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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의 권위와 가짜 감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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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사법부 제7소법정의 육중한 청동 문이 열리는 순간, 법정 내부의 공기는 얼어붙을 듯이 가라앉았다.


방청석을 메운 평민 마법사들과 학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원고석에 앉은 최재혁에게 쏠렸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갈색 머리에 짙은 감청색 로브를 걸친 재혁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눈길 속에서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오른쪽 눈에 걸쳐진 금테 단안경만이 법정 천장의 에테르 조명을 받아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반면, 피고석에 앉은 레인하르트 본 제논은 여유로운 태도로 단안경을 매만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손에는 황금빛 봉인이 선명하게 찍힌 두터운 양필지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제국 아카데미의 공식 문양이 새겨진, 압도적인 권위의 상징이었다.


“재판장님.”


레인하르트의 매끄러우면서도 낭랑한 목소리가 법정의 정적을 깨뜨렸다.


“원고 대리인은 고대 마법 헌장까지 들먹이며 피고 펠릭스 본 아르님의 특허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법이란 감정이 아닌 차가운 이성과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야 하는 법입니다. 이에 피고 대리인은 제국 최고의 학술 기관인 제국 아카데미의 정교수이자, 마나 열역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신 바르톨로 교수님께서 직접 작성하신 ‘공식 안전성 및 독창성 감정서’를 제출하고자 합니다.”


레인하르트가 서류를 높이 치켜들자, 서류 표면에 새겨진 황금빛 인장이 미세한 마나 파동을 일으키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방청석의 평민 학자들 사이에서 나직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바르톨로 교수. 그의 이름 석 자가 지닌 학술적 권위는 제국 사법부의 고위 법관들조차 감히 토를 달지 못할 만큼 절대적인 것이었다.


“본 감정서의 결론은 명백합니다.”


레인하르트는 승리를 확신한 듯 원고석의 재혁을 힐끗 바라보며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원고 에단 솔베이그가 주장하는 이른바 ‘솔베이그 공식’은 독창적인 마법 수식이 아닐 뿐더러, 마나의 공명 주파수를 인위적으로 왜곡하여 사용자에게 치명적인 마나 역류와 서클 파괴를 유발하는 ‘극도로 위험한 쓰레기 수식’에 불과합니다. 제국 특허법 제18조에 의거,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유해한 기술은 결코 특허권 수혜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원고의 무모한 가처분 신청은 즉각 기각되어야 마땅합니다.”


“저,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재혁의 옆에 앉아 있던 실비아가 주먹을 꽉 쥐며 신음했다. 그녀가 준비해 온 기존 판례 서류들이 레인하르트가 내세운 ‘학계 최고 거두의 감정서’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 무력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실비아는 다급히 아드리안 판사를 바라보았으나, 원칙주의자인 아드리안 역시 바르톨로 교수의 서명이 담긴 감정서를 받아들고는 미간을 좁힌 채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법정의 여론이 순식간에 피고 측으로 기울어지는 일촉즉발의 상황.


하지만 최재혁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현대 대한민국에서 무수한 특허 괴물들과 대기업들의 기술 도용 소송을 치렀던 그였다. 상대가 법적으로 외통수에 몰렸을 때 들이미는 ‘권위자의 조작된 감정서’는 그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수법이었다.


‘결국 그 권위 뒤로 숨기로 하셨군, 레인하르트 변호사.’


스르륵.


재혁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의 왼쪽 눈동자가 웅웅거리는 미세한 진동음과 함께 찬란한 황금빛 톱니바퀴 문양으로 변하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에단의 타고난 마나 가독력과 재혁의 변호사적 분석력이 융합되어 탄생한 ‘절대 가독안(Absolute Readability)’이 각성한 것이다.


황금빛 시야 너머로 레인하르트의 손에 들린 감정서가 투명하게 비쳐 보였다. 종이 표면에 스며든 잉크의 마력 파동, 수식의 배치, 그리고 그 이면에 흐르는 기하학적 수치들이 3차원 홀로그램 그래프처럼 재혁의 뇌내 연산 회로로 쏟아져 들어왔다.


‘2성 마나의 육체로 이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읽어내는 건 역시 무리인가.’


머리가 깨질 듯한 편두통이 습격해 왔다. 심장 주변의 미약한 마나 서클이 거칠게 요동치며 전신에 찌르는 듯한 과부하 통증을 유발했다. 재혁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뇌내 연산을 멈추지 않았다. 감정서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바르톨로 교수가 설계한 복잡한 마나 전도율 수식들이 기하학적으로 해체되어 재혁의 절대 가독안에 분석되었다.


단 1초.


