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 비급의 위생 소독
어둠이 짙게 깔린 흑뢰 감옥의 밤은 고요했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눅눅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이질 전염병이 한차례 휘쓸고 간 감옥 복도는 유황 비누의 은은한 향기와 소독수의 향이 미세하게 남아 있어 이전의 퀴퀴한 악취 대신 기묘할 정도로 청결한 공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고요한 복도의 음침한 그늘 속에서, 하급 간수 최두만은 마른침을 삼키며 벽면에 몸을 밀착했다. 그의 품속에는 비단 주머니가 들어 있었고, 그 안에는 묵직한 가죽 장정이 만져졌다. 마교 내에서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즉시 참수형에 처해진다는 금지된 마공 비급, ‘혈혼적멸공(血魂寂滅功)’의 사본이었다.
‘이것만 황자의 침상 밑에 쑤셔 넣으면 끝이다.’
최두만은 조태독 간수장에게 받은 금화 50냥과 초고속 승진 약속을 떠올리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무공도 없는 병약한 황자가 감옥의 보건권을 장악하고 간수들의 환심을 사는 꼴이 조태독에게는 눈엣가시였을 터였다. 역모의 증거를 심어 한 번에 목을 날려버리는 것만이 조태독이 권위를 회복할 유일한 탈출구였다.
최두만은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움직여 이현의 제3호 특별실 문 앞으로 다가갔. 평소 같으면 서필이 문앞을 지키고 있었겠지만, 마침 서필이 가습기용 온수 수건을 교체하기 위해 주방으로 간 찰나의 공백이었다. 최두만은 재빨리 문틈으로 손을 밀어 넣어 빗장을 풀고, 소리 없이 방 안으로 잠입했다.
방 안은 이현의 예민한 호흡기를 보호하기 위해 정확히 습도 70%를 유지하고 있어 훈훈하고 촉촉했다. 최두만은 휠체어에 앉아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이현을 힐끗 보았다. 창백한 안색에 미동도 없이 숨을 쉬는 황자는 그저 나약한 고기방패로 보였다.
최두만은 신속하게 무릎을 꿇고 이현의 침대 밑 어두운 구석으로 비단 주머니를 밀어 넣었다. 슥, 하는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금지된 비급이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바닥 안쪽 깊숙이 숨겨졌다.
‘성공이다!’
최두만은 희열에 찬 눈빛으로 침소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는 자신이 완벽한 음모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이현이 누워 있던 침상 머리맡 천장의 미세한 환기구 틈새로, 정보 통신 위원 최달막의 예리한 청동 청음기가 최두만의 거친 호흡과 비단 주머니가 바닥에 쓸리는 소리를 1초의 오차도 없이 도청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 * *
다음 날 아침, 제3호 특별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이현은 단정하게 리폼된 흰색 도포 깃을 칼같이 세운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초정밀 눈금 장부와 깃털펜’이 쥐여 있었고, 안경 너머의 눈빛은 지극히 깐깐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경호 및 위생 총장 박칠성과 가슴에 붉은 완장을 찬 방역 기동대원들이 도열해 있었다.
“박 총장.”
이현이 깃털펜으로 장부의 한 구석을 툭툭 치며 차분하게 말했다.
“예, 위원장님! 지시만 내려주십시오!”
박칠성이 등에 멘 거대한 강철 소독수 분사기를 번쩍이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이제 그는 이현을 단순한 인질이 아닌, 자신들을 더러운 전염병 구덩이에서 구원해 준 ‘청결의 군주’로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정기 방역 수칙에 따라, 내 침소 사방 10보 구역의 미세 먼지와 유해 물질 검사를 실시하십시오. 특히 침대 밑이나 구석진 음영 구역은 세균과 벼룩이 번식하기 가장 쉬운 취약점입니다. 쇠꼬챙이와 소독 솔을 동원해 단 한 톨의 오염 물질도 남기지 말고 긁어내세요.”
“존명! 구석구석 방역 소독을 실시하겠다!”
박칠성의 지시에 따라 대원들이 일제히 특별실 내부 수색 및 방역 작업을 시작했다. 대원들은 이현의 지침대로 침대 커버를 걷어내고 쇠꼬챙이로 침대 밑 구석을 샅샅이 긁어냈다. 슥, 슥, 서걱.
“어? 위원장님, 침대 밑 깊은 곳에서 이상한 오염 물질이 발견되었습니다!”
한 대원이 쇠꼬챙이 끝으로 묵직한 비단 주머니를 끄집어냈다. 주머니 겉면에는 거뭇거뭇한 먼지와 함께 마교 특유의 핏빛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박칠성이 주머니를 열어 가죽 장정의 책자를 꺼내려 하자, 이현이 깐깐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제지했다.
