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성역의 철벽
쫘아아아악!
양필지가 찢어지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제국 마법협회 지하 복도의 어둠이 순식간에 황금빛 광채로 뒤덮였다. 한스가 바닥에 쓰러지며 찢어발긴 주문서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단순한 마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 건국 초기에 제정된 절대적인 법률적 구속력, 즉 ‘소송 당사자 대리인 신체 보존’의 권능이었다.
콰아아앙!
가스톤이 휘두른 5성급 금강 마나 철퇴가 한스의 머리 위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에 가로막혔다. 황금빛 법률 사슬들이 허공에 촘촘한 기하학적 격자무늬를 그리며 가스톤의 철퇴를 옭아맸다. 철퇴 끝에 서린 파괴적인 오라가 사슬의 표면을 때릴 때마다, 귓전을 때리는 둔탁한 금속음과 함께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끄응……! 이게 무슨 마법이냐!”
가스톤의 험악한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자신의 압도적인 무력이 한낱 2성급 바람 마법사에게 막힐 리가 없었다. 철퇴를 쥔 그의 두꺼운 팔뚝이 결계의 반동으로 인해 부르르 떨렸다.
“마법이 아닙니다, 집행대장님.”
한스가 타는 듯한 왼쪽 어깨의 통증을 억누르며 핏기 없는 입술로 비죽 웃었다.
“이건 ‘법률’이죠. 소송 대리인의 신체는 청문회 종결 시까지 사법적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아주 오래된 규칙 말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스는 전신에 남은 마지막 바람 마나를 쥐어짜 냈다. 그의 발끝에서 회오리치는 바람이 일며 그의 신체를 뒤로 기민하게 밀어냈다. 가스톤이 결계의 반동에서 벗어나 다시 철퇴를 치켜들기 전, 한스는 복도 모퉁이에 위치한 하수구 맨홀 뚜껑을 발로 차 열고 그 어두운 구멍 속으로 몸을 던졌다.
“추격해라! 당장 하수구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그놈을 잡아라!”
가스톤의 분노 섞인 고함이 지하 복도를 웅웅 울렸지만, 이미 한스의 자취는 차가운 하수구 미로망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한스는 품에 안은 드워프 장인의 은제 가방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가방 표면에 새겨진 드워프 룬 문자가 은은하게 빛나며 내부 증거물들의 마나 신호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마탑의 추적 마법사들이 아무리 마나 파동을 감지하려 해도, 이 에테르 차단용 정밀 가방이 존재하는 한 한스의 위치를 특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
같은 시각, 아르카디아 중심가 초입에 위치한 솔베이그 마법 법률사무소 3층 집무실.
최재혁은 단정하게 빗어 넘긴 갈색 머리에 감청색 로브를 걸친 채, 책상 위에 놓인 고대 마법 헌장 석판 조각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왼쪽 눈동자 속 황금빛 톱니바퀴 문양이 미세하게 회전하며 방 안의 마나 흐름을 읽어내고 있었다.
덜컥.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온몸이 흙먼지와 하수구 냄새로 범벅이 된 한스가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그의 왼쪽 어깨 가죽 재킷은 완전히 찢겨 검게 그을려 있었고, 뼈가 저리는 화상과 타박상으로 인해 왼팔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보스…… 가져왔습니다.”
한스는 쓰러지듯 소파에 주저앉으면서도, 오른손에 쥔 은제 가방만은 책상 위에 소중히 올려놓았다.
“한스 씨!”
실비아가 깜짝 놀라 서류를 내려놓고 그에게 다가갔다. 재혁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한스의 상태를 살폈다. 그의 절대 가독안이 한스의 왼쪽 어깨에 잔류하는 가스톤의 금강 마나 흔적을 스캔했다.
“5성급 오라에 스쳤군. 그롬, 엘리사를 부르게. 당장 해독 시약과 치유 마법이 필요하네.”
재혁의 차분하면서도 묵직한 지시에 그롬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갔다. 재혁은 책상 위의 가방을 열었다. 가방 내부의 정밀한 격리 장치 속에서 세 장의 문서가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에단 솔베이그의 최초 특허 신청서 원본, 루시안 심사관의 시간 소급 조작 흔적이 남은 로그 대장, 그리고 아르님 백작 가주 알베르트의 친필 뇌물 장부.
