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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의 숲과 방독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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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무식한 독점 상인에게, 현대식 물류 혁명과 방역 과학의 매운맛을 보여줄 시간입니다.”


이현이 분필을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선언하자, 특별실 내부에 모여 있던 이들의 안색이 단숨에 고조되었다. 무공이라곤 단 일 장도 모르는 병약한 황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으나, 그 안에는 거대한 대기업을 호령하던 HR 실장 시절의 깐깐하고도 치밀한 지배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현은 휠체어 바퀴를 돌려 곧장 당소혜의 화학 연구실로 향했다. 수석 비서 서필이 사색이 되어 이현의 휠체어를 밀며 안절부절못했다.


“전하! 소혜 실장의 연구실은 온갖 독초와 독액의 잔향이 가득한 위험구역입니다! 찬바람만 불어도 기침을 하시는 분이 그런 유해 가스 구덩이에 직접 가시다니요! 제발 소인을 시켜 부르십시오!”


“서 비서, 귀하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이현이 품속에서 침방울 차단용 비단 마스크를 꺼내 귀에 걸며 깐깐하게 지적했다.


“R&D(연구개발) 현장을 직접 방문해 실무자의 고충을 듣고 자원을 배정하는 것이 경영자의 기본 책무입니다. 서류만 보고 지시하는 탁상행정이야말로 조직을 좀먹는 가장 비효율적인 암 덩어리지요. 얼른 문이나 여십시오.”


서필이 눈물을 머금고 연구실 문을 열자, 시큼하고 알싸한 약초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연구실 내부에는 보랏빛 가죽 위생복을 세련되게 차려입은 당소혜가 유리 시험관을 흔들며 열중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현이 들어서자 번개처럼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위원장님! 어서 오세요! 마침 새로 합성한 무독성 소독제의 살균력 테스트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소혜 실장, 훌륭한 근면 성실함이군요. 하지만 오늘은 그보다 훨씬 시급하고 중요한 정무적 과제가 생겼습니다.”


이현이 휠체어에 앉아 상체를 꼿꼿이 세우며 품속에서 두꺼운 도면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그 순간, 연구실 문이 벌컥 열리며 물류 구매 처장 김복창이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주판과 함께 붉은 인장이 찍힌 제국 사법부의 전령 서한이 들려 있었다.


“전하! 전하! 급보입니다! 남궁세가 본가에서 방금 금화 5,000냥을 노조 협동조합 계좌로 정확히 송금했습니다! 가압류 신청서의 효력이 제국 사법부에서 공식 인정되자, 그 고집불통 남궁결 장로마저 사색이 되어 즉각 채무를 변제했습니다! 단 1푼의 오차도 없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이현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금융 치료만큼 확실한 피드백은 없는 법이지요. 남궁세가의 명예와 영석 광산이라는 담보물이 확실하니 송금 속도가 아주 신속하군요. 김 처장, 환수된 금화 5,000냥 중 1,000냥을 즉시 당소혜 실장의 R&D 특별 연구비로 배정하십시오. 자본이 확보되었으니, 이제 기술 혁신을 이룰 차례입니다.”


당소혜의 눈동자가 연구비라는 단어에 탐욕스러운 연금술사처럼 번뜩였다. 이현은 도면의 특정 구역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소혜 실장. 우리가 현재 착용하고 있는 ‘침방울 차단용 비단 마스크’를 개량해야 합니다. 목표는 ‘환각의 숲’에 가득한 붉은 버섯 포자를 100% 차단하는 방독 마스크의 제작입니다.”


“환각의 숲의 포자 말인가요? 위원장님, 그 포자는 미세한 마기를 머금고 있어 호흡기로 들어가는 순간 뇌의 진기를 뒤흔들어 환각을 일으킵니다. 일류 고수조차 내공으로 숨을 참지 않으면 순식간에 정신이 붕괴하는 극독입니다!”


