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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 연옥의 온수 보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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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파의 수석 제자 청풍이 멍하니 박하차를 들이키는 사이, 지하 감옥의 젖은 벽면을 타고 심상치 않은 차가운 냉기가 서서히 흘러들기 시작했다.


그 냉기는 평범한 겨울바람이 아니었다. 대황제국 남부 산맥 전체를 집어삼킨 역대급 동장군(冬將軍)의 기습이었다. 지하 수십 장 깊이에 위치한 흑뢰 감옥은 본래 습도가 높은 곳이었기에, 기온이 급강하하자 감옥 내부의 습기가 그대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벽면에는 칼날 같은 고드름이 맺혔고, 바닥의 돌판은 디디는 순간 발바닥이 쩍쩍 달라붙을 정도로 차갑게 변했다.


“에취!”


휠체어에 앉아 장부를 검토하던 이현이 가볍게 재채기를 터뜨렸다. 창백한 안색이 평소보다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소리에 특별실 구석에서 대기하던 수석 비서 서필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왔다.


“전하! 기, 기침을 하셨습니다! 이 차가운 냉기에 노출되셨다가 폐렴이라도 걸리시면 단 사흘도 버티지 못하고 급사하실 것입니다! 위원장님이 돌아가시면 제 목도 날아갑니다!”


서필은 혼비백산하여 품속에서 두꺼운 솜이불 두 장을 꺼내 이현의 무릎과 어깨에 겹겹이 덮어씌웠다. 그러고도 불안한지 이현의 머리에 털모자까지 씌워주었다. 이현은 졸지에 솜이불 더미 속에 파묻힌 단정한 누에고치 같은 형상이 되었지만, 예민한 콧끝을 스치는 한기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이 냉기는 감옥 전체를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다. 제1구역 일반 감옥의 죄수들은 추위에 이빨을 딱딱 맞부딪치며 짚단 속으로 파고들었고, 순찰을 돌던 간수들 역시 두꺼운 가죽옷을 껴입었음에도 손끝이 얼어붙어 칼자루를 제대로 쥐지 못했다.


‘예산 부족으로 인한 겨울철 동사 위기(겨울철 동사 위기)로군.’


이현은 이불속에서 창백한 손을 꺼내 장부의 지출 내역을 깐깐하게 짚었다.


이 기습적인 한파를 이용해 이현의 행정 신뢰도를 박살 내려는 음모가 작동하고 있었다. 간수장 조태독은 한파가 들이닥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감옥 내 땔감과 화로 보급을 전면 통제했다. 그러고는 ‘본산의 예산 지원이 삭감되어 석탄을 구매할 예산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며 집무실 문을 걸어 잠갔다.


간수들과 죄수들이 추위에 얼어 죽어 폭동이 일어나거나, 혹은 병약한 인질 황자가 동사한다면 모든 책임은 실질적 자치권을 쥔 이현에게 돌아갈 터였다. 조태독은 추운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서 비서.”


“예, 위원장님! 탕비실의 온수를 전부 끓여서 방 안의 온도라도 올릴까요?”


“비효율적인 임시방편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입니다. 물을 끓이는 데 들어가는 장작의 소모율과 열 손실률을 계산해 보십시오. 단 두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방 안은 축축한 얼음굴이 될 겁니다.”


이현은 차분하게 안경을 고쳐 쓰며 깃털펜으로 장부 뒷면에 기묘한 선과 원으로 가득한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보일러 배관과 온수 순환 구조가 정밀하게 묘사된 현대식 ‘중앙 온수 보일러 시스템’의 설계도였다.


“우리에겐 에너지를 무한정 뿜어내는 거대한 유휴 자원이 있습니다. 그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기만 하면 됩니다.”


“유휴 자원이라니요? 이 얼어붙은 감옥에 그런 것이 어디 있습니까?”


“고문실로 쓰이던 화염 연옥(화염 연옥) 말입니다.”


화염 연옥.


