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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의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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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대로의 진입로는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 심연처럼 보였다. 굵은 빗줄기가 방탄 벤츠 S클래스의 앞유리를 사정없이 때려눕히는 밤, 이 경호원은 와이퍼를 가장 빠른 속도로 가동하며 가속 페달을 짓밟았다. 엔진이 육중한 포효를 내지르며 젖은 아스팔트를 움켜쥐었으나, 백미러에 비친 추격자들의 기세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검은색 SUV 세 대가 헤드라이트를 하이빔으로 켠 채,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바짝 따라붙고 있었다. 그 선두 차량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내는 다름 아닌 태성그룹 보안팀장 임태식이었다. 그의 살기 어린 눈빛이 빗방울이 맺힌 창유리 너머로 번뜩였다.


쿵—!


갑작스러운 충격음과 함께 방탄 벤츠의 차체 뒷부분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임태식이 몬 SUV가 벤츠의 후방 범퍼를 그대로 들이받은 것이다.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좌우로 미끄러지는 순간, 이 경호원이 본능적으로 카운터 스티어를 먹이며 운전대를 반대로 꺾었다. 빗길 위에서 차체가 스핀할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였으나, 베테랑 드라이버의 정교한 핸들링 덕분에 차량은 간신히 중심을 잡고 직진 궤도로 복귀했다.


그 반동으로 조수석에 앉아 있던 정하윤의 몸이 붕 떴다가 측면 유리창에 세차게 부딪혔다.


“아윽...!”


하윤의 입술 사이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관자놀이 부근이 창틀에 부딪히며 찢어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이마를 타고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손끝으로 훔쳐내니 붉은 피였다. 하지만 그녀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오른손 끝에는 아까 주차장에서 EMP 발생기를 터뜨렸을 때 입은 미세한 화상의 통증이 여전히 저릿하게 남아 있었고, 우진이 차 안으로 자신을 거칠게 끌어올릴 때 움켜쥐었던 왼쪽 손목에는 선명한 붉은 압박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그 모든 상처보다 더 급박한 것은 옆자리에서 신음을 흘리는 강우진의 상태였다.


“우진 씨! 괜찮아요?”


우진은 시트를 움켜쥔 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안구에 피팅된 스마트 렌즈가 차량의 격렬한 흔들림과 외부 충격으로 인해 미세 주파수 대역에서 완전히 이탈해 버린 것이다. 동기화가 끊어지며 가상의 녹색 실루엣마저 사라진 우진의 시야는 다시 완전한 암흑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의 망막 세포가 마비 독소의 자극으로 괴사하듯 쪼여왔고, 관자놀이의 핏줄이 터질 듯 솟아올랐다.


타강—!


그때, 고막을 찢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차 안을 때렸다. 뒤따라붙은 SUV의 조수석 창문이 열리더니, 임태식의 수하가 사설 소총으로 방탄유리를 향해 탄환을 박아 넣은 것이다. 3cm 두께의 방탄유리는 관통되지 않았으나, 하윤의 바로 옆 유리창에 하얗게 거미줄 같은 균열이 피어났다. 굴절된 헤드라이트 불빛이 그 균열에 난반사되며 하윤의 시야를 일시적으로 흐리게 만들었다.


“이대로는 잡힙니다. 전무님, 앞이 보이지 않으시면 제가 경로를 바꿀 수가 없습니다!”


이 경호원이 백미러를 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임태식의 차량들은 벤츠를 특정 인터체인지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곳으로 빠져나가는 순간, 미리 대기 중인 적들의 대형 바리케이드에 갇히게 될 것이 뻔했다.


하윤은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 자신의 특기인 ‘실시간 도주 경로 최적화 계산력’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회로를 돌렸다. 전방 500미터 앞, 공사 중인 가변 차로가 있었다. 붉은색 라바콘과 임시 차단봉으로 막혀 있어 일반 차량은 진입할 수 없는 좁은 길. 하지만 방탄 벤츠의 차폭이라면 0.1밀리미터의 오차만 조율하면 통과할 수 있었다. 거대하고 무거운 임태식의 SUV들은 그 좁은 차단봉 사이를 통과하지 못하고 걸려 넘어질 터였다.


그러기 위해선 우진의 눈을 지금 당장 밝혀야 했다.


하윤은 가방에서 ‘푸른 빛의 휴대용 광학 조율기’를 꺼내 들었다. 어두운 차 안이 순식간에 신비로운 푸른색 레이저 광원으로 가득 찼다.


“우진 씨, 제 손을 잡으세요. 머리를 제 어깨에 고정해요!”


