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야근 수당을 찾아서
독고패가 꿇어앉은 바닥 뒤로, 이현은 조태독의 비밀 금고 열쇠를 쥔 채 다음 단계의 노조 헌장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쇳소리를 내며 이현의 창백한 손바닥 위로 떨어진 열쇠꾸러미는 지극히 묵직했다. 차가운 쇠붙이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으나, 이현의 내면은 오히려 전생의 뜨거웠던 구조조정 현장처럼 냉철하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전생의 기억 속 김 부장은 항상 입에 침을 튀기며 말했다.
‘이 대리, 조직을 지배하는 건 칼이나 주먹이 아니야. 자금줄이지. 예산의 흐름을 통제하는 자가 결국 모든 인사권과 지휘권을 쥐는 법이다.’
그 지독한 꼰대의 가르침은 마교라는 피비린내 나는 야만의 땅에서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용되는 절대적인 진리였다. 이현은 휠체어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댄 채, 안경 너머로 잔뜩 겁에 질린 독고패와 그 뒤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조태독을 응시했다.
“조평식 조장님, 그리고 간수 여러분.”
이현이 기침을 가볍게 콜록거리며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나약하기 그지없었으나, 그 안에 담긴 행정적 무게감은 복도를 가득 채운 간수들의 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이 열쇠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귀하들이 지난 10년간 차가운 지하 동굴 바닥에서 먼지를 마시며,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을 견디고 보초를 선 대가…… 즉, 귀하들의 피와 땀이 서린 ‘야근 수당’이 잠겨 있는 금고의 열쇠입니다.”
“야, 야근 수당……?”
조평식이 침을 꿀컥 삼키며 열쇠꾸러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그 낡은 쇠열쇠들이 마치 천마조조가 남긴 전설의 영약처럼 빛나 보였다.
“그렇습니다. 복식부기 장부 대조 결과, 조태독 간수장과 독고패 부간수장은 귀하들의 야간 특근 수당과 보건 단련비를 장부상으로는 교단 본산에서 꼬박꼬박 청구해 수령해 왔습니다. 하지만 실제 귀하들의 주머니에 들어온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곰팡이 핀 짚단과 썩은 보리차뿐이었지요. 나머지 금화 5만 냥은 전부 저 열쇠가 열어젖힐 비밀 금고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습니다.”
이현의 깐깐한 폭로가 이어지자, 복도에 도열해 있던 간수들의 안색이 급격히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자신들이 밤마다 만성 요통과 안구 건조증에 시달리며 목숨 걸고 감옥을 지키는 동안, 상사라는 자들이 자신들의 치료비와 수당을 가로채 배를 불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직관적인 수치로 깨달은 것이다.
“이, 이 빌어먹을 도둑놈들……!”
“우리가 밤새 동사할 뻔하며 보초를 설 때, 저놈들은 우리 돈으로 금반지를 끼고 있었단 말인가!”
간수들의 웅성거림이 점차 거대한 분노의 해일로 변해갔다. 위기를 느낀 조태독이 혈살마공의 붉은 기운을 뿜어내며 채찍을 바닥에 내리쳤다. 쿠웅! 가죽 채찍이 바닥을 때리며 굉음을 냈으나, 이미 이현의 가스라이팅에 정서적으로 동화된 간수들은 이전처럼 겁을 먹지 않았다.
“이놈들이 미쳤구나! 감히 누구에게 칼을 겨누느냐! 마교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저 병약한 황자 놈의 세작질에 놀아나다니! 당장 무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본산의 원로원에 보고하여 네놈들의 삼대를 멸하겠다!”
조태독의 공포 정치식 협박이 떨어지자, 몇몇 하급 간수들이 주춤하며 눈치를 보았다. 마교의 절대적인 위계질서와 원로원의 무력은 여전히 그들에게 거대한 장벽이었다.
‘그럴 줄 알았지. 구시대적 공포 공작에는 더 정교한 법리적 명분과 집단 연대의 힘으로 맞서야 하는 법.’
이현은 비서 서필에게 눈짓을 보냈다. 서필은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온 상태에서도 눈치를 빠르게 채고, 이현이 특별실 침대 밑에 숨겨두었던 두꺼운 가죽 서류철을 정중히 받들어 대령했다. 그것은 송 노인이 밤새 유려한 한문 율법 조항으로 번역하고 이현이 붉은 인장을 찍어 완성한 ‘흑뢰 노동조합 공식 헌장 서류철’이었다.
이현은 휠체어 바퀴를 굴려 간수들의 시선이 가장 잘 닿는 중앙 광장 단상 앞으로 나아갔. 그리고 ‘3단계: 여론 선동 및 가스라이팅 전문가’의 경지를 발동시켰다. 그의 등 뒤로, 마치 전생의 HR 아카데미 수석 강사 시절 풍기던 범접할 수 없는 지적 카리스마의 오라가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간수 여러분, 흔들리지 마십시오. 조 간수장이 말하는 ‘기강’과 ‘원로원의 징벌’은 모두 허상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지금 마교의 진짜 율법을 위반하고 배임을 저지른 자는 저기 서 있는 조태독입니다.”
