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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통을 죄는 봉쇄, 기발한 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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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초당(淸雲草堂)의 아침은 평화로움을 가장한 폭풍전야와 같았다.


새벽이슬을 머금은 대나무 잎사귀들이 바람에 부딪히며 서늘한 소리를 냈다. 한시우는 침상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가슴팍이 유독 묵직하고 따뜻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칠흑 같은 흑발을 흐트러뜨린 채 그의 오른팔을 꼭 껴안고 잠든 둘째 야설화의 얼굴이 보였다.


어젯밤 오무를 단죄하려다 한시우의 품에 안겨 구원받은 이후, 그녀는 아예 대놓고 스승의 침소에 침입해 잠을 청한 것이었다. 얇은 도포 사이로 전해지는 그녀의 고른 숨결과 따뜻한 체온에 한시우는 곤란한 듯 이마를 짚었다.


‘설화 이 녀석, 아무리 사제지간이라 하나 남녀가 유별하거늘…….’


그가 조심스럽게 팔을 빼내려던 그 순간, 서재와 침실을 구분 짓는 미닫이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스승님, 이른 아침에 드실 천지정기 이슬 차를…….”


차를 받친 쟁반을 들고 들어서던 첫째 제자 설하율의 신형이 우뚝 멈춰 섰다. 은발을 단정하게 빗어 내린 그녀의 투명한 빙백빛 눈동자가 한시우의 침상, 정확히는 그의 팔을 베개 삼아 누워 있는 야설화에게 고정되었다.


스스스스.


순식간에 방 안의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며 바닥 모퉁이에 하얀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설하율의 목소리는 얼음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차가웠다.


“둘째 야설화. 스승님의 침소에서 지금 무슨 추태를 부리는 것이냐.”


그 서늘한 기운에 야설화가 요염하게 눈을 떴다. 그녀는 귀찮다는 듯 한시우의 품에 얼굴을 더 깊이 묻으며 나른하게 웃었다.


“어머, 언니. 아침부터 왜 그리 신경질적이야? 스승님의 품이 너무 따뜻해서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린 걸 어떡해. 부러우면 언니도 옆에 눕던가.”


“이 요망한 년이……!”


설하율의 손끝에서 푸른 한기가 검강처럼 일렁였다. 당장이라도 침상을 얼려버릴 듯한 기세였다. 한시우는 서둘러 몸을 일으키며 가벼운 기침을 토해냈다.


“컥, 컥……!”


기경폐절 상태의 육체가 이른 아침의 급격한 온도 변화와 제자들의 기싸움에 반응해 비명을 지른 것이다. 그 소리에 설하율의 한기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야설화 역시 깜짝 놀라 한시우의 등을 토닥이며 안색을 살폈다.


“스승님! 괜찮으십니까? 제가 내력을 주입해 드리겠습니다!”


“아니다, 설화야. 그저 목이 조금 메었을 뿐이다.”


한시우가 손을 흔들어 제자들을 만류하던 그때, 초당 마당 쪽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두드린 것은 약초 보조 소녀 복순이였다.


“스, 스승님! 큰일 났습니다! 산 아래에 청성파 무사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검문소를 세웠습니다!”


한시우의 눈빛이 순간 예리하게 빛났다. 마침 방 안으로 들어서던 셋째 염초아와 막내 독고란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서렸다.


“검문소라니? 조덕필 장로의 짓이냐?”


복순이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 청성파의 보급 차단이라며, 청운봉으로 올라오는 모든 식량과 생필품, 그리고 오의원님의 약재 수급까지 전부 가로막았습니다! 심지어 산골 평민들이 나물이나 약초를 팔러 내려가는 것조차 '마교의 밀정 혐의가 있다'면서 통행세를 무자비하게 갈취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네 제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기괴하게 일렁였다.


“조덕필…… 그 탐욕스러운 늙은이가 결국 이 청운봉을 말려 죽이려 드는군요.”


설하율의 목소리에 살기가 서렸다. 야설화 역시 어둠 속에서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스승님, 어젯밤 그 소인배 오무를 살려두는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오늘 밤 당장 내려가 검문소의 청성파 무리들을 전부 암살하고 오겠습니다.”


“제 독안개로 검문소 주변을 완전히 부식시켜 버리는 건 어떨까요? 아무도 숨 쉬지 못하게 만들 수 있어요.”


염초아가 손끝에서 보랏빛 독기를 피워 올리며 저돌적으로 제안했다. 독고란 역시 묵묵히 자신의 묵직한 철검 자루를 꽉 쥐었다.


