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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의 신과 10분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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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십시오! 간수장님이 시켰습니다!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비급을 침상 밑에 넣었을 뿐입니다! 억울합니다!”


흑뢰 감옥 제3호 특별실 앞 복도. 멍석에 돌돌 말린 채 바닥을 뒹굴던 하급 간수 최두만의 비명소리가 음침하고 습한 지하 동굴의 벽면을 사정없이 때렸다.


그의 사방을 둘러싼 간수 노조원들의 눈빛은 서슬 퍼런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조평식을 필두로 한 베테랑 간수들은 이현이 하사한 단단한 ‘가죽 허리 보호대’를 손에 쥔 채, 최두만의 엉덩이를 향해 가차 없는 매질을 퍼부었다. 퍽! 퍽! 팍!


“이 비열한 밀고자 놈! 감히 위원장님의 방에 불결한 오염물을 밀반입해 우리 감옥의 위생 등급을 깎아 먹으려 해?”


“우리가 어떻게 얻어낸 유황 비누와 따뜻한 보리차인데, 네놈의 얄팍한 음모 때문에 방역권을 빼앗길 뻔했잖아! 오늘 아주 먼지 나게 털어주마!”


가죽 허리 보호대의 묵직한 타격음이 복도를 울릴 때마다 최두만은 단발마의 비명을 질렀다. 삼류 무공을 익혔다고는 하나, 단결된 노조원들의 집단 매질 앞에서는 내공이고 뭐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이미 동료 간수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혀 멍석말이를 당하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해 있었다.


그 아수라장의 한가운데, 이현은 휠체어에 앉아 칼같이 세워진 흰색 도포 깃을 매만지며 차분하게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깃털펜이 가볍게 회전했다.


이현의 시선은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넋이 나간 간수장 조태독에게로 향했다. 조태독의 손에는 전날 밤 최두만이 숨겨두었던, 하지만 지금은 끓는 유황 온수에 완벽히 삶아져 글자 한 톨 남지 않은 하얀 무지 백지 뭉치가 들려 있었다. 은은한 민트 향과 유황 비누의 뽀얀 냄새가 풍기는 백지를 든 조태독의 손이 덜덜 떨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분명 혈혼적멸공의 구결이 적혀 있던 비급이었거늘…….”


조태독의 중얼거림에 이현은 깐깐한 미소를 지었다.


‘무식한 마두 놈. 아무리 강력한 마공 비급이라 해도 결국 종이와 먹물로 만들어진 유기 오염 물질일 뿐이다. 100도씨의 끓는 물과 계면활성제가 가득한 유황 비누액 앞에서는 화학적으로 분해되어 하수구로 흘러내려 가는 것이 우주의 물리 법칙이지.’


이현은 가볍게 기침을 토해내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콜록…… 조 간수장. 함정 수사를 기획하신 용기는 가상하나, 방역 수칙에 따른 위생 소독 절차를 무시한 결과가 참담하군요. 역모의 증거라며 들이미신 것이 향기로운 백지 뭉치라니, 본산의 감찰부에 이 사실이 보고되면 귀하의 지능 지수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것입니다.”


“크으으윽……! 이 비열한 황자 놈이……!”


조태독이 뒷목을 잡고 비틀거렸다. 자신의 필살 카드였던 역모 함정이 이현의 지독한 위생 강박증과 방역 규정이라는 방패 앞에 완벽히 무력화된 것이다.


하지만 이현의 계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전생에 대한민국 대기업에서 인사 관리와 구조조정을 전담하던 HR 실장 출신인 그였다. 적의 공격을 방어했다면, 즉시 적의 가장 치명적인 목줄을 쥐고 흔드는 것이 경영학의 기본이다.


‘조태독이 권력을 회복하기 위해 다음으로 취할 행동은 뻔하다. 감옥의 예산과 자금줄을 쥐고 흔들며 간수들을 돈으로 회유하려 하겠지. 그렇다면 내가 먼저 그 자금줄을 털어버려야 한다.’


