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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기록, 음모의 수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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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은 사법부의 판결을 뒤집기 위해, 법의 기록 자체를 왜곡하려는 행정적 범죄를 모의하고 있었다.


솔베이그 마법 법률사무소의 3층 집무실. 창밖으로 아르카디아 중심가의 화려한 마법 불빛들이 은은하게 흘러드는 밤이었지만, 실내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마도 통신구가 어둠 속에서 불길한 붉은 마나를 뿜어내며 명멸하고 있었다.


“보스, 특허 심사처의 루시안 그 인간 말입니다. 아르님 백작 가문에서 거액의 마나석 자루를 넘겨받는 모습이 제 정보망에 딱 걸렸습니다.”


사무장 한스가 가죽 재킷의 칼깃을 매만지며 나직하게 보고했다. 평소의 능글맞은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일류 정보원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만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단순한 뇌물 수수가 아니야. 그들의 목표는 에단 님이 가처분 예비 심리에서 승소했던 최초 특허 신청 기록 자체를 마법협회 아카이브에서 통째로 말소하는 겁니다. 그리고 펠릭스의 신청 날짜를 에단 님의 원래 신청일보다 사흘 앞선 날짜로 소급 조작하려는 속셈이지요.”


옆에 서 있던 파트너 변호사 실비아가 그 말을 듣고 안색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녀는 황실 법원의 수석 서기 출신답게 이 행정적 범죄가 초래할 사법적 재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치명적이에요, 에단 님. 제국 특허법 제14조의 선출원주의는 절대적인 규칙입니다. 만약 마법협회가 공식 대장 상에서 에단 님의 최초 신청서를 ‘분실’ 처리하고, 펠릭스의 신청일을 소급하여 확정해 버린다면…… 본안 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사법부는 이 소송을 절차적 요건 미달로 즉각 기각할 수밖에 없어요.”


실비아의 가냘픈 손가락이 양필지 서류를 꽉 쥐었다.


“아무리 아드리안 판사님이 공정한 법관이라 할지라도, 행정부인 마법협회가 공식 제출한 ‘특허 원부 대장’의 기록을 무시하고 판결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사법부의 권한 남용이 되니까요. 적들은 법정 밖에서 판결의 기반이 되는 ‘사실 관계’ 자체를 조작하려는 겁니다.”


재혁은 단안경을 천천히 쓸어 올렸다. 그의 왼쪽 눈동자 속 황금빛 톱니바퀴 문양이 서늘한 궤적을 그리며 회전했다.


기득권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법률의 맹점. 그리고 그 법률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의 부패. 현대 대한민국에서 무수한 특허 소송을 치르며 질리도록 보아왔던 대기업들의 전형적인 증거 인멸 수법이었다. 그들은 법정에서 싸우기 전에 이미 증거를 불태우거나 조작하여 원고를 미치광이로 만들곤 했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너희가 법의 기록을 지우겠다면, 나는 법의 이름으로 너희의 숨통을 조이겠다.’


재혁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현대 법률에서는 이럴 때 사용하는 아주 유용한 칼날이 있지. 바로 ‘디스커버리(Discovery)’, 즉 증거개시제도다.”


“증거개시…… 제도요?”


실비아가 생경한 단어에 고개를 갸웃했다. 재혁은 책상 위에 고대 마법 헌장 석판 조각을 올려놓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제국의 현행 특허법에는 소송 당사자가 상대방의 서류고를 강제로 수색할 권한이 없지. 하지만 고대 마법 헌장 제3조에 명시된 ‘상호 진실 규명 의무’를 원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송의 본안 심리에 들어가기 전, 양 당사자는 소송과 관련된 모든 문서와 기록을 의무적으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이를 고의로 은닉하거나 훼손할 경우 사법부는 그 즉시 피고의 패소를 선언할 수 있다.”


재혁의 손끝에서 푸른 마력이 흘러나와 양필지 위에 촘촘한 기소장의 형태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나는 내일 아침 즉각 아드리안 판사님에게 마법협회를 대상으로 한 ‘증거개시명령서(Discovery Writ)’ 발부를 신청할 걸세. 협회가 보관 중인 최초 특허 접수 대장 원본을 법정에 강제 제출하라는 명령이지.”


한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하지만 보스, 부패한 마법협회장 발레리우스 백작과 루시안 심사관이 사법부의 명령을 순순히 따를까요? 국가 기밀이나 마탑의 비전 보호라는 핑계를 대며 법원의 명령을 뭉개려 할 텐데요.”


“정확한 지적이야, 한스 씨.”


재혁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들은 반드시 기밀 유지를 핑계로 서류 제출을 유예하거나, 그 유예 기간 동안 진짜 원본을 불태워버릴 걸세. 법원의 명령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시선을 정면에 묶어두고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네.”


재혁이 한스를 똑바로 응시했다. 황금빛 톱니바퀴의 안광이 한스의 영혼을 꿰뚫는 듯했다.