한시우는 제자들의 폭주를 막기 위해 엄격한 표정으로 단상을 내리쳤다.


탁!


“모두 제자리에 앉거라.”


그의 나직한 호통 한마디에, 천하를 뒤흔들 마교의 후예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얌전하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한시우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으로 담으며 천천히 말했다.


“조덕필이 노리는 것이 바로 너희의 그 조급함이다. 우리가 먼저 무력을 써서 청성파 무사들을 해치는 순간, 조덕필은 무림맹에 ‘청운봉에 은거한 역적이 마교의 무공으로 정파의 무사들을 학살했다’고 고발할 명분을 얻게 된다. 그리되면 무림맹의 대규모 토벌대가 이 봉우리를 뒤덮을 터인데, 너희는 그 감당할 수 없는 피바람을 원하는 것이냐?”


제자들은 입술을 깨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한시우는 한숨을 내쉬며 손목의 상처를 매만졌다.


“검을 쓰는 자는 칼날만 보아서는 안 된다. 칼날을 쥔 자의 마음과, 그 칼날이 만들어낼 인과의 흐름을 읽어야 하지. 조덕필의 탐욕은 그 자체로 거대하지만,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품고 있다. 내게 생각이 있으니 너희는 초당을 지키며 수련에 전념하거라.”


한시우의 흔들림 없는 깊은 안광에 제자들은 경외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은 잃었으나, 스승의 지략과 위엄만큼은 그들의 친부인 마교 교주보다도 훨씬 거대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 * *


그날 밤, 대나무 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가 유독 거세게 울려 퍼졌다.


한시우는 심안(Mind's Eye)을 열어 청운봉 기슭의 기 흐름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조덕필의 보급 차단으로 인해 초당의 식량은 일주일 분량밖에 남지 않았고, 제자들의 마기를 다스릴 기초 약재들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한시우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종이에 비밀 기호를 적어 소걸의 개방 연락책인 칠성이에게 은밀히 전달하도록 조치했다.


야삼경(夜三更)이 지났을 무렵, 청운초당 뒷마당의 환영의 대나무 숲 진법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한시우가 진법의 흐름을 일시적으로 열어주자, 자욱한 안개 속에서 두 개의 신형이 소리 없이 초당 서재 안으로 스며들었다.


“형님! 그 삼엄한 청성파의 감시망을 뚫고 들어오느라 똥줄이 타는 줄 알았습니다!”


누더기 옷을 걸치고 대나무 지팡이를 짚은 청년, 개방의 소협 소걸이 풀잎을 뱉어내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온 인물은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노란색 비단 도포를 걸친 여인이었다. 주선상단의 행수, 주선아였다.


“시우 공, 오랜만에 뵙는데 안색이 더 창백해지신 것 같아 제 가슴이 다 아픕니다.”


주선아는 서재에 들어서자마자 한시우의 손을 살포시 맞잡으며 애틋한 눈빛을 보냈다. 그녀의 은은한 분내음이 서재 안을 채웠다.


스스스슥.


그 순간, 서재 천장 구석과 어두운 병풍 뒤편에서 기괴하리만치 차갑고 날카로운 살기들이 주선아의 등을 향해 내리꽂혔다. 설하율의 빙백 한기와 야설화의 암영 기운이 보이지 않는 침묵의 칼날이 되어 주선아의 목덜미를 겨냥한 것이었다.


주선아는 무공이 이류 수준에 불과했기에 그 살기의 정체를 완벽히 인지하지는 못했으나, 순간 오한이 서려 몸을 가볍게 떨었다. 한시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자연스럽게 주선아의 손을 빼내어 찻잔을 쥐여주었다.


“선아 행수,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하셨소. 소걸 너도 고생 많았다.”


“에이, 고생은 무슨요. 그나저나 조덕필 그 늙은이가 미쳐 날뛰고 있더군요. 청운봉으로 들어가는 쥐새끼 한 마리까지 탈탈 털어대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초당 식구들이 굶어 죽을 판입니다.”


소걸이 주막 뒤편 소걸의 개방 분타에서 정제해 온 정보를 털어놓으며 혀를 찼다. 주선아 역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시우를 바라보았다.


“시우 공, 제가 상단의 운송 대원들을 동원해 야밤에 비밀리에 보급품을 밀수하려 했으나, 조덕필이 관청의 주성 감찰관까지 매수하여 주선상단의 마차마저 삼엄하게 수색하고 있습니다. 대놓고 물자를 나르다가는 상단 전체가 마교 동조자로 몰릴 위험이 있습니다.”


