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공식 직인
위지흔이 서류철을 덮고 조태독에게 시선을 던지자, 흑뢰 감옥의 역사상 가장 통쾌한 사법적 단죄가 시작되었다.
광장에 모인 200여 명의 간수들은 숨을 죽였다. 조태독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축축한 흙바닥에 툭, 툭 떨어지는 소리만이 기묘할 정도로 정적을 깨뜨렸다. 마교 본산 감찰부의 실권자이자 개혁파의 거두인 감찰 부총관 위지흔의 차가운 안광은 조태독의 심장을 꿰뚫을 듯이 날카로웠다.
“조태독 간수장.”
위지흔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실린 초절정 고수의 내력은 광장 전체를 얼려버리기에 충분했다.
“본산 감찰부의 이름으로 공식 판결을 선포한다. 귀하가 지난 10년간 흑뢰 감옥의 방역비와 간수들의 야근 수당을 조직적으로 횡령하여 금화 5만 냥에 달하는 부당 이득을 취한 죄는, 대황제국 황자 이현이 제시한 복식부기 장부와 실물 열쇠꾸러미를 통해 명백한 사실로 판명되었다.”
“대, 대인! 그것은 날조된……!”
조태독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머리를 찧었으나, 위지흔은 가볍게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잘라냈다.
“입을 다물라. 이미 부간수장 독고패가 모든 죄를 자백했고, 감찰대원들이 귀하의 지하 비밀 금고에서 금화 5만 냥의 실물을 확보했다. 더 이상의 변명은 교단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하겠다.”
위지흔은 조태독을 벌레 보듯 내려다본 뒤, 시선을 돌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이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매서운 눈빛이 이현에게 닿는 순간, 기묘할 정도로 부드럽고 경탄 어린 기색으로 변했다.
“반면, 대황제국의 제3황자 이현은 비록 인질의 신분이나, 탁월한 행정력과 현대식 보건 위생 시스템을 도입하여 흑뢰의 사망률을 0%로 낮추고 교단 예산을 무려 70%나 절감하는 전무후무한 공적을 세웠다. 이는 교단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라는 천마조조의 창립 정신에 완벽히 부합하는 행위다.”
위지흔이 품속에서 벼락 맞은 대나무로 정교하게 깎아 만든, 묵직하고 붉은 인장이 찍힌 도장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이 바로 본산 감찰부에서 공식 보증하는 ‘노조 위원장 공식 결재 직인’이었다.
“이에 감찰부는 오늘부로 이현 황자가 이끄는 ‘흑뢰 간수 노동조합’을 마교 역사상 최초의 합법적 자치 조직으로 승인한다. 또한, 이현 황자에게 이 공식 직인을 수여하며 흑뢰 감옥의 실질적인 행정 및 재무 전권을 위임한다.”
이현은 창백한 안색으로 가볍게 기침을 콜록이더니, 정갈하게 다려진 소매를 뻗어 위지흔으로부터 붉은 직인을 양손으로 정중히 받쳐 들었다.
“콜록…… 감사합니다, 감찰대인. 본산의 신뢰에 보답하여, 흑뢰의 노동 환경과 예산 집행을 지극히 깐깐하고 투명하게 관리하겠습니다.”
이현의 목소리는 가늘고 나약했으나, 그 손에 쥔 붉은 직인은 광장의 그 어떤 칼날보다도 무거운 권위를 뿜어내고 있었다.
조태독은 그 모습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실질적인 결재권이 인질의 손에 넘어가는 순간, 자신의 지위가 껍데기만 남은 식물 인간으로 전락할 것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했기 때문이다.
“대인!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놈은 황실에서 보낸 인질에 불과합니다! 어찌 마교의 신성한 감옥 지배권을 인질 따위에게 넘긴단 말이냐!”
조태독이 울부짖자, 위지흔은 차갑게 콧방귀를 꼈다.
“조태독. 귀하는 명목상 간수장의 직위를 유지한다. 단, 오늘부로 흑뢰의 모든 예산 집행, 인사 배치, 간수들의 근무표 및 휴가 승인 등 모든 실무 결재권은 오직 이현 위원장의 ‘공식 결재 직인’이 찍힌 서류를 통해서만 효력을 발휘한다. 귀하의 구두 명령은 아무런 법적 구속력을 지니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사형 선고보다 더 끔찍한 행정적 거세였다. 조태독은 입을 벌린 채 넋이 나갔고, 부하 간수들은 가슴에 찬 붉은 완장을 만지며 소리 죽여 환호했다. 드디어 자신들의 밀린 수당과 인간다운 삶이 저 작은 붉은 도장 하나로 보장받게 된 것이다.
위지흔은 감찰대원들을 이끌고 조태독의 비밀 금고에서 압수한 5만 냥의 실물 자금을 수거하기 위해 집무실로 향했다. 광장에는 오직 이현과 그의 노조 친위대, 그리고 홀로 남겨진 조태독만이 남았다.
위지흔의 마기가 사라지자, 조태독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동자는 핏발이 서 있었고,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혈살마공의 붉은 마기가 다시금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비록 결재권은 잃었을지언정, 자신은 절정 극성의 고수였다. 하급 간수 무리 따위는 일격에 찢어발길 수 있는 무력이 있었다.