모든 분석이 끝난 순간, 재혁의 왼쪽 눈동자 속 황금빛 톱니바퀴가 뚝 멈춰 섰다. 적들이 완벽하다고 믿었던 학술적 방패의 한가운데, 거대하고 치명적인 ‘논리적 균열’이 선명하게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재혁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뜨거운 피를 조용히 삼켜낸 그가 낭랑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로 변론을 시작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 대리인은 제국 아카데미의 권위를 빌려 본 공식을 위험한 수식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률가로서 제가 배운 바에 따르면, 제아무리 위대한 학자의 친필 서명이 담긴 서류라 할지라도 ‘논리적 사실’과 ‘수학적 진실’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재혁은 피고석의 레인하르트를 똑바로 응시했다.


“피고 대리인이 제출한 바르톨로 교수님의 감정서 제3페이지를 봐주십시오. 거기에는 솔베이그 공식이 마나 폭발을 유발한다는 핵심 근거로 ‘에테르 열역학 제4공식’을 적용한 마나 전도율 계산식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레인하르트의 미간이 미세하게 꿈틀했다. 재혁은 단상 위의 칠판으로 걸어가 깃펜을 들고 거침없이 수식을 적어 내려갔다.


“여기 기재된 수식에 따르면, 하급 마나가 솔베이그 공식의 주파수 변환 노드를 통과할 때의 저항값 R은 마나 순도 P의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맞습니까, 레인하르트 변호사?”


“그렇소. 그것이 바르톨로 교수님이 증명하신 공식의 불안정성 수식이지.”


레인하르트가 오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칠판 위의 수식 한 군데에 붉은색 분필로 거대한 가위표를 그렸다.


“틀렸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조작된 허구입니다.”


법정 내부가 일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재혁의 목소리가 칠판을 두드렸다.


“고대 마법 헌장 제1조에 정의된 마나 보존 법칙에 따르면, 자연 상태의 에테르 주파수 변환 시 저항값 R은 마나 순도의 ‘제곱’이 아닌, 순도 P의 ‘로그 값’에 비례해야만 합니다. 바르톨로 교수의 수식대로 제곱에 반비례하게 설계할 경우, 마나의 전도율은 무한대로 발산하게 되며, 이는 물리학적으로 마법진이 전개되기도 전에 시전자의 마나 서클이 아닌 ‘대기 중의 에테르’가 먼저 소멸해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재혁이 칠판을 돌려 배심원단과 아드리안 판사를 향하게 했다.


“즉, 이 감정서의 3페이지에 기재된 수식은 마법적 현실에서는 단 1밀리초도 존재할 수 없는, 오직 원고의 공식을 결함 기술로 몰아가기 위해 수학적 수치들을 억지로 끼워 맞춘 ‘웅장한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소리입니다!”


쾅!


재혁이 단상을 강하게 내리치자, 방청석의 평민 학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법 공식의 기하학적 구조를 이해하는 몇몇 젊은 학자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칠판에 적힌 재혁의 완벽한 수학적 인과율 증명을 보며 침묵을 지킬 수 없었다.


“저, 저 논리가 맞아! 에테르 보존 법칙을 적용하면 바르톨로 교수의 수식은 분모가 0이 되어버려!”


“제국 아카데미의 거두가 이런 기초적인 오류를 범했다고? 이건 조작이야!”


레인하르트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며 단안경을 놓칠 뻔했다. 제국의 그 어떤 변호사도, 심지어 사법부의 판사들조차 감히 바르톨로 교수의 감정서 수식을 직접 해체해 분석하려 들지 않았다. 학계의 권위라는 거대한 장벽 뒤에 숨겨진 조작의 흔적을, 저 평민 변호사가 단 몇 초 만에 완벽하게 찾아내어 탄핵해 버린 것이다.


아드리안 판사는 칠판 위의 수식과 감정서의 내용을 번갈아 감정하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레인하르트를 내려다보았다.


“피고 대리인. 원고 대리인이 지적한 마나 전도율 수식의 물리학적 모순에 대해 해명할 수 있습니까?”


레인하르트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는 제국 최고의 귀족 전담 변호사였다. 이대로 물러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굳어진 얼굴을 억지로 풀며 이빨을 드러내고 차갑게 미소 지었다.


“……단순한 서필상의 오기일 뿐입니다, 재판장님. 방대한 학술 데이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미세한 계산 실수에 불과합니다. 원고 대리인이 지엽적인 수식의 오류를 물고 늘어지며 본질을 흐리려 하는군요.”


레인하르트가 단상 앞으로 다가오며 재혁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오기가 아니라면, 에단 솔베이그 변호사. 당신이 그렇게 신뢰하는 그 공식의 안전성을 이 자리에서 직접 증명해 보이시겠습니까?”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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