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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봉의 고요한 아침과 숨겨진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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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봉의 아침은 언제나 자욱한 안개와 서늘한 대나무 숲의 향기로 시작된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자리 잡은 청운초당(淸雲草堂)은 세상의 풍파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신비로운 안식처였다. 마당 가득 널려 있는 건조대 위에는 푸른 약초들이 이른 아침의 이슬을 머금은 채 싱그러운 내음을 풍기고 있었다.


한시우는 창백한 안색을 가다듬으며 가볍게 기침을 토해냈다. 과거 정파 제일의 천재 검사로 이름을 날렸던 그였지만, 비열한 음모에 휘말려 기경팔맥이 완전히 파괴된 기경폐절(Meridian Rupture)의 몸이 된 지도 벌써 수년이 흘렀다. 내력 한 푼 쓸 수 없는 병약한 육체였으나, 그의 맑고 깊은 눈망울만큼은 여전히 심연처럼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스승님, 또 아침 이슬을 맞으며 서 계십니까? 몸도 성치 않으신 분이 매번 고집을 부리십니다.”


대나무 문이 열리며 맑고 차가운 목소리가 마당의 정적을 깨뜨렸다. 눈부신 은발을 길게 늘어뜨린 초절정 미소녀, 첫째 제자 설하율이었다. 그녀는 투명하리만치 하얀 손으로 정성스럽게 우려낸 따뜻한 아침 이슬 차를 한시우에게 대령했다. 차가운 빙백의 눈동자 속에는 오직 스승 한시우를 향한 깊은 염려와 맹목적인 온기가 서려 있었다.


“하율이로구나.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아침 공기가 맑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을 뿐이다.”


한시우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받아들자, 하율의 은빛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스승의 손가락 끝이 살짝 닿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한시우는 눈치채고 있었다. 기경팔맥은 막혔지만, 만물의 기 흐름과 상대방의 미세한 감정 상태까지 꿰뚫어 보는 심안(Mind's Eye)이 극대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 언니만 치사하게 스승님께 아침 차를 대령하는 건가요?”


그때, 그림자 속에서 연기처럼 스르륵 나타난 둘째 야설화가 요염하게 웃으며 한시우의 곁으로 밀착했다. 칠흑 같은 흑발에 붉은 입술, 매혹적인 고양이 같은 눈매를 지닌 그녀는 은근슬쩍 한시우의 도포 자락을 붙잡으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주었다. 손끝이 그의 가슴팍에 닿을 때마다 야설화의 눈빛에 깃든 어둠의 마기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품은 그녀에게 한시우의 품은 세상 유일한 구원의 성역이었다.


“설화 너, 또 경박하게 스승님께 몸을 밀착하는구나. 뒤로 물러서지 못할까?”


설하율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내렸고,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불꽃이 튀었다. 일상적인 캣파이트의 시작이었다. 마당 구석에서는 셋째 염초아가 주황빛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쭈뼛거리고 있었다. 온몸에 치명적인 독기가 흐르는 만독마체의 소유자인 그녀는 자신의 독기가 스승에게 해가 될까 두려워 늘 한 걸음 물러서서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초아야, 이리 오너라. 네 몸의 기운이 또 뒤틀렸구나.”


한시우가 다정하게 부르자 염초아의 얼굴이 단숨에 밝아졌다. 한시우는 품속에서 주조 대가 철기우가 제작한 신비로운 은침 세트인 청운침통을 꺼냈다. 그는 기경폐절의 통증을 억누르며 염초아의 손목 맥점을 짚고 가볍게 은침을 놓아 뒤틀린 기운을 다스려 주었다. 스승의 따뜻한 손길이 닿는 순간, 초아의 눈동자에는 겉잡을 수 없는 애정과 독점욕이 싹텄다.


마지막으로 넷째 독고란이 감정 없는 인형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와 말없이 한시우의 소매 끝자락을 꽉 쥐었다. 강시마체로 인해 감정이 메말랐던 막내였지만, 한시우의 보살핌 아래 서서히 인간의 온기를 배워가며 그녀만의 묵묵하고도 무서운 집착을 키워가고 있었다.


네 명의 미소녀 제자들. 세상 사람들은 그녀들을 두고 천하를 공포에 빠뜨릴 백련마교 교주의 딸들이자 파멸의 마체들이라 부르며 두려워하겠지만, 한시우에게는 그저 상처받고 버림받은 불쌍한 아이들이자 자신이 끝까지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소중한 제자들이었다.


“오늘 나는 오의원에게 약초를 전해주고 생필품을 사러 산을 내려갔다 올 생각이다. 너희는 초당을 지키며 검결을 복습하고 있거라.”


한시우가 채집한 희귀 약초 자루를 짊어지며 말하자, 네 제자의 안색이 동시에 어두워졌다. 단 한 순간도 스승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그녀들의 비틀린 분리불안이 꿈틀거렸다.


“스승님, 제발 저희 중 한 명이라도 동행하게 해주십시오. 몸도 불편하신데 혼자 가시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설하율이 애절하게 간청했으나, 한시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현재 청운봉 주변은 정파 청성파의 삼엄한 감시망이 옥죄고 있었다. 마교의 기운을 품은 제자들이 동행했다가 정체가 탄로 나기라도 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파멸이 찾아올 것이다.