지하 깊은 곳의 지열과 용암 줄기가 흘러나와 사방이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공포의 고문실이었다. 조태독이 죄수들을 쇠사슬에 묶어 달구어진 철판 위에서 고문하던 잔혹한 공간이었으나, 이현의 지시로 고문 도구들이 철거된 이후에는 그저 뜨거운 열기만 뿜어내는 버려진 방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 뜨거운 열기를 감옥 전체로 순환시키는 배관망을 구축할 겁니다. 지금 즉시 제1구역에 수감된 제갈민(제갈민)을 내 앞으로 소집하십시오.”


제갈세가의 천재 기관 설계자이자, 이현의 엑셀식 장부 정리법에 지적으로 굴복하여 흑뢰의 모범수로 일하고 있던 제갈민이 특별실로 이송되었다. 제갈민은 추위에 코끝이 빨개진 채 들어왔으나, 이현이 내민 설계도를 보는 순간 그의 예리한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이것은 대체……?”


제갈민은 설계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제갈세가의 그 어떤 복잡한 천기진법 설계도보다 정교하고 직관적이었다. 뜨거운 열원인 화염 연옥 내부에 거대한 무쇠 가마솥을 설치하고, 그 가마솥에서 끓어오른 온수를 철제 파이프로 연결하여 감옥 전체의 바닥돌 밑을 한 바퀴 돌게 만든 뒤, 다시 식은 물이 가마솥으로 흘러 들어가 무한히 순환하게 만드는 ‘폐쇄형 열역학 순환 계통도’였다.


“열역학(Thermodynamics)과 대류 현상을 이용한 밀폐식 순환 배관망입니다.”


이현이 깃털펜 끝으로 배관의 꺾임 각도를 짚었다.


“물이 뜨거워지면 부피가 팽창하며 위로 솟구치고, 식으면 아래로 가라앉는 성질을 이용해 동력 장치 없이도 온수가 감옥 전체를 돌게 만들 겁니다. 배관의 경사도를 정확히 100대 1의 비율로 하향 조정하고, 모퉁이마다 기포 배출 밸브를 설치해 압력 폭발을 방지해야 합니다.”


제갈민의 머릿속에서 제갈세가 비전의 천기산법이 폭풍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현이 제시한 수치와 배관의 경사도, 그리고 압력 제어 공식을 대조해 보던 제갈민의 전신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평생 진법과 기관 장치를 연구해 왔지만, 이토록 완벽하게 자연의 물리 법칙을 서류 한 장으로 구속하고 통제하는 공학적 설계는 처음 보았다.


“이, 이것은 천도(天道)의 이치를 숫자로 정렬한 극의의 설계입니다! 위원장님, 이 배관망이 완성된다면 흑뢰 감옥은 혹한 속에서도 봄날의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제갈민의 눈에 광기 어린 지적 희열이 넘쳐흘렀다. 그는 추위도 잊은 채 바닥에 엎드려 먹물을 묻힌 붓으로 세부 배관 구조를 초고속으로 계산해 나가기 시작했다.


“당장 공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제갈세가의 명예를 걸고 오늘 밤 안으로 배관 설계를 완벽히 끝마치겠습니다!”


“좋습니다. 철제 파이프와 무쇠 가마솥은 협동조합 매점의 비상 자금으로 외부 상단에 긴급 발주해 두었습니다. 시공은 죄수 자치회장 박칠성에게 맡기겠습니다.”


잠시 후, 붉은 완장을 찬 박칠성과 방역 기동대원들이 특별실로 진입했다. 박칠성은 두꺼운 방열 가죽 장갑을 낀 채 이현 앞에 우렁차게 경례를 올렸다.


“위원장님! 지시하신 대로 화염 연옥 깊은 곳에서 열기를 품은 보일러용 화염석(보일러용 화염석)을 대량으로 채굴해 가마솥 하단에 배치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화염석의 열기 조절을 위해 수당을 약속받은 화염 기공 수련 죄수들도 대기 중입니다!”


“훌륭합니다. 공사 중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비해 반드시 탈옥 예방 및 화재 비상 대피 매뉴얼(탈옥 예방 및 화재 비상 대피 매뉴얼)의 안전 수칙을 철저히 준수하십시오. 배관 용접 부위의 미세한 균열이나 스팀 누출은 고압 폭발로 이어질 수 있으니, 매 단계마다 제갈민의 정밀 검수를 거쳐야 합니다.”


