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화난무, 폭주하는 마성의 은혜
“크하하하! 마교 교주의 신표가 확실하구나! 이 은발 마녀년이 정파의 눈을 속이고 청운봉에 숨어 있었다니!”
조충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타오르는 불길을 타고 청운초당 앞마당을 가득 메웠다. 그의 손에 들린 빙설옥패(Ice Snow Jade Pendant)가 밤의 화염 속에서 불길한 암청색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그 영롱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은 마당에 가득 찬 대나무가 타들어 가는 열기마저 짓누를 만큼 무거웠다.
“소가주님! 이옥패는 정말로 백련마교의 최고 신표가 맞습니다! 이 약초꾼 놈이 마교의 씨앗들을 숨겨두고 대역죄를 모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옆에 서 있던 청성파 무사가 조충의 기세를 돋우며 소리쳤다. 조충의 흐리멍덩한 눈동자는 이미 승리감과 탐욕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마교 교주의 딸을 생포하고 대역죄인을 고발한다면, 아비인 조덕필 장로뿐만 아니라 청성파 전체가 무림맹에서 독보적인 공을 세우게 될 터였다.
“하율아…….”
한시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첫째 제자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입가에는 아까 진법이 무너질 때 뿜어낸 붉은 선혈이 묻어 있었고,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은 절반이 은빛 백발로 변해 있었다. 기경팔맥이 완전히 폐절된 병약한 육체는 밀려드는 연기와 화염의 열기만으로도 숨이 가빠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설하율은 스승의 그 창백한 모습과 피 묻은 백발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 때문에…….’
그녀의 뇌리에 어린 시절 친부 설무극에게 당했던 잔혹한 한빙 고문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오직 마교의 병기로서만 다루어지며 차가운 얼음 감옥에 갇혀 피를 흘려야 했던 비참한 과거. 하지만 이곳 청운초당은 달랐다. 무공을 잃은 스승 한시우는 그녀를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 대했고, 밤마다 그녀의 얼어붙은 손을 잡아주며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 주었다.
그 유일한 구원자가, 자신을 지켜주던 유일한 하늘이 지금 저 비열한 정파의 망나니 때문에 피를 흘리며 쓰러지려 하고 있었다.
“스승님을…… 해치게 두지 않아.”
설하율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평소의 단정하고 고요했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듣는 이의 심장마비마저 유도할 만큼 차갑고 기괴한 마성의 목소리였다.
스사사사사삭!
그녀의 은발 끝자락이 요동치며 사방으로 푸른 성에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마당 바닥의 흙먼지가 순식간에 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대나무 숲을 집어삼키던 붉은 화염마저 그녀가 내뿜는 혹독한 냉기 앞에 기가 죽어 사그라들었다.
“어, 어라? 이 한기는 대체 뭐냐?”
조충이 당황하여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금장검 날 위로 하얀 서리가 순식간에 덮였다.
설하율의 투명한 빙백의 눈동자가 이성을 잃고 피처럼 붉게 물들어갔다. 마체각성 1단계(Demonic Awakening Stage 1)의 폭주가 기어이 시작된 것이다. 그녀의 단전 속에서 잠자고 있던 백련마교의 절정 마공, 빙백신공(Ice Demon Divine Art)의 봉인이 완전히 풀려나갔다.
“소가주님! 이년의 기운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건 단순한 일류 수준이 아닙니다!”
“시끄럽다! 그래봤자 정체가 탄로 난 마녀년일 뿐이다! 당장 저 백발 놈의 목을 베어라! 그러면 저년도 힘을 잃을 것이다!”
조충이 악에 바쳐 소리치며 무사들을 재촉했다. 그의 명령에 청성파 무사 다섯 명이 한시우를 향해 일제히 검을 겨누며 돌진했다. 날카로운 쇠붙이들이 한시우의 목덜미를 베어버리기 위해 허공을 갈랐다.
“안 돼……!!”
설하율의 비명이 청운봉의 밤하늘을 찢었다.
그녀의 비명과 함께, 단전 내부에 고여 있던 극한의 빙백마기가 폭풍처럼 사방으로 분출되었다.
쿠구구구궁!
