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뢰의 백색 의무실
백무진이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은침 통을 움켜쥐고 특별실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하얀 염소수염을 흩날리며 의원 도포를 걸친 그의 눈은 이미 경악과 분노로 뒤덮여 있었다. 평생 마교의 험악한 무인들의 뒤틀린 뼈를 맞추고 썩어가는 상처를 도려내며 흑뢰 최고의 의원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그였다. 그런데 감히 무공 한 자락도 모르는 병약한 대황제국의 인질 황자가, 그것도 자신의 눈앞에서 흑뢰 최고의 베테랑 간수인 조평식을 단 몇 분 만에 완치시키고 무릎을 꿇리다니!
“네, 네 이놈……! 감히 황실의 버려진 핏줄 놈이 마교의 신성한 의술을 기만하고 사술을 펼치다니! 조평식 조장, 자네는 이류 고수로서의 체면도 없이 어찌 저 나약한 놈의 간계에 넘어가 눈물까지 흘리는가!”
백무진의 호통에 조평식이 쭈뼛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증이 사라진 허리를 연신 만지작거리며, 그는 백무진의 눈치를 살폈다.
“그, 그게 아닙니다, 백 의원님. 이 도련님의 솜씨는 사술이 아니라 진정한 천도의 극의…….”
“시끄럽다! 뼈를 맞추고 진기를 다스리는 것은 오직 태을신의기공을 연마한 나 백무진의 영역이다! 감히 의원 자격도 없는 놈이 흑뢰 안에서 무단으로 의료 행위를 펼치다니, 이는 교단의 규율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백무진이 은침 통에서 시퍼런 안광을 발하는 장침 한 대를 뽑아 들었다. 그의 손끝에 서린 맑은 순양의 진기가 은침을 미세하게 진동시켰다. 당장이라도 이현의 혈도를 찔러 그의 사술을 봉인하겠다는 기세였다.
서필은 백무진의 기세에 질려 “히익, 의원님! 전하의 몸에 손을 대셨다간 간수장님이……!”라며 울부짖었으나, 휠체어에 앉은 이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현은 손수건으로 입가를 가볍게 훔치며 깐깐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백무진의 신체를 조용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현의 머릿속에서 특수 능력인 ‘안색 분석 진단술’이 차분하게 작동했다.
‘어깨가 비정상적으로 앞으로 굽어 있군. 걸어 들어올 때 양발의 보폭이 맞지 않고 왼쪽 뒤꿈치를 바닥에 끄는 소리가 났어. 침통을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은 단순한 분노 때문이 아니라, 요추 신경이 압박받아 발생하는 말초 신경의 마비 증상이다. 게다가 저 꼿꼿하게 펴려고 애쓰는 허리…… 전형적인 척추관 협착증(Spinal Stenosis)이로군.’
진단을 마친 이현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기침을 뱉었다.
“콜록, 콜록…… 백 의원님. 남의 의료 행위를 단죄하기 전에 본인의 척추관 상태나 먼저 점검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무어라? 내 척추관이 어쨌단 말이냐!”
“귀하는 평생 환자들의 무거운 뼈를 맞추고 침을 놓느라 하루의 대부분을 허리를 구부린 채 보내셨겠지요. 그 결과, 요추 중앙의 신경 통로인 척추관이 퇴행성으로 좁아져 신경을 사정없이 짓누르고 있습니다. 5분 이상 똑바로 서 있으면 양쪽 다리가 터질 것처럼 저려오고, 오히려 허리를 앞으로 굽히면 일시적으로 통증이 완화되는 고통에 시달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백무진의 손에 들린 은침이 뚝 멈췄다. 그의 하얀 염소수염이 사르르 떨렸다.
“네, 네놈이 그것을 어찌……!”
그것은 백무진의 뼈아픈 비밀이자 의원으로서의 자존심을 짓밟는 지병이었다. 남의 뼈는 귀신같이 맞추면서 정작 자신의 척추관 협착증은 그 어떤 침술로도 고치지 못했다. 내공을 불어넣어 통로를 넓히려 해보았지만, 좁아진 뼈 조직이 신경을 더 강하게 압박해 매번 각혈을 하며 실패할 뿐이었다.
이현은 휠체어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깐깐한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무식하게 태을신의기공의 열기를 척추관에 밀어 넣으셨겠지요. 신경이 눌려 염증이 가득한 곳에 뜨거운 내력을 들이부었으니, 주변 조직이 부어올라 협착이 더 심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의원이라는 분이 어찌 이토록 기본적인 해부학적 인과관계도 모르고 기공만 맹신하신단 말입니까? 참으로 비효율적이고 낙후된 의술이로군요.”
“낙, 낙후되다니……! 감히 내 평생의 의학을 능멸하다니!”
백무진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렀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숨길 수 없는 당혹감과 지적 패배감이 섞여 있었다. 이현은 전생의 대기업 HR 실장 시절, 깐깐한 감사 보고서로 고집불통 부서장들을 단숨에 제압하던 피드백 기술을 발동했다.
“귀하의 지병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기공이 아니라 정밀한 ‘물리적 감압’과 ‘근육 이완’이 필요합니다. 좁아진 요추 뼈 사이의 간격을 인위적으로 늘려 신경의 압박을 해소해야 한단 말입니다. 백 의원님, 평생의 통증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술의 한계를 넓혀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밑져야 본전입니다.”
백무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눈앞의 황자는 무공이 전혀 없는 유리몸이었지만, 그가 뱉어내는 의학적 논리는 가히 천기(天機)를 꿰뚫는 듯 정밀했다. 결국 의학적 탐구열과 평생의 고통을 이기지 못한 백무진이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은침을 거두었다.