“그것은 과학적 여과 장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현이 깃털펜을 들어 비단 마스크 도면 사이에 삼중의 필터 구조를 그려 넣었다.


“포자는 물리적인 미립자일 뿐입니다. 비단을 촘촘하게 겹친 뒤, 그 사이에 ‘다공질 구조’를 지닌 활성탄, 즉 곱게 빻아 멸균한 참나무 숯가루를 채워 넣으십시오. 숯의 미세한 구멍들이 포자를 물리적으로 흡착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층에는 배영태 위원장이 보관 중인 천연 박하유를 적신 면포를 배치하십시오. 박하의 멘톨 성분이 호흡기를 진정시키고 미세하게 새어 나오는 잔여 마기를 화학적으로 중화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삼중 활성탄 필터 방독 마스크’입니다.”


당소혜는 이현이 그리는 도면과 정교한 여과 원리 설명을 들으며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숯의 다공질 구조를 이용한 물리적 흡착과 박하유의 화학적 중화라니……! 이분은 무공은 없으시지만, 세상의 모든 물질 흐름을 꿰뚫어 보시는 과학의 군주이시다!’


“위원장님! 이 설계라면 반나절 안에 50개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당장 숯을 굽고 박하유를 증류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소혜 실장의 신속한 공정 가동을 기대하겠습니다.”


* * *


몇 시간 뒤, 흑뢰 감옥 중앙 광장에는 삼엄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현의 지시로 소집된 외곽 경비대 대리 설태풍과 ‘흑뢰 소독방역 기동대’ 대원 30명이 일렬로 도열해 있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단정한 노조 완장이 채워져 있었고, 얼굴에는 당소혜가 급조해 낸 검은색 가죽 방독 마스크가 끈으로 단단히 밀착되어 있었다. 마스크 코 부분에는 대나무 원통 필터가 툭 튀어나와 있어, 흡사 괴이한 괴물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설태풍은 마스크 너머로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위, 위원장님. 정말 이 괴상한 가죽 주머니 하나만 믿고 그 죽음의 환각의 숲을 통과해야 합니까? 마차가 지나가기엔 숲길이 너무 험하고 포자가 붉은 안개처럼 자욱할 텐데요…….”


이현은 휠체어에 앉아 두꺼운 털목도리를 목에 두른 채, 설태풍의 마스크 끈 강도를 직접 손으로 잡아당기며 깐깐하게 점검했다.


“설 대리. 무식한 무인들은 늘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기세나 내공으로만 막으려다 자멸합니다. 이 마스크의 밀착도는 99%입니다. 숲 내부에서 절대 마스크를 벗거나 끈을 헐겁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장한수 대행수가 이미 숲 반대편 비밀 창고에 신선한 소고기와 야채, 그리고 온수 보일러용 화염석을 대량 선점해 두었습니다. 귀하들의 임무는 이 마스크를 믿고,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며 숲을 관통해 보급품을 수송해 오는 것입니다. 안전 수칙만 준수한다면 단 한 명의 부상자도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현이 결재판을 들어 올리며 단호하게 선언했다.


“출발하십시오. 흑뢰의 밥상을 지키는 위대한 물류 다변화 작전의 시작입니다.”


“존명! 위원장님의 지침을 따르겠다!”


설태풍과 박칠성이 이끄는 소독방역 기동대는 마차를 이끌고 붉은 안개가 자욱한 환각의 숲 입구로 거침없이 진입했다.


같은 시각, 감옥 정문 밖에서 썩은 쌀자루를 흔들며 비웃고 있던 악덕 상인 마만수는 숲 쪽으로 움직이는 마차 행렬을 발견하고 눈을 부릅떴다.


“아니, 저 미친놈들이 어디로 가는 거지? 저 방향은…… 환각의 숲이 아닌가?!”


마만수의 심복 무사가 비열하게 웃으며 거들었다.