하윤은 흔들리는 차체 안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무릎으로 시트 바닥을 짓눌렀다. 그리고 왼팔로 우진의 단단한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팍 쪽으로 강하게 밀착시켰다. 앞이 보이지 않는 우진은 본능적으로 하윤의 허리춤을 움켜쥐었다.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서로의 가쁜 호흡과 터질 듯한 심장 박동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기묘하게 뒤섞였다.


하윤은 화상을 입어 저릿한 오른손 끝으로 조율기의 다이얼을 미세하게 회전시켰다. 삑, 삑 하는 고주파 비프음이 울리며 조율기 전면에서 얇고 날카로운 푸른색 레이저 빔이 쏘아져 나와 우진의 오른쪽 동공 중심을 향했다.


콰아앙—!


그 순간, 좌측 측면에서 가해진 적들의 두 번째 충돌로 인해 차체가 오른쪽으로 크게 쏠렸다. 조율기의 레이저 초점이 우진의 눈동자에서 완전히 벗어나 허공을 갈랐다. 조율기 화면에 ‘ALIGNMENT ERROR - SIGNAL LOST’라는 붉은색 경고등이 깜빡였다. 첫 번째 조율 시도의 처참한 실패였다.


“제발... 제발 맞춰져라!”


하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눈썹 끝을 타고 내려와 시야를 가렸지만 닦아낼 시간조차 없었다. 그녀는 우진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차가운 그의 뺨과 대비되는 하윤의 뜨거운 손길이 닿자, 우진의 호흡이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하윤은 우진의 동공을 자신의 안경 카메라 렌즈와 일직선으로 맞춘 뒤, 조율기의 출력 버튼을 꾹 눌렀다.


푸른 빛의 레이저가 우진의 오른쪽 안구 중심에 핀포인트로 고정되었다. 주파수 스캐너의 게이지가 무서운 속도로 차올랐다.


[0.1초 딜레이 제로 싱크 프로토콜, 가동합니다.]


치지직—!


우진의 뇌 신경 속으로 찌릿한 미세 전류가 관통했다.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과 함께, 그의 망막 위로 녹색 격자선들이 번개처럼 번쩍이며 기적적인 3D 그래픽 시야가 다시 한번 송출되기 시작했다. 지연 시간 0.01초 이하. 하윤의 안경 카메라가 촬영하는 도로의 모든 실시간 상황이 우진의 뇌 피질에 다이렉트로 매핑되었다. 우진은 하윤의 눈을 통해 전방의 도로 구조를 완벽하게 ‘보았다’.


“이 경호원, 300미터 앞 우측 공사 구간 가변 차로로 진입해! 차단봉 사이 간격은 정확히 2.1미터다. 우리 차폭이면 사이드미러를 접고 아슬아슬하게 돌파할 수 있어!”


우진의 낮고 서늘한 명령이 떨어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터져 나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지시였다. 이 경호원은 망설임 없이 사이드미러 접이 버튼을 누르며 스티어링 휠을 우측으로 꺾었다.


방탄 벤츠가 붉은색 차단봉들이 늘어선 좁은 틈새로 미끄러지듯 진입했다. 뒤따라오던 임태식의 SUV들은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공사 표지판과 거대한 시멘트 블록을 정면으로 들이받으며 요란한 굉음과 함께 뒤엉켰다.


포위망을 돌파했다는 안도감이 차 안에 감돌려던 찰나, 우진이 하윤의 시야를 공유하는 동기화 화면 너머로 전방 100미터 앞의 어둠을 주시했다. 공사 구간의 끝자락, 거대한 노란색 덤프트럭 한 대가 차선 전체를 비스듬히 가로막은 채 엔진을 공회전하고 있었다. 임태식이 미리 배치해 둔 물리적 최종 차단 벽이었다.


“우진 씨, 앞에 덤프트럭이...!”


하윤이 비명을 지르며 우진의 옷깃을 잡았다. 브레이크를 밟기에는 이미 속도가 너무 빨랐고, 빗길이라 미끄러질 것이 자명했다. 충돌하면 방탄 차량이라 해도 무사할 수 없었다.


우진은 하윤의 눈을 빌려 덤프트럭 우측 가드레일 옆에 쌓여 있는 임시 토사 흙더미를 포착했다. 그 완만한 경사면이 그의 뇌 속에서 홀로그램처럼 경로를 그렸다.


“이 경호원, 브레이크 밟지 마! 오른쪽 가드레일 흙더미를 디딤돌 삼아 정면 돌파해! 핸들 꺾어!”


우진의 고함소리와 동시에 벤츠의 우측 바퀴가 비스듬한 흙더미를 타고 힘차게 치솟았다. 순간적인 중력의 상실과 함께, 육중한 방탄 세단의 차체가 허공으로 크게 떠올랐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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