이현은 휠체어 바퀴를 굴려 특별실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늙은 서기 사마경에게 다가갔다. 사마경은 이현이 보여준 복식부기와 현대식 결산 그래프에 영혼까지 감복하여, 이미 조태독의 눈을 피해 흑뢰 감옥의 비밀 행정 장부를 빼돌려 품에 안고 있었다.


“사마 서기. 준비한 자료를 대령하십시오.”


이현의 깐깐한 명령에 사마경은 극진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며 품속에서 두꺼운 가죽 장정 장부를 바쳤다.


“처장님, 여기 조태독 간수장과 부간수장 독고패가 지난 10년간 기록해 온 흑뢰 감옥의 공식 재무 장부와 비밀 내역서 사본입니다. 아주 난잡하고 위장되어 있어 해독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때, 복도 끝에서 기름진 얼굴에 비열한 미소를 띤 사내가 걸어 들어왔다. 조태독의 친척이자 부간수장인 독고패였다. 그는 최두만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들먹거리며 이현을 비웃었다.


“흐흥, 황자 나부랭이가 감히 감옥의 장부를 들여다보겠다고? 가소롭구나! 마교의 재무 장부는 일반 한문으로 적힌 것이 아니다. 숫자의 배열 속에 독특한 마기의 배치가 숨겨져 있어, 우리 가문의 비전 심법을 익히지 않은 자가 장부를 보면 머리가 깨지는 고통을 겪을 것이다. 무공도 없는 유리몸 주제에 감사라도 하겠다는 거냐?”


독고패의 도발에 조태독 역시 정신을 차리고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하하하! 맞다! 독고패 부간수장이 작성한 장부는 본산의 재무 장로들조차 해독하는 데 수개월이 걸리는 정밀한 물건이다. 네놈이 단 1푼의 오차라도 찾아낼 수 있다면 내 내성 관문의 통행세를 면제해 주마!”


그들의 비웃음 속에서 이현은 조용히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고 칠판 역할을 하는 대나무 판을 방 한가운데에 세우고 분필을 쥐었다.


‘숫자의 배열 속에 마기의 배치? 지랄하고 있네. 전형적인 삼중 장부와 역분식회계(window dressing)의 조잡한 위장술일 뿐이다. 대기업 감사 시즌마다 수십억 대의 해외 비자금 세탁 장부를 털어대던 내 눈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으냐?’


이현의 머릿속에서 특수 능력인 ‘10분 결산 감사안’과 ‘복식부기 장부 작성법’이 동시에 가동되었다.


스르륵, 바스락.


이현의 창백한 손가락이 가죽 장부의 페이지를 초고속으로 넘기기 시작했다. 그의 안광이 난잡하게 얽힌 한자 숫자들 사이를 번개처럼 관통했다. 깃털펜이 허공을 가르며 장부 위에 빨간 동그라미를 치기 시작했다.


“독고패 부간수장. 귀하가 작성한 이 장부는 정밀한 마공의 배치가 아니라, 초등학교 산수 수준의 조잡한 분식회계에 불과합니다. 차변(Debit)과 대변(Credit)의 일치라는 복식부기의 가장 기초적인 규칙조차 지켜지지 않았군요.”


“무, 무어라? 차변? 대변이 무엇이냐!”


독고패가 당황하여 소리쳤다. 이현은 대나무 칠판에 분필로 거대한 ‘T’ 자 모양의 도표를 그렸다.


“쉽게 설명해 드리지요. 자산의 증가와 비용의 발생은 왼쪽에, 부채의 증가와 수익의 발생은 오른쪽에 기록하여 양쪽의 합계가 항상 일치해야 하는 것이 복식부기의 기본입니다. 하지만 귀하의 장부를 보십시오. 여기 ‘죄수용 멸균 짚단 보급비’ 항목으로 매월 금화 500냥이 지출되었다고 적혀 있군요.”


