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뢰 청문회와 붉은 인장
짝. 짝. 짝.
음침하고 축축한 흑뢰 감옥의 중앙 광장. 정적을 깨고 울려 퍼진 박수 소리는 기묘할 정도로 차분하고 규칙적이었다.
광장에 도열해 있던 200여 명의 간수 노조원들과, 쇠사슬을 쥔 채 씩씩거리던 간수장 조태독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쏠렸다. 감옥의 거대한 철문 너머로,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검은 비단 도포를 칼날처럼 차려입은 사내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서 번쩍이는 황금빛 본산 감찰패. 마교 본산 감찰부의 실권자이자 개혁파의 거두, 감찰 부총관 위지흔이었다.
“대, 대인……!”
조태독이 들고 있던 채찍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헐떡였다. 부하들의 집단 항명으로 기혈이 뒤틀려 가던 그의 대머리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위지흔은 예리한 눈빛으로 광장의 풍경을 천천히 훑었다. 양팔에 붉은 완장을 차고 꼿꼿한 자세로 이현의 휠체어를 둘러싸고 있는 간수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하얀 비단 마스크를 쓴 채 태연히 찻잔을 들고 있는 병약한 황자.
이곳은 피와 비명이 가득해야 할 마교 최악의 지하 감옥이 아니었다. 마치 일사불란하게 통제되는 본산의 정예 연무장, 혹은 기묘한 관청의 집회장 같았다.
“참으로 이색적인 풍경이로군.”
위지흔이 나직하게 읊조리며 이현의 앞에 멈춰 섰다.
“칼과 피가 지배해야 할 지하 흑뢰에서, 하급 무사들이 붉은 완장을 차고 집단 태업을 벌이다니. 이현 황자, 그대가 이 해괴한 소동의 주동자 인가?”
“대인! 이놈입니다!”
조태독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저 병약한 황자 놈이 사악한 세작질로 하급 간수들을 가스라이팅…… 아니, 선동하여 마교에 반역을 꾀했습니다! 감옥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본산의 명령을 거부하게 만들었으니, 당장 저놈의 목을 베어 천마전의 제단에 바쳐야 합니다!”
조태독의 살기 어린 고함에 하급 간수들이 주춤하며 칼자루를 쥐었다. 본산 감찰부의 권위는 지하 감옥의 간수들에게 하늘과도 같았다.
그러나 휠체어에 앉아 있던 이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볍게 기침을 콜록이더니, 옆에 대기하던 수석 비서 서필이 대령한 따뜻한 산소 수건으로 입가를 정갈하게 닦아냈다.
“콜록…… 서 비서, 보리차가 미지근하군요. 온도를 정확히 섭씨 40도로 유지하라고 했을 텐데요.”
“히익! 죄, 죄송합니다, 위원장님! 즉시 교체하겠습니다!”
서필이 사색이 되어 보온병을 움켜쥐었다. 감찰 부총관의 살벌한 기세 앞에서도 오직 차 온도를 지적하는 이현의 지독한 깐깐함에, 위지흔의 입꼬리가 흥미롭다는 듯 실룩였다.
이현은 천천히 안경을 고쳐 쓰며 위지흔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내면에서 전생의 대기업 HR 실장 시절, 수백 명의 감사팀과 강경파 주주들을 서류 한 장으로 데꿀멍하게 만들던 ‘5단계: 예산 및 물류 통제관’의 경지가 차분하게 가동되었다.
“반역이라니요, 감찰대인. 참으로 무식하고 행정적 상식이 결여된 모함입니다.”
이현이 단호하면서도 우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는 반역을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단지 마교 율법 제4조 ‘교도의 신체적 완전성 수호’와 천마조조의 ‘상생 정신’에 근거하여, 정당한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합법적인 ‘집단 태업’을 진행 중일 뿐입니다. 저 무식한 조 간수장이 야근 수당을 횡령하고 가혹 행위를 일삼아 감옥의 노동 생산성을 갉아먹고 있었기에, 우리가 이를 바로잡으려 나선 것입니다.”
“네놈이 끝까지 궤변을……!”
조태독이 검을 뽑으려 하자, 위지흔이 가볍게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재미있군. 율법을 논하는 인질이라니. 좋다. 감찰부의 권능으로 이 자리에서 공식적인 ‘흑뢰 청문회’를 개최하겠다. 조태독, 그리고 이현 황자. 양측은 자신들의 주장을 증명할 명확한 행정적 물증을 제시하라. 만약 핑계에 불과하다면, 내 직접 이 자리에서 반역도들의 목을 벨 것이다.”
위지흔의 천마감찰심법(천마감찰심법) 기세가 광장을 짓누르자, 간수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조태독은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하며 뻔뻔하게 소리쳤다.
“대인! 물증이라면 차고 넘칩니다! 저 황자 놈이 밤마다 간수들에게 기묘한 주문을 외우게 하며 정신을 세뇌했습니다! 게다가 감옥의 예산을 제멋대로 전용하여 온수 수건이니, 닭가슴살이니 하는 사치품을 구매해 교단의 재정을 낭비했습니다! 이는 명백한 예산 유용이자 율법 위반입니다!”
조태독의 기세등등한 주장을 들은 이현은, 그저 한심하다는 듯 쯧쯧 혀를 찼다.
