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 자치회와 복지 코인
간수들이 이현의 도장이 찍힌 결재 서류를 마교 교주령만큼이나 엄숙하게 받들어 들고, 일제히 광장을 빠져나가 자신들의 쾌적한 휴게실과 온수 목욕탕으로 향했다.
광장에는 오직 휠체어에 앉아 차분하게 보리차를 음미하는 이현과, 그 뒤를 지키는 서필, 그리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홀로 남겨져 분노로 온몸을 떨고 있는 간수장 조태독만이 남았다. 조태독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던 혈살마공의 붉은 기운은 갈 곳을 잃고 허공에서 허망하게 흩어졌다. 자신의 부하들이 인질 황자의 도장 하나에 영혼을 팔아넘기고 퇴근하는 모습을 지켜본 그의 눈빛은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이…… 이럴 수는 없다. 마교의 법도가, 천마신교의 규율이 어찌 이단아 같은 황자 놈의 도장 한 장에 무너진단 말이냐!”
조태독이 피를 토하듯 울부짖었으나, 이현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지극히 건조한 어조로 응수했다.
“조 간수장.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상사는 도태되는 법입니다. 귀하가 채찍을 휘두를 때, 저는 합리적인 휴식과 수당을 제시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언제나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는 고용주를 따르기 마련이지요. 콜록, 콜록…….”
가벼운 기침과 함께 이현이 안경을 치켜올렸다. 서필은 즉시 품속에서 따뜻한 온수 수건을 꺼내 이현의 입가를 정성스럽게 닦아냈다. 이제 서필은 이현이 기침 한 번만 해도 자신의 목이 날아갈 것처럼 반응하는 완벽한 직속 비서로 진화해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간수들이 떠나간 빈자리를 채우듯, 감옥 깊은 곳에서부터 기이한 파열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그것은 철창을 쇠사슬로 두들기는 소리였다. 뒤이어 지하 1층, 흑뢰 제1구역 일반감옥 방향에서 수백 명의 목소리가 뒤엉킨 거대한 웅성거림이 광장까지 흘러들었다.
“간수 놈들만 온수 샤워를 하고 고기를 먹는단 말이냐!”
“우리에게도 인간다운 대접을 하라! 맨날 썩은 물에 꿀꿀이죽만 주면서 간수 놈들은 탕비실에서 박하차를 마신다니, 이게 무슨 마교의 법도냐!”
“폭동이다! 철창을 부수고 나가자!”
사파의 악명 높은 마두들과 흉악범들이 수감된 제1구역의 죄수들이 단체로 반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간수 노동조합의 결성으로 간수들의 복지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자, 이를 지켜보던 죄수들이 극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폭동을 준비하는 조짐이었다.
실각 위기에 처해 있던 조태독의 눈에 순간적으로 비열한 생기가 돌았다. 그는 붉은 채찍을 다시 움켜쥐며 이현을 향해 썩은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들리느냐, 황자 놈아? 네놈이 간수 놈들을 감언이설로 꼬드겨 기강을 흐려놓은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죄수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하는구나! 이제 감옥은 피바다가 될 것이고, 본산에서는 네놈의 무능함을 징벌할 것이다!”
조태독은 죄수들이 폭동을 일으키면 자신이 직접 무력으로 진압하여 간수장으로서의 권위를 회복할 기회로 삼으려 했다. 마교의 전통적인 해결책은 언제나 피와 도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현은 휠체어에 몸을 깊숙이 기댄 채, 단 1푼의 당황함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전생의 대기업 HR 실장 시절, 생산직 노조의 파업 성공을 본 계약직 직원들이 단체로 본관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던 ‘상대적 박탈감 관리’의 순간을 떠올렸다.
‘전형적인 비교 심리군. 동료 집단의 처우 개선을 목격한 하위 집단이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서는 현상. 이는 무력 진압으로 해결할 수 없다. 억누르면 더 큰 폭동으로 이어질 뿐이지.’
이현은 휠체어 바퀴를 돌려 특별실로 향하며 서필에게 나직하게 지시했다.
“서 비서. 지금 당장 죄수들의 대표이자 제1구역의 실세인 박칠성과, 물류를 담당하는 죄수 김복창을 내 방으로 소집하십시오. 무력 충돌이 발생하기 전에 ‘노사 협상’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예, 예? 죄수들과 협상을 하신단 말씀입니까?”
서필이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이현의 깐깐한 눈빛에 눌려 즉시 제1구역으로 뛰어갔다.