“걱정 말거라. 이 근방의 산길은 내 손바닥 보듯 훤하니 금방 다녀오마.”


한시우는 제자들의 머리를 한 명씩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안심시킨 뒤, 청운초당을 나섰다. 등 뒤로 쏟아지는 제자들의 집착 어린 시선이 척추를 타고 묵직하게 전해졌다.


산을 내려가는 길은 가팔랐고, 기경폐절의 육체는 금세 비명을 질렀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밀려왔지만 한시우는 초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청운봉으로 통하는 유일한 산길목에 무단으로 설치된 목조 바리케이드, 청운봉 검문소에 다다랐을 때였다.


“어이, 약초꾼 한 씨 아닌가? 오늘도 쓸 만한 약초를 잔뜩 짊어지고 내려가시는군.”


비열한 음성과 함께 검문소 그늘에서 사내 하나가 걸어 나왔다. 청성파의 하급 순찰대원이자 비열한 수문장 오무(오무)였다. 그는 술 냄새를 풍기며 낡은 철검을 툭툭 치고 있었다. 강자에게는 비굴하고 약자에게는 군림하는 비열한 소인배인 오무는 병약한 한시우를 볼 때마다 통행세를 갈취하며 괴롭히는 재미로 사는 자였다.


“오 무사님, 안녕하셨습니까. 의원님께 배달할 평범한 산약초들입니다.”


한시우가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오무의 눈빛에는 탐욕과 심술이 가득했다.


“평범한 약초인지 아닌지는 내가 확인해 봐야지. 그리고 청성파의 영토를 통과하려면 정당한 통행세를 내야 한다는 규칙을 잊은 건 아니겠지? 은화 세 개를 내놓으시게.”


은화 세 개. 평범한 약초꾼이 한 달 동안 피땀 흘려 일해야 겨우 모을 수 있는 터무니없는 거금이었다. 조덕필 장로의 지시를 빙자한 명백한 갈취였다.


“오 무사님, 은화 세 개는 너무 과합니다. 이번 약초를 팔아도 그 절반도 만지지 못합니다. 부디 처지를 굽어살펴 주십시오.”


“이런 씨부랄, 감히 청성파의 법률에 토를 달아? 기경팔맥이 폐절된 폐물 주제에 대협 노릇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지?”


오무는 한시우의 약초 자루를 거칠게 빼앗아 바닥에 내팽개쳤다. 약초들이 흙바닥에 짓밟히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시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심안(심안)이 발동하며 오무의 조잡한 기 흐름과 신체 맥점이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하단전의 불안정한 양기, 견정혈과 명문혈의 허점. 비록 내력은 없으나 품속의 은침 한 대만 정확히 꽂아 넣어도 오무를 평생 폐인으로 만들 수 있는 12가지 방법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한시우는 참아 넘겼다.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청성파의 장로 조덕필에게 빌미를 주게 되고, 결국 청운초당에 숨어 있는 제자들의 신변이 위험해진다.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 그는 철저히 무력한 약초꾼으로 남아야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한시우가 짓밟힌 약초를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순간, 오무가 비열하게 웃으며 그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어디서 훈계질이야, 이 병신 같은 게!”


오무가 내력을 실어 한시우를 바닥으로 세차게 밀쳐버렸다. 기경폐절의 육체는 낙법조차 제대로 취하지 못했다. 한시우의 몸이 거친 자갈밭 위로 사정없이 쓸려 내려갔다. 콰당탕 소리와 함께 그의 손목 가죽이 찢어지며 붉은 선혈이 흘러나왔고, 충격이 파괴된 단전을 자극하여 가슴 속에서 끓어오른 기운이 한 줄기 붉은 각혈로 입술을 적셨다.


“퉤, 재수 없게 피는 흘리고 난리야. 가진 돈 다 내놓고 꺼져!”


오무는 한시우의 품을 뒤져 몇 안 되는 동전들을 강탈한 뒤, 짓밟힌 약초 자루를 발로 차버리며 유유히 검문소 안으로 사라졌다.


한시우는 떨리는 손으로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부서진 몸을 일으키려던 그 순간, 기묘한 오한이 청운봉의 안개를 타고 스며들었다. 심안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 세상의 기운이 아닌, 지독하고도 처절한 심연의 살기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요동치고 있음을.


한시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산길 옆 울창한 대나무 숲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스승이 걱정되어 몰래 뒤를 쫓아왔던 둘째 제자, 야설화가 서 있었다.


대나무 잎 사이로 스며든 희미한 빛줄기가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평소의 요염하고 장난기 가득했던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스승의 손목에서 흐르는 붉은 피와 입가의 선혈을 목격한 야설화의 눈동자는 깊고 차가운 칠흑빛의 암영마기(Dark Shadow)로 거칠게 일렁이며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의 등 뒤로 뻗어 나온 칠흑 같은 그림자들이 마치 살아있는 괴수처럼 요동치며 오무가 사라진 검문소를 향해 은밀하게 뻗어 나가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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