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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천칭, 그리고 오만한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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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마탑의 촉망받는 후계자, 펠릭스 본 아르님이 소장을 불태웠다고 해서 제국 사법부의 거대한 기어가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소장을 직접 손으로 움켜쥐고 마법 불꽃으로 사른 바로 그 순간, 보이지 않는 인과율의 족쇄가 그의 마력 회로에 단단히 각인되었다. 제국 사법 절차법 제51조, ‘피고 신체 직접 송달’의 효력이 발동한 것이다.


같은 시각, 제국 사법부 중앙 행정처의 공문서 보관실.


“이건 명백한 규정 위반입니다, 요셉 처장님! 송달 완료 신호가 마도 서류철에 붉은 마나로 명확히 각인되었는데, 어째서 접수 대장에서 강제로 누락시키려 하시는 겁니까?”


단정하게 땋아 내린 은발에 황실 서기 제복을 빈틈없이 차려입은 엘프 여성, 실비아가 잉크 냄새 자욱한 책상을 내리치며 항의했다. 그녀의 맑은 녹색 눈동자에는 사법 행정을 주무르려는 기득권을 향한 깊은 혐오감이 서려 있었다.


중앙 행정처장 요셉은 기름진 얼굴을 찌푸리며, 마법협회장 발레리우스 백작의 직인이 찍힌 비밀 서신을 슬그머니 서랍 속으로 밀어 넣었다.


“실비아 서기, 자네는 아직 제국의 생리를 모르는군. 평민 학자 에단 솔베이그가 청색 마탑의 수석 연구원을 고발했다? 이건 애초에 소송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각하 대상이야. 제국 특허법 제22조를 보게. 오직 등록된 귀족 가문이나 공인된 마탑만이 마법 특허 분쟁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네. 평민은 원고 적격성 자체가 없단 말일세.”


“하지만 그건 하위 실정법의 독소 조항일 뿐……!”


“시끄럽네! 마법협회의 권위는 제국 사법부조차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걸세. 이 가처분 신청서는 즉각 폐기 처분하겠네.”


요셉이 오만한 손길로 에단의 소장을 휴지통으로 던지려던 바로 그 순간, 행정실의 무거운 철문이 스르륵 열리며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갈색 머리칼을 대충 빗어 넘기고, 먼지투성이 학자 로브를 걸친 청년.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제국의 어떤 고위 법관보다도 깊고 냉철했다. 에단 솔베이그의 몸에 빙의한 현대의 특허 전문 변호사, 최재혁이었다.


“제국 특허법 제22조의 원고 적격 제한을 들먹이며 내 신청서를 각하하려는 모양이군요, 요셉 처장님.”


재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행정실 내부의 공기를 얼려버렸다. 그의 왼쪽 눈동자가 미세하게 회전하며 황금빛 톱니바퀴 문양의 ‘절대 가독안’을 드러냈다. 재혁은 요셉의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과 그의 서랍 속 발레리우스 백작의 서신에 흐르는 마력의 결을 단 1초 만에 읽어냈다.


“그, 네놈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무단 침입을……!”


“무단 침입이 아닙니다. 정당한 소송 당사자로서 접수 현황을 확인하러 온 것이지.”


재혁은 품 안에서 가죽으로 감싸인 낡은 양필지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요셉의 책상 위에 툭 던졌다. 그것은 은퇴한 대법관 니콜라스의 고서점 지하 깊은 곳에서 발굴해 낸, 제국 건국 이전에 작성된 절대적인 성물이었다.


“이걸 보시지요.”


실비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고대 엘프 법률 번역가이기도 한 그녀는 양필지 표면에 새겨진 신성한 룬 문자를 단숨에 알아보았다.


“이건…… ‘최초의 마법 헌장’ 원본 사본……?”


“그렇습니다.”


재혁은 요셉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상대의 영혼을 압박하는 기묘한 법리적 힘이 실려 있었다.


“고대 마법 헌장 제3조. ‘모든 마법 지식은 신의 선물이며, 그 지식의 기원에 대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제국의 지위 고하와 신분을 막론하고 사법부는 공정한 청문회를 개최하여 진실을 가려야 한다.’ 처장님, 제국 헌법 제1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요셉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제, 제국은 고대 마법 헌장의 신성한 계약 위에 건국되었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제국 헌법 제1조는 고대 헌장의 절대적인 상위 구속력을 보장합니다. 따라서 하위 실정법인 제국 특허법 제22조의 신분 제한 조항은 고대 헌장 제3조의 평등 원칙을 위배한 ‘위헌적 조항’이며, 이 소송을 각하할 법적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만약 내 신청서를 기각하거나 누락시킨다면, 나는 사법부 자체를 고대 헌장 위반 혐의로 황실 대법원에 기소할 것입니다.”


요셉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일개 평민 학자가 제국의 사법 체계 자체를 탄핵하겠다고 당당히 선언하고 있었다. 그것도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한 건국 법리를 들이밀며.