재혁의 왼쪽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더욱 짙게 타올랐다. 문서 이면에 흐르는 마력의 결들이 완벽한 유기적 사슬을 그리며 펠릭스와 마법협회의 범죄 정황을 가리키고 있었다.
“완벽하군. 한스 씨, 자네가 목숨을 걸고 제국의 사법 정의를 구원해 냈네.”
재혁이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엘리사의 치유 약초를 어깨에 바르던 한스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면서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보스…… 가스톤 그 무식한 놈의 얼굴을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아쉽습니다. 하지만 그놈들, 증거를 도둑맞은 걸 알았으니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알고 있네.”
재혁은 창밖의 어두운 아르카디아 대로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법정에서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물리적으로 이 사무실을 짓밟고 증거를 소각하려 들 걸세. 귀족들의 전형적인 뒤처리 수법이지.”
“그럼 당장 사법부에 신변 보호를 요청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실비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재혁은 단안경을 만지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이미 이 사무실 자체가 그 어떤 요새보다 단단한 사법적 성역으로 등록되어 있으니까.”
***
새벽 2시. 폭풍전야 같은 침묵이 솔베이그 법률사무소를 감싸고 있었다.
타다다닥!
고요한 대로변을 깨우는 거친 군화 소리와 함께, 무거운 강철 갑옷을 입은 수십 명의 무장 대원들이 법률사무소 건물을 겹겹이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갑옷 가슴팍에는 마법협회의 공인 집행대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중심에는 분노로 눈이 뒤집힌 집행대장 가스톤이 거대한 철퇴를 쥔 채 서 있었다.
“솔베이그 법률사무소 내부의 범죄 용의자들을 체포하고, 장물을 회수한다! 문을 부수고 진입하라!”
가스톤이 벼락같은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는 붉은색 마나 인장이 거칠게 찍힌 양필지 서류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아르님 백작의 권력을 빌려 급조한 ‘불법 특별 치안 수색 영장’이었다.
쾅! 쾅! 쾅!
무장 대원들이 사무소의 단단한 참나무 정문을 군화와 방패로 거칠게 내리쳤다.
그때, 정문의 유리창 너머로 푸른색 마법 불꽃 화로의 불빛이 은은하게 비치더니, 한 사내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문 앞에 섰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갈색 머리에 낡았지만 기품 있는 학자 로브를 입은 청년, 최재혁이었다. 그의 곁에는 거대한 도끼를 비껴 잡은 하프오크 전사 그롬이 거산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재혁은 문을 열지 않은 채, 유리창 너머로 가스톤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밤중에 사법 대리 기관의 문을 무단으로 두드리는 무례한 자들이 누구인지 밝히시지요.”
“에단 솔베이그! 네놈의 하수인이 마법협회 지하 수납고를 습격해 국가 기밀 문서를 훔쳐 갔다! 당장 문을 열고 장물과 범죄자를 인도해라! 거부할 경우 현장에서 즉각 처단하겠다!”
가스톤이 위조된 영장을 유리창에 들이대며 윽박질렀다.
재혁은 절대 가독안을 켜고 가스톤이 들고 있는 영장을 스캔했다. 영장 표면에 흐르는 마력의 주파수는 420헤르츠. 사법부의 공식 영장 발부 도장이 지녀야 할 500헤르츠의 공명 주파수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급조된 위조품이었다. 게다가 인장의 가장자리에는 협회장 발레리우스 백작의 개인 마력이 미세하게 섞여 있었다.
“그 영장은 위조된 불법 문서로군요, 가스톤 대장님.”
재혁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사법부 법정의 판사처럼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제국 민사소송법 제89조 및 사법부 조직법 제12조에 따르면, 정식 공인된 마법 법률사무소는 사법부의 허가 없이는 그 어떤 행정 기관도 무단으로 압수수색하거나 무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당장 그 위조 영장을 거두고 물러나시지요.”
“닥쳐라! 평민 쥐새끼가 어디서 법조문을 나불대느냐! 이 건물째로 뼈를 으스러뜨려 주마!”
이성을 잃은 가스톤이 소리치며 뒤편의 사설 마법사들에게 손짓했다. 세 명의 청색 마탑 소속 마법사들이 일제히 주문을 외우며 손끝에서 붉은 화염 오라를 뿜어냈다. 4성급 화염 마법 ‘파이로 버스트’의 마법진이 공중에 기하학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재혁은 정문 옆 현판에 손을 올렸다. 은빛으로 빛나는 사법부 공인 마크가 새겨진 대리석 현판이었다.
