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수 중단과 파업의 명분
“위, 위원장님! 큰일 났습니다! 조태독이 노조를 물리적으로 해산하기 위해 사파 최고의 해결사이자 무자비한 칼잡이인 ‘흑혈도(흑혈도)’ 일당을 대동하고 감옥 정문으로 난입했습니다!”
설태풍의 급박한 전언이 아늑하게 리모델링된 만년 고독동 명상실의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방금 전까지 이현의 현대식 심리 상담을 받고 안락의자에 파묻혀 눈물을 훔치던 주술사 골마라가 깜짝 놀라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수석 비서 서필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이현의 휠체어 앞을 가로막아 섰다.
“위, 위원장님! 흑혈도라면 돈만 주면 살인도 불사하는 사파의 악랄한 무법자 집단입니다! 조태독이 기어이 미쳐서 외부 무력까지 끌어들인 모양입니다!”
지하 5층의 명상실 내부로 서늘한 살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휠체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이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들고 있던 찻잔을 정갈하게 내려놓으며 차분하게 안경을 치켜올렸다.
‘사파의 해결사라…… 조직의 합법적인 구조 개혁에 대항하기 위해 외부의 불법 용역을 고용해 물리적 타격을 가하려는 꼼수로군. 전생에 노조 진압용 사설 경비업체를 동원하던 악덕 사장들의 수법과 한 치의 오차도 없군.’
이현의 머릿속은 지극히 건조하고 냉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무공이라고는 단 한 동작도 모르는 유리몸이었지만, 전생에 대한민국 대기업 HR 실장으로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에게 무력 도발은 그저 ‘비합리적인 정무적 악수(惡手)’에 불과했다.
“서 비서, 기침약 한 모금 대령하십시오. 그리고 박 총장과 기동대를 소집하세요.”
“콜록, 쿨럭…….”
이현이 가볍게 기침을 토해내자 서필이 사색이 되어 따뜻한 기침약을 대령했다. 약을 삼킨 이현이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철문 밖으로 나섰다.
* * *
흑뢰 감옥의 중앙 광장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철제 정문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져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고, 그 너머로 검은 가죽 옷을 입고 거대한 칼을 어깨에 멘 흉포한 사내들이 광장을 점거하고 있었다. 그들의 중심에는 온몸에 기괴한 문신을 새기고 핏빛 살기를 뿜어내는 거구의 사내, 흑혈도가 서 있었다.
“크하하하! 이곳이 감옥이냐, 아니면 기녀들의 화방이냐? 사방에서 향긋한 냄새가 나는구나! 어이, 조 간수장! 저기 휠체어에 앉은 병약한 황자 놈만 목을 베면 되는 것인가?”
흑혈도가 거대한 흑철 대도를 휘두르며 광소했다. 그의 뒤에는 실각 위기 속에서 마지막 발악을 감행한 간수장 조태독이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서 있었다.
“그렇다, 흑혈도 대협! 저 불순한 황자 놈이 간수들을 선동해 마교의 기강을 무너뜨렸다! 당장 저놈의 목을 베고 노조 완장을 찬 반역자 놈들을 전부 도륙해라! 본산에는 내가 알아서 보고하겠다!”
조태독이 채찍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광장에 모여 있던 간수 노조원들이 주춤하며 무기를 쥐었으나, 초절정 고수에 가까운 흑혈도의 살도(殺刀) 기세 앞에서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현은 휠체어에 앉아 창백한 안색으로 흑혈도를 조용히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에 특수 능력인 ‘안색 분석 진단술’이 예리하게 작동했다.
‘저 자…… 거대한 대도를 어깨에 메고 다니느라 요추 4번과 5번이 완전히 비틀어져 있군. 걸을 때마다 오른쪽 어깨가 미세하게 처지는 것은 만성적인 근막통증증후군과 어깨 충돌 증후군 때문이다. 게다가 거친 숨소리를 보니 만성 폐쇄성 폐질환의 징후까지 있어.’
진단을 마친 이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나약했으나, 광장 전체에 똑똑히 박히는 기묘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귀하는 지금 심각한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계시는군요. 그런 몸으로 무리하게 칼을 휘두르다가는 다음 달이 가기 전에 척추가 완전히 내려앉아 평생 누워 지내야 할 것입니다. 불법 용역 수수료 몇 푼에 본인의 영구적인 신체 장애를 교환하려 하십니까?”
“뭐, 뭐라? 이 약골 놈이 미쳐서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흑혈도가 눈을 부릅뜨며 대도를 치켜들었다. 웅장한 검기가 광장 바닥을 긁으며 먼지를 일으켰다.
“당장 그 목을 베어 주마!”
흑혈도가 폭주하려 하자, 이현은 품속에서 ‘노조 위원장 공식 결재 직인’을 꺼내 들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좋습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비합리적인 불법 용역의 난입이 확인되었군요. 위원장 권한으로 오늘부로 흑뢰 감옥 전역에 ‘총파업 및 직장 폐쇄(Lockout)’를 공식 결재합니다.”