“참으로 구시대적인 회계 관념이군요. 조 간수장, 귀하의 그 얄팍한 두뇌로는 장부의 숫자가 지닌 진정한 마력을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이현이 서필에게 눈짓을 보냈다. 서필은 기다렸다는 듯, 품속에서 붉은 가죽으로 장정된 두꺼운 서류철을 꺼내 위지흔의 임시 청문회 테이블 위에 정중히 대령했다.
그것은 이현이 늙은 서기 사마경과 함께 밤을 새우며 정리한, 흑뢰 감옥의 ‘10년 치 복식부기 결산 장부’였다.
“감찰대인. 이것이 바로 조태독 간수장이 지난 10년간 본산 몰래 저지른 횡령과 배임의 명백한 물증입니다.”
이현의 선언에 조태독의 얼굴이 굳어졌다. 옆에 서 있던 부간수장 독고패는 이미 사색이 되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장부란 말이냐! 날조된 서류다!”
조태독이 소리쳤으나, 이현은 차분하게 깃털펜을 들어 장부의 특정 수치를 가리켰다.
“조 간수장, 귀하는 단식부기라는 원시적인 방식으로 수입과 지출만 대충 나열해 본산을 속여왔겠지요. 하지만 내가 도입한 ‘복식부기 장부 작성법’ 앞에서는 자산과 부채, 자본의 흐름이 1푼의 오차도 없이 대조됩니다. 대인, 보십시오.”
이현이 위지흔을 향해 장부를 펼쳤다. 장부 위에는 현대식 회계 원리에 따라 차변(Debit)과 대변(Credit)이 칼같이 나뉘어 있었고, 붉은색 잉크로 정밀하게 그어진 꺾은선 그래프가 자금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위지흔의 눈이 번쩍 뜨였다. 평생 난잡한 장부만 검사하며 두통을 앓던 감찰부의 실력자에게, 이 완벽한 수치의 대조는 그 어떤 천상의 무공 비급보다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이 수치는…… 자금의 출처와 행방이 양방향으로 완벽히 대조되어 있군. 장부 조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야.”
위지흔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현은 쐐기를 박듯 ‘10분 결산 감사안’의 예리한 분석을 쏟아냈다.
“그렇습니다. 이 장부를 보시면, 지난 10년간 본산에서 흑뢰 감옥의 ‘죄수 방역 및 보건비’로 매년 금화 5,000냥이 책정되었으나, 실제 집행된 금액은 0냥이었습니다. 또한 간수들의 ‘야간 근무 수당’으로 배정된 금화 3,000냥 역시 단 1푼도 지급되지 않았지요. 그렇다면 이 사라진 금화 5만 냥은 어디로 갔을까요?”
이현이 품속에서 짤랑거리는 쇳소리와 함께 단단한 철제 열쇠꾸러미를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것은 부간수장 독고패를 통해 합법적으로 확보한, 조태독 일가의 비밀 금고 열쇠꾸러미입니다. 대인의 감찰대원들을 보내 간수장실 지하 벽면을 뜯어보십시오. 정확히 금화 5만 냥과 뇌물 수수 장부가 들어있을 것입니다. 만약 내 계산이 단 1푼이라도 틀린다면, 이 자리에서 제 목을 베셔도 좋습니다.”
“이, 이 역적 놈이……!”
조태독이 비명을 지르며 장부를 파괴하기 위해 혈살마공의 진기를 끌어올렸다. 붉은 마기가 그의 손끝에서 폭발하려던 찰나, 위지흔이 가볍게 손가락 하나를 튕겼다.
팅—!
맑은 기운의 파동이 조태독의 단전을 강타했다. 조태독은 컥 소리를 내며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나 주저앉았다. 위지흔의 차가운 눈빛이 그를 관통했다.
“감찰 청문회 중에 무력을 쓰려 하다니, 죄를 자백하는 꼴이로군.”
이현은 기침을 한 번 더 콜록이더니, 휠체어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또한, 대인. 내가 감옥의 예산을 낭비했다는 조태독의 주장 역시 수치로 반박하겠습니다. 내가 도입한 위생 규정과 온수 샤워, 마른 짚단 보급으로 인해 흑뢰 감옥의 수용자 사망률은 기존 45%에서 현재 0%로 떨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본산이 매년 지출하던 ‘신규 죄수 압송 및 대체 인력 훈련비’가 무려 70% 절감되었습니다. 즉, 나는 예산을 낭비한 것이 아니라, 교단의 재정을 획기적으로 구원한 것입니다.”
완벽한 수치.
완벽한 물증.
그리고 조태독의 비밀 금고 열쇠까지.
위지흔은 이현이 제시한 장부의 마지막 결산 수치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차변과 대변의 합계가 소수점 아래까지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이것은 무공의 경지를 초월한, 지극히 아름다운 행정의 극의였다.
위지흔이 천천히 장부를 덮으며 조태독을 응시했다. 그의 차가운 눈빛에 서린 살기는 조태독이 뿜어내던 혈살마공보다 훨씬 무겁고 예리했다.
“조태독 간수장.”
위지흔의 나직한 목소리가 광장 전체를 얼려버렸다.
조태독은 사색이 된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마에서 비 오듯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의 평생의 권력과 탐욕이, 병약한 황자가 쥔 깃털펜 끝에서 완전히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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