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고독동의 힐링 명상실
흑뢰 감옥의 가장 깊숙한 지하, 빛조차 닿지 않는 어둠의 나락 속에서 조태독은 승리에 찬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은 낡은 양피지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마교 설립 초기에 제정된 기밀 규정, 이름하여 ‘교단 보안법 제9조 특별 격리 조항’이었다.
“흐흐흐…… 깐깐한 황자 놈아. 자치권이니 노동조합이니 하며 내 목을 죄더니, 결국 이 법의 맹점에 걸려들었구나!”
조태독이 특별실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포효했다. 그의 뒤에는 살기등등한 직속 감찰대원들이 무기를 꼬박 쥔 채 도열해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차분하게 장부를 정리하던 이현은 눈살을 찌푸리지도 않은 채, 가볍게 기침을 뱉어냈다.
“콜록, 콜록…… 조 간수장. 문을 열 때는 노크를 하라는 기본 예절 교육을 받지 못하셨습니까? 그리고 귀하가 뿜어내는 그 살기 가득한 먼지 때문에 내 호흡기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입 닥쳐라! 교단 보안법 제9조에 의거, 기밀 유출 및 선동 혐의가 농후한 특별 인질 이현을 즉시 지하 5층의 금지 구역, ‘만년 고독동(만년 고독동)’에 영구 격리 수감한다! 이것은 교주님의 자치권 승인 영역 밖의 보안 규정이다. 즉각 이송을 집행해라!”
조태독이 외치자, 수석 비서 서필이 사색이 되어 이현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간, 간수장님! 고독동이라니요! 그곳은 한 번 들어가면 음침한 기운과 기괴한 환각 때문에 사흘도 못 버티고 미쳐서 나오는 생지옥입니다! 병약하신 위원장님을 그곳에 가두는 것은 명백한 살인 행위입니다!”
“흥, 법은 법이다! 위원장인지 뭔지 하는 감투도 그곳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조태독이 기세등등하게 채찍을 휘두르려 하자, 이현은 안경을 고쳐 쓰며 차분하게 조태독의 이송 명령서를 훑어보았다. 그의 내면에서 전생의 대기업 HR 실장 시절, 구조조정 대상자들을 격리 부서로 방출하려던 악덕 임원들의 얄팍한 꼼수를 분석하던 ‘행정적 직관’이 작동했다.
“조 간수장. 이송 명령서의 결재 라인을 보니 본산 감찰부의 공식 승인 번호가 누락되었군요. 귀하의 개인 직인만 찍혀 있는 일방적인 행정 발령은 엄밀히 말해 절차적 하자(Defect)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현이 깐깐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가 드리지요. 마침 본산 장로들의 비리 장부를 분석하느라 지독한 소음 공해에 시달리던 참이었습니다. 조용하고 격리된 개인 집무실이 필요했으니,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단, 내 개인 비품과 보좌진의 동행을 보장하십시오. 이것은 인질 보호 조약 제15조에 명시된 필수 권리입니다.”
“흐, 흥! 가져갈 테면 가져가 봐라! 그곳의 음침한 주술 앞에서는 안락의자든 뭐든 전부 해골 가루가 될 테니까!”
조태독이 코웃음을 치며 물러섰다.
이현은 즉시 고충 처리 위원장 마두철과 수석 비서 서필, 그리고 죄수 자치회의 박칠성을 소집했다.
“서 비서, 내 ‘인체공학적 대나무 안락의자’와 온수 보온병을 챙기세요. 그리고 박 총장, 자치회에서 보관 중인 멸균 처리된 마른 짚단 중 소음 차단용으로 쓸 두꺼운 짚단 50단을 마차에 실으십시오. 마 위원장님은 나와 함께 ‘비폭력 대화 및 심리 상담 매뉴얼’ 서류철을 들고 동행합니다.”
“전하…… 정말 그 음산한 곳으로 가시렵니까?”
마두철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찻잔을 든 채 물었다. 이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환경이 열악할수록, 현대식 행정망과 복지 시스템의 위력이 더 극적으로 입증되는 법입니다. 출장 준비를 서두르세요.”
* * *
지하 5층 깊숙한 곳에 위치한 만년 고독동의 철문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열렸다.
방 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음침했다. 사방의 벽면에서는 차가운 습기와 오염된 물방울이 ‘뚝, 뚝’ 하고 불규칙하게 떨어지며 기분 나쁜 메아리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바닥에는 정체불명의 해골 장식들과 기괴한 주술 문양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방의 중앙, 어둠 속에서 검은 해골 지팡이를 짚은 노파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흑뢰의 사악한 흑마술사이자 주술사, 골마라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핏빛으로 충혈되어 있었고, 온몸에서 음산한 환각 마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크흐흐…… 가련한 산 제물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구나. 평생의 공포와 트라우마에 갇혀 미쳐버려라!”