“파업……? 그게 무슨 개소리냐!”
조태독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으나, 이현은 이미 서필에게 다음 행정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서 비서, 즉시 온수 보일러실로 전령을 보내십시오. 제갈민에게 지시하여 화염 연옥에서 공급되는 모든 온수 배관의 메인 밸브를 즉각 폐쇄하라고 하세요. 단 1방울의 온수도 지상으로 흘러가서는 안 됩니다.”
“존명! 즉시 집행하겠습니다!”
서필이 날렵하게 몸을 날려 지하 수로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급식 조리 위원장 배영태에게 지시하십시오. 주방의 모든 가마솥 문을 잠그고 열쇠를 숨긴 뒤, 전원 파업대열에 합류하라고 하세요. 오늘부로 감옥 내 모든 배식은 전면 보류됩니다.”
이현의 깐깐한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감옥 내부의 보이지 않는 행정망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단 한 시간 뒤.
흑뢰 감옥 내부의 공기가 기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지하 화염 연옥에서 뿜어져 나오던 온수 순환이 완벽히 차단되자, 흑뢰 감옥 전역을 따뜻하게 데워주던 온돌 바닥이 차갑게 식어내려 갔다. 한파가 몰아치는 지하 동굴의 특성상, 온수 공급이 중단되자마자 감옥 온도는 급격히 강하하여 뼈를 깎는 얼음굴로 변모했다.
“으, 으으…… 갑자기 왜 이렇게 추워지는 거야?”
“바닥이…… 바닥이 얼음장 같다!”
흑혈도의 사파 해결사 무리들이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교의 지하 감옥이 혹한의 생지옥이라는 소문을 듣고 두꺼운 가죽 옷을 입고 왔으나, 이미 온돌 난방의 안락함에 길들여져 있던 신체는 갑작스러운 한기에 극도로 취약해져 있었다. 따뜻한 온수 샤워와 온돌방의 맛을 본 인간은 결코 이전의 야만적인 추위로 돌아갈 수 없는 법이다. 이것이 바로 이현이 구축한 ‘8단계: 복지 의존성 지배자’의 위력이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배고픔이 그들을 덮쳤다.
“어이! 주방은 어디 있느냐! 장작이라도 때서 밥을 지어라!”
흑혈도가 이빨을 딱딱 마주치며 조태독의 멱살을 잡았다. 조태독은 사색이 되어 주방으로 달려갔으나, 주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거대한 무쇠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배영태! 당장 문 열어라! 주방을 열고 밥을 짓지 않으면 즉참에 처하겠다!”
조태독이 문을 발로 차며 소리쳤으나, 주방 안쪽에서 불 조절 기공의 대가 배영태의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
“간수장님, 헛수고 마십시오! 우리는 노동조합 위원장님의 공식 결재 없이는 단 한 톨의 쌀도 씻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정당한 파업권의 행사입니다! 가마솥 열쇠는 이미 지하 수로 깊은 곳에 숨겨두었으니 무력으로 부수려 했다간 가마솥 전체가 폭발하도록 설계해 두었습니다!”
“이, 이 빌어먹을 요리사 놈이……!”
조태독이 분통이 터져 피를 토할 기세로 소리쳤으나 방법이 없었다.
추위와 배고픔에 사파 해결사들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된 순간, 광장 사방의 환기구와 복도 모퉁이에서 기묘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소독방역 기동대, 전원 마스크 착용! 방역 구역 진입!”
우렁찬 호령과 함께, 하얀 위생 마스크를 쓴 죄수 자치회장 박칠성과 30명의 기동대원들이 거대한 ‘흑뢰 전역 소독용 분무기’를 메고 나타났다.
“어이, 무법자 놈들! 위생 검역을 필하지 않은 외부 인원의 무단 침입은 감옥 보건 규정 제3조 위반이다! 즉각 전신 소독을 실시한다!”
박칠성이 가죽 압축 주머니를 강력하게 밟았다. 피슉! 고압 구리 노즐이 열리며, 당소혜가 특별 제작한 ‘친환경 무독성 살충 스프레이’액이 미세한 안개 형태로 광장 전역에 사방으로 살포되기 시작했다.
“커헉! 이게 무슨 냄새냐!”
“눈이…… 눈이 따가워 미칠 것 같다!”
살충 스프레이에 섞인 천연 박하와 유황 성분의 미세한 안개가 사파 해결사들의 눈과 코를 사정없이 찔렀다. 인체에는 무해하지만, 최루 가스 못지않은 강력한 자극성이 그들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흑혈도의 부하들이 칼을 허공에 휘두르며 기침을 쏟아내고 눈물을 흘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크아악! 눈을 뜰 수가 없다! 이 비열한 독수(毒手)를 쓰다니!”
흑혈도가 대도를 휘두르며 발악했으나,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의 무차별적인 칼질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박칠성과 대원들은 그들의 사방 10보 밖에서 여유롭게 소독약을 분사하며 그들의 활동 범위를 완벽하게 제한했다.