“진짜 승부는 어둠 속에서 이루어진다. 한스 씨, 자네가 직접 마법협회 지하의 삼엄한 통제 구역인 ‘제1특허 수납고’에 침투해야겠네. 그들이 원본 신청서를 소각하기 전에, 루시안의 소급 조작 로그가 담긴 진짜 대장과 에단 님의 최초 신청서 원본을 확보해 오게.”


한스는 마른침을 삼켰다. 마법협회 지하 제1특허 수납고는 제국의 온갖 금지된 마법 결계와 8성급 대마법사의 수호 장막이 겹겹이 쳐진 성역 중의 성역이었다. 평범한 도둑이라면 발을 들이는 순간 마나가 역류해 온몸이 타버릴 터였다.


“보스, 제 실력을 믿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협회 지하의 결계는 제 2성 바람 마법과 자물쇠 따기 기술만으로는 절대 뚫을 수 없습니다. 결계에 접촉하는 순간 경보가 울리고 가스톤의 집행관들에게 포위당할 겁니다.”


“걱정 말게. 자네를 맨몸으로 보낼 생각은 없으니.”


재혁은 미리 준비해 둔 특수 마도 도면을 책상 위에 펼쳤다. 그것은 드워프 대장인 발두르가 마탑의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마법협회 본관의 마나 주파수를 정밀 분석해 작성한 지하 결계망의 지도였다.


“발두르 씨가 제공한 마나 주파수 도면이네. 수납고를 흐르는 결계의 공명 주파수는 정확히 320헤르츠의 미세 진동을 유지하고 있지. 자네의 바람 속성 마나를 이 주파수와 완벽하게 동조시킨다면, 결계는 자네를 침입자가 아닌 흘러가는 미세 에테르의 일부로 인식할 걸세.”


재혁은 품 안에서 은은한 고대의 광채를 뿜어내는 가죽 스크롤 하나를 꺼내 한스의 손에 쥐여주었다. 니콜라스의 고서점 지하에서 확보한 고대 결계 해제 스크롤이었다.


“수납고 내부의 최종 철문에 도달하면 이 스크롤을 활성화하게. 고대 헌장의 권능이 일시적으로 결계의 인과율을 비틀어, 자네에게 단 5분간의 통행 권한을 부여할 걸세. 단, 5분이 지나면 수납고 주변에 8성급 대마법사가 설치한 강력한 마나 경멸 결계가 작동하기 시작하니, 그 전에 반드시 증거를 확보하고 탈출해야 하네.”


한스는 자신의 손에 쥔 고대 스크롤과 정밀한 마나 도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쳤지만, 재혁이 설계한 완벽한 법적, 기술적 동선 앞에서는 기묘한 확신이 솟구쳤다.


“이건 단순한 도둑질이 아니군요. 제국의 법을 바로잡기 위한 사법적 채증 작전입니다.”


“그렇네. 합법적인 증거개시명령으로 적들의 앞문을 두드려 시선을 끄는 동안, 자네가 뒷문으로 진실을 들고 나오는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전술이지. 준비가 되었나, 한스 사무장?”


“준비는 언제나 끝났습니다, 보스.”


한스가 가죽 재킷의 안주머니에 스크롤과 도면을 깊숙이 밀어 넣으며 능글맞은 미소를 되찾았다. 그의 바람 마나가 미세하게 요동치며 전신을 감쌌다.


* * *


몇 시간 뒤, 깊은 밤의 어둠이 제국 마법협회 본관을 무겁게 짓눌렀다.


대리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협회 건물 지하는 지상의 화려함과 대조적으로 음침하고 차가운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푸른색 마도 등불만이 벽면을 따라 드문드문 켜져 있어, 길게 늘어진 그림자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괴수처럼 보였다.


스스슥.


공기의 미세한 흐름 외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한스의 신형 가죽 장화가 축축한 지하 통로의 바닥에 닿았다. 그의 바람 마나는 발두르의 도면대로 320헤르츠의 미세한 주파수로 공명하고 있었다. 벽면을 감싸고 흐르는 협회의 탐지 결계선들이 한스의 몸을 스쳐 지나갔지만, 아무런 경보도 울리지 않았다. 결계는 그를 그저 지하 통로를 흐르는 한 줌의 가벼운 바람으로 인식할 뿐이었다.


한스는 숨소리조차 억누른 채, 어둠이 짙게 깔린 복도의 모퉁이를 돌았다. 저 멀리, 거대한 검은 무쇠로 주조된 제1특허 수납고의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문 표면에는 마법협회의 황금빛 인장과 함께,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8성급 대마법사의 기하학적 방어 룬 문자들이 붉은 마나를 흘리며 위압적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수납고 주변의 공기가 기이하게 왜곡되며, 언제든 침입자의 육체를 찢어발길 준비를 마친 강력한 마나 경멸 결계의 파동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한스는 이마에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품 안에서 고대의 결계 해제 스크롤을 천천히 꺼내 들었다. 그의 손끝이 긴장감으로 미세하게 떨렸다.


‘여기서부터는 단 5분이다.’


한스가 결계 해제 스크롤의 끈을 풀고 가죽을 펼치자, 고대의 룬 문자들이 은은한 백색 빛을 발산하며 수납고의 거대한 무쇠 철문을 향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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