“손대지 마십시오, 박 총장.”
“예? 왜 그러십니까, 위원장님?”
“귀하는 저 불결한 오염물의 상태가 보이지 않습니까? 출처가 불분명한 외부 유입 폐지입니다. 겉면에 묻은 검은 얼룩은 곰팡이와 미세 세균의 번식지임이 틀림없고, 가죽 장정의 썩은 냄새는 이질 병원균이 잠복해 있을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저것을 맨손으로 만지는 것은 감옥 내 방역 수칙 제4조 위반입니다.”
이현은 깃털펜으로 장부에 ‘오염된 폐지 수거 완료’라고 깐깐하게 기록했다. 사실 그는 최달막의 도청 보고를 통해 저것이 조태독이 심어둔 금지된 마공 비급임을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공이 전혀 없는 이현이 저것을 ‘비급’으로 인정하는 순간, 마교 율법에 걸려 처형당할 명분을 주게 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하나뿐이었다. 저 비급의 가치 자체를 합법적인 행정 규정으로 말소해 버리는 것.
“이것은 무공 비급이 아니라, 전염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위생상 극히 위험한 오염 폐지’입니다. 따라서 오늘 아침부로 즉시 ‘무공 비급 세척 방역술’을 집행하겠습니다.”
“세척…… 방역술이요?”
박칠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현은 장부를 탁 덮으며 휠체어 바퀴를 굴렸다.
“주방의 배영태 셰프에게 가마솥의 온수를 100도씨로 끓이라고 전하십시오. 당소혜 실장이 조제한 천연 유황 소독 비누액 반 되와 소독 가루 세 홉을 가마솥에 투입한 뒤, 저 오염된 종이 뭉치를 통째로 넣어 30분간 삶아 멸균 세척하십시오. 종이 섬유 사이에 잠복한 병원균과 불결한 검은 얼룩(먹물)을 완벽히 지워내야만 우리 감옥의 위생 등급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하! 역시 위원장님의 위생 혜안은 깊으십니다! 당장 가마솥에 넣어 삶아버리겠습니다!”
박칠성은 일말의 의심도 없이 비급을 집게로 집어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 가마솥에서는 배영태가 끓인 온수가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당소혜의 천연 유황 소독 비누가 투입되자 거품이 부글부글 일어났고, 시원한 박하 향과 유황 냄새가 진동했다. 박칠성은 가차 없이 핏빛 문양이 새겨진 가죽 장정 비급을 끓는 거품 가마솥 속에 쑤셔 넣었다.
치이이익!
끓는 온수 속에서 비급의 가죽 표지가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했다. 마교의 비열한 마공 구결이 적혀 있던 저렴한 유기 오염 먹물들은, 강력한 유황 비누의 계면활성 작용과 100도씨의 열기 앞에 사정없이 분해되어 녹아내렸다. 가마솥 안의 물이 순식간에 검붉은 먹물 빛으로 물들었다가, 비누 거품에 씻겨 하수구로 흘러내려 갔다.
30분 뒤, 가마솥에서 건져 올려진 것은 먼지와 먹물이 완벽히 지워져 뽀얗고 하얗게 변한, 향기로운 세제 냄새를 풍기는 깨끗한 무지 종이 뭉치뿐이었다. 섬유질만 남은 종이들은 빨래줄에 걸려 따뜻한 온풍기 앞에서 뽀송뽀송하게 마르기 시작했다.
* * *
쿵! 쿵! 쿵!
그 순간, 흑뢰 감옥의 복도를 울리는 거친 발소리와 함께 감옥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간수장 조태독이 붉은 마기의 기운을 뿜어내며 사법대원 수십 명을 거느리고 들이닥쳤다. 그의 얼굴에는 승리를 확신하는 잔인한 미소가 가득 서려 있었다.
“황자 이현! 네놈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조태독이 이현의 특별실 안으로 난입하며 사자후를 토했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에 서필은 사색이 되어 휠체어 뒤로 숨었고, 박칠성은 쇠망치를 쥔 채 경계 태세를 취했다.
“조 간수장.”
이현은 미동도 하지 않고 찻잔을 들어 따뜻한 보리차를 한 모금 음미했다.
“아침 조회 시간도 아닌데 군대를 이끌고 무단 침입하시다니, 귀하는 정무적 절차와 주거 침입 금지 규정을 또다시 위반하고 계십니다. 이번에는 어떤 핑계로 내 요양을 방해하시려는 겁니까?”
