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계 계곡의 썩은 쌀
“이건 쌀이 아닙니다! 전하, 이건 쌀의 형상을 한 독극물이자 교단 자산에 대한 악의적인 테러입니다!”
흑뢰 감옥의 주방을 책임지는 급식 조리 위원장, 배영태가 쾅 소리가 나도록 특별실 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그의 거구는 분노로 부르르 떨리고 있었고, 양손에는 검은 곰팡이가 잔뜩 슬어 쾌쾌한 썩은 내를 풍기는 쌀자루가 들려 있었다. 평소 위생모와 앞치마를 칼같이 착용하며 이현이 제정한 ‘식자재 품질 표준화 규정’을 천상의 교리처럼 따르던 그였기에, 이 불결한 식자재의 등장은 그의 요리사로서의 영혼을 모독하는 일이었다.
안락의자에 앉아 따뜻한 박하차를 음미하던 이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손수건으로 코를 막으며 가볍게 기침을 뱉었다.
“콜록, 콜록…… 배 위원장, 진정하십시오. 탕비실의 공기 정화 필터가 오염됩니다. 그 불결한 물건을 즉시 격리 구역으로 치우고 상황을 보고하십시오.”
“죄송합니다, 전하! 하지만 소인이 분노를 참지 못해 그만…….”
배영태가 급히 쌀자루를 문밖으로 내던지며 억울한 듯 외쳤다.
“오늘 아침, 평소대로 보급 상인 장한수 대행수의 마차가 들어와야 할 시간이었으나, 정문에 도착한 것은 장 대행수가 아닌 낯선 무장 상단이었습니다. 그들의 수장은 다름 아닌 본산과 결탁한 악덕 독점 상인, 마만수였습니다!”
이현은 안경테를 가볍게 밀어 올렸다. ‘마만수’라. 흑뢰 감옥에 썩은 쌀과 오염된 식수를 비싼 값에 강매하며 폭리를 취하다가, 이현이 ‘공개 입찰 및 품질 보증제’를 구상하기 시작하자 밥그릇이 깨질 위기에 처했던 자였다.
그때 특별실 문가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석 비서 서필이 사색이 되어 다가왔다.
“위원장님, 방금 정문 초소의 설태풍 대리로부터 급보가 왔습니다! 황실의 태자 이건이 보낸 사설 군대와 마만수의 무장 대원들이 흑뢰로 통하는 유일한 보급로인 ‘묵계 계곡’을 물리적으로 전면 봉쇄했다고 합니다!”
“봉쇄라고요?”
옆에서 장부를 정리하던 송 노인이 붓을 멈추고 경악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묵계 계곡 목목마다 철책을 세우고, 황실의 공식 군사 훈련 구역이라는 팻말을 걸어 장한수 대행수의 보급 마차를 전부 무력으로 억류했습니다. 그러고는 마만수의 불량 식자재 마차만을 통과시키며, 기존 가격의 무려 3배에 달하는 금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서필의 목소리가 공포로 가늘게 떨렸다. 남궁세가로부터 받아낼 합의금 5,000 냥이 아직 송금되기도 전에, 외부 보급망이 완벽히 차단당하는 물류 고사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현은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창백한 안색 위로 차가운 미소가 스쳤다.
‘형님인 태자 이건이 내 생존과 가압류 신청서 소식에 완전히 이성을 잃은 모양이군. 직접 군대를 보낼 명분이 없으니, 부패한 독점 상인을 앞세워 내 밥줄을 끊으려 하다니. 전형적인 구시대적 대리 대리점 압박 전술이로군.’
이현은 가볍게 기침을 토해내며 서필에게 지시했다.
“서 비서, 지금 당장 흑뢰 보급 협동조합 이사장 김복창과, 묵계 계곡에서 겨우 탈출해 온 장한수 대행수를 이리로 소집하십시오. 긴급 물류 대책 회의를 소집합니다.”
잠시 후, 특별실 내부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뺨에 가벼운 타박상을 입은 채 겨우 몸만 빠져나온 장한수가 이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전하! 면목이 없습니다! 태자 이건이 보낸 황실 군사들이 묵계 계곡의 험준한 길목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제 보급 마차들은 전부 압류당했고, 신선한 야채와 고기들은 그들의 군량미로 강탈당했습니다. 현재 감옥 내부의 식량 재고는 고작 이틀 치에 불과합니다!”
김복창 역시 주판을 꼭 쥔 채 이마에 땀을 흘렸다.
“위원장님, 마만수 놈이 정문 밖에서 거드럭거리며 버티고 있습니다. 그놈은 우리가 이 썩은 쌀을 3배의 가격에 사지 않으면, 흑뢰의 간수들과 죄수들 전원을 굶겨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간수 노조원들도 밥상이 부실해지자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무공이 없는 약골 황자를 말려 죽이기 위한 완벽한 경제적 고사 작전. 그러나 이현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서필에게 손짓하여 특별실 한구석에 세워둔 대형 칠판과 분필을 대령하게 했다.
이현은 휠체어 바퀴를 굴려 칠판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분필을 쥐고 묵계 계곡과 흑뢰 감옥 주변의 지형을 정밀하게 그리기 시작했다.
“김 이사장, 장 대행수. 귀하들은 지금 거대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현의 깐깐하고 건조한 목소리가 방 안의 긴장감을 차분하게 가라앉혔.