그때, 휠체어를 탄 이현이 서필의 보좌를 받으며 안개 너머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현은 단정한 흰색 마스크를 쓴 채, 깐깐한 눈빛으로 흑혈도를 내려다보았다.
“이것은 독약이 아니라, 감옥 내 전염병 예방을 위한 친환경 살균 소독수입니다. 귀하들의 비위생적인 신체와 무기에 묻은 세균을 박멸하는 정당한 방역 행정이지요.”
이현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품속에서 붉은 인장이 찍힌 서류 한 장을 펼쳐 보였다.
“흑혈도 대협.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눈 통증 속에서 비참하게 쓰러지시겠습니까? 아니면 우리 노동조합의 ‘위생 및 안전 준수 서약서’에 서명하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시겠습니까?”
“서, 서약서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흑혈도가 눈물을 흘리며 이빨을 갈았다. 이현이 차분하게 조건을 제시했다.
“서약서에 서명하고 우리 노조의 자원봉사자(청소부)로 등록하신다면, 즉시 온수 보일러를 가동해 따뜻한 온돌방을 제공하고, 배영태 셰프가 끓인 따뜻한 고기 곰탕 한 그릇을 대령하겠습니다. 물론, 눈 통증을 즉시 가라앉혀 줄 백무진 의원의 특제 해독 안약도 무상으로 처방해 드리지요.”
따뜻한 온돌방.
그리고 고기가 가득한 따뜻한 국밥.
그 달콤한 복지의 제안이 한파와 배고픔에 지쳐 있던 사파 무법자들의 뇌리를 강타했다. 평생 거친 저잣거리와 차가운 흙바닥에서 칼부림을 하며 살아온 그들에게, 이현이 제시한 웰빙의 혜택은 그 어떤 천상의 무공 비급보다도 강력한 유혹이었다.
“내, 내가 사파의 명숙이거늘…… 고작 국밥 한 그릇에 굴복할 것 같으냐!”
흑혈도가 마지막 자존심을 세우며 소리쳤으나, 그의 배에서 ‘꼬르륵’ 하는 요란한 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그의 뒤에 있던 부하들은 이미 칼을 내려놓고 울먹이고 있었다.
“대협…… 저, 정말 춥고 배고픕니다. 눈도 멀 것 같습니다…….”
“그냥 청소하고 국밥 먹읍시다…… 어차피 돈 벌어서 뭐 합니까, 얼어 죽으면 끝인데…….”
부하들의 애원에 흑혈도의 거대한 어깨가 무참히 내려앉았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대도를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서…… 서명하겠다. 대신 고기는 많이 넣어다오.”
* * *
잠시 후, 흑뢰 감옥의 중앙 광장.
지하 보일러가 다시 가동되며 온돌 바닥에서 훈훈한 온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광장 한구석에는 따뜻한 온돌방이 마련되었고, 그곳에서 사파의 흉포한 고수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백무진이 처방해 준 안약을 눈에 넣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광장의 중앙.
천하를 호령하던 사파의 무뢰한, 흑혈도가 가슴에 ‘노조 자원봉사자’라는 붉은 완장을 찬 채, 한 손에는 거대한 대도 대신 빗자루를 들고 눈물을 흘리며 감옥 바닥을 쓸고 있었다.
슥, 슥.
“내 평생…… 이토록 따뜻한 바닥에서 밥을 먹어본 적이 없거늘…… 청소하는 게 뭐 대수라고…….”
흑혈도가 빗자루질을 하며 곰탕 국물을 들이키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의 부하들 역시 일렬로 늘어서서 비누칠을 한 걸레로 복도를 반짝반짝 닦아내고 있었다.
그 기괴하고도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던 간수장 조태독은 완벽한 인지부조화와 배신감에 휩싸였다.
“이, 이럴 수는 없다…… 내가 전 재산을 털어 고용한 사파의 괴물들이…… 황자의 국밥 한 그릇에 청소부로 전업하단 말이냐!”
조태독의 눈동자가 뒤집히며 기혈이 극도로 뒤틀렸다.
“커헉!”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시뻘건 피를 토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신의 마지막 카드가 완벽한 복지의 마력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며 영혼이 완전히 붕괴해 버린 것이다.
이현은 휠체어에 앉아 안경을 고쳐 쓰며, 흑혈도가 정갈하게 쓸어낸 바닥의 위생 점수를 장부에 기록했다.
“아주 훌륭한 청소 상태로군요. 흑혈도 자원봉사자님, 내일은 지하 수로의 오물 준설 작업에 참여하시면 특별 간식으로 귤을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규, 귤도 주십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위원장님!”
흑혈도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우렁차게 대답하며 빗자루질에 속도를 냈다.
무력과 피비린내가 지배하던 흑뢰 감옥에, 깐깐한 복지와 시스템이 가져온 완벽한 평화의 명분이 다시 한번 굳건히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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