“대행수님! 저 약골 황자 놈이 굶주림에 미쳐서 자살하려는 모양입니다! 환각의 숲은 일류 고수조차 발을 들이지 못하는 죽음의 땅인데, 저곳으로 기어 들어가다니요!”


“아니, 잠깐.”


마만수는 탐욕으로 가득 찬 대머리를 굴렸다.


“저놈들이 남궁세가에서 합의금을 받아 숨겨둔 보물이나 비자금을 들고 도망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태자 전하의 명이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추격해라! 내공으로 숨을 참으면 1다경(약 15분)은 버틸 수 있다! 저들의 목을 베고 보물을 빼앗아라!”


“존명!”


마만수가 고용한 사설 무장 대원 수십 명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 설태풍의 수송대 뒤를 바짝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강력한 내공과 무력을 과신하며, 붉은 포자 안개가 일렁이는 환각의 숲으로 거침없이 돌진했다.


* * *


슈우우우.


환각의 숲 내부의 공기는 기괴할 정도로 붉고 탁했다. 사방에 널린 거대한 버섯들이 숨을 쉴 때마다 붉은 포자 가루가 눈송이처럼 허공을 맴돌았다.


설태풍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대나무 필터를 통과해 들어오는 공기는 놀라울 정도로 상쾌했다. 숯의 묵직한 필터링을 거쳐 코끝을 찌르는 알싸한 박하 향취가 그의 정신을 오히려 더욱 맑게 깨워주고 있었다.


“오오……! 정말 숨이 쉬어집니다! 머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습니다!”


박칠성이 등에 멘 소독 분무기를 다잡으며 우렁차게 속삭였다.


“위원장님의 과학은 신기(神技)보다 위대하다! 대원들은 대형을 유지하고 마차 속도를 올려라!”


그때, 숲 뒤편에서 거친 발소리와 함께 마만수의 사설 무장 대원들이 살기를 뿜어내며 들이닥쳤.


“거기 서라! 마교의 반역자 놈들! 감히 어디로 도망치려 하느냐!”


추격대장 무사가 검기를 뿜어내며 소리쳤다. 그들은 이현의 예측대로 내공을 운기하여 숨을 꾹 참은 채 고속으로 질주해 오고 있었다.


설태풍은 마스크 너머로 예리한 미소를 지었다. 이현이 하사한 SCM 매뉴얼의 대응 지침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적들이 내공으로 숨을 참으며 추격해 올 경우, 무리하게 맞서 싸우지 말고 숲 깊은 곳으로 가벼운 보법을 유지하며 유인하라. 인간의 폐는 격렬한 운동 시 산소 소모량이 5배 이상 급증하므로, 내공을 통한 호흡 차단은 3분을 넘기지 못하고 붕괴할 것이다.’


“기동대! 전원 속도를 유지하며 우회로로 깊숙이 진입한다! 적들과의 거리를 50보로 유지해라!”


설태풍의 지시에 따라 수송대는 마차를 몰며 숲 깊은 곳의 험준한 경사로로 빠르게 유인했다.


뒤를 쫓던 마만수의 대원들은 거친 숲길을 달리며 점점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격렬한 질주로 인해 심장이 터질 듯 뛰자, 억지로 참아 누르던 기혈이 뒤틀렸다.


“허억……! 허어억……!”


결국 참지 못하고 추격대장 무사가 입을 크게 벌려 거친 숨을 들이쉬었다. 그 찰나, 사방에 가득하던 미세한 붉은 포자 가루가 그의 호흡기로 사정없이 빨려 들어갔.


“흡……! 끄으으윽!”


대장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초점을 잃고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의 눈앞에 서 있는 험준한 대나무들이 갑자기 화려한 춤을 추는 절세가인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오오…… 선녀님! 선녀님이 나를 향해 미소 짓는구나!”


대장은 검을 내던지며 가시 돋친 덤불을 향해 양팔을 벌려 달려들었다.


