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극물 전문가의 연구원 전업
흑뢰 감옥 제3호 특별실은 오늘도 지극히 평화롭고 아늑했다. 제갈민이 설계한 중앙 온수 보일러의 온기가 돌바닥을 기분 좋게 데우고 있었고, 서필이 2시간마다 교체하는 특제 이중 가습 젖은 수건 덕분에 방 안의 습도는 정확히 70%를 유지하고 있었다. 창백한 안색의 이현은 대나무 안락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앉아 귤을 까먹으며, 제국 사법부로부터 날아온 황실 자산 가압류 승소 보고서를 깐깐하게 검토하는 중이었다.
“역시 법과 서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군.”
이현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귤 한 알을 입에 넣었다. 황실의 비정한 사망 처리 음모를 제국 민법 제103조 부양의무 조항으로 완벽하게 되받아쳐 태자 이건의 내탕금을 동결시킨 쾌거. 이현에게는 무공보다 이 한 장의 판결문이 훨씬 더 강력한 호신강기였다.
바로 그때, 특별실의 문이 열리며 주방 책임자이자 급식 조리 위원장인 배영태가 굳은 표정으로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이현의 아침 보혈 탕약이 담긴 도기 대접과 함께, 은제 이중 시식용 숟가락, 그리고 당소혜가 이전에 설계해 준 정밀 화학 시약 세트가 들려 있었다.
“위원장님, 아침 탕약이 대령했습니다. 하지만…….”
배영태의 말에 이현은 까다로운 눈빛으로 안경을 치켜올렸다.
“하지만이라니요, 배 위원장? 내 식단 지침서에 따르면 아침 탕약은 정확히 섭씨 38도로 배달되어야 합니다. 온도가 맞지 않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중 시식 및 정밀 성분 분석 검사 프로토콜을 가동하던 중 기묘한 반응이 검출되었습니다.”
배영태는 조심스럽게 은숟가락을 탕약에 담갔다. 은숟가락의 색은 변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독이라면 은빛이 검게 변했겠지만, 탕약은 고요했다. 하지만 배영태는 멈추지 않고 탕약 한 방울을 작은 유리 시험관에 떨어뜨린 뒤, 특제 시약을 한 방울 가미했다.
팅.
맑은 소리와 함께 시험관 속의 액체가 순식간에 불길한 심연의 보랏빛으로 변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석 비서 서필이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히, 히익! 보랏빛 반응! 이건 만성 마비독(만성 마비독)입니다! 누군가 위원장님의 탕약에 독을 탔습니다!”
서필은 이현이 죽으면 자신의 목도 날아간다는 공포에 휩싸여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울부짖었다.
“당장 방역 기동대를 소집해라! 주방을 봉쇄해!”
경호 및 위생 총장 박칠성이 이끄는 소독방역 기동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흑뢰 전역에 삼엄한 경계 경보가 울렸고, 주방에서 도주하려던 수상한 하급 주방 보조 한 명이 철저한 위생 경계망에 걸려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특별실 바닥에 엎어진 자객의 위장 복장을 박칠성이 거칠게 찢어발겼다. 그 안에서 드러난 것은 보랏빛 가죽 위생복을 세련되게 차려입은 왜소한 체구의 소녀였다. 그녀의 손가락 끝은 온갖 독초를 만져 검푸르게 물들어 있었고, 눈빛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사천당가(사천당가)의 파문당한 천재 독객이자, 조태독의 은밀한 사주를 받아 잠입한 당소혜였다.
“네 이놈! 감히 위원장님을 독살하려 해? 당장 고문실로 끌고 가 뼈를 갈아버리겠다!”
박칠성이 거대한 무쇠 쇠망치를 치켜들며 포효했다. 조태독 역시 소동을 듣고 급히 들이닥쳐, 자신의 사주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검을 뽑아 들었다.
“이 사악한 사천당가의 세작 년이 감히 교단의 귀한 인질을 해치려 하다니! 내가 직접 이 자리에서 즉참하여 기강을 바로잡겠다!”
조태독이 살기등등하게 당소혜의 목을 베려 검을 휘두르는 찰나, 안락의자에 앉아 있던 이현이 가볍게 기침을 터뜨렸다.
“콜록, 콜록…… 멈추십시오, 조 간수장.”
이현의 나직하지만 깐깐한 목소리가 방 안의 살기를 얼려버렸다. 박칠성의 방역 기동대원들이 일제히 조태독의 검 앞을 가로막으며 단단한 방어벽을 형성했다. 이현은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아낸 뒤, 특수 능력인 ‘안색 분석 진단술’을 가동해 당소혜를 조용히 관찰했다.
소녀의 안색은 창백했지만, 그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라기보다 깊은 정서적 피로감과 트라우마에서 오는 빛깔이었다. 그녀의 손끝은 독극물로 물들어 있었으나, 눈동자에는 사람을 해치려는 살수 특유의 잔혹한 살기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가에는 미세한 경련과 함께 깊은 우울증의 기색이 서려 있었다.
