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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과 침묵의 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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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헤치고 걸어 나오는 기사들의 서늘한 철갑 소리가 회색 지구의 정적을 무참히 찢어발겼다.


아르카디아 회색 지구의 탁한 밤공기 속에서, 아르님 백작 가문의 푸른 사자 문양을 가슴에 새긴 기사들이 낡은 판자집을 겹겹이 포위해 들어왔다. 그들의 선두에 선 사내, 백작가의 호위기사단장 울릭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묵직한 마력 쇠사슬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옅은 적색의 오라는 그가 검술과 신체 강화에 통달한 6성 기사임을 무겁게 증명했다.


“에단 솔베이그. 그리고 쥐새끼처럼 도망쳐 숨어 있던 외팔이 정제공 오토.”


울릭의 차가운 눈빛이 판자집 문틈 너머로 덜덜 떨고 있는 오토의 얼굴을 꿰뚫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민들을 벌레처럼 내려다보는 귀족 특유의 오만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감히 마탑의 자산을 훔치고 비밀을 누설하려 한 죄, 백작 가문의 이름으로 즉각 집행하겠다. 오토, 네놈과 네 가족들은 오늘 밤 아르님 영지로 압송된다. 평생 어두운 광산 깊은 곳에서 침묵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하, 하지만…… 나는 아무 짓도……!”


오토는 절규하며 한쪽뿐인 팔로 뒤에 숨은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감쌌다. 그의 수척한 얼굴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마탑의 무자비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기사들이 들고 있는 마력 쇠사슬을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울릭이 차갑게 손짓했다.


“쇠사슬을 채워라. 반항하면 다리를 잘라도 좋다.”


스릉!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판자집의 낡은 문을 부수려던 찰나였다.


“거기까지.”


골목 뒤편에서 들려온 나직하지만 벼락처럼 명징한 목소리가 기사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감청색 로브의 깃을 단정하게 정리한 최재혁이 천천히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왼쪽 눈동자는 이미 황금빛 톱니바퀴 문양의 ‘절대 가독안(Absolute Readability)’을 띤 채 서늘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거구의 하프오크 전사 그롬이 거대한 방패를 등에 메고 묵묵히 따르고 있었다.


“네놈은…… 예비 청문회에서 소란을 피우던 평민 변호사 놈이군.”


울릭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르님 백작가의 호위기사단장 울릭 씨.”


재혁은 단안경을 가볍게 쓸어 올리며 품 안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마도 음성 기록기를 꺼내 들었다. 장치 상단의 에테르 코어가 미세하게 진동하며 현장의 모든 대화와 마나 파동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당신들이 지금 자행하려는 행위는 제국 형법 제204조에 명시된 ‘합법적 영장 없는 무단 약취유인죄’에 해당합니다. 또한 사법부의 정식 증거 제출 유예령이 내려진 소송 당사자와 그 증인을 협박하는 것은 명백한 사법 방해죄지요.”


“법률? 평민 놈이 귀족의 영장 앞에서 법을 논하는구나.”


울릭이 코웃음을 쳤다. 그는 허리에 찬 대검의 자루를 꽉 쥐었다. 그 순간, 그의 전신에서 불꽃 같은 적색 오라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와 판자집의 낡은 지붕과 벽면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쩌적, 쩌적 하는 불길한 균열음과 함께 낡은 가옥이 반쯤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백작 가문의 가신단이다. 회색 지구 슬럼가 따위에서 일어나는 평민의 실종은 사법부조차 신경 쓰지 않는 먼지 같은 일이지. 억울하면 그 잘난 사법부 판사들에게 가서 고발해 보아라. 그 전에 네놈들의 목이 먼저 날아갈 테지만!”


울릭이 대검을 뽑아 들며 강렬한 오라의 참격을 판자집을 향해 날렸다. 붉은 검빛이 밤하늘을 가르며 오토 일가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크오오오오!”


그 순간, 폭풍 같은 기합 소리와 함께 그롬이 앞으로 도약했다. 그롬은 등에 메고 있던 거대한 무쇠 방패를 대지에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쾅-!