골마라가 지팡이를 바닥에 쿵 내리치며 기괴한 주문을 외웠다. 순간, 만년 고독동 내부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으며 정체불명의 환각 안개가 피어올랐다.
이현의 눈앞에 환영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생의 기억 속 공포의 상징, 지독한 워커홀릭 김 부장의 모습이었다. 환영 속 김 부장이 시뻘건 결재판을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이 대리! 이따위 보고서를 기획서라고 써왔어? 오늘 당장 야근해! 주말도 반납해!”
전생의 과로사 트라우마가 이현의 병약한 심장을 압박했다. 이현은 가슴을 움켜쥐고 격렬하게 기침을 쏟아냈다.
“콜록, 쿨럭……! 과, 과연 지독한 환각 주술이군. 전생의 야근 지옥을 형상화하다니…….”
“위원장님!”
서필이 비명을 지르며 이현을 부축하려 했으나, 이현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는 오길선 내관이 전수해 준 ‘자양양생공’ 호흡법을 가동하여 미세한 단전의 진기를 끌어올려 심박수를 안정시켰다. 이현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환각 너머에 서 있는 골마라를 특수 능력인 ‘안색 분석 진단술’로 차갑게 쏘아보았다.
‘저 노파…… 눈 밑의 짙은 그늘과 흐릿한 안구, 그리고 지팡이를 쥔 손끝의 미세한 떨림. 이것은 단순한 마공의 기운이 아니다. 지독한 만성 불면증과 멜라토닌 결핍, 그리고 극심한 임상적 우울증(Clinical Depression)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이현은 휠체어에 등을 기대며 깐깐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골마라 주술사님. 남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기 전에, 본인의 심각한 정서적 장애와 척추 정렬 상태나 먼저 점검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무어라? 이 가련한 황자 놈이 미쳐서 헛소리를 하는구나!”
“귀하는 평생 이 음침하고 축축한 동굴에 갇혀,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들으며 사셨겠지요. 그 결과, 뇌의 청각 피질이 극도로 예민해져 만성적인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차가운 돌바닥에 장시간 앉아 주술을 외우느라 골반이 비틀어지고 요추 3번 신경이 눌려 있습니다. 밤마다 다리가 저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 스트레스를 죄수들에게 주술을 걸어 해소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골마라의 지팡이가 뚝 멈췄다. 그녀의 핏빛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네, 네놈이 그것을 어찌……!”
“인간의 정신은 환경의 지배를 받습니다. 귀하가 부리는 그 사악한 주술은 마공의 위대함이 아니라, 지독한 환경 호르몬과 수면 박탈이 낳은 ‘신경증적 방어기제’일 뿐입니다.”
이현은 뒤에 대기하고 있던 마두철과 박칠성에게 가볍게 손짓했다.
“마 위원장님, 박 총장. 즉각 이 방의 환경 개선 공사(리모델링)를 시작하십시오. 이 불규칙한 물방울 소리부터 차단해야 합니다.”
“존명!”
박칠성과 자치회 죄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가져온 멸균 처리된 마른 짚단들을 벽면에 정교하게 덧대어 도배하기 시작했다. 현대식 방음재의 원리를 이용해 동굴 벽면의 차가운 습기를 흡수하고, 신경을 긁어대던 ‘뚝, 뚝’ 하는 물방울 소리를 완벽하게 흡음(Absorption) 차단하는 작업이었다.
순식간에 만년 고독동 내부의 소음 데시벨이 명상에 최적화된 수준으로 급강하했다. 동굴의 기괴한 메아리가 사라지자, 골마라의 머리를 짓누르던 이명이 거짓말처럼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 이명이 사라졌다? 동굴이 왜 이렇게 조용하고 따뜻해지는 것이냐?”
골마라가 당황하여 지팡이를 떨어뜨릴 뻔했다. 이현은 서필에게 눈짓을 보냈다.
“서 비서, 따뜻한 박하차를 우려내십시오.”
서필이 보온병에서 섭씨 40도의 청결한 온수를 꺼내어 천연 박하 찻잎을 정성스레 우려냈다. 알싸하고 시원한 박하 향기가 동굴 내부의 곰팡이 냄새를 완벽하게 정화하며 사방으로 퍼져나갔. 골마라는 자신도 모르게 그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붉게 충혈되었던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현은 박칠성이 설치한 ‘인체공학적 대나무 안락의자’를 가리켰다.
“골마라 주술사님. 그 딱딱하고 차가운 돌바닥에서 일어나 여기 앉으십시오. 귀하의 비틀어진 척추 곡선을 완벽하게 지탱해 줄 특제 의자입니다.”