사방 10장 이내의 모든 공간이 단 찰나의 순간에 하얀 얼음의 성벽으로 뒤덮였다. 타오르던 대나무들은 불길이 붙은 채 그대로 얼어붙어 기괴한 붉은 얼음 기둥이 되었고, 바닥의 자갈들은 투명한 빙판으로 변했다.
“빙화난무(Dancing Ice Blossoms)!”
설하율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자, 그녀의 손끝에서 수천 장의 날카로운 얼음 꽃잎들이 피어나 허공을 가득 메웠다. 아름답지만 지독하리만치 치명적인 은빛의 꽃잎들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청성파 무사들을 향해 쇄도했다.
사사사사삭!
“아아악! 내 몸이……!”
“살려줘! 손이 얼어붙는다!”
돌진하던 청성파 무사들의 비명이 얼어붙는 안개 속에서 터져 나왔다. 얼음 꽃잎이 스쳐 지나가는 곳마다 붉은 피 대신 하얀 서리가 돋아났고, 그들의 경맥은 흐르는 피마저 동결되어 멈춰 섰다. 단 3번의 호흡이 지나기도 전에, 한시우를 향해 칼을 겨누던 무사들은 전신이 동사한 채 차가운 얼음 조각상이 되어 마당에 우뚝 섰다. 그들의 얼굴에는 죽음 직전의 극단적인 공포가 그대로 박제되어 있었다.
“이, 이 괴물 같은 년이……!”
조충은 자신의 눈앞에서 심복들이 손끝 하나 대지 못하고 얼어 죽는 모습을 목격하고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그가 자랑하던 일류 중위의 내공은 설하율이 뿜어내는 초절정 수준의 극음 한기 앞에서는 한 줄기 미지근한 바람조차 되지 못했다.
설하율은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조충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마당의 돌바닥이 쩍쩍 갈라지며 하얀 얼음 꽃이 피어났다.
“너는…… 스승님을 해치려 했다. 그 죄는 천 번을 죽여도 씻을 수 없다.”
“오, 오지 마! 오지 마라 마녀년아!”
조충이 비명을 지르며 금장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설하율은 검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몸 주변을 감싼 차가운 빙결 강기가 날아오는 검날을 가볍게 튕겨냈다. 이윽고 그녀의 차가운 손가락 끝이 조충의 오른팔을 스쳐 지나갔다.
콰드드득!
“아아아아악!!”
지독한 골절음과 함께 조충의 오른팔이 어깨에서부터 손끝까지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얼어붙은 피부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며 차가운 붉은 피가 서리 아래로 배어 나왔다. 조충은 비명을 지르며 쥐고 있던 빙설옥패와 금장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내 팔이! 내 팔이 부서진다! 아버님! 살려주십시오!”
조충은 한쪽 팔이 완벽하게 동사하여 금이 간 채로, 남은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비명을 지르며 청운봉 산길 아래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의 부하들은 이미 이성을 잃고 무기를 버린 채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마당에는 오직 얼어붙은 청성파 무사들의 조각상들과, 타오르는 불길이 얼음에 갇혀 기괴하게 번쩍이는 정경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설하율이 서 있었다.
“하율아…….”
한시우가 비틀거리며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설하율은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마체각성 1단계의 폭주 상태에 빠진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는 오직 파괴와 살의만이 가득했다. 그녀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한기가 이제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팽창하여, 한시우가 서 있는 방향을 향해 밀려들기 시작했다.
지독한 냉기가 한시우의 발목을 감싸 안으며 그의 도포 자락을 하얗게 얼려갔다. 내력이 없는 그의 병약한 몸은 이 한기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멈출 수 있는 치명적인 위기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야설화와 염초아가 비명을 지르며 말리려 했으나, 폭주한 설하율의 한기 장막에 가로막혀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한시우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슬픈 미소를 지었다. 머리카락 절반이 은빛으로 변한 채,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지도 않고, 한시우는 차가운 한기 속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바닥의 얼음이 그의 신발을 얼려오고 전신이 오한으로 떨려왔지만, 그의 깊고 고요한 눈빛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한시우는 이성을 잃고 칼날 같은 눈물방울을 흘리는 설하율의 차가운 얼굴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으며 한 걸음 더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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