 감사단 전원을 몰살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전령관의 다급한 보고에 똑똑이는 비명을 지르며 마차 바퀴 뒤로 숨었고, 켄타우로스 드라이버 역시 고삐를 쥔 손을 미세하게 떨었다. 3만의 군대와 정면으로 대치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마차 창문을 내린 유은하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은테 안경을 가볍게 치켜올리며, 가죽 서류 가방의 지퍼를 단단히 잠갔다. 그녀의 입가에 걸린 차가운 미소는 어두운 밤하늘보다도 깊고 서늘했다.


“세무 감사를 무력으로 저지하겠다니, 공무집행방해에 탈세 혐의 자진 입증이네요. 아주 고맙게도 영지 재산 100% 압류 명분을 스스로 만들어 주시네요.”


은하가 켄타우로스 드라이버를 향해 단호하게 명령했다.


“출발하세요. 세무 공무원의 매운맛을 보여줄 때가 됐으니까요.”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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