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베이그 & 파트너스
제7소법정의 육중한 문이 닫힌 후에도 아드리안 판사의 상아 의사봉이 남긴 파동은 법정의 공기를 여전히 미세하게 흔들고 있었다.
피고 대리인석에 선 레인하르트 본 제논은 창백해진 얼굴로 자신의 가죽 서류철을 거칠게 챙겼다. 평민 학자 따위에게, 그것도 사문화되었다고 믿었던 고대 마법 헌장의 법리에 허를 찔려 예비 심리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이 그의 오만한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것이 분명했다. 그는 최재혁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진 뒤, 아무런 말도 없이 법정을 빠져나갔다.
재혁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리자 심장 주변의 2성 마나 서클이 비명을 지르며 극심한 통증을 유도했다. 고대 석판을 강제로 공명시킨 대가였다. 입안에서 비린 피맛이 맴돌았지만, 재혁은 태연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올렸다. 법정 내부의 방청객석에 앉아 있던 평민 마법사들이 그를 경외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단하십니다, 에단 님.”
법원 서기석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엘프 실비아가 다가와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의 은빛 눈동자에는 단순한 서기로서의 중립을 넘어선 깊은 감탄과 열망이 서려 있었다.
“실비아 씨의 정밀한 서류 정리 덕분입니다. 본안 청문회가 개정되기 전, 우리는 첫 번째 전리품을 수거해야 합니다.”
재혁의 말대로, 아드리안 판사가 내린 가처분 예비 승소 판결문에는 강력한 사법적 강제 집행 권한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르님 백작 가문이 소송 도중 자산을 은닉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원이 백작 가문의 가산 중 일부인 10만 골드를 ‘법원 공탁금’ 명목으로 강제 압류하여 동결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이 판결문은 단순한 종이조각이 아니었다. 제국의 사법적 권능이 실린 채권이자, 당장 죽어가는 여동생 루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다. 하지만 백작 가문이 순순히 돈을 내놓을 리 없었고, 법원의 강제 집행 절차는 행정적인 지연으로 인해 최소 일주일이 소요될 터였다. 루시에게 남은 시간은 단 몇 일뿐이었다.
“에단 솔베이그 씨.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법정 복도로 나오자, 단정한 콧수염에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은 상인 로브를 입은 사내가 재혁의 앞을 막아섰다. 제국 수도에서 가장 영민하고 모험적인 상단주로 알려진 마도 상인, 마르쿠스였다.
“마르쿠스 상단주로군요. 나에게 볼일이 있으십니까?”
“방금 법정에서의 변론은 실로 위대했습니다. 평민의 몸으로 고대 헌장을 끌어내어 아르님 백작 가문의 목줄을 죄다니요. 저는 당신의 승소 가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지요.”
마르쿠스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품 안에서 작은 마도 통장을 꺼내 보였다.
“법원의 공탁금 강제 집행은 귀족들의 행정 방해로 시간이 걸릴 겁니다. 하지만 우리 상단이 그 10만 골드의 가처분 채권을 담보로 즉각 현금을 융통해 드린다면 어떻겠습니까? 수수료는 단 5%만 받지요. 그리고 당신의 여동생이 앓고 있는 마나 중독증을 치료할 영약, ‘엘릭서 디톡스’의 황실 유통 경로도 제가 즉시 수배해 드리겠습니다.”
재혁의 절대 가독안이 마르쿠스의 얼굴과 그가 제시한 담보 계약서 초안을 스캔했다. 거짓이나 꼼수는 없었다. 마르쿠스는 아르님 가문이 몰락할 것을 예견하고, 미래의 법률적 동반자이자 마법 특허의 대가가 될 재혁에게 선제적인 투자를 제안한 것이었다.
“좋습니다, 마르쿠스 상단주. 거래를 제안하지요. 단, 자금 융통과 엘릭서 확보뿐만 아니라, 수도 중심가 초입에 위치한 3층 규모의 석조 건물을 우리 법률사무소의 부지로 임대해 주는 조건도 추가해 주십시오. 임대료는 이번 채권에서 소급 공제하는 것으로 합니다.”
