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과 마법, 그리고 뒤바뀐 영혼
지독한 곰팡내와 저급 잉크의 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깨어지기 쉬운 차가운 돌바닥, 천장 틈새로 뚝뚝 떨어지는 차가운 물방울 소리. 아르카디아 외곽 빈민가에 위치한 에단의 지하 연구실은 빛 한 줌 들지 않는 어둠의 나락이었다.
“으윽…….”
최재혁은 신음을 흘리며 깨어났다. 목구멍이 타들어 갈 것처럼 뜨거웠다. 가슴팍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에 반사적으로 기침을 토해내자, 바닥에 붉고 검은 핏방울이 점점이 흩어졌다. 단순한 피가 아니었다. 마력을 강제로 침묵시키고 서클을 파괴하는 금지된 독약, ‘마나 침묵의 독약’의 잔재였다.
동시에 머릿속이 쪼개질 듯한 두통과 함께 낯선 기억들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에단 솔베이그.
마나 친화력은 고작 2성에 불과한 가난한 평민 학자.
평생을 바쳐 하급 마법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솔베이그 공식’을 완성했으나, 청색 마탑의 천재라 불리는 귀족 마법사 펠릭스 본 아르님에게 연구를 송두리째 강탈당하고 독살당할 뻔한 비운의 영혼.
그의 선친 아서 솔베이그 역시 고대 마법 공식의 독자적 해석본을 귀족들에게 빼앗긴 화병으로 숨졌고, 여동생 루시는 귀족들이 사주한 사채업자들의 빚 독촉과 마나 오염으로 병상에 누워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특허 전문 변호사, 최재혁이었지.’
특허 침해 소송 승률 99.8%. 대기업의 기술 탈취 공작을 법전 하나로 박살 내며 사법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사내. 불의의 교통사고로 눈을 감았던 그가, 지식과 권력을 모두 빼앗기고 비참하게 죽어가던 이계의 학자 몸에 빙의한 것이다.
두 영혼의 융합은 기적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에단이 가졌던 마법 공식에 대한 집착과 재혁의 법리적 연산 능력이 얽혀들며, 시야가 기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고유 권능: ‘절대 가독안(Absolute Readability)’이 각성합니다.]
스르륵.
재혁의 왼쪽 눈동자가 찬란한 황금빛 톱니바퀴 문양으로 변하며 미세하게 회전했다. 단순한 지하실의 어둠이 걷히고, 벽면에 스며든 미세한 마나의 흐름이 기하학적인 격자선과 수식으로 치환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마법 공식과 계약서 이면의 논리적 구조를 단 1초 만에 직관적으로 읽어내는 절대적인 가독력의 개안이었다.
‘마나 출력은 고작 2성 수준…… 물리적인 마법 전투로는 마탑의 견습 마법사 하나도 이기기 힘들다. 하지만.’
재혁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의 마른 손을 내려다보았다.
‘법과 규칙이 존재하는 세상이라면, 내 손에 쥐어진 법전이 그 어떤 9성 마법보다 강력한 무기가 되지.’
그때였다.
쿵! 쿵! 쿵!
지하 연구실의 낡은 목조 문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 삐걱거리는 경첩 사이로 먼지가 흩날리며 험악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야! 에단! 살아 있는 거 다 안다! 당장 문 열어!”
쾅! 마침내 썩은 빗장이 부러지며 문이 거칠게 열렸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들어온 것은 기름진 얼굴에 값비싼 보석반지를 주렁주렁 낀 중년 사내, 사채업자 그레이엄이었다. 그 뒤에는 얼굴에 긴 흉터가 있는 험악한 덩치의 용병 딕스가 거대한 단도와 철퇴를 덜렁거리며 서 있었다. 딕스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은은한 적색 오라는 그가 신체 강화 마나를 다루는 2성 용병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역시 끈질기게 목숨은 붙어 있었군, 에단.”
그레이엄이 코를 쥐며 지하실 내부를 혐오스럽게 훑어보았다. 그의 손에는 붉은 마나 인장이 찍힌 양필지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아르님 백작 가문에서 넘겨받은 네놈의 채무 증서다. 원금 1,000골드에 연체 이자가 붙어 총 5,000골드. 오늘 당장 갚지 못하면 이 지하실의 모든 집기와 네놈이 끄적거린 연구 노트, 그리고 그 잘난 ‘솔베이그 공식’ 초안까지 전부 강제 압류하겠다!”