이현이 헌장 서류철을 펼쳐 들고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천마신교의 위대한 초대 천마조조께서 남기신 신조 제3조를 아십니까? ‘교도는 교단을 위해 온몸을 불사른다’라 하셨습니다. 이 구절의 진정한 행정학적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단은 교도들의 육체적 완전성과 노동력을 보존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방치해 과로사하게 만드는 것은 교단의 자산을 무단으로 훼손하는 심각한 배임죄라는 뜻입니다!”
간수들이 멍하니 이현을 바라보았다. 천마신교의 피비린내 나는 교리가 이현의 입을 거치자, 지극히 합리적이고 현대적인 노동법적 의무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 조태독은 귀하들에게 무제한 대기 근무를 강요하고, 혹한기 야외 보초 시 최소한의 방한 장비조차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천마조조의 뜻을 정면으로 위배하여 교단의 인적 자원을 좀먹는 야만적인 착취입니다! 귀하들이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지 않고 이대로 일하다가 쓰러진다면, 그것이야말로 교단에 대한 불충이자 배임에 동조하는 행위입니다!”
“불충…… 배임……!”
조평식의 눈이 크게 떠졌다. 평생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가혹한 노동이, 사실은 자신들이 바보같이 착취당해 교단의 자산을 낭비하던 죄악이었다는 정교한 가스라이팅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우리가…… 우리가 바보같이 당하고 있었던 것이로군!”
“맞습니다! 야근 수당 없는 노동은 야만입니다!”
이현은 격정적으로 외치며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그의 병약한 폐가 한계에 달해 격렬한 기침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쿨럭……!”
창백한 입술 사이로 붉은 핏방울이 미세하게 튀었다. 서필이 비명을 지르며 ‘특제 이중 가습 젖은 수건’을 들고 달려와 이현의 코와 입을 감쌌다.
“위원장님! 더 이상 말씀하시면 진기가 다해 급사하십니다! 제발 진정하십시오!”
이현은 수건을 밀쳐내며, 흔들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간수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과 핏기 없는 주먹은, 마치 간수들의 권익을 위해 목숨을 바쳐 부르짖는 고결한 성인(聖人)처럼 보였다.
“나는…… 괜찮습니다, 서 비서. 내가 기침을 하다가 피를 토해 쓰러질지언정, 이 차가운 지하 동굴에서 평생 허리가 굽은 채 썩어가는 동지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동지 여러분, 단결하십시오! 스스로의 허리 건강과 정당한 야근 수당을 위해, 이 ‘간수 교대 근무 및 안전보건 행동강령’에 서명하고 우리의 권리를 되찾으십시오!”
그 처절하고도 깐깐한 연설에 거친 마교의 간수 무사들이 일제히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위원장님……! 우리 부모 형제도 내 허리가 아픈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거늘, 황실에서 온 인질 황자님께서 우리를 위해 피를 토해가며 부르짖으시다니……!”
“야근 수당 없는 노동은 야만이다! 우리는 위원장님을 따르겠다!”
“노동조합을 결성하라!”
분노와 감격이 뒤섞인 함성이 흑뢰 감옥의 천장을 흔들었다. 이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아, 완벽하게 걸려들었군. 이제 이 200명의 무사들은 나를 지키기 위해 조태독의 목에 칼을 겨눌 완벽한 인간 방패가 되었다.’
이현은 서필에게 수신호를 보내 미리 준비해 두었던 붉은 비단 완장들과 ‘가죽 허리 보호대’를 간수들에게 배부하게 했다. 간수들은 일제히 팔에 붉은 완장을 차고 허리에 인체공학적 보호대를 단단히 조이며 스스로 ‘흑뢰 간수 노동조합’의 조합원임을 선포했다.
조태독이 폭발하여 부하 사법대원들에게 소리쳤다.
“사법대원들은 뭐 하느냐! 저 미친 황자 놈과 반역도당들을 당장 처단해라!”
하지만 사법대원들마저 이미 가슴속에 붉은 완장을 만지작거리며 슬금슬금 조태독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들도 매일 야근에 시달리며 허리 통증을 호소하던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노조 부위원장으로 추대된 조평식이 늠름하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가슴에는 ‘노조 부위원장’이라 적힌 선명한 붉은 완장이 빛나고 있었고, 손에는 확성기 역할을 하는 묵직한 청동 나팔이 들려 있었다.
조평식이 청동 나팔을 입에 대고 우렁차게 불었다. 뿌우우우-!
그 장엄한 나팔 소리와 함께, 조평식이 사자후를 토해냈다.
“조합원 전원 들어라! 오늘부로 우리는 조태독 간수장의 부당한 아침 조회 명령을 전면 거부한다! 전원 헌장에 명시된 휴식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대기실과 휴게실로 이동한다! 노동조합의 힘을 보여주자!”
그 선언과 함께, 200명의 간수들이 일제히 조태독을 지나쳐 이현이 설계한 아늑한 휴게실을 향해 질서정연하게 행진하기 시작했다. 조태독이 혼자 남아 채찍을 휘두르며 절규했으나, 그 누구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마교 역사상 최초의 노동조합이 공식 결성되며, 조태독의 무자비한 지휘 체계가 밑바닥부터 처참하게 붕괴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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