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감독관의 각성
“조합원 전원 들어라! 오늘부로 우리는 조태독 간수장의 부당한 아침 조회 명령을 전면 거부한다! 전원 헌장에 명시된 휴식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대기실과 휴게실로 이동한다! 노동조합의 힘을 보여주자!”
뿌우우우—!
조평식이 불어 제낀 청동 나팔 소리가 지하 감옥의 축축한 인공 암벽을 타고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그 파동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백 년간 마교의 밑바닥에서 짐승처럼 부려지던 하급 무사들이 마침내 ‘인간다운 삶’을 갈구하며 터뜨린 최초의 함성이었다.
“미, 미친놈들이……! 정녕 단체로 제 목을 베어달라고 발악을 하는구나!”
광장 한가운데 홀로 남겨진 간수장 조태독의 대머리가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의 관자놀이에 돋아난 굵은 힘줄이 마치 살아있는 지렁이처럼 요동쳤다. 평생 공포와 폭력만으로 이 지하 흑뢰를 지배해 왔던 그였다. 그런데 감히 황자 나부랭이의 말장난 몇 마디에 평생 자신의 사냥개 노릇을 하던 간수들이 붉은 완장을 차고 등을 돌리다니.
이것은 단순한 항명이 아니었다. 조태독의 지배 체계에 대한 완벽한 부정이었고, 마교의 근간을 흔드는 역모였다.
“이현……! 네놈이 정녕 살아서 나갈 생각이 없구나!”
쿠우우웅!
조태독의 전신에서 피비린내 나는 혈살마공(혈살마공)의 붉은 진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절정 극성에 달한 마두의 기세는 광장 주변의 온도를 순식간에 얼려버릴 듯 차갑고도 무거웠다. 그가 허리춤에서 한철 혈사 채찍을 뽑아 들자, 채찍 표면에 깃든 붉은 마기가 뱀처럼 아지랑이치며 울부짖었다.
쉭! 콰아아앙!
조태독이 휘두른 채찍이 이현이 앉아 있던 목조 단상을 직격했다. 단단한 참나무로 만들어진 단상이 단 한 격에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폭풍 같은 풍압이 이현의 뺨을 때렸다.
“컥! 콜록, 콜록……!”
무공이 전혀 없는 이현의 연약한 육체는 그저 기세의 여파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창백한 안색의 이현이 격렬하게 기침을 쏟아내자, 옆에 서 있던 서필이 사색이 되어 이현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위, 위원장님! 피하십시오! 저 대머리 마두가 완전히 미쳤습니다!”
“서 비서…… 콜록, 비켜서세요. 휠체어 바퀴에 먼지가 묻으면 닦기 번거롭습니다.”
이현은 서필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뒤로 물리며, 천천히 안경을 치켜올렸다. 그의 눈동자는 조태독의 시퍼런 채찍 끝이 자신의 콧등 앞 불과 한 치 거리에서 허공을 가르고 있음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머릿속은 지극히 건조하고 냉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전형적인 분노 조절 장애에 정무적 판단 능력이 결여된 구시대적 꼰대 상사로군. 조직이 변화할 때 가장 먼저 도태되는 부류지.’
이현은 가볍게 기침을 뱉어내며 조태독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순간, 이현의 내면에서 전생에 대한민국 대기업 HR 실장 시절, 수백 명의 강경파 노조원들과 타협 없는 협상 테이블을 주도하던 ‘근로감독관의 각성’ 경지가 폭발하듯 깨어났다.
비록 육체에는 단 한 푼의 내공도 없었으나, 그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적 정복감과 깐깐한 위엄은 조태독의 혈살마공 기세마저 정서적으로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이것이 바로 행정의 힘이자, 법리의 카리스마였다.
“조 간수장.”
이현이 핏기가 가신 입술을 열어 나직하게, 그러나 광장 전체에 똑똑히 박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귀하는 지금 두 가지 치명적인 법률 위반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첫째는 마교 율법 제102조에 명시된 ‘외교적 인질의 신체적 안전 보장 의무’ 위반이요, 둘째는 내가 제정한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에 따른 근로자 보호 의무 위반입니다.”
“뭐라? 산…… 뭐? 그딴 잡스러운 황실 법률이 마교의 흑뢰에서 통할 것 같으냐! 네놈의 목을 베어 교주님께 바치면 끝이다!”
