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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미세 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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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의 밤은 깊고도 가혹했다. 창문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장대비 소리와 소나무 숲을 휘감는 거친 바람 소리가 별장 서재의 두꺼운 석조 벽을 넘어 침묵을 흔들었다. 벽난로에서 타오르는 장작의 붉은 불빛만이 방 안의 유일한 온기였지만, 그 온기조차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을 녹이지는 못했다.


우진의 긴 손가락 끝이 하윤의 뺨에 닿은 채로 멈춰 있었다. 닿은 살결을 타고 전해지는 하윤의 뜨거운 체온에 우진의 입술이 미세하게 벌어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에게 그녀의 체온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만질 수 있는 실존이었다. 하윤의 심장 소리가 골전도 이어폰의 미세한 진동판을 타고 우진의 고막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터질 것처럼 가쁜 심박수. 단말기 화면에는 우진의 심박 상승을 경고하는 적색등이 요란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묘한 설렘은 아주 찰나에 불과했다.


“아윽...!”


갑자기 우진이 나직한 비명을 지르며 하윤의 어깨에서 무너지듯 쓰러졌다. 그의 오른손이 반사적으로 오른쪽 안구를 움켜쥐었다. 관자놀이 부근의 굵은 핏줄이 터질 듯 팽팽하게 솟아올랐고, 그의 하얗게 질린 이마 위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우진 씨! 왜 그래요? 정신 차려봐요!”


하윤은 깜짝 놀라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우진의 몸은 이미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 가고 있었다. 하윤이 다급하게 손목 단말기를 확인하자, 화면에는 최악의 수치가 떠올랐다.


[WARNING: CHEMICAL TOXICITY INDEX - 85%]

[CORNEAL CELL NECROSIS RISK - CRITICAL]


우진을 실명으로 몰고 간 무색무취의 독극물, ‘테트라독신 디클로라이드’의 잔류 독소가 각막 세포를 파괴하며 신경망을 무섭게 갉아먹고 있었다. 마비 지수가 85% 임계점을 돌파하며 안구 내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안구 통증이 우진의 온 신경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이대로 방치하면 120일의 치료 골든타임이 가차 없이 끝나고, 그의 망막은 영구적으로 괴사해 영원한 암흑 속에 갇히게 될 터였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안구 뒤쪽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 같군.”


우진은 고통을 참아내려는 듯 이를 악물었지만, 그의 입술은 이미 핏기를 잃고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평생 강철 같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해 온 남자였지만, 신경을 직접 파괴하는 화학 독소의 고통 앞에서는 무력한 인간에 불과했다.


하윤은 입술을 깨물며 차가운 이성을 가동했다. 엔지니어로서 슬퍼하거나 당황할 시간은 없었다. 그녀는 우진을 서재 안락의자에 깊숙이 앉힌 뒤, 자신의 가방에서 낡은 가죽 표지의 친필 노트를 꺼냈다. 과거 태성그룹에서 쫓겨나기 전, 그녀의 아버지 정민우 연구원이 평생을 바쳐 기록해 둔 광학 설계 비밀 노트였다.


노트의 빛바랜 페이지를 미친 듯이 넘기던 하윤의 손가락이 한 수식 앞에서 멈춰 섰다. 아버지가 여백에 거친 필체로 적어둔 수식, ‘다차원 시신경 세포 자가 재생 유도 주파수 공식’이었다. 인간 안구의 미세한 곡률과 전류 저항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내어, 마비된 신경 세포를 자극해 깨우는 클래식 광학의 결정체였다.


‘아빠... 제발 이 공식이 맞아야 해요.’


하윤은 서둘러 노트북을 열고 조율기를 연결했다. 아버지가 남겨준 수식을 아우라 렌즈의 미세 전류 제어 알고리즘에 대입해 코딩을 시작했다. 화상을 입어 붕대 가 감긴 오른손 끝이 키보드 위를 두드릴 때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하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우진을 살려야 한다는 집념만이 그녀의 뇌를 지배하고 있었다.


“우진 씨, 조금만 참아요. 시신경 자극 주파수를 세팅했어요. 바로 치료를 시작할게요.”