마르쿠스의 눈이 영민하게 빛났다.
“세계 최초의 마법 전문 법률사무소라…… 좋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비즈니스가 되겠군요. 계약 성립입니다.”
거래는 기민하게 성사되었다. 마르쿠스의 신속한 행정력 덕분에, 재혁은 계약 체결 단 3시간 만에 황실 약제실에서 공인된 마나 해독 영약 ‘엘릭서 디톡스’ 한 병과 정식 임대 계약서를 손에 쥐었다.
재혁은 곧장 세인트 마리아 병원 402호로 향했다. 병실 안의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고, 침상 위의 루시는 창백한 얼굴로 가냘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녀의 목덜미를 따라 검푸르게 물든 마나 오염의 흔적이 심장 쪽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루시.”
재혁은 떨리는 손으로 엘릭서의 마도 봉인을 해제했다. 투명한 유리병 내부에서 영롱한 순백의 액체가 빛나고 있었다. 그는 루시의 입술을 부드럽게 벌리고 영약을 조심스럽게 흘려 넣었다.
순간, 영약의 정화 마나가 루시의 체내로 흘러 들어가며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루시의 마력 회로를 꽉 막고 있던 검은 저주의 흔적들이 하얀 연기가 되어 피부 밖으로 증발하기 시작했다. 거칠던 호흡이 점차 평온한 리듬을 되찾았고, 투명한 녹색 눈망울 위로 맑은 생기가 돌아왔다.
[여동생 ‘루시 솔베이그’의 생명력이 안정화됩니다. 영혼의 잔류 원혼 ‘에단’의 한이 크게 해소되며, 당신의 마력 회로와 영혼의 융합도가 85%로 상승합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따뜻한 마나의 파동이 웅웅거리며 퍼져나갔다. 원본 영혼인 에단이 느끼는 깊은 안도감과 감사가 재혁의 영혼과 완벽하게 공명한 것이다. 재혁은 루시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며 속으로 맹세했다.
‘루시, 이제 시작이다. 너를 이렇게 만든 자들을 단 한 명도 남김없이 법의 단두대 위에 세우겠다.’
* * *
사흘 뒤, 아르카디아 중심가 초입에 위치한 단단한 석조 건물 앞.
마르쿠스가 주선한 3층 규모의 세련된 건물 정문 위로, 두꺼운 황동판에 새겨진 현판이 당당하게 걸렸다.
[ 솔베이그 마법 법률사무소 ]
이세계 최초로 설립된 지적 재산권 및 마법 전문 사법 공방의 탄생이었다. 재혁은 1층 접견실의 넓은 책상 뒤에 앉아 대형 양필지 스크롤에 깃펜으로 계약서 초안들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세 명의 인물이 각기 다른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첫 번째 인물은 전직 정보 길드 출신의 사기꾼 한스였다. 그는 재혁이 가벼운 법률 조언으로 무죄 방면해 준 이후, 재혁의 지혜에 완전히 탄복해 있었다.
“한스 씨. 당신과의 고용 계약서입니다.”
재혁이 건넨 계약서에는 촘촘한 법조문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기본급 월 500골드, 소송 증거 수집 성공 시 판결 배상금의 2%를 인센티브로 지급합니다. 단, 수집된 정보의 비밀 유지 의무를 위반할 경우, 제국 민법 제302조에 의거하여 당신의 마나 서클에 사법적 구속 사슬이 걸리게 됩니다. 서명하시겠습니까?”
한스는 계약서의 무시무시한 독소 조항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지만, 이내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깃펜을 잡았다.
“이야, 변호사 나리 밑에서 일하면 굶어 죽을 일은 없겠군요. 이 정도로 촘촘한 계약서라면 악마와 거래해도 이기겠습니다. 서명하지요. 이 한스의 정보망은 이제 전부 나리의 것입니다.”
