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로의 노후 보장 계획
쿠구구궁!
흑뢰 감옥의 찌그러진 철제 정문 너머로 대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마수들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붉은 철갑을 두른 기마대 수백 명이 뿜어내는 살기는 지하 동굴의 습한 공기를 단숨에 증발시킬 정도로 뜨겁고 패도적이었다.
그 기마대의 선두에는 붉은 수염을 호랑이 갈기처럼 기르고, 화려한 비단 도포를 걸친 거구의 노인이 서 있었다. 마교 원로원의 핵심 실력자이자 조태독의 고모부, 3장로 팽진(팽진)이었다. 그가 든 거대한 흑호도(黑虎刀)에서 뿜어져 나오는 적마신공(赤魔神功)의 열기가 광장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고모부님! 흑, 흑흑……! 드디어 오셨습니까!”
바닥에 피를 토하고 실각해 쓰러져 있던 조태독이 팽진의 군화를 붙잡으며 비굴하게 울부짖었다.
“저기 저 버릇없는 황자 놈이 간수들을 선동해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제 무력 지휘권을 강탈하고, 급식을 통제하며 교단의 위엄을 더럽혔습니다! 당장 저놈의 목을 베어 마교의 기강을 바로잡아 주십시오!”
조태독의 악에 받친 밀고에 팽진의 눈동자가 시뻘건 마기로 이글거렸다. 초절정 고수의 살기가 광장 전체를 내리누르자, 가슴에 붉은 완장을 차고 있던 간수 노조원들과 걸레를 들고 있던 흑혈도 일당이 본능적인 공포에 질려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
“인질 주제에 감히 마교의 지하 감옥을 사유화하고 반역을 도모해? 내 오늘 천마조조의 이름으로 이 흑뢰를 피로 쓸어버리겠다!”
팽진이 대도를 내리치자 웅장한 검풍이 일며 광장 중앙의 나무 단상이 일격에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휘날렸다. 일촉즉발의 최악의 위기. 그러나 휠체어에 앉아 있던 이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수건으로 입가를 가리며 가볍게 기침을 토해냈다.
“콜록, 콜록…… 쿨럭. 팽 장로님, 본산에서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첫인사부터 기물 파손이라니 참으로 비합리적인 정무적 악수(惡手)를 두시는군요.”
“뭐라? 이 약골 놈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팽진이 검기를 치켜들며 이현의 휠체어를 향해 폭주하려 했다. 무공이 전혀 없는 이현의 유리몸으로서는 그 기세의 여파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현은 침착하게 자신의 특수 능력인 ‘안색 분석 진단술’을 가동했다.
이현의 안경 너머 예리한 시선이 팽진의 붉은 안색과 미세하게 떨리는 오른쪽 무릎, 그리고 가쁜 호흡을 정밀하게 훑어 내렸다.
‘나이 예순여덟. 적마신공의 과도한 화력 수련으로 인해 만성적인 혈관 경화와 중증 통풍을 앓고 있군. 게다가 목덜미가 비정상적으로 붉고 경동맥이 터질 듯 뛰는 것을 보니 심각한 고혈압이다. 저 기세는 내공이 강한 것이 아니라, 심장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상태를 억지로 누르고 있는 것에 불과해.’
진단을 마친 이현이 깐깐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쐐기를 박았다.
“팽 장로님. 지금 적마신공의 진기를 그렇게 무리하게 끌어올리시면, 앞으로 3년 뒤에는 뇌출혈로 전신이 마비되어 침상에서 대소변을 받아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귀하가 평생 교단을 위해 피를 흘리며 쌓아온 공헌의 대가가 결국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원로원에서 버림받는 비참한 최후라는 것을 정녕 모르십니까?”
“……!!”
팽진의 대도가 공중에서 뚝 멈췄다. 그의 호랑이 같은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네, 네놈이 그것을 어찌……!”
그것은 평생 살육의 길을 걸어온 마교 늙은 마두들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공포였다. 마교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 아무리 대장로라 할지라도 무력이 쇠하고 병들면 제자들에게 비법을 빼앗기고 골방에서 비참하게 굶어 죽거나 숙청당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였다. 팽진 역시 최근 들어 밤마다 온몸의 관절이 불타는 듯한 통풍 통증과, 자신이 쓸모없어지면 가문과 부하들이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극심한 노후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석 비서 서필에게 눈짓을 보냈다.
“서 비서. 송 노인이 밤새 작성한 ‘그 서류’를 장로님께 대령하십시오.”
“존명!”
서필이 다크서클이 가득한 눈을 빛내며, 유려한 한문 공문서 양식으로 작성된 두꺼운 가죽 서류철을 팽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정중히 받쳐 들었다. 서류철의 표지에는 황금색 먹물로 웅장하게 적혀 있었다.
[마교 최초 원로원 특별 연금 제도 및 흑뢰 실버타운 온천 개발 기획서]
“……이게 무슨 해괴한 서류냐?”
팽진이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서류철을 받아 펼쳐 들었다. 이현은 휠체어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댄 채, ‘8단계: 복지 의존성 지배자’의 경지를 발동하며 깐깐하고 논리적인 목소리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것은 장로님이 평생 걱정해 오신 노후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줄 구원책입니다. 귀하가 이현 노동조합의 자치권을 공식 승인해 주는 대가로, 우리는 흑뢰에서 채굴되는 영석 파편 수익의 일부를 초기 자본으로 삼아 ‘원로원 특별 연금 기금’을 조성할 것입니다.”
