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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슭의 밀회, 사냥개의 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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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을 붙잡힌 염초아의 눈동자가 주황빛 불꽃으로 타오르는 순간, 주막의 낡은 목조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어라라, 두 사매께서 대낮부터 마당에서 비무라도 하시는 겐가?”


주막 문틈 사이로 불쑥 나타난 것은 누더기 옷을 대충 걸치고 입에 풀잎을 문 사내였다. 개방의 소협이자 한시우의 의형제인 소걸이었다. 그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팽팽하게 당겨진 마당의 침묵을 깨뜨리자, 야설화는 흥이 깨졌다는 듯 가볍게 쯧 소리를 내며 발끝을 거두었다. 발목을 옥죄던 그림자가 연기처럼 스러지자 염초아는 씩씩거리며 한시우의 뒤편으로 숨었다.


“스승님! 설화 언니가 대낮부터 마공을 썼어요! 제 발목을 부러뜨리려고 했다고요!”


“초아야, 마공이 아니라 가벼운 장난이었단다. 그리고 설화 너도 하산하자마자 사매를 괴롭히면 안 되지.”


한시우는 허허실실 웃으며 두 제자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절반쯤 은빛 백발로 변해버린 그의 머리카락이 아침 햇살을 받아 쓸쓸하면서도 고결하게 빛났다.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력을 아낌없이 바친 스승의 흔적. 그 백발을 보는 순간, 야설화와 염초아는 언제 으르렁거렸냐는 듯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얌전해졌다. 스승의 몸에 더 이상 마음의 짐을 얹어줄 수는 없다는 본능적인 죄책감 때문이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소걸 형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한시우는 제자들을 데리고 주막 안쪽의 은밀한 밀실로 들어섰다. 퀴퀴한 먼지 냄새와 오래된 탁주 냄새가 섞인 밀실 안에서 소걸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문을 걸어 잠갔다.


“의제, 청운봉을 무사히 내려와 다행이네만 상황이 아주 좋지 않네.”


소걸은 품속에서 묵직한 검은 철패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표면에 기묘한 기문둔갑의 문양이 새겨진 그것은 지하 암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필수적인 ‘암시장 출입패(Black Market Pass)’였다.


“이게 자네가 부탁한 출입패네. 설지화 행수와 미리 연락을 취해 두었으니 암시장 내부로 진입하는 것은 문제없을 걸세.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기슭 마을 전체에 깔린 사냥개들이라네.”


“사냥개라니요?”


염초아가 바짝 긴장하며 만독주머니를 손으로 꼭 쥐었다. 소걸은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사천당가의 젊은 천재 독수, 당철우가 이끄는 추격대라네. 자네들 청운봉 주변에서 흘러나온 만독(萬毒)의 기운을 감지하고 기어이 이곳까지 냄새를 맡고 내려왔어. 당철우 그놈은 당가 내부에서도 독기 감지 능력이 가장 탁월한 놈일세. 특수한 만독 나침반을 들고 다니며 기슭 마을의 주막들을 샅샅이 뒤지고 있지. 만약 초아 소저의 만독마공 기운이 조금이라도 그놈의 코끝에 걸린다면, 암시장 입구에 닿기도 전에 포위당할 걸세.”


그 말을 듣는 순간, 염초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자신의 저주받은 만독마체(All-Poison Body)가 결국 스승의 여정을 가로막는 짐이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스승님…… 저 때문에…….”


“초아야, 네 잘못이 아니다.”


한시우는 염초아의 떨리는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자 초아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한시우는 기경폐절(Meridian Rupture) 상태의 심장 통증을 억누르며, 약초 감별안(Herb Discernment)을 발동해 주막 내부의 약재들을 훑어보았다.


‘당철우가 독기 측정 나침반을 쓴다면, 그 감지 원리를 역이용해 속여야 한다.’


한시우는 주막 구석에 방치된 부패한 지치 뿌리와 축축한 유황 가루, 그리고 마차에서 챙겨온 백엽청목즙의 찌꺼기를 심안으로 관찰했다. 그의 머릿속에 약초의 성질과 배합 비율이 입체적으로 계산되기 시작했다.


“소걸 형님, 이 주막의 화로에 지금 내가 주는 약재들을 넣어 태워 주십시오. 아주 퀴퀴하고 썩은 냄새가 나도록 말입니다.”


“응? 이 썩은 뿌리들을 태운다고? 냄새가 아주 고약할 텐데?”


“당철우의 눈과 코를 가릴 완벽한 미끼가 될 것입니다.”


한시우가 지시한 대로 소걸이 화로에 썩은 지치 뿌리와 유황을 섞어 태우자, 곧 밀실 안은 물론 주막 전체에 썩은 달걀과 곰팡이가 뒤섞인 듯한 지독하고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일반적인 마도의 음성 독기와 매우 흡사하지만, 실제로는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는 유기적 부패의 냄새였다. 염초아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미세한 만독마공의 흔적을 완벽하게 덮어버릴 거대한 장막이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대비를 마친 지 채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쾅!