그레이엄이 붉은 인장이 찍힌 계약서를 재혁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강제 압류라는 단어가 떨어지기 무섭게, 딕스가 철퇴를 바닥에 쿵 내리찍으며 위협적인 한 걸음을 내딛었다.
평범한 2성 학자였다면 그 압도적인 무력과 귀족의 이름 앞에 기가 죽어 눈물을 흘리며 연구 노트를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재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왼쪽 눈 속 황금빛 톱니바퀴가 더욱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절대 가독안, 작동.’
징-.
재혁의 시야에 그레이엄이 든 계약서의 모든 텍스트가 기하학적인 인과관계 그래프로 해체되어 떠올랐다. 계약서 뒷면에 숨겨진 미세한 마력 파동의 정체, 그리고 교묘하게 위조된 조항들이 단 1초 만에 최재혁의 머릿속에서 연산되었다.
[분석 완료: 제국 표준 채무 계약서(위조)]
- 위조 주체: 아르님 백작 가주 알베르트의 하급 인장 주파수 검출.
- 독소 조항: 제국 제한이자율 초과 (설정 이자율 연 120% / 제국 법정 제한 이자율 연 20%).
- 절차적 하자: 채무자 서명란의 마력 주파수가 원고(에단)의 사후 혹은 혼수 상태에서 강제로 각인된 흔적 포착.
재혁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현대 대한민국에서 사채업자들의 목줄을 죄던 악마 변호사의 미소였다.
“이봐, 에단. 겁을 처먹었으면 당장 그 손때 묻은 일지들이나 넘기지 그래? 귀족 나리들께서 네놈의 구질구질한 연구 조각들을 꽤 높게 쳐주기로 하셨거든.”
그레이엄이 비열하게 낄낄거리며 손을 뻗었다. 딕스 역시 비웃으며 재혁의 책상 위에 올려진 낡은 가죽 일지—선친 아서의 유품이자 솔베이그 공식의 원형이 담긴 노트—를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바스락.
그 순간, 재혁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책상 위에 꽂혀 있던 낡고 두꺼운 가죽 책 한 권을 천천히 꺼내 들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그 책의 표지에는 금박이 다 벗겨진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제국 민법전(Imperial Civil Code)]
무력이 아닌, 낡은 법전을 펼쳐 드는 2성 학자의 기이한 태도에 그레이엄과 딕스는 순간 멈칫했다.
“뭐냐, 그 종이 뭉치는? 마법 주문이라도 외우시게?”
그레이엄의 비아냥거림을 들으며, 재혁은 법전을 스르륵 넘겨 특정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의 목소리는 지하실의 습한 공기를 가르며 지극히 차분하고 냉철하게 울려 퍼졌다.
“제국 민법 제412조, 그리고 이자율 제한법 제3조에 의거. 제국 법정이 공인한 최고 이자율은 연 20%를 초과할 수 없다. 이를 초과한 이자 약정은 그 초과 부분에 한하여 ‘원천 무효’다.”
“……뭐?”
“더불어, 제국 민사소송법 제42조. 불법적인 채권에 기초한 가압류 및 강제 집행은 채무자의 신청에 의해 즉각 정지되며, 집행관의 공식 영장 없는 사적 압류는 ‘가택 침입 및 강도 행위’로 규정한다. 그레이엄 씨, 당신의 이 위조 계약서에 명시된 이자율은 무려 연 120%더군.”
재혁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왼쪽 눈으로 그레이엄의 심장을 꿰뚫어 보듯 응시했다.
“그리고 채무자 서명란에 새겨진 마력 지문……. 내가 아르님 가문의 독약에 중독되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어제 새벽 3시의 주파수더군. 채무자의 자발적 의사가 결여된 계약은 제국 계약법 제9조에 의해 계약 성립 자체가 취소된다.”
지하실 내부에 찬물이 끼얹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 그레이엄의 비열한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 이 미친 학자 놈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딕스! 당장 저 입을 닥치게 만들고 일지들을 빼앗아!”
“예, 형님!”
딕스가 이성을 잃고 거대한 철퇴를 치켜들었다. 2성급 신체 강화 마나가 철퇴 끝에 서리며 지하실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쇠사슬이 짤랑이는 소리와 함께, 쇠붙이가 재혁의 머리를 향해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위기. 하지만 재혁의 눈빛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품 안에서 작은 마나 신호석을 꽉 쥐며, 제국의 사법 질서를 뒤흔들 첫 번째 법리적 덫의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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