“내, 내가 왜 네놈의 지시를 따라야 한단 말이냐!”
골마라가 자존심을 세우며 거부하려 했으나, 평생 자신을 괴롭히던 좌골 신경통과 욱신거리는 허리의 통증이 따뜻한 온돌 난방과 안락의자의 마성적인 유혹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홀린 듯 안락의자에 몸을 뉘였다.
“아……!”
의자에 등받이에 몸을 기대는 순간, 척추 라인을 따라 무게가 완벽하게 분산되며 평생 느껴보지 못한 극상의 안락함이 그녀의 온몸을 감쌌다. 좁아진 척추관의 압박이 풀리며 다리의 저림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이현은 마두철이 들고 있던 ‘비폭력 대화 및 심리 상담 매뉴얼’ 서류철을 펼쳐 들고, 나직하고 자상한 목소리로 대화를 시작했다. 현대 심리 치료의 ‘공감적 경청’ 기법이었다.
“골마라 님. 귀하는 악마가 아닙니다. 그저 지독하게 외롭고 피곤한 노동자일 뿐이지요. 평생 이 어두운 지하에서 죄수들의 비명과 원망만을 들으며, 누군가 따뜻하게 ‘오늘 하루 힘들지 않았느냐’는 안부 인사 한마디 건네지 않는 고독 속에 방치되어 오셨던 겁니다. 그 외로움과 슬픔이 쌓여 사악한 주술의 껍데기로 변한 것이지요.”
“내…… 내가 외로웠다고……?”
골마라의 눈가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났다. 평생 마교인들은 그녀를 ‘괴물’이라 부르며 두려워하거나 이용하려 했을 뿐,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 서린 슬픔과 트라우마를 이토록 깐깐하고 정확하게 어루만져 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신도 정당하게 쉬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들을 권리가 있는 소중한 인적 자원입니다. 우리 노동조합은 귀하의 정신 건강 복지를 보장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마두철이 차분하게 찻잔을 건네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골마라 주술사님, 따뜻한 박하차 한 잔 드시지요. 마음의 멍울이 조금은 내려앉을 것입니다.”
골마라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받아 들었다. 따뜻한 차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전신을 훈훈하게 적시자, 그녀의 핏빛 마기가 완전히 걷히고 평온한 눈빛이 되돌아왔다.
“으아아아앙……!”
마침내 골마라는 지팡이를 내던지고 안락의자에 파묻힌 채 아이처럼 오열하기 시작했다. 평생 쌓여온 고독감과 우울증, 그리고 억압받던 감정이 한순간에 눈물로 씻겨 내려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내가…… 내가 너무 외로웠다! 밤마다 잠도 못 자고, 허리는 부서질 것 같고, 아무도 나랑 대화해 주지 않아서…… 크흐흑!”
골마라의 눈물 젖은 자백과 오열 소리가 아늑하게 리모델링된 고독동 명상실 내부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만년 고독동의 두꺼운 철문 밖.
이현이 미쳐서 비명을 지르며 파멸하기만을 기다리던 조태독과 그의 심복 감찰대원들은 철문 틈새로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에 귀를 의심했다.
비명과 광소 대신, 들려오는 것은 향기로운 박하 향기와 함께 흐느껴 우는 노파의 흐느낌, 그리고 차분한 사내의 위로 소리뿐이었다.
“이, 이게 무슨 소리냐? 왜 저 미친 할멈이 울고 있는 거지?”
조태독이 황당한 표정으로 철문 구멍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해골 장식이 향긋한 허브와 깨끗한 짚단 방음재로 뒤덮여 지극히 아늑한 현대식 상담소로 변모한 고독동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마교 최고의 흑마술사 골마라가 안락의자에 편안하게 누워 눈물을 훔치며 이현이 건네는 손수건을 받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 저 황자 놈이…… 금지 구역까지 요양 리조트로 개조해 버렸단 말이냐!”
조태독은 뒷목을 잡고 거품을 물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비틀거렸다.
이현은 안경을 고쳐 쓰며, 울고 있는 골마라의 정신 건강 상태를 장부에 꼼꼼하게 기록했다. 흑뢰 감옥의 가장 음침한 금지 구역마저 완벽한 힐링 복지 구역으로 정복한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감옥 외부 경비를 담당하던 설태풍이 급박한 걸음으로 명상실 내부로 뛰어 들어왔다.
“위원장님! 큰일 났습니다! 조태독이 노조를 물리적으로 해산하기 위해 사파 최고의 해결사이자 무자비한 칼잡이인 ‘흑혈도(흑혈도)’ 일당을 대동하고 감옥 정문으로 난입했습니다!”
명상실 내부의 아늑한 온기 위로, 다시 한번 살벌한 무력의 칼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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