이현이 장부의 특정 페이지를 깃털펜 끝으로 툭툭 쳤다.


“하지만 실제 외부 보급상 장한수의 납품 영수증 대조표를 보면, 매월 공급된 짚단의 수량은 단 100단에 불과합니다. 시장 단가로 계산하면 금화 50냥이면 충분한 수량이지요. 그렇다면 나머지 450냥의 지출 증빙 서류는 어디 있습니까? 설마 쥐가 갉아먹었다고 변명하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그, 그것은……!”


독고패의 기름진 얼굴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이현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고 장부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넘기는 속도가 너무 빨라 장부 종이가 바람 소리를 낼 지경이었다.


“여기 ‘간수 야간 특근 수당 및 체력 단련비’ 항목도 아주 흥미롭군요. 매월 간수 200명에게 야간 근무 보조비로 인당 은화 5냥씩, 총 금화 100냥이 지급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조평식 조장님.”


이현이 복도에서 최두만을 치던 조평식을 불렀다. 조평식이 땀을 닦으며 고개를 돌렸다.


“예, 위원장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귀하는 지난 10년간 야간 순찰을 돌며 단 한 번이라도 야간 특근 수당이나 체력 단련비를 지급받은 적이 있습니까?”


“예? 수당이요? 그런 게 존재했단 말입니까? 우리는 밤새 보초를 서도 따뜻한 보리차 한 잔 구경하지 못해 맨날 뼈가 시렸습니다!”


조평식의 우렁찬 대답에 주변 간수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현은 칠판 위에 붉은색 먹물 펜으로 정밀한 꺾은선 그래프를 그리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감옥 예산의 지출 추이와 실제 간수들에게 도달한 복지 혜택의 격차를 나타내는 곡선이었다.


스스슥, 스윽.


이현의 손끝에서 붉은 선들이 기묘한 각도로 꺾이며 대나무 판 위를 수놓았다. 숫자를 모르는 하급 간수들의 눈에는 그 붉은 그래프 선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보였다.


“이, 이것은……!”


조평식이 칠판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눈에 이현이 그린 꺾은선 그래프가 기묘한 기운의 흐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저 붉은 선의 꺾임과 대조 표의 수치들…… 이것은 천마조조께서 남기신 천마신공의 진기 운기 조식도(運氣調息圖)가 아닌가? 저 상승 곡선이 꺾이는 지점마다 마기의 극의가 느껴진다! 위원장님은 지금 숫자의 흐름을 빌려 천하를 지배할 마공의 배치도를 그리고 계신 것이다!”


간수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칠판을 향해 경외심이 가득 찬 눈빛을 보냈다. 그들에게 이현의 행정 장부는 단순한 수치 장부가 아닌, 마음을 지배하는 강력한 정신 지배 마공의 비급서와 다름없었다.


이현은 속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 착각을 정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원래 훌륭한 HR 실장은 부하 직원들의 기분 좋은 오해를 성과로 연결하는 법이다.


“맞습니다. 이 꺾은선 그래프가 가리키는 진기의 종착지는 아주 명확합니다. 바로 조태독 간수장과 독고패 부간수장, 당신들의 비밀 금고이지요.”


이현이 분필을 칠판에 탁 던지며 차가운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단 10분간의 감사 결과, 귀하들이 지난 10년간 허위 영수증 작성, 급식비 횡령, 그리고 간수들의 피 같은 야근 수당 가로채기를 통해 축적한 비자금의 총액은 정확히 ‘금화 5만 냥’입니다.”


“5, 5만 냥……!”


