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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전은 법정 밖에서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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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이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찰음이 지하실의 습한 공기를 찢었다.


2성 육체 강화 마나를 두른 용병 딕스의 철퇴가 무지막지한 궤적을 그리며 최재혁—아니, 에단 솔베이그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평범한 학자였다면 그 압도적인 풍압만으로도 사지가 얼어붙어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을 터였다. 독약의 여파로 쇠약해진 에단의 육체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하지만 재혁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명징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물리적 충돌은 자멸이다. 2성급 마나로는 저 무식한 철퇴를 정면으로 막을 수 없어.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재혁은 뒤로 물러서는 대신, 몸을 비틀어 낡은 오크나무 책상 너머로 아슬아슬하게 몸을 던졌다.


쾅—!


무지막지한 파괴음과 함께 오크나무 책상의 모퉁이가 처참하게 박살 나며 사방으로 나무 파편이 비산했다. 딕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박살 난 책상 잔해 속에서 철퇴를 회수하려 끙끙댔다. 단단한 참나무 상판 깊숙이 징 박힌 쇠뭉치가 박혀버린 탓에 아주 찰나의 공백이 생긴 것이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감히 피하냐!”


그레이엄이 기름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뒤에서 소리쳤다. 그의 손에 들린 위조 계약서가 파르르 떨렸다.


“딕스! 뭐 하고 있어! 당장 저 미친 학자 놈의 손가락을 몽땅 부러뜨리고 그 가죽 일지들을 뺏어!”


재혁은 부서진 책상 잔해를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왼쪽 눈 속 황금빛 톱니바퀴 문양이 기괴하게 회전하며 그레이엄이 쥐고 있는 계약서의 미세한 마력 파동을 실시간으로 쫓고 있었다.


‘절대 가독안(Absolute Readability)’의 시야에 계약서 이면의 추악한 진실이 기하학적 그래프로 더욱 선명하게 그려졌다. 아르님 백작 가문의 하급 인장이 뿜어내는 마력 주파수가 계약서 전체를 옭아매고 있는 꼴이 보였다.


“그레이엄 씨.”


재혁은 옷에 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어내며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변호사 특유의 냉철함을 잃지 않는 기이한 태도에, 철퇴를 잡아당기던 딕스마저 멈칫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들은 아르님 백작 가문의 비호를 믿고 사법부를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법률은 법정 밖에서도 똑같이 유효합니다. 제국 민사소송법 제42조에 명시된 가압류 집행 정지 요건은 이미 충족되었습니다. 당신들이 들이민 계약서는 연 120%의 불법 이자율을 적용한 원천 무효의 불법 문서니까요.”


“헛소리하지 마라! 이 계약서에는 네놈의 마력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 있어! 사법부의 어떤 법관도 백작 가문의 인장이 찍힌 서류를 거부하지 못해!”


그레이엄이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맞습니다. 마력 지문이 찍혀 있지요.”


재혁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그의 왼쪽 눈이 더욱 짙은 황금빛으로 타올랐다.


“하지만 절대 가독안으로 분석한 결과, 이 서명란에 각인된 마력 주파수는 정확히 440헤르츠의 공명 주파수를 지니고 있더군요. 제국 금융 조합법상 공식 채무 계약서에 사용되는 법정 잉크는 오직 500헤르츠 이상의 고유 주파수를 유지해야만 법적 효력을 가집니다. 즉, 당신들이 사용한 잉크는 임시 초안용 저급 마도 시약이거나, 급조된 ‘위조 잉크’라는 소리입니다.”


“이, 이놈이 어떻게 그걸……!”


그레이엄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평민 학자 따위가 마력 인장의 미세 주파수를 소수점 단위까지 읽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은 제국 마법협회의 수석 심사관조차 정밀 계측기를 동원해야만 겨우 가능한 영역이었다.


“게다가 계약서 뒷면에 숨겨진 아르님 가문의 이면 서명 마법 결계……. 이것 역시 채무자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주입된 강제 각인임이 기하학적으로 증명됩니다. 이 조작된 계약서로 압류를 강행하는 순간, 당신들은 단순 채권 추심업자가 아니라 제국 형법 제82조에 따른 ‘공문서 위조 및 무단 가택 침입 강도 현행범’이 되는 겁니다.”


재혁의 냉혹한 논박에 그레이엄은 사면초가에 몰린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법조문 하나하나가 마치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들의 목줄을 죄어오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닥쳐! 입만 산 학자 놈이! 죽으면 그 잘난 법조문도 아무 쓸모가 없다는 걸 보여주마!”


이성을 잃은 딕스가 마침내 오크나무 상판에서 철퇴를 뽑아냈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적색 오라가 한층 더 흉포하게 끓어올랐다. 딕스는 대지를 박차고 오르며 재혁의 머리를 향해 철퇴를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그 압도적인 파괴력의 쇠뭉치가 재혁의 이마 바로 앞까지 도달한 순간.


재혁은 품 안에 쥐고 있던 작은 푸른색 마나 신호석을 힘껏 움켜쥐어 박살 냈다.


파지직—!


눈이 멀 것 같은 푸른색 섬광이 지하실 천장을 뚫고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솟구쳤다. 그것은 제국 사법부 소속 경위들을 즉각 소환하는 공식 비상 신호(Emergency Judicial Beacon)였다. 재혁이 미리 민사소송법 제42조에 따른 불법 압류 방해 신고를 사법부에 임시 접수해 두었기에 가능한 합법적인 덫이었다.


하지만 신호석의 빛이 사법 경위들을 이곳까지 순간 이동시키는 데는 최소 수십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딕스의 철퇴가 재혁의 머리를 박살 내기에는 너무나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죽어라!”