주막 밀실의 낡은 목조 문이 거칠게 부서져 나가며 매운 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흐음, 냄새가 아주 지독하군. 쥐새끼들이 여기 숨어 있었나?”


먼지 구름을 헤치며 나타난 사내는 온몸에 검은 가죽 가방을 주렁주렁 매달고, 눈동자에서 기괴한 보랏빛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천당가 제일의 젊은 독공 천재, 당철우였다. 그의 손에는 은빛으로 정밀하게 세공된 만독 나침반이 들려 있었는데, 침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주막 내부의 기운을 측정하고 있었다.


당철우는 방 안의 매캐한 연기를 들이마시며 코를 찡그렸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밀실 중앙에 서 있는 한시우와 그의 뒤에 숨은 염초아를 차갑게 꿰뚫었다.


“분명 당가의 비전 탐지기에 걸린 만독의 기운은 이 근처였다. 그런데 이 방 안의 냄새는…… 단순한 약재의 썩은 내음인가, 아니면 만독마공의 흔적인가?”


당철우가 살벌한 살기를 뿜어내며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검게 물들어 있었는데, 당가 비전의 암기 백독침을 언제든 사방에 날릴 준비가 되어 있음을 뜻했다. 야설화의 발끝에서 다시 한번 칠흑 같은 그림자가 스르륵 뻗어 나가려 하자, 한시우는 그녀의 손을 조용히 잡으며 제지했다. 내력이 전혀 없는 병약한 몸이었지만, 그의 깊고 흔들림 없는 눈빛은 제자들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한시우는 백발을 가볍게 휘날리며 당철우의 앞으로 걸어 나갔.


“사천당가의 천재께서 이런 초라한 주막의 밀실까지 찾아오시다니 영광이군요.”


“입 닥쳐라, 백발의 약초꾼 놈.”


당철우가 차갑게 읊조리며 한시우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의 손끝에서 풍기는 미세한 독기가 한시우의 뺨을 스쳤으나, 한시우에게 흐르는 신선의 피는 그 독기를 아무런 반응 없이 흘려보냈다. 당철우는 한시우의 기경폐절 상태를 단숨에 알아채고 비웃음을 흘렸다.


“단전이 완전히 깨진 폐물 서생 주제에 감히 내 앞을 가로막는 거냐? 내 나침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 방 안에 분명 만독마체의 흔적이 존재해. 당장 비키지 않으면 네놈의 심장 맥로를 독침으로 꿰뚫어 버리겠다.”


당철우가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만독 나침반을 한시우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은빛 침이 팽이처럼 돌며 보랏빛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한시우는 목이 졸리는 와중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초연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약초 감별안이 당철우의 나침반 내부 구조와 그가 사용하는 독맥귀원결의 모순을 완벽하게 읽어내고 있었다.


“천재 독수라는 명성이 아깝군요, 당철우 소협. 당가의 비전 침술과 독경을 익히셨으면서, 정작 자연의 순리와 약재의 부패조차 구분하지 못하시다니 말입니다.”


“뭐라?”


당철우의 눈매가 사납게 찌푸려졌다. 한시우는 담담한 어조로 당가 독문의 핵심 이론을 조목조목 읊조리기 시작했다.


“당가독경 제삼 장에 이르기를, ‘음성 기운이 극에 달한 독은 대기 중의 습기와 만나면 자색의 기류를 형성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소협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자색 기류는 만독의 기운이 아닙니다. 이 주막 화로에서 타오르는 부패한 지치 뿌리의 음기와 축축한 유황 가루가 만나 일어난 단순한 화학적 부패 반응일 뿐이지요. 당가의 정밀한 탐지기가 이 하찮은 썩은 내음에 교란당해 길을 잃은 것도 모른 채, 엉뚱한 약초꾼을 겁박하고 계시다니…… 참으로 가소롭지 않습니까?”


“이, 이놈이……!”


당철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물들었다. 한시우가 제시한 당가독경의 구절과 약재 배합 이론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했기에, 독공에 미친 천재인 당철우로서는 반박할 말조차 찾지 못했다. 자신의 지식이 하찮은 폐물 서생에게 농락당했다는 굴욕감이 그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그럼에도 당철우는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멱살을 쥔 손가락에 독기를 가득 실으며 한시우를 더 세차게 밀어붙였다.


“하찮은 말재주로 나를 속이려 들지 마라! 이 방 안에 흐르는 만독의 기운은 분명 실재한다!”


당철우가 독기 측정기를 들이대며 한시우의 멱살을 잡으려 하자, 염초아의 눈빛이 스승을 지키기 위해 살기로 물들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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