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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감옥의 가습기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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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황자 전하! 온수와 수건을 가져왔습니다!”


초임 간수 서필이 숨을 헐떡이며 흑뢰 제3호 특별실의 무거운 철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그의 품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놋대장과 하얗게 세탁된 면 수건 몇 장이 한가득 안겨 있었다. 서필의 얼굴은 마치 당장이라도 참수형을 선고받은 죄수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앉아 있는 창백한 안색의 황자가 기침을 한 번 할 때마다 자신의 목줄이 몇 밀리미터씩 서서히 잘려 나가는 듯한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현은 휠체어에 비스듬히 기댄 채, 서필이 대령한 수건을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창백하다 못해 투명한 그의 손가락이 수건의 끝자락을 살포시 집어 올렸다.


“콜록...! 서필 간수.”


“예, 예! 전하!”


“이 수건의 직조 상태를 보아하니 올이 너무 굵고 거칠군요. 피부 자극은 물론이거니와 수분 보유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게다가 이 온수의 온도는 정확히 몇 도입니까?”


서필은 턱을 덜덜 떨며 물었다.


“예? 온, 온도요? 그저 주방에서 펄펄 끓는 가마솥 물을 바가지로 떠온 것인데…….”


이현이 나직하게 혀를 찼다. 쯧.


“지독하게 비과학적이군요. 모세관 현상을 극대화하여 수분의 자연 기화를 유도하려면 온수의 온도는 정확히 섭씨 40도에서 45도 사이여야 합니다. 물이 너무 뜨거우면 수분이 한순간에 증발해 버려 정작 야간의 건조함을 막지 못하고, 너무 차가우면 기화율이 떨어져 방 안의 습도를 올리지 못합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겠습니까?”


“섭…… 씨? 기화……?”


서필의 머릿속은 이미 안개 속을 헤매는 듯 혼란스러웠다. 마교의 지하 감옥에서 평생 칼질과 매질만 배워온 하급 간수에게 섭씨 온도니 기화율이니 하는 현대 과학적 단어들이 들어올 리 만무했다. 하지만 이현의 눈빛은 너무나도 진지했고, 그 너머에 서린 깐깐한 권위는 전생의 대기업 HR 실장 시절 수천 명의 노조원들을 단숨에 침묵시키던 바로 그 기세였다.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이것 하나만 명심하십시오. 내 호흡기를 보호하기 위해 이 방 안의 습도는 정확히 70%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만약 이 기준치에서 단 5%라도 떨어져 내가 야간에 각혈을 하거나 폐렴 증세를 보인다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히익……! 저, 저와 간수장님의 목이 날아갑니다!”


서필이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맹렬하게 대답했다. 이현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공포는 하급 직원을 통제하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효율적인 동력원이다. 전생의 김 부장이 자신을 그렇게 부려먹었듯, 이현 역시 서필의 ‘처형에 대한 공포’를 완벽하게 가공하여 자신의 생존 자원으로 치환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지시하는 대로 ‘특제 이중 가습 젖은 수건’을 설비하십시오.”


이현은 품속에서 낡은 은장도(어머니의 유품이자 현재는 정밀한 치수를 재는 자 대용으로 쓰이는 물건)를 꺼내 벽면의 높이를 가늠했다.


“수건 두 장을 겹쳐서 널되, 하단의 3치(약 9cm) 정도만 온수가 담긴 대장 바닥에 잠기게 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모세관 현상에 의해 수분이 끊임없이 위로 빨려 올라가며 자연스럽게 방 안의 공기를 촉촉하게 적셔줄 것입니다. 서필 간수, 귀하는 2시간마다 온수의 온도를 확인하고 수건을 새로 적셔 교체하도록 하십시오.”


“2, 2시간마다 말입니까? 밤새도록요?”


서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밤새 잠을 자지 말고 대기하라는 살인적인 야간 근무 지시와 다름없었다. 서필이 울상을 지으며 항변하려 하자, 이현이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왜요? 귀하의 수면 권리가 내 생명 보존보다 소중합니까? 내가 오늘 밤 기침을 하다가 진기가 뒤틀려 급사하면, 귀하는 평생 영원히 잠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텐데요.”


“아, 아닙니다! 당장 실행하겠습니다! 2시간이 아니라 1시간마다 확인하겠습니다!”


서필은 혼비백산하여 방 벽면에 수건을 정교하게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현의 깐깐한 지시에 따라 손가락 마디마디의 간격까지 맞춰가며 수건을 너는 서필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시간이 흘러 깊은 밤이 되었다.

지하 감옥의 칼바람이 철창 틈새로 들이쳤으나, 이현이 설계한 이중 가습 수건 덕분에 특별실 내부만큼은 기묘할 정도로 촉촉하고 아늑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건조함으로 인해 목을 찌르던 통증이 가라앉자, 이현은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무공을 익히기 위함이 아니었다. 전생의 지독한 야근 트라우마와 현생의 병약한 몸뚱이가 주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다스리기 위한 단전호흡이자, 전생 대기업 시절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기 위해 외우던 일종의 정신 수양이었다.


이현은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쉬며, 아주 나직한 성조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창조한다, 미래의 가치를. 고객과 함께, 세계를 향해 도전한다…….”


그것은 전생에 몸담았던 대기업의 사가(社歌)였다. 매일 아침 조회 시간마다 지겹도록 불렀던 그 멜로디가, 이 음습한 마교의 지하 감옥에서 마음의 평정을 찾는 주문이 될 줄은 이현 자신도 몰랐다. 이현은 사가를 나직하게 읊조린 후, 이어서 인사 관리 행동 수칙을 암송했다.