“존명! 안전 제일을 최우선으로 시공하겠습니다!”


흑뢰 감옥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야간 보일러 배관 공사가 시작되었다.


감옥 전체가 쇠망치 소리와 무쇠 파이프가 맞물리는 쇳소리로 요란하게 울렸다. 제갈민은 눈에 불을 켠 채 배관의 이음새를 하나하나 손으로 만져가며 1푼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감시했다. 정파의 첩자인 남궁휘와 청풍 역시 감옥 방바닥을 뜯어내고 파이프를 매설하는 죄수들의 일사불란한 노동에 동원되어 삽을 쥐었다.


“휘 형…… 이게 정말 보일러라는 장치입니까? 이 파이프 안으로 뜨거운 물이 흐르면 이 얼음 바닥이 따뜻해진다는 것이 정녕 가능합니까?”


청풍이 흙을 파내며 숨을 헐떡였다. 남궁휘 역시 땀방울을 훔치며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도 무림의 그 어떤 문파에서도 이런 기괴한 기관 장치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저 황자 놈이 계획한 일이라면…… 결코 허황된 소리가 아닐 터다. 경계를 늦추지 마라.”


새벽녘이 되자, 마침내 모든 배관 시공이 완료되었다. 화염 연옥의 거대한 무쇠 가마솥 하단에 채굴된 보일러용 화염석들이 투입되었고, 화염 기공을 수련한 죄수들이 내력을 불어넣어 가마솥의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부글부글부글—!


가마솥의 물이 섭씨 100도에 도달하자, 팽창한 고압의 온수가 제갈민이 설계한 순환 배관을 타고 감옥 전체의 돌바닥 밑으로 무섭게 퍼져나가기기 시작했다.


스으으으—!


돌바닥 틈새로 미세한 스팀 소리와 함께 기분 좋은 온기가 서서히 배어나왔다.


차가운 회색빛 돌바닥이 온수를 머금으며 서서히 따스한 황색빛으로 변해갔다. 얼어붙어 있던 벽면의 고드름들이 녹아내려 물방울이 되어 뚝뚝 떨어졌고, 감옥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칼날 같은 냉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봄날의 아지랑이 같은 따뜻한 공기가 감옥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오오……! 따뜻하다! 바닥이 정말 따뜻해졌어!”


“허리가 지져지는 것 같군! 평생의 요통이 다 녹아내리는 기분이야!”


죄수들이 일제히 따뜻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환호성을 질렀다. 간수들 역시 가죽옷을 벗어 던지고 탕비실 바닥에 누워 몸을 지지며 극상의 안락함에 취해 눈물을 흘렸다.


김복창의 매점에서는 남부 상단에서 밀수해 온 신선한 귤(귤) 상자들이 풀렸다. 죄수들과 간수들은 따뜻한 바닥에 엎드려 귤껍질을 까먹으며 한가롭게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다. 냉혹한 마교의 지하 감옥이 순식간에 최고급 온천 요양 리조트로 변모한 것이다.


정파의 첩자인 청풍 역시 이미 짚단 침대를 치우고 따뜻한 온돌 바닥에 대자로 누워 귤을 입에 넣고 있었다.


“휘 형…… 소도는 이제 무당파로 돌아가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온돌 바닥은 천상의 무릉도원보다 더 자비롭습니다.”


“정신 차려라, 청풍 도사! 귤 맛에 취해 본분을 잊지 마라!”


남궁휘가 호통을 쳤지만, 정작 본인 역시 따뜻한 바닥에 엉덩이를 붙인 채 손가락이 노랗게 물들 때까지 귤을 까먹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복도 너머에서 이불을 세 겹이나 뒤집어쓴 채 이빨을 딱딱 맞부딪치며 걸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간수장 조태독이었다. 자신의 방이 너무 추워 얼어 죽기 직전이 되자, 온기가 뿜어져 나오는 복도로 기어 나온 것이다.


조태독은 따뜻한 바닥에 누워 귤을 까먹으며 자신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간수들과 죄수들을 보며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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