쿠르릉하는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울릭의 6성급 오라 참격이 그롬의 방패 표면에 부딪히며 거대한 불꽃을 튀겼다. 그롬은 ‘야성적 강체 호흡법’을 발동하여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근육으로 그 무지막지한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방패 표면에 미세한 흠집과 함께 가는 균열이 생겼지만, 그롬의 발걸음은 단 한 치도 뒤로 밀리지 않았다.


“내 방패를 뚫으려면 이빨을 더 갈고 와라, 귀족의 사냥개 놈들아.”


그롬이 붉은 눈을 번뜩이며 으르렁거렸다. 그의 단단한 어깨 위로 미세한 찰과상에서 흘러내린 피가 붉은 궤적을 그렸지만, 그의 기세는 오히려 더 흉포하게 타올랐다.


“오토 씨, 흔들리지 마십시오.”


최재혁은 아수라장이 된 전장 한가운데서도 기이할 정도로 냉철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공포에 질려 스스로 적들에게 투항하려던 오토의 어깨를 꽉 쥐었다.


“당신은 제국의 법률과 고대 헌장이 보호하는 정식 소송 당사자이자 증인입니다. ‘소송 당사자 신체 보존 원칙’에 따라, 소송이 진행 중인 동안 그 누구도 당신의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저들이 당신의 몸에 쇠사슬을 대는 순간, 그것은 사법부에 대한 전면적인 선전포고가 될 것입니다.”


재혁의 목소리에 실린 보이지 않는 사법적 확신이 오토의 심장을 강하게 두드렸다. 오토는 떨리는 숨을 들이쉬며 눈물을 닦아냈다. 자신들을 지켜주는 이 거구의 전사와 냉철한 변호사의 등 뒤에서, 그는 아주 오랜만에 법이라는 이름의 구원을 느끼고 있었다.


“건방진 오크 놈과 평민 학자 놈이 제법 끈질기군.”


울릭의 눈빛이 극도로 살벌해졌다. 그는 검끝을 비스듬히 내리며 사설 기사들에게 지시했다.


“측면을 쳐라! 그롬의 방패를 우회하여 외팔이 놈과 변호사 놈의 목을 먼저 따라!”


“그렇게 두진 않을 겁니다.”


재혁이 오른손을 뻗어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왼쪽 눈 속 황금빛 톱니바퀴가 급격히 회전하며 주변의 마나 기류를 읽어내고 법률적 인과율을 고정했다.


“솔베이그 마법 법률사무소의 이름으로 선언합니다.”


웅웅웅!


재혁의 손끝에서 시작된 눈부신 황금빛 법률 문장들이 공중으로 떠올라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문장들은 순식간에 촘촘한 사슬처럼 엮이더니, 오토와 그의 가족이 서 있는 판자집 주변 반경 5미터를 완벽하게 감싸 안는 구형의 방어막을 형성했다.


‘대리인 결계 (Advocate's Shield)’였다.


“이 결계는 사법부와 고대 헌장의 권능으로 연동되어 있습니다. 결계 내부로 무단 침입을 시도하거나 마법적 오라를 방출하는 자는, 그 즉시 제국법상 ‘법정 모독 및 증인 위해죄’의 구속력을 받아 마나가 역류하게 될 것입니다.”


기사들이 결계를 향해 검을 내리치려다, 황금빛 문장들이 뿜어내는 엄숙하고 거룩한 사법적 위압감에 짓눌려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 결계의 표면에는 ‘신뢰와 보호’를 상징하는 고대 헌장의 룬 문자들이 찬란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따위 얄팍한 마법 장막이 백작가의 검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울릭은 완전히 이성을 잃고 광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그의 대검에 서린 적색 오라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게 팽창하며, 주변의 흙먼지를 폭풍처럼 휘감았다. 6성 기사의 전력을 다한 참격이 준비되고 있었다.


그롬은 거대한 도끼를 고쳐 쥐며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고, 재혁은 마도 음성 기록기를 단단히 쥔 채 울릭의 오만한 폭력을 응시했다.


백작가의 초법적 권위를 내세우며 강제 집행을 명령하는 울릭의 고함과 함께, 그롬의 대검과 울릭의 파괴적인 오라가 정면으로 충돌하기 직전의 일촉즉발의 순간.


쿠구구구궁!


두 강력한 물리적 무력의 충돌로 인해 회색 지구 슬럼가의 척박한 대지가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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