두 번째 인물은 거구의 하프오크 전사 그롬이었다. 그는 마탑의 불법 생체 실험으로 동료들을 잃고 복수할 힘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투사였다.
“그롬 씨. 당신의 계약 조건입니다.”
재혁은 그롬의 앞에 또 다른 서류를 밀어 넣었다.
“본 사무소는 청색 마탑을 상대로 당신의 동료들이 당한 불법 생체 실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무상으로 대리합니다. 예상 배상금 규모는 최소 50만 골드.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당신은 본 사무소의 수석 경호원으로서 저와 루시의 신변을 물리적으로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계약 기간은 소송 최종 판결 선포 시까지입니다.”
그롬은 거친 손으로 서류를 쥐었다. 그의 붉은 눈시울이 뜨겁게 붉어졌다. 마법사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평민 하프오크의 원한을 위해 마탑과 싸워주겠다고 선언한 인간은 최재혁이 처음이었다.
“나의 도끼와 방패는…… 오직 변호사 나리와 나리의 가문을 위해서만 움직인다. 법정의 판결이 내 동료들의 원한을 풀어줄 수만 있다면, 목숨을 바치겠다.”
그롬은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깨물어 붉은 혈인을 계약서에 꾹 눌렀다. 7성 물리 강화 투사의 묵직한 마나가 계약서와 공명하며 은은한 붉은 빛을 발했다.
마지막으로, 단정한 감청색 법복 스타일의 로브를 입은 엘프 실비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손에는 황실 법원 서기직 사직서 사본이 들려 있었다.
“실비아 씨. 정말로 서기직을 사임하신 겁니까? 황실 법원의 서기는 평민이나 이종족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지위일 텐데요.”
재혁의 질문에 실비아는 맑은 미소를 지었다.
“귀족들의 사법 농단을 기록하는 일에는 지쳤습니다. 법의 자구를 지키는 서기가 아니라, 법의 정신을 실현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요. 에단 님의 파트너 변호사로서, 고대 마법 헌장의 정밀 분석과 기소장 작성을 전담하겠습니다.”
실비아가 파트너 변호사 계약서에 우아한 필체로 서명을 마쳤다.
이로써 정보 수집의 한스, 물리적 방패의 그롬, 행정 및 고대 법률 분석의 실비아, 그리고 현대 특허법의 논리를 장착한 최재혁까지. 마탑의 거대 카르텔을 무너뜨릴 사법 공방 드림팀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자, 동료들이 모였으니 우리의 첫 번째 진짜 전쟁을 준비해야겠군요.”
재혁이 단안경을 쓸어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
그날 밤, 솔베이그 마법 법률사무소의 3층 집무실.
창밖으로 아르카디아 중심가의 화려한 마법 불빛들이 내려다보이는 고요한 시간이었다. 정식 출범을 축하하는 가벼운 만찬을 마친 뒤, 한스가 굳은 표정으로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 그의 손에는 어둠 속에서 붉게 깜빡이는 정보 마도구가 들려 있었다.
“보스, 방금 뒷골목 정보망에 아주 고약한 쥐새끼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한스의 능글맞던 목소리에서 장난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마법협회 특허 심사처의 루시안 심사관이 청색 마탑의 비밀 지령을 받았습니다. 지금 이 시간, 아르님 백작 저택의 밀실에 협회 고위 관계자들이 비밀리에 집결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보스가 예비 심리에서 승소한 에단의 최초 특허 신청 기록 자체를 아카이브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펠릭스의 신청 날짜를 소급 조작하여 본안 청문회 자체를 원천 무효로 만들려는 음모입니다.”
재혁의 왼쪽 눈동자 속 황금빛 톱니바퀴가 서늘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적들은 사법부의 판결을 뒤집기 위해, 법의 기록 자체를 왜곡하려는 행정적 범죄를 모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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