“어머니! 하늘에서 황금빛 멧돼지가 날아다닙니다! 으하하하!”


“내 다리가…… 내 다리가 거대한 지렁이로 변했다! 살려다오!”


뒤따르던 무장 대원들 역시 하나둘씩 호흡의 한계에 부딪쳐 포자를 마시자마자 단체로 환각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들은 서로를 적으로 오해해 칼질을 해대거나, 거대한 참나무를 꼭 껴안고 열렬하게 입을 맞추며 눈물을 흘렸다. 무력과 살기로 가득했던 추격대는 단 5분 만에 지독하게 우스꽝스러운 광인들의 댄스파티장으로 변모했다.


설태풍은 마스크 너머로 그 처참하고도 코믹한 자멸의 현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위원장님의 말씀대로로군. 방역 장비도 없이 환경 재해 구역에 무모하게 뛰어드는 것은 자살 행위일 뿐이지. 기동대, 적들의 무기를 전부 수거하고 밧줄로 묶어라! 마차를 몰고 장 대행수의 창고로 향한다!”


* * *


해질녘, 흑뢰 감옥 정문 밖.


마만수는 자신의 썩은 쌀 마차 위에 앉아 거만하게 주판을 튕기며 입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흐흥, 슬슬 배가 고파서 비명 소리가 들릴 때가 되었는데…… 왜 아무런 소식이 없지? 추격대 놈들은 황자 놈의 목을 베어 오느라 시간이 걸리는 건가?”


그때, 삼엄하게 닫혀 있던 흑뢰 감옥의 철제 정문이 스르륵 열렸다.


마만수는 마침내 이현이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무릎을 꿇으러 나오는 줄 알고 의기양양하게 미소를 지었다.


“크하하! 드디어 기어 나오는구나! 내 썩은 쌀이라도 감지덕지하며 받아먹…….”


그러나 정문을 통과해 나온 것은 휠체어에 앉은 가녀린 황자가 아니었다.


두꺼운 가죽 방독 마스크를 쓴 박칠성과 소독방역 기동대원들이 위엄 있게 걸어 나오고 있었고, 그 뒤로 장한수 대행수가 이끄는 거대한 보급 마차 세 대가 당당하게 굴러 들어오고 있었다. 마차 위에는 한눈에 보아도 기름기가 흐르는 최고급 소고기 덩어리들과 푸릇푸릇한 신선한 야채, 그리고 보일러실의 화력을 일주일 내내 유지할 수 있는 붉은 화염석 자루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무, 무어라?! 저, 저것들이 왜 저기서 나와?! 묵계 계곡은 우리 군사들이 완벽히 막고 있었을 텐데!”


마만수가 비명을 지르며 마차에서 굴러떨어졌다.


장한수가 마차 위에서 고삐를 잡은 채 마만수를 내려다보며 통쾌하게 웃었다.


“마 대행수! 헛수고 많았네! 자네가 계곡에서 먼지를 마시는 동안, 우리는 환각의 숲 우회로를 통해 본산 변방의 모든 최상급 식자재를 안전하게 수송해 왔네! 위원장님의 SCM 물류 다변화 계획은 완벽하셨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차 뒤편에는 마만수가 자랑스럽게 보냈던 일급 무장 대원들이 온몸이 밧줄로 꽁꽁 묶인 채 줄줄이 끌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마스크도 없이 환각 포자를 잔뜩 들이마신 탓에,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공을 향해 헤벌쭉하게 웃으며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우헤헤…… 하늘이 온통 분홍색이구나…… 꽃밭이 참 아름답다…….”


자신의 정예 대원들이 단체로 바보가 되어 끌려오는 처참한 꼴을 목격한 마만수는 턱관절이 빠질 듯 입을 벌린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기상천외하고도 압도적인 물류 전복의 현장 위로, 특별실 창가에 선 이현이 따뜻한 박하차를 들이키며 마만수를 향해 조용히 찻잔을 들어 올렸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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