조평식과 간수들의 눈이 뒤집혔다. 금화 5만 냥이면 흑뢰 감옥 전체 간수들이 평생을 일하고 은퇴해도 만져볼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자신들이 밤새 추위에 떨며 좌골신경통에 시달리는 동안, 조태독과 독고패는 자신들의 피와 땀을 쥐어짜 비밀 금고를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독고패 부간수장. 당신이 찼던 그 화려한 비단 주머니와 금반지가 어디서 나왔는지 이제야 알겠군!”


“조태독 간수장! 우리 야근 수당을 횡령해 고기반찬을 처먹었단 말이냐!”


간수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붉은 완장을 찬 손들이 칼자루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복도 전체가 폭발하기 직전의 화약고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위기를 느낀 독고패가 내공을 끌어올리며 이현이 쥐고 있는 장부 원본을 향해 기습적으로 손을 뻗었다.


“이 빌어먹을 황자 놈이 유언비어로 선동을 하는구나! 그 위조 장부를 당장 내놔라!”


독고패의 손끝에서 삼류 수준을 초과하는 날카로운 지풍(指風)이 뿜어져 나왔다. 무공이 없는 이현의 머리에 직격한다면 즉사할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경호대, 방어하십시오.”


이현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평식과 간수 서필이 칼을 뽑아 들며 이현의 앞을 가로막아섰다. 챙강! 독고패의 지풍이 조평식의 두꺼운 도신에 부딪혀 불꽃을 튀기며 소멸했다.


“독고패 부간수장! 위원장님 몸에 손끝 하나라도 댔다간 우리 노조원 200명이 네놈의 가문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조평식이 사자후를 토하며 독고패를 압박했다. 이제 간수들에게 이현은 단순한 인질이 아니라, 자신들의 빼앗긴 권리와 수당을 찾아줄 유일한 ‘장부의 신’이었다.


이현은 휠체어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대며 품속에서 사마경이 미리 복사해 둔 장부 사본 여러 장을 꺼내 흔들었다.


“독고패 부간수장. 장부 원본을 빼앗아 불태우려 하셨습니까? 안타깝게도 이 장부의 사본은 이미 여러 부 작성되어 안전한 곳에 분산 보관되어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 횡령 내역과 증거가 적힌 장부 사본을 감옥 중앙 광장에 대형 벽보로 붙이겠다고 선언한다면, 귀하의 안위는 어떻게 될까요?”


이현의 목소리는 지극히 평온했으나, 그 안에 담긴 법적, 사회적 파멸의 경고는 그 어떤 초절정 무공보다 무서웠다.


만약 횡령 내역이 중앙 광장에 붙어 모든 죄수와 하급 간수들이 보게 된다면, 흑뢰 감옥은 그 즉시 대규모 폭동과 파업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본산의 교주 독고영과 원로원 장로들이 이 사태를 인지하게 되고, 조태독과 독고패는 횡령죄와 직무유기죄로 단전이 파괴된 채 독충 구덩이에 던져질 운명이었다.


독고패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을 넘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의 무릎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제, 제발…… 제발 그것만은……!”


결국 독고패는 평생 쌓아온 부간수장으로서의 자존심을 완전히 내려놓은 채, 이현의 휠체어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의 머리가 차가운 감옥 바닥에 닿으며 쿵 소리를 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위원장님! 제발 그 장부 사본을 광장에 붙이지 말아 주십시오!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조태독 역시 그 처참한 광경을 보며 입술을 깨물고 피를 흘렸다. 자신의 가장 충직한 사냥개이자 친척인 독고패마저 이현의 깐깐한 깃털펜 끝에 굴복하여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현은 꿇어앉은 독고패를 내려다보며, 깃털펜으로 장부의 한 구석에 붉은색으로 ‘환수 대상 자금: 5만 냥’이라고 선명하게 적어 넣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귀하들의 비밀 금고를 털어 간수들의 밀린 야근 수당을 정산하는 합법적인 재무 조정을 시작해 보지요.”


이현의 단호한 선언과 함께, 흑뢰 감옥의 권력 판도가 완전히 전복되는 위대한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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