“좋다…… 만약 네놈의 말에 털끝만큼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당장 사술죄로 교단 사법부에 고발할 것이다. 내게 무엇을 하라는 말이냐?”
“서필 간수, 백 의원님을 침상 옆 바닥에 무릎 꿇게 하십시오.”
이현은 서필을 시켜 백무진에게 현대식 요가 및 척추 감압 동작인 ‘고양이-낙타 자세’와 ‘아기 자세(Child's Pose)’의 정밀한 각도를 처방했다.
“상체를 앞으로 길게 뻗으시되, 엉덩이는 발뒤꿈치에 완전히 밀착시키십시오. 양손을 앞으로 뻗어 바닥을 짚고, 척추 마디마디가 앞뒤로 길게 늘어난다는 느낌으로 숨을 깊이 내쉬십시오. 서필 간수, 의원님의 요추 4번 부위를 가볍게 누르며 지탱하십시오.”
백무진은 이현의 깐깐한 지시에 따라 엎드려 상체를 늘렸다.
지긋이 척추가 늘어나는 순간.
우두둑, 우두둑!
그의 등 뒤에서 경쾌하고도 묵직한 뼈 정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좁아진 요추 뼈 마디가 늘어나며 30년간 신경을 꽉 쥐고 있던 무시무시한 압박감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극적인 감각이 백무진의 전신을 관통했다. 늘 차갑게 마비되어 있던 다리 끝으로 맑은 진기와 혈류가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흘러내렸다.
“아……! 아아아아!”
백무진의 입에서 조평식 못지않은 기괴하고도 시원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자, 늘 구부정하던 어깨와 허리가 자로 잰 듯 꼿꼿하게 펴져 있었다. 평생을 괴롭히던 지독한 척추 통증이 단 몇 분의 기묘한 자세만으로 완벽하게 가라앉은 것이다.
백무진은 자신의 허리를 더듬으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그의 눈에 학문적 전율과 경외감이 휘몰아쳤다. 그는 은침 통을 내팽개치고 이현의 휠체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 이것은 신의(神醫)의 경지……! 내공을 단 한 자락도 쓰지 않고 오직 신체의 흐름과 각도만으로 뼈를 지배하다니! 도련님, 아니 스승님! 제 평생의 무지를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험험, 백 의원님. 일어서십시오. 이것은 도술이 아니라 정밀한 현대식 스포츠 재활 지식일 뿐입니다.”
이현은 단정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본론을 꺼냈다.
“이제 내 의학적 정당성을 인정하셨으니,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시간입니다. 백 의원님, 귀하가 나를 ‘척추의 신’으로 모시며 영혼의 동맹을 맺어주신다면, 내가 매일 귀하의 척추 교정 운동과 두피 혈류 이완법을 직접 지도해 드리겠습니다. 그 대가로 귀하는 내게 아주 정밀한 ‘행정적 실드’를 제공해 주셔야겠습니다.”
“행정적 실드라니요? 말씀만 하십시오!”
“간수장 조태독이 내 방에 함부로 들어와 위생 상태를 해치고 고문 위협을 가하지 못하도록, 내가 극도의 안정이 필요한 위독한 상태라는 ‘꾀병 진단서’를 완벽한 의학적 용어로 작성해 주십시오. 의원님의 공식 직인이 찍힌 진단서라면 간수장이라도 감히 무시하지 못하겠지요.”
백무진은 이현의 깐깐하고도 완벽한 계획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의원으로서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운 일입니다! 당장 본산의 의료 규정을 준용하여 그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완벽한 처방전을 작성해 드리지요!”
백무진은 즉시 먹을 갈아 정갈한 종이에 붓을 놀리기 시작했다.
[환자 이현은 심맥이 극도로 쇠약하고 폐포의 염증이 가득하여, 24시간 동안 습도 70% 이상의 무균 구역에서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함. 외부인의 무단 침입이나 심리적 충격 노출 시 즉각적인 심장 마비 및 외교적 대재앙 발생 위험 있음. 본 의원의 허가 없이 방에 진입하는 자는 교단 보건법 제18조에 의거 처벌함.]
백무진은 처방전 하단에 자신의 붉은 의원 직인을 칼같이 찍어 내렸다. 이현은 이를 통해 감옥 내 보건 위생 규정을 합법적으로 수립할 수 있는 ‘2단계: 위생 규정 수립자’의 경지로 자신의 행정력을 넓혀 나갔다.
잠시 후, 특별실 복도 너머로 쿵쾅거리는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현을 무력으로 짓밟아 기선을 제압하려던 간수장 조태독이 채찍을 만지작거리며 들이닥친 것이다.
하지만 조태독이 특별실 문을 열려던 찰나, 그의 눈이 침상 머리맡과 문 벽면에 칼같이 붙어 있는 백무진의 공식 처방전과 붉은 직인에 닿았다.
“이, 이게 무슨…… 절대 안정이 필요한 중환자?”
조태독이 당황하여 문틈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 안에는 수석 의원 백무진이 엄숙한 표정으로 이현의 맥을 짚고 있었고, 이류 고수 조평식은 칼을 찬 채 이현의 휠체어 옆을 철통같이 호위하고 있었다.
조태독은 처방전을 어기고 들어갔다가 인질이 급사하여 교주 독고영에게 삼대가 멸할 수 있다는 극심한 사법적 공포에 휩싸였다. 결국 조태독은 감히 방 안으로 한 걸음도 들이밀지 못한 채, 문밖에서 가죽 채찍만 만지작거리며 씩씩대고 서성일 뿐이었다.
휠체어에 앉아 따뜻한 보리차를 들이키던 이현은, 문밖에서 서성이는 조태독의 그림자를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흑뢰 감옥의 보건 전권은 완벽히 그의 손아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