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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의 사투, 낙뢰 속의 영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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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우의 은빛 서리가 서린 창백한 이마 위로, 설하율의 떨리는 손가락 끝이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닿았다.


차가운 한기가 이마를 스쳤지만, 한시우는 눈을 뜨지 않았다. 고르게 숨을 쉬며 깊은 잠에 빠진 척 연기하는 것만이 지금 제자들의 무거운 감시망을 피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율의 손가락이 거두어지고, 초당의 등불이 꺼진 뒤에도 한참이 지나서야 한시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안방 침상 주변에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심안(Mind's Eye)을 가동하자, 문밖에서 숨을 죽인 채 초당 주변을 지키고 있는 제자들의 기운이 뚜렷하게 읽혔다. 설하율의 차가운 빙백의 기운, 야설화의 은밀한 그림자 기운이 초당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얘들아. 하지만 지금 가지 않으면 하율이의 단전이 완전히 얼어붙어 파멸할 것이다.’


한시우는 붕대로 칭칭 감긴 검푸른 동상 상처의 손가락을 조심스레 움직였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전신을 타고 올라왔다. 기경폐절(Meridian Rupture)의 몸뚱이는 조금만 움직여도 뼛속까지 시린 극통을 유발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소리 없이 침상에서 내려왔.


그는 소리 없이 움직이는 환영보법(Illusionary Footwork)의 무게 중심 이동을 응용해, 문밖의 제자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초당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어둠이 짙게 깔린 청운봉의 밤공기는 칼날처럼 차가웠다.


초당을 벗어나 약초꾼들의 비밀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을 때, 어두운 바위 그늘 속에서 작은 등불 하나가 일렁였다.


“이 밤중에 그 망가진 몸을 이끌고 천벌의 절벽을 오르겠다고? 진정 미쳤구나, 시우야.”


등불을 든 이는 청운봉의 지형을 평생 누벼온 노련한 약초꾼, 은영파(銀影波) 할머니였다. 그녀는 한시우의 붕대 감긴 손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할머니, 하율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천벌의 절벽 중간 틈새에 자라는 청운영지(Cheongun Yeongji)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의원에게 들었습니다. 그 영약만이 하율이의 폭주하는 빙백마기를 가라앉힐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은영파는 한시우의 흔들림 없는 깊은 눈빛을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저으며 품속에서 낡은 갈고리 밧줄을 꺼내 건넸다.


“천벌의 절벽(Cheonbeol Cliff)은 하늘의 눈이 감시하는 곳이다. 사시사철 먹구름이 끼고 붉은 낙뢰가 쏟아지는 불길한 땅이지. 특히 절벽 중간의 청운영지 자생지(Cheongun-yeongji Habitat)로 가는 길은 바람이 칼날 같아 무공을 익힌 일류 고수들도 떨어져 죽는 곳이야. 내공도 없는 네가 밧줄 하나에 의지해 기어오르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게다.”


“지리적 위험은 심안으로 피해 가겠습니다.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한시우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 밧줄을 받아 쥔 뒤, 지체 없이 청운봉에서 가장 높은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천벌의 절벽 아래에 도달했을 때, 한시우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상 부근은 은영파의 말대로 기괴한 먹구름이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가끔씩 번쩍이는 번갯불이 절벽의 험준한 윤곽을 피처럼 붉게 비추고 있었다.


쿠르릉, 쾅!


귓가를 때리는 뇌성소리에 기경폐절 상태의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전신 경맥이 뒤틀리는 통증에 한시우는 입가를 감싸 쥐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각혈이 터져 나오려 했지만, 그는 억지로 붉은 피를 삼켜냈다.


‘하율이를 위해……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다.’


그는 갈고리 밧줄을 단단한 바위 틈새에 걸고, 오직 맨손과 맨발로 가파른 절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거친 암벽의 표면이 붕대를 감은 동상 상처를 사정없이 긁어댔다. 붕대 틈새로 붉은 피가 배어 나오며 바위에 묻어났지만, 한시우는 멈추지 않았다. 내력이 1푼도 없는 몸뚱이는 매 순간 비명을 질러댔고, 어깨 관절은 당장이라도 빠질 듯한 과부하에 직면해 있었다.


그때였다. 하늘의 먹구름이 비정상적으로 소용돌이치더니, 절벽 정상에서부터 거대한 낙석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머리 위에서 집채만 한 바위들이 무자비하게 떨어져 내렸다. 무공을 익힌 자라면 내력을 전개해 튕겨내거나 신법으로 가볍게 피했겠지만, 한시우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만큼은 심연처럼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심안이 가동되며 떨어지는 낙석들의 궤적과 공기의 흐름이 머릿속에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좌측으로 한 보 반, 무게 중심을 아래로.’


한시우는 환영보법(Illusionary Footwork)의 이치를 응용했다. 내공을 쓰지 않고 오직 신체의 무게 중심을 절묘하게 이동시켜 시각적 착시를 유도하는 보법. 그는 밧줄을 잡은 손을 순간적으로 놓으며 몸을 비틀었다.


스윽!


날카로운 바위 파편이 그의 뺨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바위가 그가 방금 전까지 매달려 있던 자리를 박살 내며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한시우는 떨어지는 반동을 이용해 다시 밧줄을 움켜잡았다. 전신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각혈이 터져 나왔지만, 그는 마침내 절벽 중간의 좁은 바위 틈새, 청운영지 자생지에 발을 디디는 데 성공했다.


그곳은 천지정기가 모여 낙뢰가 쏟아지는 절벽 틈새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신비로운 비경이었다. 거센 바람 속에서도, 바위 틈새에서 영롱한 백색의 빛을 뿜어내는 기이한 버섯 모양의 영초가 눈에 들어왔.


“청운영지……”


하율이의 빙백마기를 정화할 유일한 구명의 영초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한시우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가 영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영초의 줄기를 꽉 쥐고 단숨에 꺾어 올린 바로 그 순간.


쿠구구구구!


청운봉 상공을 뒤덮고 있던 먹구름이 기괴하게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대지가 진동하고, 우주의 거대한 규칙인 천도 감시 임계점(Heavenly Surveillance Threshold)이 작동하며 한시우를 향해 가혹한 경고를 내리기 시작했다.


번쩍!


하늘이 갈라지며, 태고의 마신이 분노한 듯한 거대하고 붉은 낙뢰가 벼랑 끝에 서 있는 한시우의 머리 위를 향해 무자비하게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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