하윤은 푸른 빛의 휴대용 광학 조율기를 켜고 우진의 눈동자에 초점을 맞췄다. 삑, 하는 비프음과 함께 조율기 끝에서 날카로운 푸른색 레이저 빔이 우진의 동공 중심을 관통했다.


[EMS STIMULATION: START - 1.0mA]


미세 전류 시신경 자극 물리치료(EMS)의 첫 단계 전류가 송출되는 순간, 우진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삐- 삐- 삐-!


갑자기 조율기 화면에 적색 경고등이 켜지며 강제 차단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EMERGENCY STOP: CORNEAL OVERHEATING WARNING]

[BRAINWAVE ANOMALY DETECTED]


“아윽...!”


우진의 오른쪽 눈가 주변이 벌겋게 충혈되며 부어올랐다. 마비된 각막이 준비 없이 흘러든 전류의 열감을 견디지 못하고 거부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하윤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아무리 정교한 주파수라 해도, 독소로 약해진 각막 표면에 직접 전류를 흘려보내는 것은 안구를 직접 태워버리는 살인 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윤은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구급상자 깊숙이 숨겨두었던 앰플을 꺼냈다. 서준호 원장이 병원 약제실에서 한정혜 측의 감시를 피해 수동으로 소량 추출해 준 ‘시신경 보호용 특수 하이드로겔 겔’이었다. 이 투명한 완충 겔은 레이저 자극 시 발생하는 안구 열감을 완화하고 세포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패였다.


“각막 보호 겔 도포 치료법을 병행해야 해. 아빠의 수식과 겔이 결합하면 전류가 안구 전체에 안전하게 분산될 거야.”


하윤은 떨리는 호흡을 길게 내쉬며 미세 핀셋을 집어 들었다. 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초정밀 수작업 시술이었다.


“우진 씨, 제 어깨를 잡고 몸을 완전히 고정해요. 눈을 절대 감으면 안 돼요.”


하윤은 우진의 무릎 위에 걸터앉듯 다가갔다. 두 사람의 거리는 다시 한 뼘 이내로 좁혀졌다. 벽난로의 붉은 불빛 아래에서, 하윤의 가쁜 숨결이 우진의 차가운 뺨과 쇄골 틈새로 쉼 없이 스며들었다. 우진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하윤의 은은한 비누 향과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을 느끼며, 자신의 어깨를 펴고 몸을 완전히 맡겼.


하윤은 왼손으로 우진의 눈꺼풀을 조심스럽게 벌렸다. 그리고 오른손에 쥔 미세 핀셋 끝에 차가운 하이드로겔 겔을 묻혀, 그의 안구 표면에 지극히 정교한 움직임으로 바르기 시작했다. 핀셋 끝이 그의 각막에 닿을 때마다 우진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고, 하윤은 숨을 멈춘 채 손끝의 정밀한 감각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겔이 도포되자 우진의 안구 주변을 맴돌던 붉은 열감이 서서히 진정되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이제 다시 시작할게요. 이번엔 견뎌내야 해요.”


하윤은 조율기를 들고 다시 주파수를 쏘아 보냈다.


[EMS STIMULATION: RE-TRY]

[CURRENT LEVEL: 1.2mA... 1.5mA...]


“으으윽...!”


우진의 턱관절이 부서질 듯 힘이 들어갔다. 각막을 뚫고 시신경 뒤쪽으로 직접 흘러드는 미세 전류는, 마치 불로 달군 바늘 수천 개가 안구 뒤쪽 뇌 신경을 사정없이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유발했다. 우진의 전신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뒤틀렸다.


그 고통 속에서 우진은 무의식적으로 옆에 서 있던 하윤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의 악력은 엄청났다. 하윤의 가녀린 오른손 뼈가 으스러질 듯한 맹렬한 압박이 가해졌고, 화상을 입었던 손가락 끝에서 찌릿한 통증이 다시 피어올랐다. 하윤의 미간이 고통으로 찌푸려졌지만, 그녀는 결코 손을 빼지 않았다. 오히려 왼손으로 우진의 단단한 손등을 마주 잡으며, 자신의 체온을 그의 손바닥 안으로 밀어 넣었다.