잠시 후, 이현의 제3호 특별실 내부. 가습 수건이 걸려 습도 70%를 정확히 유지하는 아늑한 방 안으로 거구의 죄수 박칠성과 포동포동한 풍채의 김복창이 들어섰다. 박칠성은 이현의 위생 개혁 덕분에 피부병이 완치되어 하얀 위생 마스크를 단정하게 쓰고 있었고, 김복창은 소형 주판을 손가락에 끼운 채 눈치를 보고 있었다.
“두 분 다 앉으십시오.”
이현이 대나무 안락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박칠성은 거대한 몸을 조심스럽게 의자에 기대며 물었다.
“도련님…… 아니, 위원장님. 지금 제1구역 죄수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간수들이 온수 샤워를 하고 닭가슴살을 먹는 모습을 보더니, 다들 눈이 뒤집혔습니다. 이대로 두면 오늘 밤에 철창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김복창 역시 주판을 튕기며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위원장님. 죄수들이 폭동을 일으켜 간수실을 습격하면, 제가 양지화하려던 지하 암시장 ‘흑정’의 물자들도 전부 약탈당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제 사업 계획도 수포로 돌아갑니다!”
이현은 따뜻한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책상 위에 ‘노조 위원장 공식 결재 직인’을 툭 내려놓았다. 붉은 대나무 도장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책상에 닿자, 두 죄수의 시선이 일제히 도장으로 쏠렸다.
“폭동은 가장 비효율적인 자원 낭비입니다. 죄수들이 원하는 것은 간수들의 목을 베는 것이 아니라, 간수들이 누리는 ‘안락함’을 자신들도 누리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죄수들에게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복지를 쟁취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면 됩니다.”
“노동의 대가요? 죄수들에게 일을 시키신단 말입니까?”
박칠성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현이 정밀하게 눈금이 그려진 장부를 펼치며 설명했다.
“그냥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일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오늘부로 흑뢰 감옥 내에 죄수들로 구성된 ‘흑뢰 수용자 자치회’를 결성합니다. 그리고 박칠성 씨, 귀하를 자치회장으로 임명하겠습니다.”
“제, 제가 자치회장이라고요?”
박칠성이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깜짝 놀라 마스크를 들썩였다. 이현은 깐깐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자치회는 감옥 내의 위생, 방역, 청소, 그리고 자원 정리를 전담합니다. 그리고 자치회원들이 이현이 제정한 위생 수칙을 준수하고 청소 업무를 완수할 때마다, 저는 이 공식 직인을 찍어 ‘노조 공식 발급 복지 쿠폰’을 지급할 것입니다.”
이현이 품속에서 송 노인이 정교한 서체로 인쇄해 둔 빳빳한 종이 표 한 장을 꺼내 보였다. 하단에는 이현의 붉은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것이 바로 복지 쿠폰, 즉 흑뢰의 공식 대체 화폐입니다. 죄수들은 이 쿠폰을 모아 김복창 씨가 운영하는 매점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김복창의 눈이 번개처럼 빛났다. 장사꾼 특유의 영악한 두뇌가 초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호라! 지하 암시장 ‘흑정’을 노조의 허가를 받은 합법 매점으로 개조하고, 죄수들이 획득한 복지 쿠폰으로 물건을 사게 만든다……! 위원장님, 매점에는 어떤 물품들을 구비해야 합니까?”
“당소혜 씨가 만든 천연 유황 소독 비누, 배영태 셰프가 끓인 따뜻한 박하차와 고기 국밥, 그리고 뽀송뽀송하게 멸균 처리된 마른 짚단과 재미있는 소설책까지. 죄수들이 갈망하는 모든 안락함을 매점에 배치하십시오. 쿠폰 한 장이면 따뜻한 온수 샤워권을 살 수 있고, 쿠폰 세 장이면 향기로운 비누를 살 수 있게 만드는 겁니다.”
박칠성은 이현의 설명을 들으며 정서적인 전율을 느꼈다. 피비린내 나는 마교의 감옥에서, 채찍과 고문 대신 ‘노동의 대가’와 ‘소비의 즐거움’을 통해 죄수들을 통제하겠다는 이 기상천외한 자본주의적 발상은 천상의 무공 비급보다 더 경이로웠다.
“위원장님…… 이 계획이라면 죄수들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무식하게 철창을 부수고 나가봐야 본산의 고수들에게 죽을 뿐이지만, 감옥 안에서 청소를 하면 따뜻한 온수와 비누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좋습니다. 그럼 즉시 제1구역으로 가서 자치회 결성과 복지 쿠폰 제도를 선포하십시오. 김복창 씨는 수거한 조태독의 횡령 자금 5만 냥 중 일부를 환수하여 매점의 초기 물품 조달 자금으로 집행하십시오. 제 결재 도장이 찍힌 예산안을 넘겨드리겠습니다.”
