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 이단아, 헌장을 선포하다
제7소법정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피고 측 방청석을 메운 청색 마탑의 마법사들이 방출하는 푸른빛 마나 파동이 법정의 사법 결계와 공명하며 나직한 진동음을 내고 있었다. 그 무거운 침묵 속에서, 피고 대리인석에 앉은 레인하르트 본 제논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변호사 정장의 깃을 가볍게 매만진 뒤, 코끝에 걸친 단안경을 손가락으로 치켜올렸다. 그의 가슴에서 빛나는 황금색 변호사 배지가 법정의 마법 불빛을 받아 차갑게 반짝였다. 제국 법조협회의 이사이자, 귀족들의 권리를 수호하는 최고위 공인 마법 변호사다운 압도적인 품위였다.
“재판장님.”
레인하르트의 목소리가 법정 내부에 맑고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정신계 마나가 실려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그의 논리가 절대적인 진실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기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본 대리인은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가기에 앞서, 원고가 제기한 이 가처분 신청에 대한 치명적인 절차적 결함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제국 민사소송법 및 특허법에 의거하여, 본 소송에 대한 ‘소 각하’ 청구를 신청합니다.”
법정이 일순간 술렁이기 시작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평민 마법사들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웠다. 레인하르트는 그들의 동요를 비웃듯, 원고 대리인석에 홀로 서 있는 최재혁을 차가운 시선으로 내리보았다.
“제국 특허법 제22조는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국 내부에서 마법 특허 분쟁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자는 오직 ‘공인된 마탑’ 혹은 ‘작위를 보유한 귀족 가문’에 국한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원고인 에단 솔베이그는 작위가 없는 가난한 평민 학자에 불과합니다. 즉, 원고는 이 법정에 설 수 있는 최소한의 ‘원고 적격성’ 자체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레인하르트가 손을 가볍게 휘젓자,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은제 법정 제어 반지가 미세하게 빛났다. 공중에 푸른색 마력 활자로 제국 특허법 제22조의 조항들이 일목요연하게 떠올랐다.
“또한, 원고는 피고 펠릭스 본 아르님 수석 연구원이 자신의 공식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나, 제국 특허법 제14조에 명시된 ‘선출원주의’ 원칙에 따르면 특허권은 오직 협회에 ‘최초로 등록을 완료한 자’에게 독점적으로 부여됩니다. 설령 원고가 먼저 연구를 시작했다 한들, 법적으로 정식 등록을 마친 피고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습니다. 원고 적격도 없는 평민이, 이미 합법적으로 등록된 귀족의 특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제국의 신성한 법질서를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레인하르트의 변론은 촘촘했고, 한 치의 빈틈도 없어 보였다. 그는 제국의 실정법을 완벽하게 자신들의 방패로 삼고 있었다.
단상에 앉은 아드리안 판사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의 주변을 흐르는 보라색 마나 파동이 거칠게 일렁였다. 아드리안은 원칙주의 법관이었기에 법을 수호하고자 했으나, 레인하르트가 제시한 실정법 조항들은 너무나도 명백했다. 제국의 법은 애초에 귀족들의 독점을 옹호하기 위해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드리안은 난색을 표하며 최재혁을 바라보았다.
“원고 대리인. 피고 대리인의 원고 적격 부존재 주장에 대해 반박할 의견이 있습니까?”
법정 내부의 모든 마나 위압이 최재혁의 어깨 위로 쏟아지는 듯했다. 2성 마법사에 불과한 에단의 육체는 그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심장 주변의 마나 서클이 과부하로 비명을 질렀고, 목구멍 끝으로 뜨거운 핏기가 올라왔다.
‘역시 내 육체의 마나 출력이 너무 약하군. 하지만…….’
최재혁은 내색하지 않고 입안에 고인 피를 조용히 삼켰다. 그의 왼쪽 눈동자가 웅웅거리며 황금빛 톱니바퀴 문양으로 변했다. ‘절대 가독안’이 활성화되자, 레인하르트가 공중에 띄워놓은 푸른색 법조문들의 기하학적 구조와 그 이면에 숨겨진 논리적 왜곡이 선명하게 읽혔.
재혁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레인하르트를 똑바로 응시했다.
“피고 대리인은 제국의 실정법을 아주 훌륭하게 암기하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변호사라는 자가 법의 자구에만 매몰되어, 그 법을 탄생시킨 ‘근원’을 보지 못하다니 실망스럽습니다.”
재혁은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가죽 주머니에서 묵직하고 낡은 석판 조각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평범한 돌조각이 아니었다. 석판 표면에 새겨진 고대 신성 문자들이 재혁의 극미량의 마나와 반응하자, 은은하고 장엄한 황금빛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법정을 짓누르고 있던 청색 마탑의 푸른색 위압 오라가 황금빛 파동에 닿는 순간, 마치 뜨거운 햇볕 아래의 눈처럼 흔적도 없이 정화되어 소멸했다.
“이건……!”
레인하르트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크게 흔들렸다. 단상 위의 아드리안 판사 역시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고대 마법 헌장 석판 조각……!”
재혁은 석판 조각을 단상 위의 원고 대리인석 테이블 위에 엄숙하게 올려놓았다. 황금빛 룬 문자들이 공중에 떠오르며 제7소법정의 푸른색 결계를 황금빛으로 강제로 덮어쓰기 시작했다.
“본 대리인은 이 자리에서 ‘헌장 우선 선포(Charter Supremacy)’를 발동합니다.”
재혁의 목소리가 고대 신성 마나와 공명하며 법정 전체를 흔들었다.
“제국 헌법 제1조는 ‘제국은 고대 마법 헌장의 신성한 계약 위에 건국되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고대 마법 헌장은 제국의 그 어떤 실정법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초법적 절대 구속력’을 가집니다. 그리고 제가 들고 있는 고대 마법 헌장 제3조는 명확히 규정합니다. ‘모든 마법 지식은 신의 선물이며, 그 지식의 기원에 대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제국의 지위 고하와 신분을 막론하고 사법부는 청문회를 개최하여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재혁은 단안경을 낀 레인하르트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피고 대리인이 언급한 제국 특허법 제22조의 신분 제한 조항은, 고대 헌장 제3조가 보장하는 ‘만민의 진실 규명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명백한 ‘위헌적 조항’입니다! 하위 실정법이 상위 헌장의 정신을 위배했을 때, 그 하위법은 효력을 상실하는 것이 법의 대원칙입니다. 따라서 원고 에단 솔베이그의 원고 적격성은 고대 헌장의 권위에 의해 완벽하게 인정됩니다!”
황금빛 톱니바퀴 문양의 절대 가독안이 뿜어내는 빛이 법정 공중에 거대한 인과율의 천칭 형상을 소환했다. 레인하르트가 세운 푸른색 실정법의 사슬들이 황금빛 천칭의 무게에 짓눌려 유리 조각처럼 비참하게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레인하르트는 안경 너머로 그 광경을 바라보며 굳어버렸다. 평민 학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신들의 모든 논리를 무력화하는 초월적인 법리적 지배력 앞에 그의 오만한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탕! 탕! 탕!
아드리안 판사의 상아 의사봉이 법정 내부를 엄숙하게 울렸다. 판사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피고 대리인의 소 각하 청구를 기각합니다. 원고 에단 솔베이그의 원고 적격을 인정하며, 본 가처분 심리를 정식 개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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