“연금…… 기금?”
“그렇습니다. 장로님이 현직에서 은퇴하시는 순간부터, 교단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매월 금화 300냥의 고정 생활비를 평생 보장해 드리는 제도입니다. 또한, 귀하가 사망하신 후에도 남겨진 직계 가솔들에게 매월 100냥의 유족 연금이 지급되도록 설계해 두었습니다.”
팽진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매월 고정 생활비 300냥. 그것도 자신이 은퇴한 후에도 가문이 굶어 죽지 않도록 유족 연금까지 보장해 준다는 문구는, 평생 불안에 떨던 늙은 마두의 심장을 세차게 때렸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현이 찻잔을 들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고문 장소였던 지하 화염 연옥을 개조하여 24시간 온수가 흐르는 ‘흑뢰 온천 리조트’를 설립할 예정입니다. 장로님께는 평생 무료 이용권과 최고급 VIP 요양 침상을 무상으로 제공할 것이며, 백무진 의원이 직접 집행하는 ‘척추 디스크 도수치료’와 당소혜 실장의 ‘천연 두피 안티에이징 케어’를 매주 정기적으로 받으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 대신, 따뜻한 온천 바닥에 누워 매월 연금을 받으며 안락한 여생을 보내고 싶지 않으십니까?”
따뜻한 온천탕.
은퇴 후 매월 나오는 300냥의 연금.
그리고 자신의 비틀어진 척추와 통풍을 치료해 줄 전문 의료 복지.
팽진의 머릿속에 상상도 못 했던 평화롭고 안락한 노후의 풍경이 그려졌다. 평생 칼날 위를 걸으며 남의 목을 베고, 자신도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야만의 삶에 비하면, 이것은 문자 그대로 ‘천상의 유토피아’였다.
“이, 이 모든 것이…… 저 장부의 계산대로 정말 실현 가능하다는 말이냐?”
팽진이 서류 뒷면에 적힌 정밀한 세입 세출 예산안과 복식부기 그래프를 보며 안광을 번뜩였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현이 깐깐하게 계산해 둔 예산 편성은 단 1푼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자금 순환이 가능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때, 눈치 없는 조태독이 팽진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비명을 질렀다.
“고모부님! 속으시면 안 됩니다! 저 약골 황자 놈이 주술을 부려 고모부님을 홀리는 것입니다! 당장 저놈의 목을 베고 감옥을 다시 피로 물들여야 합니다!”
조태독의 징징거리는 소리에 팽진의 꿈결 같던 노후 보장 계획이 뚝 깨졌다. 팽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조태독을 내려다보았다.
‘생각해 보니…… 이 무능한 조카 놈은 평생 내게 뇌물 몇 푼 바친 것 외에는 내 노후나 건강에 단 1푼의 관심도 없었지. 오히려 이현 도련님은 내 비틀어진 척추와 미래 가솔들의 생계까지 이토록 정교하게 설계해 주지 않았는가? 그런데 감히 이런 위대한 행정 천재를 죽이려 해?’
팽진의 가슴속에서 조태독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미련하고 은혜를 모르는 놈을 보았나!”
퍼억!
팽진이 거대한 손바닥으로 조태독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광장에 웅장한 따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태독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몇 바퀴를 허공에서 회전하다가 흙바닥에 처참하게 처박혔다.
“고, 고모부님……? 왜 저를……?”
조태독이 깨진 이빨 사이로 피를 흘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울먹였다. 팽진은 흑호도를 바닥에 쾅 내리찍으며 사자후를 토했다.
“닥쳐라, 이 무능한 역적 놈아! 이현 도련님처럼 교단의 백년대계와 원로원 장로들의 복지를 위해 밤낮으로 고뇌하시는 위대한 행정가를 음해하고 괴롭히다니! 네놈이 진짜 마교의 기강을 흔드는 역적이 아니고 무엇이냐! 당장 이놈의 간수장 직위를 박탈하고 지하 감옥의 가장 더러운 구역의 청소부로 강등시켜라!”
“이현 도련님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마라! 만약 도련님의 휠체어 바퀴에 먼지 한 톨이라도 묻히는 자가 있다면, 내 친히 그놈의 삼대를 멸할 것이다!”
조태독은 고모부의 완벽한 배신과 실각 판결에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입에 거품을 물며 그 자리에서 완전히 혼절해 버렸다.
팽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현에게 다가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이 처장님. 아니, 위원장님. 이 무능한 조카 놈의 무례를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오늘부로 흑뢰 감옥의 모든 실무 행정 및 재무 자치 전권을 위원장님께 공식 위임하겠습니다. 부디…… 제 연금 보장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 주십시오.”
이현은 안경을 고쳐 쓰며 품속에서 ‘노조 위원장 공식 결재 직인’을 꺼내 팽진의 연금 서약서에 붉은 인장을 칼같이 찍어 내렸다.
쿵!
무력과 피비린내가 지배하던 흑뢰 감옥이, 마침내 깐깐한 복지와 시스템의 승리로 완전히 지배되는 1단계의 장엄한 대단원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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