“……제1조. 직원의 정신 건강은 기업의 핵심 생산 자산이다. 가혹한 환경은 노동력의 질을 저하시키며, 정당한 휴식 보장만이 지속 가능한 가치를 창출한다…….”


이현의 목소리는 비록 병약하여 가냘팠으나, 전직 HR 실장 특유의 칼같이 떨어지는 발음과 묘한 운율이 실려 있어 고요한 지하 감옥의 어둠 속으로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바로 그 순간, 특별실 철문 밖 복도에서는 야간 순찰을 돌던 간수 조평식과 하급 간수들이 횃불을 든 채 굳어 있었다. 그들은 이현의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기묘한 주문 소리를 듣고 마른침을 삼켰다.


“조, 조 선배님…… 저 소리가 들리십니까?”


하급 간수가 사들부들 떨며 속삭였다. 조평식은 검자루를 꽉 쥔 채 귀를 문에 바짝 가져다 대었다. 그의 험상궂은 얼굴에 정체 모를 경외심과 전율이 서서히 차올랐다.


“쉿! 조용히 해라. 방해가 되면 우리 목숨은 없다…….”


조평식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의 귀에 들려오는 이현의 주문은 그들이 평생 들어본 적 없는 기이하고도 장엄한 단어들로 가득했다.


‘창조한다…… 미래의 가치…… 글로벌 혁신…….’


마교인들에게 ‘가치’와 ‘창조’라는 단어는 오직 천마조조께서 세상을 개벽할 때 쓰신 태고의 권능에만 허락된 수식어였다. 게다가 ‘직원의 정신 건강은 핵심 자산’이라니! 마교의 그 어떤 무자비한 마공 비급에서도 부하들의 정신과 휴식을 이토록 정교한 인과율로 다룬 구절은 없었다.


조평식은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단순한 황자의 잠꼬대가 아니다. 천마조조의 숨겨진 뜻을 담은 태고의 마공 구결이거나, 혹은 황실 비전의 정신 지배 주술이 틀림없어! 단어 하나하나에 내공을 조율하는 기막힌 규칙성이 서려 있구나!’


조평식은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낡은 장부와 흑연 필기구를 꺼냈다. 그리고 이현이 흘려보내는 사가와 인사 수칙을 한 자 한 자 받아 적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하급 간수들도 침을 삼키며 조평식의 장부를 훔쳐보았다.


“선배님, ‘주 52시간 준수하며’라는 구절은 무슨 뜻입니까? 오십두 개의 시간 동안 내공을 순환시키라는 극의의 구결입니까?”


“바보 같은 놈! 천마의 묵시록을 함부로 해석하려 들지 마라. 그저 적어라! 이 구결을 매일 아침 외우는 것만으로도 뒤틀린 진기가 바로잡히는 기분이 드는구나!”


간수들은 어둠 속에서 횃불 불빛에 의지해 이현의 사가를 ‘천마의 숨겨진 묵시록’이라 부르며 경건하게 필사하기 시작했다. 방 안에서 편안하게 숨을 쉬며 스트레칭을 하던 이현은, 문밖에서 간수들이 자신의 옛 회사 사가를 적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특제 이중 가습 수건 덕분에 기침 한 번 없이 개운하게 눈을 뜬 이현은 휠체어에 앉아 방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에 깔린 짚단에서 올라오는 눅눅하고 썩은 내가 코를 찔렀. 이현은 미간을 칼같이 찌푸렸다.


“서필 간수.”


밤새 2시간마다 온수를 갈아대느라 눈 밑에 다크서클이 튱튱하게 내려앉은 서필이 급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예, 예! 전하! 가습 상태에 이상이 있습니까?”


“가습 상태는 양호합니다. 덕분에 내 폐포가 무사히 밤을 넘겼군요. 하지만…….”


이현이 가죽 장화 끝으로 바닥의 짚단을 툭툭 건드렸다.


“이 바닥의 짚단들은 도대체 언제 교체한 것입니까? 습기를 잔뜩 머금어 곰팡이 포자가 증식하고 있고, 미세한 해충들이 서식하기에 완벽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군요. 이것은 단순한 불결함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연약한 피부에 발진을 유발하고, 호흡기로 유해 포자가 유입될 경우 즉각적인 각혈 발작을 일으킬 수 있는 치명적인 위해 요소입니다.”


“그, 그것은…… 감옥의 짚단은 원래 반년에 한 번씩 교체하는 것이 규칙이라…….”


서필이 우물쭈물 대답하자, 이현의 눈빛이 칼날처럼 예리해졌다.


“반년이라니요? 귀하는 지금 전염병 예방 관리법의 기본조차 모르는 무식한 소리를 하고 있군요. 눅눅한 짚단은 세균의 온상입니다. 당장 이 썩은 짚단들을 전면 철거하고, 햇볕에 바짝 말려 소독한 ‘멸균 처리된 마른 짚단’을 반입하십시오. 이것은 내 인질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정당한 ‘위생 클레임’입니다. 간수장 조태독에게 가서 당장 결재를 받아오십시오.”


“히익! 간, 간수장님께 짚단 교체 결재를요? 제 목이 먼저 날아갈 겁니다!”


서필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이현은 단호하게 결재 서류 양식을 머릿속으로 구상하며, 서필의 등을 떠밀 준비를 마쳤다. 감옥 전체의 위생 상태를 뜯어고치기 위한 이현의 깐깐한 혁명은, 이제 겨우 가습기 수건 한 장에서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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