두 조력자의 우려 섞인 보고에도 한시우는 그저 찻잔을 입에 대며 평온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선아 행수, 소걸. 조덕필이 보급을 차단하여 승기를 잡았다고 믿고 방심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의 목줄을 끊어버릴 최적의 기회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무공도 없는 형님이 청성파 장로를 어떻게 상대하시려고요?”


소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한시우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조덕필은 겉으로는 정파의 고결한 장로를 자처하며 이단을 척결하겠다고 외치고 있지. 하지만 그가 뒤로는 백련마교의 사신단과 내통하며 청운봉의 희귀 약초를 넘기고, 그 대가로 마교의 불법 무기들을 밀무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


소걸과 주선아가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정파의 명문이라 자처하는 청성파의 장로가 마교와 밀무역을 벌이고 있다니, 이는 무림맹 전체가 뒤흔들릴 대역죄였다.


“시, 시우 공…… 그게 정말입니까? 청성파가 마교와 거래를 하고 있다니요?”


“조덕필과 마교의 밀무역 거래 내역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지만, 그 실질적인 거래 장부와 증거는 조덕필의 심복인 조삼식 집사의 비밀 방 깊숙한 곳에 보관되어 있다. 조덕필은 이번 보급 차단을 통해 청운봉의 약초 채집권을 완전히 독점한 뒤, 마교 사신단과의 거래 규모를 대폭 늘리려는 속셈이지.”


한시우는 심안을 통해 세상의 기운 흐름과 정보를 조합하여 도출해 낸 진상을 명확하게 설명했다. 주선아는 한시우의 막힘없는 추리와 천하 정세를 꿰뚫어 보는 혜안에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시우 공…… 당신은 무공을 잃으셨음에도 여전히 천하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계시는군요. 정말로…… 경이로운 분이십니다.”


주선아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한시우에게 한 걸음 더 밀착했다. 그녀의 노란 비단 소매가 한시우의 어깨에 가볍게 닿았고,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는 한시우를 향한 연모의 빛이 노골적으로 흘러넘쳤다.


콰아아아아!


그 순간, 서재 내부의 공기가 문자 그대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병풍 뒤의 그림자가 비정상적으로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고, 문틈 사이로 푸른 서리가 칼날처럼 뻗어 나왔다. 설하율과 야설화가 질투로 인해 더 이상 마기를 억제하지 못하고 폭주하기 직전의 상태에 도달한 것이었다. 염초아의 독기 주머니마저 미세하게 떨리며 서재 안의 화초들이 시들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 제발 진정하거라…….’


한시우는 등 뒤로 서늘한 식은땀을 흘리며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선아 행수, 조금 가깝소……. 아무튼, 우리가 취해야 할 역공의 판은 이렇소. 주선상단의 주선상단 지점과 개방의 정보망을 연동하여, 조덕필이 안심하고 밀무역 물자를 이동시킬 비밀 경로를 가짜로 흘리는 것이오. 조덕필은 보급 차단으로 우리가 고사당하고 있다고 믿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그 경로를 통해 마교와의 대규모 밀무역을 감행할 것이오.”


소걸이 무릎을 탁 쳤다.


“아하! 조덕필이 밀무역 물품을 움직이는 그 순간을 포착해 거래 장부와 함께 현장을 덮쳐버리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리되면 조덕필은 이단을 옹호한 역적이 아니라, 진짜 마교와 결탁한 대역죄인이 되어 스스로 파멸하게 되겠네요!”


“그렇다. 우리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청성파의 보급 차단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조덕필 가문 전체를 매장할 수 있다. 선아 행수, 이 비밀 교역로를 개설하고 밀무역 정보를 흘리는 역할을 상단에서 맡아줄 수 있겠소?”


주선아는 한시우의 완벽한 지략에 다시 한번 반한 듯, 뺨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 공의 뜻이라면 제 상단의 모든 자금과 경로를 아낌없이 바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조덕필 그 늙은이가 스스로 올가미에 목을 넣도록 완벽한 덫을 놓겠습니다.”


그녀는 말을 마치며 은근슬쩍 한시우의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쳐 얹었다.


바지직!


서재 바닥의 가구 모퉁이가 하얗게 얼어붙어 부서지는 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 한시우는 제자들의 무시무시한 질투 섞인 살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경제적 봉쇄를 돌파할 기발한 역공의 판은 완벽하게 완성되었으나, 그의 침실과 초당의 밤은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하고 뜨거운 질투의 불길로 타오를 것이 분명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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