“이…… 비열한 황자 놈이 감히 내 목줄을 쥐려 해? 감찰 부총관이 떠났으니 이제 내 세상이다! 이놈들! 당장 저 휠체어에 탄 놈을 끌어내려 독충 구덩이에 처넣어라! 이것은 간수장의 엄중한 명령이다!”
조태독이 사자후를 토하며 채찍을 치켜들었다. 붉은 채찍 끝이 허공을 가르며 날카로운 파공음을 냈다. 보통의 삼류 간수들이라면 그 기세에 눌려 무릎을 꿇었을 터였다.
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간수들은 오히려 이현의 휠체어 앞으로 걸어 나와 철통같은 인의 장막을 형성했다. 그 중심에 선 노조 부위원장 조평식이 단단한 가죽 허리 보호대를 고쳐 차며 앞으로 나섰다.
“간수장님. 죄송하지만 그 명령은 따를 수 없습니다.”
“뭐라? 조평식, 네놈이 정녕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내 명령을 거부하는 자는 즉시 교율에 따라 참수하겠다!”
조태독이 폭주하듯 소리치자, 조평식은 품속에서 빳빳하게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조태독의 면전에 들이밀었다. 그 종이의 하단에는 방금 이현이 수여받은 ‘노조 위원장 공식 결재 직인’의 선명하고 붉은 도장 자국이 칼같이 찍혀 있었다.
“저희는 현재 노동조합 헌장 제12조 ‘부당 지시 거부권’ 및 위지흔 대인께서 승인하신 자치 규정에 의거하여, 간수장님의 무단 폭력 명령을 거부합니다. 또한, 여기 위원장님의 공식 직인이 찍힌 ‘야간 특근 대체 휴가 승인서’를 보십시오. 저를 포함한 광장의 간수 50명은 현재 공식적인 비번 휴가 상태입니다.”
“휴…… 휴가라고? 이 피비린내 나는 마교의 감옥에서 휴가 따위가 존재한단 말이냐!”
조태독의 눈이 뒤집어졌다. 서필 역시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자신의 결재 서류를 보여주었다.
“저 역시 주 5일 근무제 규정에 따라 오늘 오후부터 공식 비번입니다. 위원장님의 도장이 찍힌 서류를 거부하시고 저희에게 강제 노동을 시키신다면, 그것은 본산 감찰부의 판결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역모죄가 됩니다. 간수장님, 정말 감찰부의 정식 재조사를 원하십니까?”
“이, 이 교활한 놈들이……!”
조태독은 채찍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눈앞의 간수들은 더 이상 자신을 두려워하는 소모품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현이 구축한 정교한 ‘행정적 면책 특권’과 ‘노조 헌장’이라는 완벽한 법적 방패 뒤에 숨어, 자신들의 권리를 깐깐하게 주장하는 현대식 직장인들로 완벽히 교화되어 있었다.
조태독은 휠체어에 앉아 여유롭게 따뜻한 보리차를 들이키는 이현을 쏘아보았다. 이현은 안경 너머로 지극히 건조하고 깐깐한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조 간수장. 조직의 지배력은 가죽 채찍의 가혹함이 아니라, 정당한 규칙과 예산의 집행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귀하는 이제 결재 도장이 없는 명목상의 상사에 불과하니, 괜히 기운 빼지 마시고 결재 라인을 준수하십시오. 그것이 귀하의 남은 모근 건강에도 이로울 것입니다.”
“크으으윽……!”
조태독은 가슴을 쥐어짜며 뒤로 넘어질 뻔했다. 무공은커녕 기침 한 번에 각혈을 하는 유리몸 황자에게, 자신들의 모든 권력과 지휘 체계가 단 한 장의 서류와 붉은 직인에 의해 완벽하게 분쇄당한 것이다.
이현은 조태독의 무기력한 붕괴를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전생의 대한민국 대기업 HR 실장 시절, 무능하고 부패한 임원들을 서류 한 장으로 식물 인간으로 만들어 퇴출시키던 구조조정의 쾌감이 현생에서 완벽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이현은 결재판을 무릎 위에 올렸다. 그 위에는 늙은 서기 사마경과 함께 밤을 새우며 작성한 ‘3교대 근무제 및 주 5일제 공식 근무 시간표’가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이현은 벼락 맞은 대나무 직인을 들어, 붉은 인절을 묻힌 뒤 시간표 하단에 칼같이 내리찍었다.
쿵—!
선명하고 예리한 붉은 직인 자국이 종이 위에 깊게 새겨졌다.
“오늘부로 흑뢰 감옥의 신형 근무제를 공식 시행합니다. 전 조합원은 교대 시간을 칼같이 준수하여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십시오.”
이현의 단호한 선언이 떨어지자, 조평식을 비롯한 간수들이 일사불란하게 가슴에 손을 얹으며 경례를 올렸다.
“존명, 위원장님!”
간수들은 이현의 도장이 찍힌 결재 서류를 마교 교주령만큼이나 엄숙하게 받들어 들고, 일제히 광장을 빠져나가 자신들의 쾌적한 휴게실과 온수 목욕탕으로 향했다. 광장에는 오직 홀로 버려진 조태독의 비참한 비명만이 축축한 벽면을 타고 공허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