이현은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며 당소혜를 향해 조목조목 쏘아붙였다.
“당소혜 양. 사천당가의 독극물 전문가라는 명성에 비해, 이번 암살 시도는 지극히 아마추어적이군요. 귀하가 사용한 만성 마비독은 무색무취라 주장하지만, 특정 약재와 결합하면 미세한 산성 반응을 보여 우리 자치회의 표준 시약 테스트에서 100% 적발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당가의 천재가 이런 기초적인 화학적 역학 관계를 몰랐을 리가 없지요.”
당소혜가 고개를 들어 이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현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심리적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
“귀하는 처음부터 나를 죽이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사천당가에서 억지로 살인 독극물 개발을 강요받으며 느꼈던 극심한 도덕적 혐오감과 스트레스가 귀하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겠지요. 남을 죽이는 독을 만들 때마다 밤마다 가위눌림과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았습니까? 귀하의 굳어 있는 어깨와 초점 흐린 눈빛이 귀하의 정서적 트라우마를 완벽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어, 어떻게…… 그걸…….”
당소혜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평생 가문에서 ‘살인 병기’로만 취급받으며 독약 제조를 강요당했던 고통, 사람을 죽이는 학문에 대한 도덕적 회의감을 이 무공도 없는 병약한 황자가 단 3초 만에 꿰뚫어 본 것이다.
“처형당할 각오를 하고 일부러 허술한 독을 쓴 것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노동조합은 유능한 인적 자원을 단지 과거의 실수나 심리적 방황 때문에 폐기 처분하는 비효율적인 행정을 극도로 혐오합니다.”
이현은 품속에서 붉은 인장이 찍힌 서류 한 장과 정밀한 대나무 도면을 꺼내어 당소혜의 눈앞에 던졌다.
“이것은 ‘친환경 무독성 살충 스프레이’의 설계도입니다. 국화에서 추출한 천연 피레트린 성분을 배합하여, 인체에는 단 1푼의 유해성도 없으면서 감옥 내부의 고질적인 골칫거리인 벼룩, 이, 빈대만을 완벽하게 마비시켜 박멸하는 혁신적인 생활 화학 제품이지요.”
당소혜가 도면을 집어 들었다. 화학식과 추출 공정이 현대적인 그래프로 정밀하게 묘사된 도면을 읽어 내려가는 그녀의 눈동자가 엄청난 지적 충격으로 확장되었다.
“독을……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해충을 박멸해 위생을 지키는 학문으로 쓴단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귀하의 뛰어난 유기화학적 지식을 살인 독약이 아닌, 흑뢰 감옥의 보건 환경을 개선하는 R&D(연구개발) 부서에 재배치하고자 합니다. 오늘부로 귀하를 흑뢰 간수 노동조합의 공식 ‘화학 안전 실장’으로 임명합니다. 이것이 귀하의 임명장과 주 40시간 근무, 그리고 매월 고정 복지 코인 지급이 명시된 근로 계약서입니다.”
당소혜는 붉은 인장이 칼같이 찍힌 임명장을 손에 쥐고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평생 살인의 도구로만 쓰이던 자신의 천재성을, 마침내 사람을 살리고 환경을 깨끗하게 만드는 정당한 노동의 가치로 인정받은 것이다.
“제…… 제 학문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면, 기꺼이 이 계약서에 서명하겠습니다!”
당소혜가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에 무인을 찍는 순간, 흑뢰 감옥 제3호 특별실에는 사상 최초의 ‘화학 방역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몇 시간 후, 특별실 옆에 급조된 하얀 연구실.
당소혜는 보랏빛 가죽 위생복에 투명한 안면 보호대를 착용한 채, 한 손에는 대나무로 제작된 특제 고압 스프레이를 들고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가 스프레이 손잡이를 가볍게 누르자, 맑고 상쾌한 국화 향기가 안개처럼 뿜어져 나와 연구실 구석의 해충들을 한순간에 박멸했다.
“어머! 정말로 유해 세균과 벌레들만 즉사하네요! 위원장님의 설계는 정말 위대해요!”
당소혜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분무기를 칙칙 뿌려대자, 은밀히 침투 성공 여부를 확인하러 연구실 문틈으로 들여다보던 간수장 조태독은 그 기괴하고 청결한 풍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고용한 일급 암살자가 반나절 만에 하얀 위생모를 쓰고 벌레 약을 뿌리는 친환경 연구원으로 전업해 버린 것이다.
“이, 이 미친 황자 놈이…… 내 돈으로 고용한 살수를 방역 청소부로 만들어버리다니……!”
조태독은 말도 안 되는 인적 자원 강탈과 인지부조화에 뒷목을 잡고 부르르 떨며 기절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비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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