“솔베이그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에단 솔베이그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재혁의 목소리에 미세한 마나의 파동이 실려 현판으로 흘러 들어갔.
“‘사법적 면책 특권 영역 형성법(Sanctuary Zone)’ 가동.”
웅-!
사무소 현판에서 은은한 푸른색 마나 파동이 원형으로 급격히 팽창하더니, 사무소 반경 50미터 이내의 공간을 완벽하게 덮어씌우는 거대한 구형 결계를 형성했다. 결계의 표면 위로 제국의 신성한 사법 조문들이 황금빛 활자가 되어 물결치듯 흘러내렸다.
스스스슥……!
마법사들이 전개하던 붉은 화염 마법진들이 푸른 결계의 파동에 닿는 순간, 마치 찬물이 끼얹어진 것처럼 힘없이 사그라지며 소멸했다.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체내 마나 흐름이 강제로 차단당하는 기괴한 감각에 가슴을 움켜쥐며 비틀거렸다.
“이, 이게 무슨……! 마나가 전혀 통제되지 않아!”
“결계 내부의 모든 공격적 마법 발현이 사법적으로 전면 금지되었습니다.”
재혁이 유리창 너머로 차갑게 고했다.
“이곳은 사법부가 보장하는 면책 특권 영역입니다. 허가받지 않은 무력의 사용은 즉각적인 법정 모독 및 공무집행방해로 간주되어 세계의 마나 네트워크에 의해 물리적으로 제어당할 것입니다.”
“이딴 종이 결계가 내 철퇴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가스톤은 마법사들이 무력화되자 분노로 폭주했다. 그는 전신의 근육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5성급 금강 마나를 폭발적으로 일깨웠다. 비록 결계의 억제력으로 인해 마력의 오라는 흐릿해졌지만, 그의 순수한 완력과 철퇴 자체의 파괴력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가스톤이 거대한 철퇴를 등 뒤로 크게 젖히며 도약했다.
“부숴버려라!”
철퇴가 공기를 찢는 굉음을 내며 정문의 유리창을 향해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그롬이 방패를 비껴 잡으며 전방으로 한 걸음 나서려 했다.
하지만 재혁은 그롬의 어깨를 가볍게 짚어 제지했다.
“그롬 씨, 가만히 계십시오. 법의 장벽은 저 무식한 철퇴 따위에 뚫리지 않습니다.”
철퇴가 정문 문턱의 푸른 결계 경계선에 닿는 순간.
콰아아앙-!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붉은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정문의 유리창은 단 한 장도 깨지지 않았다. 가스톤의 철퇴는 유리창 앞 단 1센티미터의 허공에서 푸른색 사법 룬 문자들이 그리는 철벽에 가로막혀 완전히 튕겨 나갔다.
기이이잉!
결계가 충격을 흡수하여 되돌려주는 법적 반동력이 가스톤의 두 팔을 타고 역류했다.
“윽……!”
가스톤은 철퇴를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손바닥의 가죽이 찢어지며 피가 배어 나왔다. 그의 거구는 뒤로 대여섯 걸음이나 사정없이 밀려나 진흙 바닥에 볼품없이 주저앉았다. 그의 손끝이 결계의 반동으로 인해 제어할 수 없이 부르르 떨렸다.
그 소란스러운 대치 속에서, 재혁은 품 안에서 발두르와 합작해 제작한 소형 마도 음성 기록기와 영상 기록 장치를 꺼내 들었다. 장치의 렌즈가 가스톤과 그의 부하들이 불법 영장을 들고 무단 침입을 시도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붉은색 기록 마나가 렌즈 표면에서 은은하게 회전했다.
유리창 너머, 완벽하게 보존된 사법 성역 안쪽에서 최재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떨리는 손으로 철퇴를 고쳐 잡는 가스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벽면에 고정되어 붉은 빛을 뿜어내는 마도 영상 기록 장치의 렌즈를 천천히 가리켰다.
“가스톤 대장님. 당신이 방금 저지른 불법 무단 침입, 위조 영장 제시, 그리고 사법 대리인에 대한 살인미수 교사 행위는 이 장치에 단 한 프레임의 오차도 없이 실시간으로 채증되었습니다. 법정에서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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