“흥! 얄팍한 말장난은 거기까지다! 흑뢰 감옥 사법대원들은 들어라! 본 간수장은 황자 이현이 마교 내에서 엄격히 금지된 마공 비급을 숨겨두고 역모를 꾀하고 있다는 확실한 밀고를 받았다! 당장 침상 밑을 샅샅이 뒤져 혈혼적멸공 비급을 찾아내라!”
조태독의 지시에 사법대원들이 이현의 침상 밑으로 달려들어 바닥을 긁어댔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침대 밑은 박칠성의 방역 기동대가 방금 물청소와 소독을 끝내 미끄러울 정도로 깨끗했다.
“어, 간수장님!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원이 당황하여 소리치자, 조태독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럴 리가 없다! 최두만이 분명히…… 아니, 확실한 밀고자가 침상 밑 깊은 곳에 숨겨두었다고 했다! 다시 뒤져라!”
“조 간수장.”
이현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기침을 토했다.
“콜록…… 혹시 아침 방역 수색 중에 발견된 ‘불결한 오염 폐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오염 폐지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이현이 손가락으로 빨래줄에 걸려 뽀송뽀송하게 마르고 있는 하얀 종이 뭉치들을 가리켰다.
“저기 걸려 있는 종이들이 바로 오늘 아침 침상 밑 구석에서 발견된 심각한 위생 오염 물질입니다. 검은 진흙과 곰팡이가 잔뜩 묻어 있어 이질 병원균의 온상이 될 우려가 있기에, 방역 수칙에 따라 즉시 끓는 유황 비누 온수에 넣어 30분간 멸균 세척 소독을 집행했습니다. 아주 깨끗하고 향기롭게 소독되었지요.”
조태독은 뇌가 정지한 표정으로 빨래줄에 걸린 하얀 종이 뭉치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미친 듯이 달려가 종이들을 낚아채어 펼쳤다.
바스락.
종이는 지극히 깨끗했다. 마공의 구결도, 핏빛 비급의 문양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은은한 민트 향과 유황 비누의 뽀얀 세제 냄새만이 코를 찔렀을 뿐, 그 어떤 글자 한 톨 남아 있지 않은 완벽한 ‘무지(無紙)’ 상태였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냐……! 글자가 어디로 갔단 말이냐!”
조태독이 종이를 흔들며 비명을 질렀다. 이현이 안경을 치켜올리며 깐깐하게 대답했다.
“오염 물질인 먹물과 세균은 화학적으로 완벽히 분해되어 하수구로 배출되었습니다. 우리 감옥의 위생 등급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방역 조치였습니다만, 혹시 불만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면…… 귀하는 저 오염된 폐지가 무엇인지 미리 알고 계셨던 겁니까?”
이현의 예리한 유도 질문에 조태독은 턱을 부르르 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비급의 정체를 안다고 인정하는 순간, 역모 함정을 판 주범이 자신임을 자백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크으으윽……! 이, 이 비열한 황자 놈이……!”
조태독이 화병으로 피를 토할 듯한 충격을 받으며 뒷목을 잡고 비틀거렸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사법적 함정이 이현의 지독한 위생 강박증과 방역 규정이라는 방패 앞에 흔적도 없이 녹아내려 하수구로 사라진 것이다.
그때, 특별실 밖 복도에서 요란한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기괴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억! 악!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조태독이 당황하여 복도로 고개를 돌렸다. 복도 한가운데에서는 하급 간수 최두만이 거적때기 같은 멍석에 돌돌 말린 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의 사방을 둘러싼 조평식과 베테랑 간수들, 그리고 죄수 자치회원들은 가슴에 붉은 노조 완장을 찬 채, 이현이 지급한 단단한 ‘가죽 허리 보호대’를 손에 쥐고 매질을 가하고 있었다. 퍽! 퍽! 팍!
“이 배신자 놈! 감히 위원장님의 방에 불결한 오염물을 밀반입해 우리 감옥의 위생 등급을 깎아 먹으려 해?”
“우리가 어떻게 얻어낸 유황 비누와 따뜻한 보리차인데, 네놈의 비열한 밀고질 때문에 방역권을 빼앗길 뻔했잖아! 오늘 아주 먼지 나게 털어주마!”
조평식이 가죽 허리 보호대로 최두만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치며 소리쳤다. 최두만은 동료 간수들에게 완벽한 배신자로 찍혀 처절하게 멍석말이를 당하고 있었다.
이현은 그 광경을 휠체어에 앉아 조용히 바라보며, 깃털펜으로 장부의 마지막 칸에 깐깐하게 직인을 찍어 내렸다.
“오늘 자 정기 방역 및 유해 요소 차단 작업, 완벽히 완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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