“우진 씨, 저를 봐요. 제 목소리에 집중해요. 괜찮아요, 제가 옆에 있어요. 저를 믿으세요.”


골전도 이어폰을 통해 뇌리로 직접 꽂히는 하윤의 정교하고 따뜻한 목소리는, 고통의 심연에 빠진 우진에게 유일한 생명의 닻이었다. 우진은 그녀의 목소리를 지표 삼아 폭풍 같은 통증 속에서 정신을 놓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버텼다.


하윤은 조율기의 레버를 조금 더 올렸다.


[CURRENT LEVEL: 1.8mA... 1.9mA...]


화면의 게이지가 노란색 영역을 지나 붉은색 ‘시신경 감각 자극 한계치 (2.0mA)’ 바로 턱밑까지 차올랐다. 2.0mA를 단 0.1초라도 초과하는 순간, 우진의 시신경은 전류의 과부하로 완전히 타버려 영구 실명에 이르게 된다. 하윤의 손목이 저려오고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0.01mA의 미세한 조율 에러도 용납되지 않는 극한의 상황.


하윤은 자신의 ‘초정밀 안구 스캔 및 핀포인트 튜닝’ 능력을 극한으로 발휘했다. 우진의 동공 안쪽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신경 파동을 화면의 황금빛 파형과 대조하며, 출력 강도를 정확히 1.95mA에서 고정시켰다.


[1.95mA... STABLE]

[TOXICITY INDEX: 85% -> 60% DOWN]


마침내 화면의 적색 경고등이 꺼지고 푸른색 안정화 불빛이 들어왔다. 우진의 안구를 난도질하던 마비 독소의 기세가 미세 전류와 보호 겔의 결합력에 밀려 급격히 가라앉았다. 우진의 굳어 있던 어깨가 서서히 풀렸고, 그의 거친 호흡도 차분한 리듬을 되찾았다.


시술이 끝난 서재 안에는 두 사람의 가쁜 숨소리와 타오르는 장작 소리만이 고요하게 얽혀들었다. 하윤은 긴장이 풀려 우진의 무릎 위로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그녀의 양손은 여전히 우진의 단단한 손에 꽉 붙잡힌 채였다.


그때, 우진의 오른쪽 눈가에서 투명한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극심한 통증과 신경 자극이 만들어낸 신체적 반사 반응이었다.


하윤은 재빨리 정신목을 가다듬고 가방에서 초소형 유리 모세관을 꺼냈다. 그녀는 우진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 한 방울을 조심스럽게 모세관 끝으로 접촉해 흡수시켰.


‘이 눈물 속에 잔류 독소의 분자 구조가 섞여 있어. 이걸 지하실 분석기에 넣으면 아빠를 쓰러뜨리고 우진 씨를 눈멀게 한 그 독극물의 진짜 성분을 알아낼 수 있어.’


하윤이 눈물 샘플을 안전하게 밀봉하는 동안, 우진은 천천히 감았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그의 오른쪽 안구에 장착된 아우라 렌즈의 ‘동기화 1단계: 망막 레이아웃 매핑’ 인터페이스가 조용히 부팅되었다. 칠칠한 어둠뿐이던 그의 시야 위로, 얇고 선명한 녹색 레이저 선들이 별장 서재의 책장과 벽면의 3D 윤곽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녹색 격자선들이 겹쳐지는 중심부.


자신의 바로 앞에 서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하윤의 부드러운 얼굴 실루엣과, 어깨 위로 흘러내린 가녀린 머리칼의 윤곽이 선명한 녹색 선으로 매핑되어 우진의 망막에 투사되었다.


비록 완벽한 컬러도, 그녀의 눈동자 색도 보이지 않는 불완전한 선들의 세계였지만, 그것은 우진이 어둠 속에 갇힌 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인간의 구체적인 형상이었다. 그 형상이 너무나 따뜻하고 정교하여 우진은 숨을 쉴 수 없었다.


“정... 하윤...”


우진의 입술이 미세하게 벌어지며, 그의 목소리가 젖은 밤바람처럼 떨려 나왔다. 녹색 실루엣 너머로 비치는 그녀의 존재가 우진의 얼어붙은 심장을 강하게 두드렸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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