“태자 이건과 마만수가 묵계 계곡을 막았다고 해서 우리의 물류가 끝장난 것이 아닙니다. 현대 경영학의 공급망 관리(SCM) 이론에 따르면, 특정 공급 경로가 단 하나에 의존하는 상태를 ‘단일 장애점(Single Point of Failure)’이라 부릅니다. 이는 리스크 관리의 가장 기초적인 실패 사례이지요. 적들은 우리가 오직 묵계 계곡이라는 단 하나의 파이프라인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믿기에 이런 유치한 봉쇄를 감행한 것입니다.”
이현이 분필로 묵계 계곡 옆의 거대한 공백 지대를 엑스(X)자로 강하게 그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소싱처를 다변화하고, 새로운 대안 유통 경로를 개척하면 됩니다. 즉, ‘듀얼 소싱(Dual Sourcing)’의 실현이지요.”
김복창과 장한수는 이현이 읊조리는 기묘한 언어들에 홀린 듯 귀를 기울였다. 장한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오나 전하, 묵계 계곡 외에는 흑뢰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습니다.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마차가 통행할 수 있는 평지는 오직 그곳뿐인데…….”
이현은 미소를 지으며, 칠판의 묵계 계곡 바로 옆에 위치한 음침하고 빽빽한 삼림 구역을 가리켰다.
“여기 있지 않습니까. ‘환각의 숲’ 말입니다.”
그 단어가 떨어지는 순간, 특별실 내부의 온도가 급강하한 듯한 침묵이 흘렀다.
“환, 환각의 숲이라고요?! 전하, 그곳은 절대 불가합니다!”
김복창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곳은 기괴한 버섯들이 뿜어내는 붉은 포자가 가득하여, 짐승이든 인간이든 발을 들이는 순간 정신이 붕괴하여 미쳐 날뛰다 죽어가는 천연의 재해 구역입니다! 마차가 지나가기는커녕, 일류 고수조차 내공으로 숨을 참고 돌파하려다 기절하는 금지 구역입니다!”
“비과학적인 공포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이현이 단호하게 분필을 칠판에 두드렸다. 탁, 탁, 탁.
“포자가 가득하다면 방독 필터를 만들면 되고, 절벽이 험준하다면 노조원들의 안전 장비를 강화하여 개척하면 됩니다. 세상에 극복하지 못할 환경적 제약은 없습니다. 오직 대비하지 않는 행정의 무능함이 있을 뿐이지요.”
이현은 송 노인을 돌아보며 차갑게 지시했다.
“송 서기, 즉시 내 직인이 찍힌 공식 서한을 작성하십시오. 제목은 ‘공개 입찰제 도입 및 품질 보증제 실시령’입니다.”
“공개 입찰제…… 실시령이요?”
“그렇습니다. 마만수가 공급한 식자재는 검은 곰팡이 오염도가 기준치(0.1%)를 초과하여 ‘이행 불능’에 따른 계약 위반으로 규정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존 마만수 상단과의 독점 조달 계약을 공식적으로 해지합니다. 또한, 오늘부로 흑뢰 감옥의 모든 식자재 조달은 품질 보증 기준을 통과한 상단만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개 경쟁 입찰’ 방식으로 전환합니다.”
이현의 깐깐한 법리적 선포에 송 노인은 전율을 느끼며 붓을 놀렸다.
“마만수가 황실의 뒷배를 믿고 우리의 서한을 비웃을 것입니다. 그놈들은 우리가 굶어 죽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니까요.”
김복창의 우려에 이현은 안경 너머로 지독하게 냉혹하고 영리한 안광을 빛냈다.
“비웃으라고 하십시오. 적들이 자신들의 독점 가치를 과신하며 방심할 때가 가장 완벽한 유통망 전복의 타이밍입니다. 장 대행수, 귀하는 즉시 은밀히 흑뢰 보급 협동조합의 비밀 자금을 동원하여, 인근 마을의 모든 청결한 식자재와 화염석을 선점하십시오. 마만수가 묵계 계곡에 묶여 있는 동안, 우리는 환각의 숲을 통해 그것들을 독점 수송할 것입니다.”
그 순간, 흑뢰 감옥 정문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험악한 고함이 들려왔다.
태자 이건과 결탁한 악덕 상인 마만수가 수십 명의 무장 대원들을 대동하고 감옥 정문 검문소 앞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마만수는 뚱뚱한 몸을 흔들며, 썩은 쌀이 가득 실린 마차 위에서 이현의 집무실 창가를 향해 거만하게 삿대질을 해댔다.
“어이! 거기 방구석에 처박혀 기침만 해대는 나약한 황자 놈아! 들리느냐!”
마만수가 흉포하게 비웃으며 소리쳤다.
“이 썩은 쌀이라도 사지 않으면 감옥은 전원 굶어 죽을 것이다! 네놈이 아무리 법이니 도장이니 떠들어대도, 먹을 것이 없으면 간수 놈들이 가장 먼저 네놈의 멱살을 잡고 마교 본산에 넘겨버릴 터! 고집 피우지 말고 당장 금화 만 냥을 내놓고 이 쌀을 사 가거라! 크하하하!”
정문 밖에서 들려오는 마만수의 오만한 비웃음 소리. 간수들과 죄수들이 굶주림의 공포에 질려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일촉즉발의 순간.
그러나 흑뢰 제3호 특별실 안에서, 이현은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칠판 위에 분필로 ‘환각의 숲’을 관통하는 굵고 선명한 새로운 붉은색 유통 우회 경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서 비서, 당장 화학 안전 실장 당소혜와 경비대 설태풍을 소집하십시오.”
이현이 분필을 내려놓으며 차분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 무식한 독점 상인에게, 현대식 물류 혁명과 방역 과학의 매운맛을 보여줄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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