딕스의 광기 어린 포효가 지하실을 흔들었다.


바로 그 찰나.


쿠웅—!


지하 연구실의 무너진 입구를 뚫고 거대한 그림자가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무거운 쇳소리와 함께 단단한 철제 방패가 재혁의 머리 위를 가로막았다.


깡—!!


고막을 찢는 듯한 금속음이 지하실 내부를 세차게 울렸다. 딕스의 2성급 신체 강화 오라가 실린 철퇴가 거대한 철제 방패 표면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엄청난 충격파가 사방으로 몰아치며 지하실 벽면에 금이 가고 유리 시약병들이 요란하게 깨져 나갔다.


그러나 그 무지막지한 타격을 받아낸 거대한 방패는 단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방패를 쥐고 있는 것은 단단한 강철 같은 근육을 지닌 하프오크 전사, 그롬이었다. 그의 붉은 피부 위로 흐르는 묵직한 마나의 파동은 딕스의 조잡한 오라와는 궤를 달리하는 압도적인 중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어떤 놈이냐!”


딕스가 경악하며 뒤로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그롬은 차가운 침묵 속에서 방패를 가볍게 비틀었다. 방패 모퉁이에 설계된 특수 홈에 철퇴의 사슬이 단단히 엉켜버렸다.


그롬이 가볍게 손목을 스냅하자, 짤랑이는 소리와 함께 딕스의 철퇴 사슬이 너무나도 쉽게 끊어지며 쇠뭉치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7성 물리 강화 투사의 가공할 만한 완력 앞에서는 2성 용병의 무구 따위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지방 사채업자 놈들이 사법부의 공식 학자 신호가 울린 구역에서 무력을 행사하다니. 겁상실증에라도 걸린 모양이군.”


그롬이 굵고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며 등에 메고 있던 거대한 도끼 자루에 손을 얹었다. 그 압도적인 무력의 위압감 앞에 딕스는 물론이고, 뒤에 서 있던 그레이엄마저 무릎을 부르르 떨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타다다닥!


동시에 지하실 계단 위에서 철제 갑옷이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법부 직속 경위들이 신호 주파수를 추적해 현장에 들이닥친 것이다.


“사법부 경위대다!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하라!”


은빛 제복을 입은 사법 경위들이 검을 뽑아 들고 순식간에 지하실 내부를 포위했다. 경위들의 차가운 검날이 그레이엄과 딕스의 목덜미에 겨눠졌다.


재혁은 부서진 오크나무 책상 잔해 뒤에서 유유히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낡은 [제국 민법전]이 들려 있었다. 그는 당황해하는 사법 경위대장에게 위조 계약서와 자신의 스캔 기록이 담긴 양필지를 정중히 건넸다.


“경위님. 여기 피고인 그레이엄과 딕스가 제국 민법 제412조를 위반한 불법 고리대금 계약서를 무기로 사적 압류를 강행하려 한 물증입니다. 또한 저를 물리적으로 살해하려 한 공무집행방해 및 살인미수 현행범이기도 합니다. 현장 채증은 이미 마쳤습니다.”


경위대장은 재혁이 제시한 완벽한 법리적 근거 서류와 지하실의 참상을 번갈아 본 뒤,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레이엄, 딕스. 당신들을 불법 채권 추심, 공문서 위조, 그리고 사법 당사자 상해 미수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이, 이건 음해다! 아르님 백작 가문에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레이엄이 절규하며 쇠사슬에 묶여 끌려갔고, 무기를 잃은 딕스 역시 비참한 몰락자의 눈빛으로 경위들에게 압송당했다. 순식간에 지하실을 가득 채웠던 위협이 법의 공권력 아래 완벽하게 청소되었다.


사법 경위들이 철수하고 지하실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을 때, 재혁은 부서진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선친 아서의 낡은 가죽 일지를 조심스럽게 집어 올렸다.


‘절대 가독안’의 시선이 일지의 가죽 모퉁이에 닿는 순간.


스르륵.


일지의 낡은 가죽 질감 이면에서, 현 제국의 그 어떤 마법 공식과도 주파수가 다른 원초적인 황금빛 마나 실타래가 가늘게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제국 건국 이전, 세상의 모든 법칙을 규정했던 고대 마법 헌장의 맹점과 단서가 숨겨진 비밀 페이지의 신호였다. 재혁의 가슴속에서 에단의 원혼이 웅장하게 요동쳤다.


재혁은 일지를 품에 소중히 안은 뒤, 지하실 한구석에 묵묵히 서서 자신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하프오크 전사, 그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롬은 마탑의 잔인한 실험으로 동료들을 잃고 복수의 기회를 노리던 강력한 용병이었다. 재혁은 그의 눈빛에 서린 깊은 분노와 동시에 자신을 향한 기묘한 존경심을 읽어냈다.


재혁은 입꼬리를 올리며 그롬에게 천천히 걸어가 손을 내밀었다. 현대 대한민국의 최정상급 특허 변호사가 인생을 바꿀 파트너에게 건네는 대담하고 매혹적인 제안이었다.


“그롬 씨. 당신의 도끼는 훌륭하지만, 마탑의 거대한 결계 앞에서는 결국 부러질 뿐입니다. 하지만 내 법전과 당신의 방패가 합쳐진다면 어떨까요?”


재혁의 왼쪽 눈 속 황금빛 톱니바퀴가 더욱 찬란하게 회전했다.


“나와 공식 대리인 계약을 맺으십시오. 당신에게 가해진 마탑의 불법 생체 실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을 대리해 드리지요. 배상금으로 아르님 가문의 영지를 통째로 뜯어내 당신의 방패로 삼아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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