이현이 장부 하단에 붉은 직인을 쿵 찍어 김복창에게 건넸다. 김복창은 도장이 찍힌 서류를 가보처럼 품에 안으며 깊이 머리를 숙였다.
* * *
몇 시간 뒤, 흑뢰 제1구역 일반감옥 앞.
쇠창살을 두들기며 폭동을 일으키려던 사파의 마두들이 광장 중앙에 설치된 단상을 보고 멈칫했다. 단상 위에는 거구의 박칠성이 하얀 마스크를 쓴 채 위엄 있게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수레 가득 향기로운 유황 비누와 따뜻한 보리차, 그리고 뽀송뽀송한 마른 짚단이 쌓여 있었다.
“제1구역 죄수들은 조용히 내 말을 들어라!”
박칠성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치자, 험악한 얼굴의 죄수들이 창살 틈새로 머리를 내밀었다.
“박칠성! 너는 간수 놈들의 개가 된 것이냐! 왜 우리를 가로막는가!”
“조용히 해라, 이 무식한 놈들아!”
박칠성이 쇠망치를 단상 바닥에 쿵 내리치며 붉은 종이 표를 흔들었다.
“이것은 이현 위원장님께서 공식 발급하신 ‘복지 쿠폰’이다! 오늘부로 우리는 무의미한 폭동 대신, ‘흑뢰 수용자 자치회’의 이름으로 정당한 노동을 통해 복지를 쟁취한다! 식사 전 비누로 손을 씻고, 자신들의 감방을 청결하게 청소하는 자에게는 매일 이 쿠폰이 지급될 것이다!”
죄수들 사이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
“하! 종이 쪼가리 한 장을 받으려고 마교의 마두들이 빗자루를 잡으란 말이냐! 우리는 온수 샤워와 고기를 원한다!”
그 순간, 박칠성이 단상 옆에 마련된 간이 세면대에서 보란 듯이 유황 비누로 손을 씻기 시작했다. 하얗고 풍성한 거품이 일며, 지하 감옥의 쾌쾌한 곰팡이 냄새를 단숨에 지워버리는 향긋한 봄꽃 향기가 제1구역 전역으로 퍼져나갔.
“음……! 이 향기를 맡아봐라! 그리고 내 깨끗해진 피부를 보아라! 나는 방금 위원장님께 위생 수칙 준수 포상으로 쿠폰 한 장을 받았다. 이 쿠폰으로 오늘 저녁 따뜻한 온수 샤워를 할 것이다!”
박칠성이 선명한 복지 쿠폰을 흔들어 보였다. 죄수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평생 습하고 더러운 감옥 바닥에서 피부병과 가려움증에 시달리던 그들이었다. 박칠성의 뽀송뽀송하고 깨끗한 피부와 향기로운 냄새는, 그 어떤 무공 비급보다도 강렬한 유혹이었다.
게다가 단상 뒤편에 위치한 합법 매점 ‘흑정’의 문이 열리며, 김복창이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박하차를 들고 나타났다.
“자자! 쿠폰 단 한 장이면 이 시원하고 머리가 맑아지는 박하차 한 잔과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청소 봉사에 자원하는 선착순 50명에게는 특별 위생 수당으로 쿠폰 두 장을 즉시 지급합니다!”
그 선언이 떨어지는 순간, 제1구역의 침묵은 산산조각이 났다.
“내, 내가 하겠소! 빗자루를 이리 내놓으시오!”
“비켜라, 이 늙은이들아! 청소는 내가 제일 잘한다! 내 감방의 먼지는 단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닦아내겠다!”
“손 씻기 비누는 어디 있느냐! 나도 꽃 향기를 맡고 싶다!”
악명 높은 사파의 살수들과 흉악범들이, 복지 쿠폰 한 장을 더 받기 위해 서로 빗자루와 걸레를 차지하려 육탄전을 벌이는 기상천외한 풍경이 시작되었다.
감옥 복도는 순식간에 물청소와 솔질 소리로 가득 찼고, 죄수들은 식사 전에 줄을 서서 유황 비누로 손가락 사이사이를 깐깐하게 씻기 시작했다. 폭동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직 청결과 복지를 향한 자발적인 노동 경쟁만이 감옥을 지배했다.
조태독은 먼지 하나 없이 반짝이기 시작한 감옥 복도와, 붉은 쿠폰을 소중하게 품에 안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박하차를 마시는 죄수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고 평화로운 감옥 풍경에 조태독은 완벽하게 넋을 잃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 이게 정녕 마교의 지하 감옥이란 말이냐…….”
조태독의 넋 나간 중얼거림 뒤로, 이현은 휠체어에 앉아 깨끗하게 닦인 복도 바닥을 안경 너머로 지극히 깐깐하게 검사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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