실비아는 재혁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지적 권위에 깊은 전율을 느꼈다. 평민 학자 에단이 이토록 정교하고 거대한 법률적 논증을 펼칠 수 있다니,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녀는 즉각 재혁의 편에 서서 자신의 공식 직인이 찍힌 서류 양식집을 펼쳤.


“처장님, 원고의 주장은 법리적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이 서류를 정식 접수하지 않고 기각할 경우, 사법부 직무유기 및 고대 계약 위반 조서가 황실 사법고문단에 실시간으로 송달될 것입니다. 제가 직접 서명하겠습니다.”


“자, 자네들 지금 미쳤군! 감히 마법협회와 마탑을 상대로 이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줄 아는가!”


요셉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지만, 이미 사법적 천칭은 재혁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재혁은 요셉의 협박을 귓등으로 흘리며, 미리 작성해 둔 ‘가처분 신청 구속력 논증 보고서’와 고대 헌장 제3조의 사본을 봉인한 특수 서류철을 실비아에게 건넸다.


“실비아 서기님, 이 서류를 중앙 행정처가 아닌, 제국 사법부의 수석 판사이자 이번 청문회 재판장인 아드리안 판사님의 집무실로 ‘직송’해 주십시오. 행정 처장님이 배달 도중 분실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즉각 집행하겠습니다, 에단 님.”


실비아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품에 안고 행정실을 빠져나갔다. 요셉은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그의 퇴로는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 * *


같은 시간, 제국 사법부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아드리안 판사의 집무실.


날카로운 눈매와 굳게 다문 입술을 지닌 젊은 판사, 아드리안은 실비아가 직송해 온 에단의 서류철을 한 장씩 넘겨보고 있었다. 그의 굳건한 풍채 주변으로 정의의 천칭에 동조된 은은한 보라색 마나 파동이 흐르고 있었다.


탁.


아드리안이 서류를 덮으며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책상 위 마도 통신기에서는 마법협회장 발레리우스 백작의 분노 어린 전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드리안 판사! 평민 놈의 무모한 장난질에 사법부의 권위를 낭비하지 말게! 당장 그 가처분 신청을 각하하란 말일세! 아르님 백작 가문과 청색 마탑의 분노를 사법부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아드리안은 통신기의 전원을 냉정하게 꺼버렸다. 그리고 서류철의 첫 페이지에 적힌 문장을 다시 한 번 응시했다.


‘고대 마법 헌장 제3조의 우선 적용이라…….’


아드리안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감돌았다. 제국의 사법부가 귀족들과 마탑의 사설 법정으로 전락해 버린 이 부조리한 시대에, 오직 법조문과 헌법적 가치만을 무기로 기득권의 심장을 겨누는 이단아가 나타난 것이다.


더구나 에단이 작성한 논증 보고서는 사법부 내부의 개혁파 법관들조차 감탄할 정도로 정교하고 치밀했다. 법관으로서의 양심과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완벽한 ‘합법적 명분’을 주인공이 직접 쥐여준 셈이었다.


아드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놓인 상아 의사봉을 쥐었다. 그의 눈빛에 흔들림 없는 결의가 서려 있었다.


“법률이 마법 위에 군림함을 보일 때가 되었군.”


스륵.


아드리안이 붉은 마나 잉크가 깃든 깃펜을 들어 공식 명령서에 서명했다.


[명령: 피고 펠릭스 본 아르님 및 청색 마탑에 대한 특허 침해 가처분 예비 심리 기일을 지정함. 장소: 제국 사법부 제7소법정.]


* * *


이틀 뒤, 제국 사법부 지하 1층에 위치한 ‘제7소법정’.


평소에는 평민들의 소소한 민사 분쟁이나 처리하던 작고 엄숙한 법정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삼엄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법정 내부의 푸른색 사법 결계가 웅웅거리며 작동하는 가운데, 피고 측 방청석은 청색 마탑의 고위 마법사들과 아르님 백작 가문의 가신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이 방출하는 압도적인 마나 위압감이 법정 내부의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 무거운 침묵을 깨고, 법정의 거대한 활엽수 목조 문이 천천히 열렸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다.


그곳에는 단정하게 재단된 고급 검은색 정장을 입고, 지적 권위를 상징하는 금테 단안경을 착용한 사내가 서 있었다. 아르님 백작 가문이 고용한 제국 최고의 천재 변호사, 레인하르트 본 제논이었다. 그의 가슴에는 제국 법조협회가 수여한 황금색 변호사 핀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레인하르트는 차가운 눈빛으로 법정 중앙을 훑어본 뒤, 피고 대리인석에 품위 있게 앉았다. 그의 손에는 두꺼운 법률 서적들과 함께, 에단의 가처분 신청을 단숨에 기각시킬 치명적인 절차법적 덫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 원고 대리인석.


헝클어진 갈색 머리에 먼지투성이 학자 로브를 그대로 입은 채, 오직 낡은 민법전 한 권만을 들고 서 있는 주인공 최재혁이 레인하르트의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쳤.


제7소법정의 천칭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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