조태독이 다시 채찍을 치켜들며 포효했다. 하지만 이현은 비웃음 섞인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무식하군요. 교주 독고영께서 나를 이곳에 살려둔 진짜 정무적 가치를 아직도 모릅니까? 제국 황실은 현재 마교와의 평화 협상 테이블에서 나의 ‘생존 진단서’가 단 하루라도 연체되면, 국경 지대의 영석 광산 보급을 전면 차단하도록 명시해 두었습니다. 만약 귀하의 저 가볍고 무식한 채찍 끝이 내 몸에 닿아 상처 하나라도 낸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현이 품속에서 백무진 의원이 발급한 공식 붉은 직인이 찍힌 ‘꾀병 진단서’ 사본을 조용히 펼쳐 보였다.
“그 즉시 황실 사법부는 마교를 상대로 외교적 계약 위반 소송을 제기할 것이며, 본산의 원로원은 영석 보급 중단으로 인한 손실액 수만 냥을 귀하의 삼대를 멸해 충당할 것입니다. 귀하가 평생 가로챈 횡령 자금 5만 냥으로는 그 손실의 10분의 1도 메우지 못할 텐데, 정녕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크, 윽……!”
조태독의 채찍이 공중에서 멈칫했다. 이현의 입에서 나온 구체적인 외교적 역학 관계와 횡령 자금 수치는 조태독의 뇌리를 강타했다. 마교의 법은 잔혹하지만, 돈과 명분 앞에서는 철저히 계산적이라는 것을 그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현이 휠체어 바퀴를 앞으로 한 걸음 굴리며 쐐기를 박았다.
“귀하는 지금 노동조합의 합법적인 파업을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단 내부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조율하라는 천마조조의 ‘상생 정신’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보십시오. 귀하의 뒤에 누가 서 있는지.”
조태독이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광장의 입구와 통로마다 가슴에 붉은 완장을 차고 허리에 가죽 보호대를 단단히 조여 맨 간수들이 칼자루를 쥔 채 그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평생 자신들을 착취하고 수당을 가로챈 조태독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노조 부위원장 조평식이 청동 나팔을 겨누며 외쳤다.
“조태독 간수장! 위원장님은 우리에게 밀린 야근 수당을 찾아주고 허리 건강을 선물해 주신 고마운 분이시다! 위원장님의 몸에 손끝 하나라도 대는 자는, 우리 200명 노조원의 단결된 칼날을 먼저 마주해야 할 것이다!”
“네, 네놈들이 정녕 미쳤구나! 내가 간수장이다! 내 명령을 거부하는 자는 즉참에 처하겠다!”
조태독이 자신의 직속 사법대원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사법대원들! 당장 저 반역도당들의 목을 베어라!”
그러나 광장 구석에 서 있던 사법대원들마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검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있었다. 그들 역시 매일 살인적인 야근에 시달리며 허리 디스크를 호소하던 노동자들이었으며, 이현이 약속한 ‘주 5일제와 야간 특근 수당’의 달콤한 계산법에 이미 마음이 반쯤 넘어간 상태였다.
결국 조태독의 사방에는 그를 옹호하는 단 한 명의 무사도 남지 않았다. 자신이 평생 공포로 지배해 왔던 흑뢰 감옥 한가운데서, 조태독은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고립되었음을 깨달았다.
“이, 이럴 수가…… 내 감옥에서…… 내가 왜……”
조태독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의 강력한 혈살마공의 붉은 진기가 허무하게 흩어지며 한철 혈사 채찍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무력은 숫자의 논리 앞에, 그리고 정교하게 조직화된 ‘노동조합’의 단결력 앞에서는 한낱 먼지에 불과했다.
그때였다.
짝. 짝. 짝.
음침하고 무거운 지하 감옥의 정적을 깨고, 광장 입구 쪽에서 느리고 여유로운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든 간수와 죄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향했다. 흑뢰 감옥의 삼엄한 철문을 열고, 검은 비단으로 만든 세련된 제복을 걸친 미중년 사내가 천천히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본산 감찰부의 권위를 상징하는 황금빛 ‘본산 감찰패’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내의 입가에는 기묘하고도 흥미롭다는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마교 본산에서 파견된 감찰 부총관, 위지흔이었다.
위지흔이 붉은 완장을 찬 간수들과 휠체어에 앉아 단호한 눈빛을 빛내고 있는 이현을 번갈아 보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참으로 이색적인 풍경이로군. 칼과 피가 지배해야 할 지하 감옥에서, 붉은 완장을 차고 법률을 논하는 무사들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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